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0화 〉 360화 영웅 사관 학교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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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에테르라고 불리는 녀석은 원래 본명은 ‘원시 에테르’로, 다른 에테르가 생겨나는 데에 막대한 기여를 한 놈이었다.
우주에 있는 순수한 에너지들이 우연히 결합해서 만들어진 존재.
그 덕분에 자신을 품어줄 존재를 갈망하며 우주를 돌아다니다가 그 아이들이 사는 행성에 불시착한 것이었다.
“아마 이 원시 에테르가 운석으로 떨어지는 과정이나, 떨어진 충격으로 인해 주변 물질에 영향을 미친 게 그 소녀들이 사용한 에테르 같습니다.”
원래라면 원시 에테르만 있어야 하지만, 에테르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행성에 있던 불순물과 결합해버렸고, 그렇게 분파되어 나간 것이 소녀들이 쓰는 에테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가설이었다.
“순수한 물질이 강하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순수한 물질만이 가진 유일무이한 점이 존재할 것입니다.”
“하긴… 그렇게 찾아다니는 이유가 분명 있었겠지.”
“아쉬운 점은 현재 임무지가 아닌 탓에 조디악에 민감한 정보를 알아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괜히 에테르에 대해서 이것저것 캐물으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보여서 쓸데없는 의심만 살 가능성이 컸다.
일단 비올라에게 있는 에테르가 해로운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낸 이상, 당분간은 잠자코 있기로 했다.
나는 레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 뒤, 그녀에게 굳은 표정으로 부탁했다.
“레나, 비올라를 부탁할게.”
레나는 웃음기 싹 뺀 얼굴로 내 말을 듣고 주군의 명령을 받듯 깍듯이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인님.”
평소였으면 레나를 보면서 웃어넘겼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웃어넘길 수 없었다.
비올라를 바로 옆에서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은 레나뿐이었다.
아르모니아는 임무 지원을 하느라 바쁠 것이고, 베아트리체에게 맡기기에는 좀 못 미더웠다.
그나마 이번에 만들어 놓았던 훈련실에서 비올라의 능력을 체크하면서 레나와 같이 훈련해보기로 했다.
“그럼, 다녀올게.”
나는 레나와 아르모니아에게 인사를 건네며 워프 케이스 안으로 들어갔다.
..
..
나는 복귀 즉시 상아탑으로 향한 뒤, 내게 제공된 방으로 들어가서 바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뭐, 내가 챙길 건 없겠지?”
애초에 탑 견학을 올 때, 간단한 물품만 챙겨서 왔기 때문에 분실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는 물건은 없었다.
“그럼 먼저 나가서 경비원들이랑 생도들 상태나 확인해봐야겠다. 그리고… 성수아도 오랜만에 봐야지.”
실실 웃으며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방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똑, 똑, 똑.
“응? 누구세요?”
나는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질문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는….
“어…?”
“트릭 오어 트릿.”
나를 올려다보며 앙증맞은 표정을 지은 예리엘이 서 있었다.
..
..
“….”
“….”
“오물… 오물….”
차 안에는 침묵과 함께 사탕을 빨아 먹는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고급 차를 타고 있는 덕분에 차제가 흔들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차 안.
“오물, 오물.”
사탕 빨아 먹는 소리가 이렇게 큰 건 또 처음이었다.
그렇게 사탕을 먹는 소리만 들려오던 차 내부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 있었다.
성수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예리엘에게 말을 건넸다.
“예, 예리엘 님.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그냥 편하게 혼자 오셨으면….”
“오물, 오물… 응? 아니. 전혀. 오물…. 난 사람 많은 거 좋아해.”
“하하하….”
하긴 사람 많은 걸 좋아해서 그런 미로 이벤트를 열었던 거겠지만….
나와 성수아, 예리엘은 셋이서 같은 차에 탄 채 영사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과 견학 일정은 오늘까지였다.
마지막 밤을 지낸 뒤 영사관에 도착하는 것으로 완전히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마 예리엘이 우리 차에 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
“….”
나는 성수아를 힐끗 본 뒤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오랜만에 대화나 나눌까 했는데. 방해꾼이 제대로 방해해주시네.’
무엇보다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사적인 대화를 넘어서서 공적인 대화도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령 도착하고 나서 해야 할 일이라든지, 향후 어떻게 보고서를 올릴지 같은 중요한 문제조차 입에 담지 못했다.
결국 그 침묵은 영사관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영사관에 차가 도착하자마자 성수아는 내려서 내게 말을 걸었다.
