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화 〉 357화 새로운 휴가 (5)
* * *
강수아는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쇳덩어리를 피하며 다급한 표정으로 아까 신지수가 날아간 곳을 바라봤다.
‘지수를 빨리 구하러 가야 하는데!’
하지만 상대는 그녀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싸우는 중에 어딜 보는 거야!”
“큭!”
강수아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보라색 복장을 입고 있는 소녀가 채찍을 휘둘러왔다.
짜악!
“크읏!”
“한눈팔면 곤란하다고?”
“이씨….”
평소라면 거리낌 없이 싸우며 압도했어야 했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최초의 에테르 위치를 찾았다고 좋다고 하며 들어왔던 창고에는 하필 드레이크라는 자신들과 대척하는 집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도 자신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들어왔던 것이었다.
최초의 에테르.
‘미리 변신해놓길 잘했어. 하지만 이대로는….’
자기와 언제 같이 다니던 친구 두 명의 안전에 빨간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그녀는 평소처럼 제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안 되겠어! 일단 지수부터 구해야 해! 만약 지수가 잡히면 정말 큰 일이야!’
그녀를 위험을 무릅쓰고 상대방에게 등을 돌려서 에테르의 힘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어서 날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수아의 그런 무모한 행동은 그녀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어딜 도망가려고!!”
쏴아아악! 짜악! 휘리릭!”
“크아앗!”
보라색 소녀의 채찍은 그녀의 허벅지를 휘둘러서 큰 상처를 내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양 다리를 묶어 버렸다.
그렇게 두 발목이 묶인 강수아는 옷에서 튀어나온 에테르를 이용해서 채찍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보라색 소녀는 그것을 얌전히 봐주지 않았다.
강수아의 발목에 채찍을 풀어내기 전에 채찍은 크게 휘둘러지더니, 그녀를 고철 안으로 내리찍어 버렸다.
부우우웅! 콰아아앙!
“끄아아악!!”
“하하하하! 평소처럼 자신만만하게 덤벼봐! 어서!”
부우웅, 콰아앙! 부우웅, 콰아앙! 부우웅, 콰아앙!
몇 차례를 내리친 뒤 강수아가 축 늘어진 것을 확인한 보라색 소녀는 고철 사이에 파묻혀 있는 강수아를 내려다보면서 기분 좋게 웃기 시작했다.
“왜 그래!? 평소처럼 해보라니까? 하하하하!”
강수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크으읏…. 이, 이상해, 분명 전에는 이렇게 강하지 않았어. 갑자기 왜 이렇게 세진 거야.’
아무리 적이 많아도 조무래기들은 그녀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방해가 된다고 하면 눈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보라색 소녀뿐이었다.
하지만 그 보라색 소녀도 2:1 싸움에서 언제나 패배하고 떠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히려 두 명을 압도하는 실력을 선보이며 두 사람을 몰아붙인 것이었다.
“너… 크으… 도대체 무슨 짓을…. 아아악!”
하지만 돌아온 것은 보라색 소녀의 대답이 아닌 채찍의 조임이었다.
채찍은 강수아의 발목을 점차 조여오며 그녀의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그녀를 보호해줄 에테르가 존재했다.
강수아의 신발에 있던 에테르가 바로 튀어나와 채찍을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이었다.
파아앗! 파스스….
강수아의 되려 채찍에서 튀어나온 보라색 에테르가 강수아의 붉은 색 에테르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소멸시켜버렸다.
“뭐, 뭐야!”
“어때? 이번에 새로 개량한 내 에테르의 맛이?”
“…뭐?”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알 수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저년 에테르가 지금 내 에테르보다 한 단계 위야! 일단 빨리 빠져나가야….’
그렇게 침착함을 유지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중에도 보라색 소녀는 자신의 강함에 취해서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흐흐흐… 이번에 주인님께서 새로 강화해주신 거야. 아무리 너희들이 아등바등해도 주인님의 손아귀란 말씀이지.”
“하? 웃기고 있네. 주인이라는 건 저번에 처참하게 썰린 그 괴물 새끼를 말하는 거야?”
“…감히 주인님께 그런 말을 한다고?”
보라색 소녀는 아까까지 보여줬던 흥겨운 표정을 지운 채 증오가 담긴 표정으로 바꾼 뒤 비릿하게 웃으며 강수아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주인님의 축복을 맛보면 에테르를 가진 너도 결국 복종하게 될 거야.”
“닥쳐… 그런 괴물 새끼한테 복종하느니 자살하겠다. 퉤!”
“읏.”
강지수의 침이 보라색 소녀의 볼에 맞은 뒤 천천히 목덜미를 미끄러지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라색 소녀는 손등으로 닦아낸 침을 흘겨본 뒤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강지수를 내려다봤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 타락시키는 맛이 있지.”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다른 보라색 에테르로 다른 채찍을 소환해서 크게 들어 올리며 내리찍었다.
“주인님만 바라보는 암컷으로 만들어주마!!”
“크으읏!”
