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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369화 (370/898)

〈 369화 〉 369화 영웅 사관 학교 (4­10)

* * *

“워… 오레요?”

고충신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임 이름 때문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갸우뚱하기를 몇 초.

한참을 뜸을 들이던 고충신은 짧게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너무 유명해서….”

VR 게임은커녕 VR 기기를 평생 본 적이 없던 사람도 워오레는 다 알고 있었다.

모른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놈 취급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 워오레이다.

나는 그런 고충신을 보면서 속으로 비릿한 웃음을 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해본 적 있어?”

“아… 그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해봤다고 하기에는 그럼 고가의 기계를 평범한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꼴이고, 그렇다고 해본 적 없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고충신에게 탈출로를 만들어줬다.

“윤지아 교관님이랑 친했으면 당연히 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물어보는 거야.”

“아! 해, 해봤습니다. 예전에 잠깐 기계를 가지고 있던 적이 있어서….”

“그럼 랭크도 올려봤겠네?”

“그….”

고민하는 눈치였다.

내가 갑자기 게임 이야기를 꺼내고, 랭크 이야기를 꺼내니까 경계하는 것이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원하는 답을 끌어낼 방법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왠지 고민혁 씨는 왠지 랭크 낮을 거 같은데…. 브론즈 되려나?”

“아! 다, 다이아입니다!”

역시 먹혀들었다.

자기 능력을 얕잡아보는 것을 좋아할 인간은 없지만, 고충신은 그것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절대 포기 못 하는 영역일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주의 성향이니까.

‘완벽주의면 뭐해. 그만한 재능이 없는데.’

빙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주의는 분명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효과를 불러들이지만, 그 이하의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독과 같다.

대표적으로 고충신이 아직 윤지아와 섹스를 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루를 극복하고 완벽한 첫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완벽주의 성향.

‘뭐, 덕분에 내가 잘 먹었지만.’

나는 속으로 희열에 찬 웃음을 내며 그를 보면서 말했다.

“그럼 나 좀 도와줘.”

“…네?”

고충신이 가불기에 걸렸다.

..

..

나는 생도들의 단조로운 훈련을 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밑밥을 잘 깔아놔서 그런지 그물에 제대로 걸렸네.’

내가 고충신에게 도와달라고 한 것은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자는 것이었다.

고충신은 내 말을 듣고는 대충 봐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거절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허둥지둥하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지, 지금은 기, 기계가 없습니다!)

(괜찮아. 이번에 대여할 수 있잖아. 그때 먼저 대여할 수 있게 해줄게.)

(아! 예전에 플레이하던 거라 지금은 실력이….)

(다이아까지 올라갔다며? 그냥 적당히 같이해주기만 하면 돼.)

(하, 하지만….)

(왜? 나랑 하기 싫어?)

(아… 아닙니다.)

(그럼 오케이한 걸로 알게! 수고!)

나는 그렇게 말한 뒤 고충신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경비과를 빠져나왔다.

‘기기가 없다는 변명도, 실력이 퇴화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지.’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것에 비해서 생각이 단순한 인간이라 관리가 편해서 다행입니다.]

‘흐흐흐… 이걸로 쉴 때도 내 샌드백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거네.’

딱히 게임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고충신의 휴일조차 지옥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휴식 시간조차 쉬지 못하게 괴롭히고 갈궈서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있지….’

나는 몰래 스마트 워치를 작동시켜서 문자를 확인했다.

내게 문자를 보낼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데도 꽤 많은 양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양의 문자의 주인은 한 명이었다.

­혹시 제가 귀찮게 했나요?­

나는 윤지아가 보낸 문자를 보면서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진짜 남의 눈치 엄청나게 보는 스타일이네.’

[윤지아… 가진 능력에 비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서 신기합니다.]

영사관 출신, 그것도 회과 출신으로 교단 소속으로 있는 여자.

그런 여자가 내게 문자를 보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고충신 같은 녀석이랑 사귀는 거겠지.’

심지어 윤지아는 나와 그렇게 관계를 맺은 뒤에도 문자를 보내되, 전화는 먼저 걸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혹시라도 귀찮아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윤지아도 내가 한동안 연락이 없고 얼굴도 마주하지 않자 불안했는지 탑 견학이 끝나고 나서 계속 문자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는 적당히 답장하면서 그녀에게 안도감을 다시 심어줬다.

나는 지금 온 문자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귀찮거나 하지 않아요. 윤지아 교관님을 누가 귀찮아하겠어요. ㅋㅋㅋ­

그리고 오는 칼답장.

­ㅎㅎ… 다행이다.­

­그런데 저 지금 수업 중이라 나중에 따로 연락드릴게요.­

­앗! 네! 수고하세요!­

문자의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윤지아가 먼저 문자를 보내면 적당히 받아주다가 내가 먼저 마무리.

불안함과 안도감의 사이를 계속 오가며 그녀의 심리를 계속 흔들어줬다.

[윤지아를 계속 곁에 두실 겁니까?]

‘음….’

윤지아는 현재 우리 임무와는 동떨어진 존재였다.

대표적으로 비슷한 포지션에 소냐가 있지만, 소냐는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어서 임무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에 비해서 윤지아는 그런 부분이 현저히 적었다.

그런데도 내가 윤지아를 계속 신경을 써주는 이유는….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윤지아의 외모나 그녀의 성향이 마음에 드는 것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녀의 위치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교단 소속, 영사관 회과 교관, 회복사.

그리고….

