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화 〉 364화 영웅 사관 학교 (45)
* * *
“…왔군요.”
“….”
마과 교실에는 성수아와 기철호, 그리고 덩치가 좀 있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 두 명이 같이 있었다.
께름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면서 나를 바라보는 기철호와 옆에서 선글라스로 나를 훑어보는 경호원들.
이 교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들이었다.
나는 천천히 앉아서 나를 삐뚤게 올려다보는 기철호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이라….”
기철호는 내 인사에 기분 나쁘게 입술을 비틀며 웃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전혀 안녕할 상황이 아니지만, 그래도 예의는 차려야겠지요. 안녕하십니까.”
“….”
명백한 비아냥이었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서지은.
그 생도에 관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
기철호의 말에 성수아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비아냥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피해를 받은 쪽에서 예의를 차려주니, 되려 피해를 준 쪽에서 큰 소리를 내는군요.”
“그런 말씀이 아니에요. 기분은 이해하지만, 성수호 교관님께서는 서지은 생도를 구한 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주세요.”
“구해?”
기철호는 내게 보여주던 표정을 성수아에게 향하면서 입을 열었다.
“안녕이나… 구해줬다는 것이나…. 교관님들께서는 단어 선정이 참 묘한 분들이군요.”
“….”
“전혀 안녕하지 않고, 아가씨를 위기에 빠트린 분들께서 말입니다?”
기철호는 입가에 미소를 싹 지우고 눈썹만을 비틀며 우리 두 사람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일단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나는 기철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그 부분은 사과드리겠습니다.”
“….”
“생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제가 미숙한 탓에 생도에게 안 좋은 경험을 심어줘서 죄송합니다.”
내가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자 교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고는 한없이 침묵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 침묵이 지나가고 나서야 간신히 한 사람이 입을 열면서 침묵이라는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최소한 인간이 지녀야 할 대화 능력은 갖췄군요.”
“….”
기철호의 말에 표정으로 반응하는 건 내가 아니라 성수아였다.
그녀는 평소에 짓지 않는 인상을 찡그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들어오는 비아냥을 참아도 친한 사람이 듣는 비아냥은 듣기 힘든 법이었다.
아마 내가 VR 안에서 아이의 모습으로 한 채 저런 소리를 들었다면 바로 행동으로 나섰을 가능성도 컸다.
그렇게 내가 고개를 들자, 기철호가 손바닥을 펼치며 건너편에 앉아 있는 성수아의 옆자리로 뻗으며 말했다.
“일단 앉으시죠.”
“네.”
나는 바로 성수아의 옆에 앉자마자 물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뭐… 두 분이 다 모였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진행하죠.”
기철호는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서 책상 위에 놓고는 우리가 잘 볼 수 있게 긴 팔로 쓱 내밀기 시작했다.
성수아는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그가 내민 종이 뭉치를 들어 올려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이건…?”
“아가씨를 전담하는 주치의들의 진단서입니다.”
주치의가 아니었다. 주치의‘들’ 이었다.
즉, 한두 사람이 작성한 진단서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많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성수아는 최대한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읽을 시간을 주지 않고, 기철호가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가씨께서는 능력을 제어… 아니, 제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서지은이 학교생활을 못 하는 제일 큰 이유.
그녀는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제어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늪으로 빠지는 기상천외한 상황.
한때 수석으로 입학해서 생도 중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던 그녀는 그 이유로 결국 학교생활은커녕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다음 날, 눈을 뜬다는 보장도 받지 못한 채….
기철호는 서지은의 능력적인 부분을 지속해서 설명하고는 자신이 방문한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가씨께서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게 두 분이 힘써주십쇼.”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성수아의 의문처럼 나도 의문이 들었다.
졸업은 그저 등교만 한다고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험도 봐야 하고, 시험 성적이 너무 낮으면 방학 동안 재시험을 치르기도 해야 한다.
유급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만약 한 학년을 통과하지 못하면 바로 다음 연도에 퇴학 처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졸업의 경우에는 졸업 시험도 따로 있다고 했지만, 그건 나도 정확히 아는 사실이 없었다.
