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370화 (371/898)

〈 370화 〉 370화 영웅 사관 학교 (4­11)

* * *

“하아… 엿 같네.”

고충신이 기상하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

해가 질 무렵에 눈을 뜬 그에게 이 일상은 그렇게 이상한 현상이 아니었다.

원래도 부지런한 스타일이 아니었던 그였지만, 오늘은 특히 더 몸이 무거운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전날 있었던 성수호의 강요.

“씨발, 내가 왜 그 새끼랑 게임을….”

전날, 고충신의 실수를 눈감아 준 성수호는 근무표를 변경해주는 조건으로 같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해왔었다.

직접적으로 협박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충신의 입장에서는 외통수를 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충신은 게임을 좋아한다.

아니, 평범하게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광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게 극도로 혐오하는 상사와 함께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바뀌게 된다.

지옥 같은 근무 VS 성수호와 같이 게임.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말할까? 씨발, 그러다가 근무표 안 바꿔주면…. 아냐, 차라리 근무를 서는 게….”

고충신은 그 두 가지를 고민할 정도로 성수호와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성수호와 마주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의 목소리가 고막에 닿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깎이는 기분이 드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고충신이었다.

휴식 시간만큼은 성수호와 마주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던 중,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맞아…. 존나 못하면 알아서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아무리 게임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워오레처럼 대전형식의 게임에서 연패를 한다면 분노의 감정을 무시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냥 트롤짓하면서 욕 좀 먹다 보면 알아서 하자는 소리 안 하겠지.”

그렇게 고충신은 혼자 되지도 않는 계획을 짜고 있을 때였다.

띵똥.

“뭐야?”

처음 들어보는 초인종 소리였지만, 어디서 소리가 났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가 왔나?”

고충신의 기숙사에 누군가가 찾아오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래서 초인종조차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는 의문이 섞인 표정과 함께 문을 열어서 상대방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웬 파란색 복장의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큰 박스를 놓고는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VR 헤드기어 대여 신청하셨죠? 여기 확인 서명해주세요.”

***

“응? 뭐지?”

윤지아와 문자를 하는 중에 영사관 관리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VR 헤드기어의 전달이 완료되었습니다. 부디 밑에 주의 사항을….­

‘오, 빠르네.’

고충신에게 VR 헤드기어가 잘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교장에게 이야기를 듣고, 미리 고민혁의 이름으로 헤드기어 대여를 신청했었다.

교장의 말은 심플했다.

(일단 성수호 보조 교관님의 재량으로 스무 명 정도 선별해서 허가해주세요.)

(스무 명이요?)

(네. 아쉽게도 기기는 충분하지만, 한꺼번에 제공하면 여기저기에서 말이 나올 수 있으니까 말이죠.)

합리적이었다.

작은 형태로 시행해서 점차 늘려가는 것.

작은 단체부터 큰 조직, 심지어 국가 단위로 가더라도 이런 방식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작용했다.

다만, 그런데도 대부분 작은 형태가 아닌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정책이나 규칙을 시행하는 건 그 부분을 허가하는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교장이 굳이 자기에게 전혀 이득도 없는 부분을 비합리적으로 풀어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하하. 제가 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죠. 경비과 직원들은 오히려 성수호 교관님에게 감사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교장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즉시 고민혁의 이름으로 VR 헤드기어를 대여 신청했다.

‘자, 그럼 한번 연락이나 해볼까?’

나는 경비과 직원의 연락처를 전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연락하는 일은 절대 없겠지만, 나는 상시 그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바로 연락처에서 고민혁이라고 적혀 있는 이름을 터치해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들리기를 한참.

‘뭐야? 설마 내 전화 안 받나? 감히 내 전화를 안 받아?’

라고 생각하는 순간 스마트 워치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아, 고민혁 씨, 나야.”

(아… 네.)

내 전화번호를 몰랐던 모양이었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VR 헤드기어 받았지?”

(네, 받았습니다. 그… 관리자님….)

“고마워할 필요 없어. 앞으로 열심히 하라고 주는 거니까.”

(아… 그… 네….)

딱 봐도 거절하려는 분위기가 보여서 바로 선빵을 쳤다.

나는 고충신의 심리를 모르는 꼰대처럼 웃으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나 지금 끝나서 들어가고 있거든. 빨리 설치해놔. 같이하게.”

(지, 지금요?)