‘일단 표면상 고충신 여자 친구잖아. 그 녀석의 속내를 완벽하게 드러내게 하려면 윤지아는 무조건 필요해.’

[알겠습니다.]

아르모니아도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잘 수긍하면서 넘어갔다.

‘그리고….’

[?]

‘그 벌레 새끼 괴롭히는 데에는 꼭 필요하잖아. 흐흐….’

[….]

그게 제일 큰 목표였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녀석, 그리고 나를 계속 염탐하면서 내 비밀을 캐내려는 녀석.

그냥 죽이는 건 시원찮다.

어떻게든 너무 억울해서 지옥조차 가지 못하는 녀석으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내가 고충신을 어떻게 요리할까 생각하며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때였다.

“휴식!”

초서현의 외침과 함께 대련하던 생도들이 일제히 무기들을 거두며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생도들은 저마다 지친 상태로 땀을 닦으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생도들의 사이를 누비며 유유히 걸어오는 초서현.

그녀는 내게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아요?”

“네?”

뜬금없는 소리 같았지만, 지금 이 대화는 오늘 초서현과의 첫 대화였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경비과에 들러서 일 처리를 한 뒤, 교장을 만나느라 아침도 혼자 먹을 수밖에 없었다.

교장과의 면담이 길어져서 수업도 늦게 참여하게 되었고….

“수업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잖아요. 괜찮아요. 그런데… 몸은 괜찮아요?”

“…? 네, 문제없습니다.”

“흐흥… 다행이네요.”

초서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힐끗 올려보고 있었다.

대충 이해가 갔다.

어제 있었던 둘만의 일을 은연중에 대화에 넣어서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대화를 몰래 나눌 때의 쾌감은 생각보다 적지 않았다.

아마 초서현은 지금까지 이런 것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더욱더 즐기고 싶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조용히 목소리를 깔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허전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하하… 껴안고 자던 바디필로우라도 사라졌어요? 하하….”

초서현은 내 말의 의도를 깨달은 것과 동시에 주변에 혹시라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을까 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정작 먼저 시작한 건 초서현이었지만, 제일 불안해하는 것도 초서현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갑자기 사라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다음에는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 그럴게요.”

초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힌 뒤, 휴식 시간 내내 내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

..

마과 수업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평소와 똑같이 진행되었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 썩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서지은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힘들게 해드려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게 우리 일이니까.”

성수아는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서지은을 위로하며 격려했다.

힘들게 다시 수업에 참관했지만, 결국 아직 서지은을 위한 수업의 방향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었다.

본인의 위험과 다른 친구들의 위험, 그것을 넘어서서 성수아와 나에게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닥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용기를 내서 학교에 다시 등교를 시작했지만, 막상 불안감이 다시 생기면서 용기를 집어삼킨 것이다.

서지은은 나와 성수아에게 사과하고 하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

성수아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그리고….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

나에게 묘한 눈빛을 날리며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좀 더 기다려볼까.’

[정보가 부족한 만큼 서두를 필요는 없어보 입니다.]

서지은은 내 해체술을 눈앞에서 봤던 아이다.

아마 이렇게 다시 등교를 결심한 것도 내가 사용한 해체술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일 것이다.

참을성이 있어서 지금까지는 얌전하지만, 분명 먼저 말을 걸어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서지은이 나간 교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성수아가 옆에서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 도와주고 싶은데…. 정말 아쉬워요.”

“최소한 졸업 전까지는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게 나왔으면 좋겠네요.”

나와 성수아는 그렇게 서지은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문뜩 시간이 꽤 흐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샛노란 노을이 펼쳐진 모습을 본 성수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어머, 벌써 저녁 시간이네요. 성수호 교관님, 같이 저녁 드실래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이번 주는 좀 바쁠 거 같아서….”

“아…. 그렇군요.”

성수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사실 성수아와 밥을 먹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지만, 마음을 접고 바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동안 밀린 업무가 있어서 이번 주는 좀 바쁠 거 같아요.”

“아… 호, 혹시 이번 주말에도 바쁘신 거 아니신가요?”

이번 주말에는 성수아와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였었다.

그것도 불과 어제 잡은 약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른 척하면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네, 이번 주말에도 바쁠 거 같아요.”

“아…. 그럼 제가 괜히 약속을….”

아쉬운 표정으로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 성수아에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성수아 교관님이랑 약속을 잡아놨는데, 바쁠 수밖에 없죠.”

“아! 아하하….”

성수아는 그제야 멋쩍게 웃으며 검지로 볼을 살살 긁으며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쑥스러운 미소를 보여주던 성수아는 먼저 교실을 황급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성수호 교관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네, 고생하셨습니다.”

오히려 나보다 바빠 보이는 성수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간단하게 믿어서 다행이네.’

사실 바쁜 일 따위는 없었다.

교장과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고, 경비과의 일도 이미 마무리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성수아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녀와의 만남을 자제하는 건 기대감 때문이었다.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면 정말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기대에 보답할 수 있게 고민 많이 해야겠네.’

성수아는 나를 만나지 않는 동안 계속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대감이 커도 그만큼의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쪼글쪼글한 풍선처럼 바닥에 나뒹굴 것이다.

명작일 것이라고 잔뜩 기대했던 영화가 범작을 넘어서 망작이라면 누구든 실망하는 것처럼….

‘자, 그럼 성수아는 계속 기대감을 주는 식으로 하고… 이제 이쪽을 신경 써줄까?’

나는 천천히 스마트 워치의 화면을 작동시켜서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윤지아 교관님, 뭐 하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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