하지만 서지은은 지금도 최소한의 출석을 하면서 최소한의 시험만 치른다면 분명 졸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졸업 이야기가 나오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 둘의 의아한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또 종이 몇 장을 꺼내서 책상으로 밀어서 우리 쪽으로 건네줬다.
아까는 A4 용지였지만, 지금 건네준 종이는 딱 봐도 지폐 크기의 종이들이었다.
성수아는 눈매를 좁히고는 종이에 손을 뻗지 않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아가씨께서 무사하게 졸업하면 더 신경 써드리겠습니다.”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종이의 정체는 정확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을 듣고 나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장당 1억입니다.]
‘이욜…. 나중에 더 준다는 거 보면 그냥 2~3억으로 퉁치지는 않겠지?’
[아마 성수아를 노리고 건네는 수표인 만큼 훨씬 큰 금액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정식으로 영웅 리스트에 오른 성수아라면 1~2억은 없는 돈까지는 아니지만 큰돈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말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졸업과 동시에 맞춰서 금액을 넘겨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성수아는 어디까지나 영웅이지 재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지금 그녀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고민하는 건가?’
[성수아의 재력을 생각해보면 돈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
[아마 수호 님도 같이 계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성수아의 성격상 저런 돈을 받을 인물이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민하는 이유는 내가 옆에 있어서라는 게 아르모니아의 추측이었다.
성수아에게는 큰돈이 아니지만, 내게는 큰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나는 책상으로 천천히 손을 뻗기 시작했다.
내 행동에 흠칫 놀래 하는 성수아와 입꼬리를 비틀며 나를 바라보면 기철호.
나는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할 일을 했다.
바로….
“실수로 다른 걸 잘못 꺼내신 거 같네요.”
수표 뭉치를 밀어서 기철호쪽으로 밀어냈다.
“….”
“성수호 교관님….”
기분 좋게 웃다가 다시 인상을 찡그리는 기철호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성수아.
나는 기철호 쪽으로 수표를 완전히 밀어낸 뒤 나는 고개를 들어서 기철호를 한없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는 표정 관리를 대충 하는 느낌이었다면 슬슬 표정 관리가 안 되는 느낌이 풍기기 시작했다.
“당신이 나설 곳이 아닙니다. 그건 당신에게 건네준 게 아니라….”
“그렇다면 사과하시죠.”
“…뭐?”
기철호는 이제 표정의 잠김을 완전히 풀어내고 나를 벌레 바라보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바라보는 기철호를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성수아 교관님한테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하시길 바랍니다.”
“너… 이 새….”
기철호가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일어서서 내게 한소리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성수아가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입을 열었다.
“배려는 감사합니다.”
“….”
“하지만 지금 하신 행동은 배려가 아니라, 무례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하….”
기철호는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보며 속을 삭이더니, 다시 의자에 앉아서 수표를 다시 가방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이건 못 본 것으로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아가씨 문제에 대해서는 잘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기철호가 그렇게 포기한 듯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한마디를 내 던졌다.
“그런데 저 진단서는 의사가 작성한 것입니까?”
“…아가씨의 주치의가 작성한 것입니다.”
대답을 해주는 것을 보면 아직은 대화가 된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계속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렇다면 저 진단서는 도움이 되는 진단서는 아니겠군요.”
“…그게 무슨 말인지?”
의문보다는 짜증이 담겨 있는 그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마법은 아직 연구로 밝혀진 부분이 너무 미약합니다. 심지어 최고의 마법사 길드라고 자부하는 탑에서도 아직 원리를 정확히 깨우치지 못한 게 현실이죠.”
슈트라 세계와 다르게 이곳은 마법에 대한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모르는 마법을 재능이 있는 자들이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상급 영웅으로 칭송받는 성수아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추상적으로 설명하며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니까….
연구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지만, 결국 원시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능력자가 아닌 그저 의사의 진단서로 흐지부지 넘어가려고 한다?
말도 안 된다.
“주치의분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분들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제가 봤을 때는 최고의 전문가는 바로 옆에 계신 성수아 교관님입니다. 게을리하지 않고 등교를 꾸준히 하는 게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기철호는 어떠한 제지도 없이 내 말을 전부 듣고 고개를 숙이고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다만 중얼거림은 바로 앞에 있는 나와 성수아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렇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자, 성수아가 입을 열었다.