채찍의 그림자가 점차 두꺼워지는 것을 느낀 강지수는 양손으로 교차하며 에테르로 보호막을 쳤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아! 아빠….’
그렇게 간절하게 애원하는 순간이었다.
타아아앙! 파사사삭!
“크으읏! 뭐, 뭐야!”
“…어?”
그녀의 앞에 내리치던 보라색 채찍이 갑자기 무언가의 관통되더니, 액체들이 터져나가듯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외침….
“수아야!”
자신의 파트너가 저 멀리서 날아오고 있었다.
보라색 소녀는 저 멀리서 날아오는 신지수를 보며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큭! 설마 다른 녀석도 있었나! 일단 너부터 처리해주마!”
“크으읏!”
보라색 소녀는 몸이 만신창이가 된 강수아의 발목을 꽉 묶은 채 강수아를 던지기 위해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아아악!”
“수아야!!”
원래라면 에테르로 보호막을 쳐서 착지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미 몸과 에테르가 꽤 손상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대로 곤두박질치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회전력이 최고조에 도달해서 날려 보내려는 순간이었다.
타아앙! 파사사삭!
또다시 총성이 울려 퍼지며 보라색 소녀가 조종하던 채찍이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이미 원심력으로 인해 돌려지던 강수아는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수아야!”
강수아가 날아간 방향은 신지수가 날아오는 방향과 교묘하게 어긋나 있는 탓에 신지수가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육체와 정신이 만신창이가 된 강수아의 머릿속에는 그저 고철 더미에 낙하하는 미래만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정말 위험해! 제발! 조금만 더 힘내!’
그녀는 날아가는 중에도 그녀의 에테르에게 사력을 다해서 감정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테르도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그녀의 기도는 요원하기만 했다.
강수아는 자신이 곤두박질할 고철 더미들을 보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빠… 복수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녀가 눈을 감고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였다.
‘…?’
분명 고철 더미 위에 처박히며 죽으리라 생각했던 그녀는 어떠한 통증도 없이 그저 포근함이 감싸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느껴지는 통증은 그대로였지만, 무언가가 그녀의 통증을 치료하는 듯 감싸고 있었다.
‘…뭐지? 죽었나? 죽을 때는 고통 없이 그냥 끝나는 건가?’
그렇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떨리는 눈썹을 간신히 들어 올려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창고 천장에서 비치는 노란색의 강렬한 빛과 거기에 대비되는 어두운 실루엣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따듯한 온도를 가진 피부와 그녀를 차갑게 내려보는 실루엣.
극명한 명암 때문에 누구인지 확실히 볼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사실이었다.
“누… 누구?”
“일단 몸에 상처부터 처리하자.”
남자는 조용히 할 말만 하더니, 하얀색 빛깔과 함께 자신에게 무언가 시전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사사삭….
그녀의 가슴팍에 있던 붉은색 액세서리 하나가 액체화되어서 망토를 쓰고 있는 남자의 목에 달라붙어서 힘겹게 조르기 시작했다.
이미 상태가 엉망진창이 된 에테르는 자기 주인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는 목이 조이는 와중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냉정하게 말했다.
“에테르가 마냥 똑똑한 건 아니네. 주인이 죽는 걸 원하는 걸 보니.”
사르르….
붉은색의 에테르는 움찔하더니, 이내 축 늘어져서 강수아의 가슴팍에 매달린 뒤에 브로치로 변해버렸다.
‘…에테르.’
그녀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에테르를 보고 안쓰러운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준 녀석.
하지만 그런 감정은 잠시뿐이었다.
다시 하얀 빛이 품어져 나오자 몸이 점점 생기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남자의 얼굴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뭐지? 내가 죽어서 헛것을 보는 건가?’
강수아의 몸에 났던 무수한 상처들이 깨끗했던 피부로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흙과 쇳가루들은 어느새 그녀의 상처 밖으로 스르르 빠져나오더니 바닥에 내리 앉았고, 그녀의 피부는 오히려 전보다 더 깨끗하다고 느낄 정도로 깔끔하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놀란 표정을 하면서 자기 몸이 모두 복구된 것을 확인한 강수아는 어떻게든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기 눈에 힘을 주고 망토 안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은 뒤, 천천히 그녀의 눈을 감겨주며 속삭였다.
“쉬어라. 쉬면, 모두 다 끝나 있을 거다.”
“아….”
강수아는 남자의 말과 함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인물의 말이 교차하며 떠올랐다.
(수아야, 여기서 숨어 있어. 그럼 모두 다 끝나 있을 거야.)
그녀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점차 잠이 들며 중얼거렸다.
“아…빠….”
***
“아… 빠….”
나는 붉은 머리카락의 단발머리 소녀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야? 설마 어디서 실수해서 낳은 애인가?’
[….]
내 허황한 농담에 아르모니아는 침묵하더니,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하긴….’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뒤에 저기 날아오는 보라색 소녀를 바라봤다.
“네, 녀석은 누구냐!”
“….”
나는 그 소녀를 향해서 팔을 들어 올려서 조준하기 시작했다.
‘이미 저지른 일이니까, 최소한 마무리는 지어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