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363화 (364/898)

〈 363화 〉 363화 영웅 사관 학교 (4­4)

* * *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VR에 접속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난처함뿐이었다.

바라던 성수아는 없었고, 그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를 기다렸고, 결국 기다리는 중에 졸음을 참지 못한 채 집 앞에서 쭈그려 앉아 잠이 들어버렸다.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감았던 상태에서 감았던 눈은 다행히 떴을 때, 허망한 아침 해가 아닌 그토록 바라던 성수아가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혼자 아침 해를 맞이하는 게 아닌, 성수아의 품에서 아침 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럼, 식당에서 뵙겠습니다.”

“네.”

성수아는 어제의 우울한 모습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다시 싱그러운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VR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어제는 졸려서 정신없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만약 성수아가 어제 찾아오지 않았거나, 내가 비몽사몽 한 나머지 종료하고 현실에서 자고 있었다면 큰일 난 뻔했다.

원래 이런 감정의 어긋남은 빨리 원상 복귀시키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비틀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니까.

나는 바로 나갈 준비를 마친 뒤, 기숙사를 나와서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식당에 초서현은 보이지 않았다.

‘어? 의외네?’

[왜 그러십니까?]

‘솔직히 초서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원래 아침은 성수아와 먹고, 저녁을 초서현과 먹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식당에 들르는 편이었다.

그동안 초서현은 아침에 잘 나타나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관계 개선이 이루어진 뒤 당연히 나타나리라 생각했었다.

[…추측입니다만.]

‘…?’

[아마 준비가 서툴러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엥? 웬 준비?’

[아마 확증은 이따 초서현을 만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뭔 소린지….’

나는 일단 아르모니아의 말을 담아둔 뒤 성수아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수아가 나타났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우리 둘은 같이 식사하면서 평소처럼 수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큰 주제는 역시나 한 생도에 관한 대화였다.

“큰일이에요…. 그렇게 설득해서 데리고 갔는데, 큰 사건에 휘말렸으니….”

“그래도 성수호 교관님께서 있으셔서 천만다행이에요.”

“한 번 더 찾아가 볼까요?”

“음… 일단 제가 수업 전에 한번 전화를 걸어볼게요.”

이렇게 서지은에 관한 대화는 마무리되었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해체술 있으면 어떻게든 잘 구슬릴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그 말씀이 맞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하긴… 해체술은 여기에 없는 능력이니까.’

한두 번 쓴 다음에 모른척하면 모를까, 자주 쓰다가 들키면 보통 곤란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서지은 생도의 문제는 차차 풀어나가기로 하면서 성수아와의 식사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그럼 이따 오후에 뵙겠습니다.”

“벌써 기과에 가시는 건가요?”

“아뇨.”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비과에 가려고 합니다.”

..

..

내가 경비과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오전 근무자들이 출근해서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낮 근무자들에게도 어제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해줬고,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색이 돌아서 기분 좋게 근무지를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가는 것과 동시에 모든 사람의 근무 시간표가 담긴 근무표를 게시한 뒤 마지막에 글귀 하나를 남기고 경비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본 근무표는="" 금요일부터="" 시행되고,="" 부득이하게="" 근무="" 시간="" 변경이="" 필요할="" 경우="" 관리자에게="" 문의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경비과 건물을 나오면서 창창한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충신… 과연 자존심을 세우면서 몸을 희생할 것인가, 몸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굽힐 것인가.

나는 두 가지 경우의 상황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기과 교무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고충신은 창창한 하늘에 위로 점점 올라가는 태양을 보면서 짜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아… 존나 피곤하네.’

태양이란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모든 생명체의 시작을 일깨워주는 존재였지만, 고충신에게는 그저 수면 방해를 일으키는 짜증을 일으키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나마 태양이 마음에 드는 점이라면 그의 근무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아, 빨리 가서 밥 먹고 자자.’

하지만 여명의 태양이 떴을 때, 잠시 기쁠 뿐이었다.

금세 태양의 빛이 강해지면 동공에 짜증을 일으킬 뿐이었다.

고충신은 경비과 건물로 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씨발…. 일주일 동안 그 새끼 없어서 그래도 할만했는데.’

새벽 근무가 빡쎄긴 하지만, 상급자가 없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한 근무였다고 할 수 있었다.

고충신은 성수호가 없는 기간 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 편하게 근무를 설 수 있었다.

결국 그것도 오늘까지였지만….