“서지은 생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아가씨의 의견은 제가 이미 전달하고….”
“아뇨.”
성수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 뒤에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서지은 생도, 본인의 의사가 중요해요. 만약에 서지은 생도가 나오길 거부한다면 저도 더 이상 말리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
“본인이 나오고 싶다면 저는 끝까지 서지은 생도를 도와주고 싶어요.”
성수아의 말과 함께 기철호는 불안정한 중얼거림을 멈추고 무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려보는 기철호를 향해 말했다.
“서지은 생도와 최소한의 통화를 하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아가씨는 지금 통화할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 일정을 잡아서 저희가 다시 찾아가는….”
“미치겠군.”
기철호는 허탈하게 웃더니, 우리를 향해 썩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성수아 교관님께서도 이렇게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세형 씨께서 이렇게 나오실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기철호는 한참을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말이 통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군요. 일단 교장님께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이 일은 저희 선에서….”
“이제 관련 없습니다.”
기철호는 나를 보듯 성수아를 내려다보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짧게 말은 남긴 뒤 양옆에 대동시키던 경호원을 데리고 교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그런데 천천히 옆으로 연 문 반대편에는….
“세형 씨, 역시 여기 계셨네요.”
“아… 아가씨! 여, 여기는 어쩐 일로….”
서지은이 생도복을 입고 다소곳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기철호를 올려다보며 옅은 미소로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역시 학교를 나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나왔어요.”
“아가씨… 주치의의 말씀 기억 안 나십니까? 지금 투정을 부리실 상황이….”
“투정이 아니에요.”
서지은은 미소를 띤 상태에서 기철호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나와 성수아를 빼꼼 쳐다보더니, 그에게 말했다.
“역시 교관님들께서 저를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서 왔어요.”
“하지만….”
“그리고 저희 부모님께서 언제나 말씀하셨어요.”
“…?”
서지은은 애매모호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수아를 보는 건지 나를 보는 것인지 헷갈렸지만, 그녀는 애매모호한 시선과 함께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학창 시절은 어른이 되고 나서의 10년의 값어치와 맞먹는다고요. 저는 그 값어치 있는 생활을 그냥 허망하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요.”
“….”
기철호는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더니,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에 시간 맞춰서 배웅을 오겠습니다.”
“고마워요.”
서지은은 그렇게 기철호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 뒤 그를 지나치고 교실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
기철호는 본가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서지은의 전속 메이드를 불러서 묻기 시작했다.
“아가씨가 왜 학교에 있는 거지?”
“그게… 사모님의 전속 비서분께서 허락하셔서….”
“그 여자가 본가에 왔다고?”
서가에 있는 모든 직원은 기철호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는 편이었다.
심지어 현재 본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서지은보다도 더욱더….
이유는 서지은이 아직 어리고, 기철호가 오랜 기간 집안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집안의 사람 중에서 그와 대립하는 여자가 있었다.
바로 서지은 친모의 비서.
서지은의 친모는 현재 의식불명으로 병원에서 식물인간으로 지내고 있었고, 당연히 그녀의 비서는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한동안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여자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지금은?”
“아, 아가씨의 등교와 함께 가셨습니다.”
“바래다주고 헤어진 건가….”
기철호는 비서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귀찮군.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는 주어를 붙이지 않은 채 죽이겠다는 말을 속으로 곱씹고 있었다.
기철호는 메이드와 대화를 마치고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서 책장의 책을 일사불란하게 넣고 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순서를 맞춘 순간이었다.
끼이익….
기철호가 서 있던 바닥 옆에 나무판자 하나가 살짝 튀어나온 뒤 옆으로 돌아가면서 작은 공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푸른색으로 뒤덮인 작은 공간은 내부의 온도를 알려주듯 냉기들이 안개 형태로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부에 보이는 기다란 주사기.
기철호는 잘 밀봉된 주사기를 차분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마지막 남은 하나… 그 보조 교관에게 쓰려고 했지만… 역시 내부부터 일단 정리해야겠지.”
그의 말에 반응하듯 주사기 안에 있는 검은 액체는 살아있다는 듯이 요동치며 주사기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