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화 〉 347화 위그드라실 (355)
* * *
‘됐어! 됐다고!! 크하하하!’
한여름에게 이 상황은 완벽 그 자체였다.
아니, 사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지만, 단 하나의 사실만이 한여름에게 완벽한 상황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성수호의 죽음.
중간에 열쇠를 버리는 멍청한 짓을 벌였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다.
열쇠는 또 얻으면 그만이었고, 만약 또 디펜스를 해야 한다고 해도 미래를 알고 있는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짓을 또 하게 시키지는 않을 거야!’
한여름의 생각으로는 이 디펜스는 단 한 번 이루어지는 시험 정도로 판단했다.
2층을 올라갈 때마다 이런 디펜스를 겪어야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심지어 한번 치르는 것조차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난이도였다.
그는 빛나는 눈빛을 한 채 요정을 한없이 바라봤다.
“20초!”
요정의 타이머 카운트가 들려 오면서 한여름은 긴장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 순간 고지를 눈앞에 둔 상황.
“5초!”
한여름은 확신했다.
‘됐어! 이제 끝이야!’
그의 확신과 함께 요정이 큰소리로 외쳤다.
“종료!”
한여름은 속으로 어떠한 외침도 없이 그저 기쁨만이 용솟음치듯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 기쁨이 큰 만큼 그 일이 완전히 틀어졌을 때의 실망과 절망도 비례해서 변화하는 법이었다.
콰당!
“아씨… 꼬리뼈로 떨어진 거 같아.”
성수호는 살아남았고….
“와! 진짜 눈으로 보니까 장난 아니다.”
“아저씨, 진짜 대단하긴 대단했네.”
“우리는 한 게 뭐냐.”
오히려 그의 행동 덕분에 어마어마한 평가와 환대를 받았다.
‘씨발… 이게 뭐야….’
그에 비해서 한여름은….
└이의 있습니다! 왜 우리 여름이가 0.0%인 거죠?
└그것은,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템 주워서 친히 성수호에게 바쳤는데요?
└반올림해서 그렇겠지.
└시발, 반올림해도 0.0이라고? ㅋㅋㅋㅋㅋㅋ
└그럼 0.04% 정도는 된다는 거네? 다행이다. 여름아. 분명 너도 뭔가 했을 거야. 아마도.
또다시 시작된 조롱과 멸시.
회귀를 하면 모든 게 초기화된다고 하지만, 저 모든 대사는 한여름의 머릿속에 노예 인두로 지진듯이 낙인을 찍혀서 평생 잊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죽여 버릴 거야 씨발 새끼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제 한여름의 평판은 최악으로 치달은 상태였고, 그가 하는 행동이나 말들은 더욱더 그를 나락으로 빠트릴 뿐이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
여기서 자살을 할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자살하려고 하면 당황한 파티원들이 막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다른 인원이 여기에 남고, 혼자 이곳을 나간다면 오히려 그에게는 회귀 전에 기회가 오는 것이었다.
보석 안의 내용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기회.
‘일단 내용만 보고 회귀하면 그만이야!’
오히려 떨어진 평판 덕분에 이곳을 나가기 더 수월해지리라 판단했다.
‘어차피 지금 다들 나랑 있고 싶지 않겠지? 일단 이 새끼한테 분이나 풀어야겠다.’
한여름은 기쁜 마음에 성수호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분을 풀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갈 거 욕이나 내뱉으면서 기분 전환을 할 셈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그가 한 행동은 오히려 그를 옥죄어왔기 때문이었다.
성수호는….
“잠이나 자라.”
“무… 무슨… 이 씨발 새끼….”
한여름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
..
“야… 일… 나….”
한여름의 귓속에 희미하고 작은 줄기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여름은 지금 당장 자기 뇌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수면만이 세상 전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여름의 귓속으로 소리가 강제로 비집고 들어오면서 뇌를 감싸고 있던 수면이 점점 아침 이불을 걷어내듯 옆으로 걷히기 시작했다.
“야… 일어나….”
“아씨….”
한여름은 단잠을 방해하는 녀석에 대한 분노와 이대로 무시한 채 깊은 잠에 또 빠져들고 싶은 욕구가 엉키며 싸우기 시작했다.
‘누구야, 짜증 나게….’
하지만 분노와 욕구의 싸움은 분노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유는 바로 그의 고막을 통한 엄청난 소리가 그의 뇌를 감싸던 수면을 단번에 찢어발겼기 때문이었다.
“야! 한여름! 일어나라고! 언제까지 잘 거야!”
“크앗! 뭐야! 시끄럽게!!”
한여름은 자기에게 소리를 지른 존재에게 일갈할 마음으로 가지며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누구야! 짜증나게!’
하지만 조금 전까지 한 소리 하겠다는 불같은 기세는 주변을 보며 금세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하아… 아주 하루 종일 자라. 하루 종일.”
“야, 그만 일어나.”
자신을 향해 한심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민하연과 한봄.
“흐음….”
민하연과 한봄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여자도 자신을 내려다보며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한여름은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기세 좋게 분노를 내뱉을 수 없었다.
도통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여름은 한가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이나 자라.)
성수호의 대사와 함께 갑자기 몸을 감싸던 수마(??)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씨발 새끼가… 설마 나를 강제로 재운 건가?’
별의별 능력을 다 쓰는 녀석이다 보니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개 같은 새끼가….’
한여름은 일어나서 바로 성수호에게 욕설 한 바가지를 해주려는 순간이었다.
주변의 환경을 보며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뭐야? 원래 여기 이렇게 안개가 심했나?’