‘그리고 지아, 얘는 요새 피곤한가? 견학 이후로 만나지를 못하겠네.’

같이 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고충신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윤지아와 만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새벽 근무 때문에 패턴이 엉망이 된 것과 동시에 언제나 칼답장을 해오던 윤지아도 단답형으로 답을 보내오고 있었다.

‘…휴일을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바꿀 수만 있으면 만나기 쉬울 텐데.’

윤지아는 정식 교관이었고, 그래서 자동으로 휴일이 토요일과 일요일로 묶여 있었다.

그에 비해 고충신의 휴일은 목요일.

가뜩이나 몰래 만나야 하는 처지에 휴일까지 어긋나버리니 도통 만날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바꿔 달라고 할까? 아냐, 씨발. 그 새끼한테 그런 부탁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

잠깐이었지만, 성수호에게 부탁을 하는 자기 모습이 떠오는 것과 동시에 온몸에 경멸과 혐오가 벌레 기어 다니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고충신은 몸을 옷을 전부 갈아입은 뒤 온몸에 붙어 있던 소름을 전부 털어내고 탈의실을 빠져나왔다.

‘가뜩이나 지아랑 내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데, 부탁해봤자 분명 뺀찌 먹을 게 뻔해. 그리고 일부러 지랄하면서 짜증 나게 할 것도 뻔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식당으로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전 직원이 게시판을 보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근무 또 바뀌었네….)

(어쩔 수 없지. 이번에 견학 때문에 인원 우르르 빠졌다가 우르르 들어왔으니까.)

고충신은 직원들의 말에 홀리듯 게시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잖아. 낮이나 밤으로 바뀌었을지….’

고충신은 혹시 모를 기대감에 부푼 상태로 게시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뇌는 그가 본 동공으로 인식한 근무표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야?’

그는 자기 동공에 들어온 근무표 자료를 보면서도 도저히 이해 못 해서 전 직원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멍하니 근무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

고민혁 : 남자 교관 기숙사

낮(금요일)­낮(토요일)­밤(일요일)­밤(월요일)­심야(화요일)­심야(수요일)­휴일(목요일)

=====

***

내가 기과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모르는 사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와, 왔어요?”

“…안녕하세요.”

순간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걸어와서 뭔가 싶었다.

하지만 내 기억을 더듬으면서 외형을 문장으로 체크하고 나서야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작은 키, 단발머리, 날카로운 눈매, 등등….

초서현이었다.

분명 초서현인데….

“…분위기가 많이 바뀌셨네요?”

“그, 그래요? 펴, 평소대로인데?”

“….”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얼굴 여기저기에 균일하게 묻어있지 않은 비비크림, 거기다 립스틱….

‘와… 진짜 화장에 재능이 털끝도 없구나.’

그나마 초서현이 작은 외형을 하고 있어서 귀엽게 보이는 거지, 성인 여성이 저런 화장을 했다면 바로 비웃음 감이었다.

막 화장 처음에서 멋도 모르고 덧칠한 중·고등학생이 할 법한 화장술(化??)을 하고 온 것이었다.

‘준비라는 게 저걸 말하는 거였어?’

[…맞지만, 저런 것을 떠올린 건 아닙니다.]

아르모니아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려왔지만, 그 대사 안에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저 아르모니아를 당황하게 하다니, 초서현… 대단한 여자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여자라고 해도 이건 좋지 않았다.

‘일단 저건 지우게 해야겠는데?’

잘못 말하면 일이 틀어져서 초서현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겠지만, 방법은 있었다.

“초서현 교관님. 그… 화장이 좀 과한 거 같습니다.”

“뭐야? 별로예요?”

초서현이 기분이 팍 상했는지 나를 힐끗 노려보며 삐진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화장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대로라면… 남자 생도들이 집중 못할 테니까요. 그리고….”

“…?”

나는 의문이 담긴 눈빛을 보내오는 초서현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도 집중이 안 되니까요. 그러다가 사고 나면 큰일이잖아요.”

“흐잉… 아… 그, 그래요? 하하하! 어, 어쩔 수 없지!”

다행히 내 말을 ‘잘’ 이해한 초서현은 바로 화장실에 가서 평소처럼 정리한 뒤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수업은 지루한 대련.

사실 지루한 건 생도들 뿐이었다.

‘계속 대련만 했으면 좋겠다.’

보조 교관의 처지에서 대련만큼 편하고, 안전한 수업은 없을 것이다.