“성수호 교관님. 저는 학생들 인원 점검하고 교장님께 보고할게요.”
“네, 그럼 저는 경비 쪽 인원들을 점검하고, 경비과로 업무를 가겠습니다.”
“저… 성수호 교관님. 혹시….”
“네?”
성수아가 예리엘의 눈치를 보며 내게 조용히 귓속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수아야, 나도 마침 교장실로 가야 하니까. 같이 가자.”
“아, 아! 그, 그러신가요. 네, 그럼 같이….”
“그리고 가기 전에….”
예리엘은 작은 키로 나와 성수아의 사이에 조용히 파고들더니, 나를 크게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랑 단둘이 이야기할 게 있는데, 자리 양보 좀 가능하겠니?”
“…네.”
성수아는 어깨를 축 늘이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예리엘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잠깐만 이쪽으로….”
“네.”
나는 그렇게 대답한 뒤 예리엘을 따라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하차했던 차량에서 멀지 않은 그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일 뿐이었다.
예리엘은 대충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뒤 내게 조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사탕을 먹으면서 영사관에 방문하는 일도 없었겠죠.”
“하하하…. 사탕이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훗… 나도 급하니 본론부터 말할게요. 내가 부탁 하나 들어준다고 했던 거 기억해요?”
“아… 네. 이미 부탁을 했죠?”
미로 던전에서 도움을 줬을 때, 예리엘은 내게 부탁 하나를 들어준다고 했고 이미 그 부탁은 끝난 상황이었다.
내가 견학 중에 초서현을 만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자리를 비워도 되겠냐고 부탁을 하면서 끝났으니까.
하지만 예리엘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설마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아놓고 그런 부탁으로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 없어요.”
“아, 저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나중에 탑의 위상에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당신을 도와주겠어요.”
탑의 수장으로서가 아닌, 예리엘 개인으로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나중에 위급한 상황이 오면 꼭 말하세요.”
“하하,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그런 날이 올지 의문이었다.
진짜 위험한 상황을 타파하는 부탁이라면 상대방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리엘은 내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었는지 나지막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들을 믿지 않아요?”
“…?”
갑자기 남자 앞에서 웬 생뚱맞은 발언?
예리엘은 그 뒤 말을 더 남겨놓고 성수아에게 가버렸다.
“남자들은… 최악의 상황이 와도 자존심 때문에 여자한테 얘기하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으니까. 당신은 그렇게 되지 않길 빌겠어요.”
“…명심하겠습니다.”
갑자기 무거운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버렸다.
나는 저 멀리서 생도들을 집합시켜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성수아를 보면서 생각했다.
‘일단 경비과 쪽 일을 본 다음에 만나야겠다.’
나는 성수아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탑 견학을 동행했던 경비원들을 전부 집합 시킨 뒤에 경비과로 향했다.
..
..
“다들 고생하셨어요. 오늘은 들어가서 편히 쉬세요.”
“네….”
다들 축 늘어진 대답을 하면서 해산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각오한 직장이라고 해도 이번처럼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장한테 꼭 괜찮은 답을 받아야겠는데?’
영사관 경비가 아무리 봉급이 높은 편이라고 하지만, 이 이상으로 근무 환경이 열악해지면 다 손 털고 도망칠 것이다.
애초에 지금 봉급도 근무 환경에 맞춰진 급여니까 말이다.
‘돈은 쉽지 않겠지만, 복지나 휴식은 좀 더 줘야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관리실에 들어가서 근무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적거리자마자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고민혁.
‘고충신… 생각해보니까, 이 녀석 무슨 이유로 여기에 잠입했는지 확인해야겠지?’
[개인적으로 최우선으로 알아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충신이 소속한 집단이 영사관을 습격하고, 심지어 저놈은 나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사실 제일 걱정인 부분은 고충신 자체보다, 고충신이 소속한 집단이었다.
‘교단… 저번에 가서 좀 알아내려고 했는데, 보안이 너무 철저하더라.’
기과 견학을 위해 방문했던 교단은 경계가 보통 삼엄한 게 아니었다.
내 은신도 여기서는 한낱 애들 숨바꼭질 수준에 불과했다.
‘일단 윤지아가 수중에 들어왔으니까, 계속 두 사람의 접점을 이용해서 의도를 알아내자.’
신분과 소속을 숨겨서 들어온 놈.
나 하나에게 원한을 품고 들어왔다기에는 너무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들어왔다.