한여름은 당연히 디펜스가 종료된 지하수로라고 판단하고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주변은 회색으로 가득히 채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장소였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자기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여자들과 살짝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성수호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같은 장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어리둥절하며 성수호의 뒷모습을 보며 그에게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성수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역시 죽은 자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가? 으스스하네요.”
***
내가 자욱한 안개를 둘러보며 중얼거리자, 뒤에 있던 한여름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뭐… 뭐? 뭐, 뭐라고 했어… 뭐, 뭐라고….”
“뭐야? 일어났냐?”
나는 모르는 척 뒤를 돌아서 한여름을 보며 씩 웃어줬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까?’
나는 기대되는 마음으로 한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르모니아가 통신을 말했다.
[수월하게 진행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게… 그리고 저 새끼 꼼수 쓰려고 했던 것도 미리 계산해 놔서 다행이다.’
전날, 나는 한여름을 강제로 재운 뒤에 민하연과 한봄과 같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만약에 한여름이 회귀하면 어떻게 진행할지, 회귀하는 인물이 누가 되는지에 따라 계획도 세워놨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을 세워뒀음에도 두 여자는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한여름이 안 가겠다고 땡강 부리면 어쩌지?)
(그럼 저렇게 재운 상태로 그냥 데리고 가자.)
(저 지금 떠올랐는데, 저 녀석이라면 열쇠를 버리지 않았을까요?)
(아… 그걸 생각 못 했네.)
민하연은 한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누워서 자는 한여름에게 시선을 줬다.
한봄은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서 콜콜 대며 자는 한여름을 보며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진작에 보험을 들어놓은 게 있었다.
(아, 그건 나한테 맡겨줘.)
(…?)
나는 모든 상황을 설명한 뒤 두 사람을 최대한 안심시키고 재울 수 있었다.
다음 날….
우리가 일어날 때쯤 요정이 나타나서 바로 지하수로 던전 마지막 지점으로 이동시켜줬고, 우리는 던전 갈림길 중앙 앞에서 잠깐의 고민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삼인방이 먼저 들어가 보고, 그다음 나와 민하연과 한봄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그 멤버에는 한창 수면에 빠져 있는 한여름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나는 기분 나쁘지만, 한여름을 업고는 중앙 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열쇠를 강제로 쥐여준 채….
‘혹시 몰라서 더 구해놓기를 잘했네.’
[이왕이면 계약이 유지되는 상태였으면 확실했겠지만,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제일 걱정되었던 부분이 바로 열쇠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였다.
만약 열쇠를 소환사가 직접 사용해야 하는 아이템이었다면 내가 한여름을 2층으로 강제로 끌고 올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계약이 유지되는 열흘 안에 같이 올라가면 가망성이 있어 보였다.
‘뭐… 인생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음대로 됐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위층으로 올라가는 정보를 구했을 때, 한 가지 유용한 정보를 기억할 수 있었다.
열쇠를 소지하고 던전 마지막 갈림길에서 중앙으로 가는 것.
분명 그냥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열쇠라는 아이템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2층 통행권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는 의미였었다.
그 결과 나는 한여름을 강제로 2층으로 끌고 올 수 있었다.
그의 손에 강제로 쥐어져 있는 열쇠를 소모시키며….
‘손에 쥐여줬던 열쇠가 사라진 거 보니까. 이 새끼 진짜 버렸었나 보네.’
[하지만 걱정입니다. 만약 이렇게 했는데, 회귀 지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한여름이 회귀한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지만, 회귀 지점이 어떤 원리로 저장되는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었다.
분명 게꼬수가 말했다.
2층은 소환사들이 거치는 층이 아닌 만큼 원래라면 들어갈 일이 평생 없는 곳이라고….
이곳은 애초에 2층은 회귀 저장 지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그저 층을 오르는 걸로 회귀 지점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한여름과 1층에서 노닥거리며 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조디악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상황이었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도 우리의 임무라고 할 수 있었다.
“어… 왜… 왜… 여… 왜….”
한여름은 한참 나를 보며 하얗게 질린 상태로 나를 보며 계속 입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더니 나에게 달려들어서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씨발! 뭔데! 왜 날 여기로 데리고 온 건데!!”
“아니, 친절하게 데리고 와줘도 지랄이네?”
“개소리 집어치워! 씨발! 씨바아아아알!!”
한여름은 나를 확 밀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분에 못 이겨서 혼자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한여름은 한참 동안 정신이상자처럼 광기 어린 목소리를 내뱉더니, 이내 뭔가 결심한 듯 안개 안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안돼! 안된다고!!! 씨바아아알!”
민하연과 한봄은 대강 눈치채고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한여름! 어디가!!”
“야! 미쳤어!?”
“시끄러워!!”
한여름은 그렇게 안개 속으로 후다닥 달려가더니 금세 사라져서는 우리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결연한 눈빛을 하며 나를 바라보는 민하연과 한봄을 바라봤다.
‘아르모니아, 한번 시도해보자.’
[알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싸구려 알람 소리를 기다리며 한여름이 죽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삐용~삐용~삐용~
타겟(한여름)이 사망했습니다!
알람 소리가 들려 오자마자 나는 정지한 민하연과 한봄을 와락 껴안았다.
..
..
“크어엇!”
내 등 뒤에 들려 오는 갑작스러운 숨이 멎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서 조용히 뒤를 돌아봤다.
그 뒤에는….
짙은 안개와 여자에게 둘러싸인 채 주변을 둘러보는 한여름이 있었다.
한여름은 황망한 눈으로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돌아보면서 절망하기 시작했다.
“아… 아냐… 아냐… 이게…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한여름은 비명을 지르며 바로 기절했다.
나와 민하연, 한봄은 기절한 한여름을 본 뒤 서로 셋이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회귀 포인트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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