“나 지금 당장 하고 싶어. 빨리!”

(아, 알겠습니다. 하아….)

본인 딴에는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용히 내뱉은 것 같지만, 내 귀에는 확실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물고 늘어질 내가 아니었다.

애초에 저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런 짓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고충신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기분을 맛보고 있을 때였다.

문자가 또 왔다.

­혹시 식사하셨나요? 혹시 안 하셨으면….­

나는 그런 윤지아의 문자에 답장을 보내면서 미소를 지었다.

­전 아직 안 먹었어요. 그런데 윤지아 교관님. 혹시 게임 좋아하세요?­

***

윤지아는 견학을 마치고 영사관으로 복귀한 뒤 하루하루를 불안감에 휩싸인 나날을 보내왔다.

그 이유는 하나.

오랜 기간 사귀어왔던 남자친구를 배신하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외간 남자를 자기 다리 사이로 들어오게 허락한 일.

그냥 단순히 스킨쉽이나 만남을 가진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행위였다.

견학을 통해 성수호라는 인물의 성품을 믿고는 있었지만,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자신만 알았을 때 유효한 법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그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언제나 성수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내면에 꽉 들어차 있던 검은 타르 같던 불안감과 죄책감이 분홍빛의 쾌감과 흥분으로 바뀌었다.

윤지아가 품고 있던 죄책감은 성수호와 간단하게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안정을 되찾아줬다.

어느새 윤지아는 성수호와의 교감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문자를 주고받던 도중 성수호가 질문을 해왔다.

­혹시 VR 게임 좋아하세요?­

‘게임?’

윤지아는 기본적으로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지아가 게임을 하는 건 언제나 고충신의 강요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지아의 의존적 성격이 그녀의 손가락을 지배했고, 그녀의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좋아해요.­

다급하게 쓴 문자에는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성수호의 말에 호응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온 답장은 그녀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워오레라는 게임 같이하실래요?­

­좋아요!­

간단한 문자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가상이더라도 그와의 대화는 윤지아의 기대감을 부풀게 하기에 충분했다.

­꼭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얼굴 공개는 ‘친구만 허용’으로 해주세요. 아는 사람이 들어올 거라서요.­

­네!­

윤지아는 상대방을 묻지도 않고, 성수호가 시킨 대로 새로운 계정을 만든 뒤에 워오레에 접속해서 그가 있는 대기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성수호가 있는 대기실에는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오, 오빠?!’

윤지아는 고충신을 보고 허겁지겁 얼굴을 가렸지만, 그 뒤에 바로 성수호의 설명을 듣고 현재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는 분은 내 친구. 인사해.”

“안녕하세요.”

고충신이 자신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휴… 새로 만든 계정이라 친구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 못 보는구나.’

지금 고충신의 눈에 윤지아는 그저 해골 모양의 캐릭터일 뿐이었다.

윤지아는 바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고충신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윤지아의 떨리는 인사와 함께 성수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고충신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 내 친구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얼굴 공개는 못 할 거야. 이해해줄 거야?”

“그럼요… 하하하….”

윤지아의 눈에 보일 정도로 고충신은 지금 상황을 내켜 하지 않는 듯이 웃고 있었다.

소개가 끝나자, 윤지아는 다급하게 성수호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성수호 교관님! 오빠가 여기 왜 있는 거예요!?)

(심심해서 불러봤어요.)

(마, 만약에 들키기라도 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얼굴 공개 하지 않았잖아요. 절대 모를 거예요.)

(하, 하지만….)

윤지아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성향상 자신을 부른 성수호가 허락해주지 않는 한 자의로 게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 일단 오빠는 모르잖아…. 조심하면 문제없을 거야.’

결국 그렇게….

“자, 그럼 시작하자.”

성수호의 말과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

..

게임 자체는 평소에 해오던 워오레와 다를 게 없었다.

윤지아는 성수호와 파트너가 되어서 같은 라인에 갔고, 고충신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정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막상 같이 게임을 하는 성수호도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윤지아와 게임을 즐길 뿐.

‘진짜 게임만 하려는 건가? 하지만….’

처음에는 윤지아도 성수호를 의심하고 있었다.

실수로 자신과의 관계를 고충신에게 들키게 만들려는 속셈인가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면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게임의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빠랑 할 때는 매일 욕하고, 짜증만 내서 재미도 없고 힘들었는데… 이렇게 하니까 재미있네.’