[만약 애초에 수호 님만을 목적으로 왔다면 이미 행동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심은 하셔야 합니다. 고충신이라는 인물을 보면 수호님에게 당한 것을 그냥 넘어갈 인물 또한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무표에 적혀 있는 고민혁의 이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자, 그럼…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어줘야겠지?’
그리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근무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예리엘은 교장과 테이블에 단둘이 앉은 상태에서 그에게 조곤조곤 사과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제 실수가 됐네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제가 강하게 밀어붙인 탓이니 제 책임이죠.”
영사관에서 보류하려던 마과 견학은 예리엘의 부탁으로 강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행한 견학은 마지막 날 큰 곤욕을 치르면서 생도들을 위기로 몰고 갔다.
비록 생도들이 전부 무사하다고 해도….
‘현성들의 도움을 받기를 잘했어. 만약 평범하게 진행했다면 진짜 보통 일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
현성.
탑의 최고 마법사들에게 불리는 호칭으로, 표면상 서열은 탑의 수장 밑이라고 하지만 실력 면에서는 예리엘과 동등한 존재들이었다.
교장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어차피 저 친구들도 세상에 나갈겁니다. 언제나 안전만을 챙길수는 없는 노릇이죠.”
위험을 두려워하면 영웅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위험한 일을 맡아야 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이런 예방 주사는 생도들에게 언젠가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다만 그 예방 주사는 좀 빨리 맞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생도의 안전은 어디까지나 제 미래에 도움이 될 뿐이죠.”
“후후… 배려 고마워요”
“하하하, 오히려 이렇게 직접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은 제가 다 해결해놓겠습니다.”
예리엘은 고개를 끄덕임과 함께 테이블에 있던 잔을 천천히 들어서 양손으로 받쳐서 우아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예리엘의 모습을 보던 교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예리엘은 교장의 눈치를 확인한 뒤 잔을 내려놓고 다소곳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다른 할 말이 있나요?”
“그… 혹시 온진우 님께서는 잘 지내십니까?”
온진우.
에브리카의 회장이었다.
VR 캡슐을 최초로 개발하고, 유일하게 상용화해서 판매하고 대여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었다.
그리고 그 에브리카의 회장은 예리엘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예리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한… 3년 됐네요. 이제 둘 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움직이기 힘들어서 그런지 자주 만나지는 않아요.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에 관한 얘기는 왜요?”
“그….”
교장은 눈썹을 찌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캡슐… 도난 건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나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 사건 당시에 있던 도난 캡슐을 반환하라는 요청이요?”
“네. 지금도 도난당한 캡슐을 찾기 위해 수색하고 있지만, 아직 단서 하나 찾지 못했습니다.”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의미인가요?”
“아닙니다.”
“…?”
설마 도난 캡슐을 넘어가달라는 이야기인가 싶은 마음에 예리엘은 귀를 기울이고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교장은 그런 철판을 깔지 않고 진심을 이야기했다.
“이쪽에서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예리엘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교장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차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후후. 오랜만에 찾아갈 명분이 생겼네요. 가서 꼭 전해 줄게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
영사관의 경비원 업무는 주 6일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3교대로 나뉘어 있다.
낮, 밤, 심야.
낮은 생도들이 수업하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밤은 오후 4시부터 정각까지, 심야는 정각부터 오전 8시까지이다.
그리고 이 근무 시간을 정하는 건 오롯이 관리자의 소관이었다.
관리자가 나태해서 근무표 자체를 작성하지 않거나, 개판으로 짜서 경비과를 엉망으로 운영하지 않는 이상 이 항목은 누구에게도 터치 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리자는 다른 경비원들의 근무 시간만이 아니라, 휴일도 임의로 정할 수 있었다.
가령 경비원 중에 중요한 일이 생겨서 휴일 변경을 부탁하면 상황에 따라서 들어줄 수도 있다.
근무, 휴일이 모두 관리자의 손에 달렸다는 의미였다.
나는 근무표에 마지막 이름을 적어 넣은 뒤 통신으로 흥얼거렸다.
‘크… 이 정도 근무표라면 의욕 빵빵해지겠지?’
[…퇴사 의욕을 올리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근무표인 것 같습니다.]
‘크크크….’
팔을 들어 올려 근무표를 천장에 달린 조명에 비추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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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혁 : 남자 교관 기숙사
낮(금요일)낮(토요일)밤(일요일)밤(월요일)심야(화요일)심야(수요일)휴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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