제일 중요한 생도들의 자세나 전투방식은 정식 교관이 체크하고, 크게 다치는 경우도 없어서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정말 다행이라면 초서현이 직업의식이 투철하다는 사실이었다.

수업하는 내내 내게 한눈팔지도 않고 생도들에게 집중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느려!”, “좀 더 위로!”, “너는 동작이 너무 좁아!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렇게 생도들에게 지루한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나는 초서현과 같이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는 미로 던전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뉴스에도 나왔던데, 왜 그날 이야기 안 했어요?”, “헐? 그런 괴물이랑 만났다고요?”, “다음부터는 몸 사려요. 호기부리다가 다치기만 하면 다행이지.”

마과 견학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그녀와 같이 식당으로 향했다.

막상 또 초서현과 식당으로 향하니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성수아 있는 거 아니겠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뭐… 초강현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날 죽일지도 모르는 위험한 놈보다는 두 여자의 앙칼진 눈빛을 견디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와 초서현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나를 기다리는 인물이 있긴 있었다.

있긴 있었는데….

예상외의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관리자님.”

“응? 고민혁 씨?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해?”

“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고충신이 썩은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어깨를 눕히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결국 옆에 멀뚱히 바라보던 초서현에게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한 뒤 고충신과 조용한 장소로 이동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

“저… 근무표가 문제가 있는 거 같아서요.”

“무슨 문제?”

나는 시치미 뚝 떼고 모르는 척하며 상대방을 열받는 표정으로 응수해줬다.

고충신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억지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이야기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제 근무가 타임이 너무 변동이 심한 거 같아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소화하기가….”

“아… 본인 근무표가 문제가 있다고? 나는 또 내가 게시판에 달아 놓은 근무표가 문제가 생겼다는 줄 알았네.”

“하… 하… 하….”

웃어라. 웃어. 팔자주름 쫙 나오게 웃어라.

고충신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팔자주름이 나오며 미소가 지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내고 그에게 말했다.

“결국 시간이 별로라서 불만 때문에 온 거야?”

“불만은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표가 오차가 있나 해서….”

“있으면?”

“네?”

“불만이 있으면 그냥 아무 때나 찾아와도 된다고 생각해?”

고충신은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르고 두 손을 모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아니라….”

“혹시 내가 밑에 따로 적어 놓은 사항 없었어?”

“네! 부, 분명 근무 시간에 대해서 문제가 있으면 관리자님께 말씀드리라고….”

맞다. 나는 분명 적어 놨다.

근무 시간에 문제가 있으면 관리자에게 찾아오라고.

하지만….

“내가 24시간 관리자를 해야 해?”

“아….”

“지금 나는 보조 교관 일을 하는 중이고 심지어 점심시간이지? 나중에 와서 얘기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그게….”

사실 억지였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그런 억지를 부려도 괜찮은 인간이다.

“일단 이따 저녁에 확인할 테니까. 다시 돌아가.”

“…알겠습니다.”

고충신은 따사로운 햇볕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나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내서인지 미간에 수많은 지렁이를 소환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런 고충신의 뒷모습을 보며 아르모니아가 물어왔다.

[확인하신다는 건?]

‘아….’

나는 저 멀리 부들부들 떨리는 고충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실실 웃었다.

‘확인 따위는 실컷해줄 수 있지.’

나는 그렇게 실실 웃고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초서현에게 후다닥 뛰어갔다.

..

..

나는 초서현과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마과 교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향하는 내내 초서현에 대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감탄이라기보다는 기겁에 가깝긴 했다.

‘저게 그렇게 좋은가? 저렇게 먹으면 질리지 않나?’

초서현은 매일 볼 때마다 딱 한 가지 메뉴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바로 돈가스.

나도 돈가스를 좋아하지만, 저건 선이 넘은 게 아닌가 싶었다.

‘저렇게 먹으면 토 나올 거 같은데….’

하지만 그렇게 돈까스를 좋아하는 초서현을 변호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음식이란 생명 활동을 위해 섭취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굳이 취향은….]

‘…돈가스 좋아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돈가스에 진심인 여자들….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마과 교실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리는 문 사이로 대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심 때 보이지 않던데, 혹시 누구랑 이야기 중인가?’

라는 생각으로 문을 활짝 열었을 때였다.

“성수호 교관님.”

나를 반겨주는 성수아와.

“…왔군요.”

께름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지은의 집사 이세형… 아니, 기철호가 서 있었다.

* *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