같이 파트너가 되어서 협동하는 포지션.

고충신과 게임할 때는 언제나 뒤치다꺼리만 하는 느낌이었지만, 성수호와의 플레이는 정말 교감을 나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게임이 즐거워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윤지아가 놀란 건 성수호의 실력이었다.

‘진짜 잘하신다. 오빠보다 잘하는 사람 그렇게 많이 못 봤는데.’

성수호의 실력은 게임을 잘하지 못하는 윤지아가 봐도 고충신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능가하는 실력을 갖춘 성수호는….

“거기서 그렇게 들어오면 안 되지.”

“죄, 죄송합니다….”

실수했던 고충신을 나무라고 있었다.

“하아… 일단 빠져서 다른 라인 도와줘. 그리고 궁차면 다시 와.”

“네.”

“….”

윤지아는 진짜 놀란 눈으로 성수호와 고충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 고압적이고 자만적이던 고충신이 누군가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행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절대 굽히지 않던 그가 고작 게임 안에서 누군가에게 굽히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평소에 친절하고, 다정한 성수호에게….

‘….’

미묘했다.

분명 고충신의 저런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면에 불쌍하다는 말을 뱉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고충신의 모습을 보면서 내면에 통쾌함이 들어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오빠도 이참에 성격을 고치면 좋지.’

고충신의 비굴한 모습을 보면서 윤지아는 희미하게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 시간은 어느새 밤이 되었다.

“크… 오늘 재미있었다. 너도 재미있었지?”

“하하… 네…. 그런데 제가 너무 도움이 안 됐네요.”

게임 내내 계속 실수 연발로 욕을 먹은 고충신은 윤지아와 성수호 앞에서 쭈구리처럼 어깨를 늘이고 있었다.

‘…저런 모습도 있구나.’

윤지아는 고충신의 힘없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윤지아의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성수호가 고충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냐. 재미있으면 됐지. 내일도 또 하자고?”

“그… 그러면 너무 민폐가….”

“자, 새벽 근무지? 슬슬 출근해야지. 가봐.”

“…네. 그, 그럼 가보겠습니다.”

고충신은 울상을 지은 채 성수호와 윤지아에게 쭈구리처럼 인사하고는 접속을 종료했다.

윤지아가 멍한 눈으로 떠나간 고충신을 바라보고 있자 성수호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혹시 오늘 재미있으셨어요?”

“네?! 재,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설마 오빠가 있을 줄은….”

“괜찮아요. 절대 들키지 않아요.”

윤지아는 고충신이 떠나고 나서 느낄 수 있었다.

게임 내내 그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들키지 않고 끝났을 때의 희열을….

윤지아는 자신을 친절하게 바라보는 성수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성수호 교관님. 오빠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위선과 가식이었다.

윤지아는 성수호가 고충신을 나무랄 때마다 통쾌함과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실낱같은 이성을 붙잡고 여자친구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윤지아를 보면서 성수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 남자한테 굳이 친절을 베풀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성수호의 말에 윤지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안도감이 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성수호가 그런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안도하는 윤지아에게 성수호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면….”

“…?”

그런 윤지아의 표정을 보던 성수호가 그녀에게 다가가서 포옹을 시도했다.

“서, 성수호 교관님….”

“윤지아 교관님께서 저한테 좀 시간을 내주시면 굳이 그 친구한테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질지도 모르죠.”

“어!?”

“응!?”

윤지아에게 포옹을 하던 성수호가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으로 튕겨 나가면서 그녀의 앞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경고 :="" 본="" 게임은="" 성적인="" 행위를="" 금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치="" 않는="" 행위나="" 언행을="" 했을="" 경우="" 신고가="" 가능합니다.="" 신고하시겠습니까?=""/>

“아….”

“게임이 빡빡하네요.”

성수호는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이러면 어쩔 수 없네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이만 쉬세요.”

“자, 잠시만요!”

“…?”

윤지아는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숙여서 성수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속삭였다.

“만약… 제가 시간 내드리면… 오빠한테 잘해주실 건가요?”

윤지아는 용기를 내어 말했고.

성수호는 그런 윤지아를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귀에 대고 입을 열었다.

“지금 제 기숙사로 와주세요.”

성수호의 목소리를 들은 윤지아의 내면에….

“네… 갈게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 그녀를 이끌기 시작했다.

* *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