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7 337화 위그드라실 (3-46)
“다들 물러서!”
내 외침에 한여름을 한심하게 보던 여자들이 기겁하며 보석을 중심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괴상한 형태로 꿈틀거리는 보석.
사실 이제 와서 보석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너무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젤리처럼 흐물거리던 보석이었던 존재는 이내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 어떡해!”
“아, 아저씨!”
“일단 다 내 뒤로 숨어!”
내가 현재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최선의 수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세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흐물거리던 초록색 보석은 크기가 점점 커졌고, 어느새 커지고 커지더니 높이만 30m가 넘는 크기로 변했다.
무엇보다 그 크기가 변함과 동시에 젤리처럼 흐물거리던 형체도 형태를 잡더니, 대충 어떤 모습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전신이 털로 뒤덮이고, 두꺼운 다리를 지니며 세 갈래로 뻗어 나온 강아지 머리.
나는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저거 케르베로스 아냐?’
그 생각과 동시에 세 개의 대가리가 달린 개의 모양의 온몸이 초록색으로 된 케르베로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악!
케르베로스가 울부짖자 공기뿐만 아니라, 땅과 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길 수 없다.
나뿐만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여자들은 덜덜 떨리는 표정으로 고개가 위로 향할 뿐이었다.
쇼크비와는 차원이 다른 위압을 선사하고 있었다.
쇼크비는 나타나자마자 손혜은의 팔을 물어뜯으며 순간적인 위압감을 선사했지만. (비록 과거 회차의 이야기지만.)
지금 나타난 케르베로스는 나타난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남아있던 의욕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고, 절망이라는 갈증을 유발하며 순식간에 말려 죽이는 듯했다.
존재 자체만으로 공포가 아닌, 죽음을 체험하는 기분을 들게 해줬다.
우리가 한창 공포에 떨고 있는 동안, 케르베로스는 전부 완성된 뒤 주변을 둘러보더니, 우리를 시야에 넣고는 잠시 본 뒤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오오오오!
우르르르르…!
“다들 도망쳐!”
“꺄야약!”
“으아아악!”
내 외침과 함께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둠은 금세 걷혔고, 내 주위에는….
“뭐야!? 여기 어디야? 그리고 다들 어디 있어?”
똑같은 지하 수로의 던전이었지만, 내 주위에는 민하연도, 한봄도 모두가 사라진 상태였었다.
‘아르모니아! 내 말 들려?’
[들립니다. 지금 사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르모니아가 사태를 확인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까는 사방이 어두운 공터였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여기저기 거대한 터널이 뚫려 있는 미로 같은 장소였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릴 때쯤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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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52
생존자 :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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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계속 줄어드는 타이머와 함께 밑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표기가 나타나고 있었다.
대충 예상되는 상황, 그리고 예상했던 아르모니아의 대답.
[현재 수호 님과 파티를 하고 있는 멤버들 전원이 맵 전역으로 흩어진 것 같습니다.]
‘하아… 또 도망인가?’
[그런데 이상합니다.]
‘뭐가?’
[조디악 측에서 전해져 온 이야기로는 비슷한 시련이 존재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0층에서는 몰라도 또 이런 극단적인 생존 방식을 채택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였다.
0층에서 1층으로 올 때 만났던 쇼크비는 사실 선택적인 부분이 강했다.
보스전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이 존재했었다.
그에 비해서 지금 이 디펜스는 거의 다 깬 상태에서 갑자기 이런 생존 게임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택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몬스터에게 몰려 죽는 것을 간신히 모면했더니 이번에는 케르베로스의 개껌으로 물려 죽게 생겼으니 말이다.
거기다 케르베로스는 내 수준으로도 이기기는커녕 생채기 하나 낼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2단계 풀파워도 쏘면 데미지를 줄 수 있긴 하겠지?’
[다만 그렇게 데미지를 줬다가 오히려 생존에 더 큰 위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그 존재를 잡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녀석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중요했다.
괜히 죽일 각오로 화살을 쐈더니 살아서 오히려 날뛰면 죽음의 다리를 건너는 셈이니까.
‘일단 생존 게임이네… 큰일이네. 하연이랑 봄이는 어떡하지?’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응? 위치를 알아?’
[아시다시피 두 사람은 이미 저희의 소속입니다. 정확한 지도는 없지만, 두 사람의 대략적인 위치와 시야를 제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좋아!’
아까 사태를 확인하고 있다는 의미가 두 사람의 상황을 본다는 것이 없나 보네.
거기다 더불어서 삼인방의 위치까지.
[그리고 저번에 저희 소속으로 넣은 세 명의 위치도 확인했습니다.]
‘휴…. 저번에 미리 소속에 넣길 잘했네.’
이왕이면 같은 편인 이상 최대한 같이 생존하는 쪽으로 진행하는 게 좋았다.
‘일단 다섯 명 다 아직은 안전하다는 거네.’
하지만 결국 아직이었다.
생존자라는 단어를 쓴 것을 보면 분명 위험한 순간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니까.
‘아르모니아, 알려줘. 빨리 그쪽으로 가자.’
[일단 제일 가까운 쪽부터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즉시 아르모니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분명 지금까지 봐왔던 지하 수로와 비슷한 형태의 던전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김새와 분위기가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장소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야… 천장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높은데?”
[아마 아까 보셨던 괴수가 돌아다니기에 적합하게 만들어 놓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대부분 터널의 형태가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고,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아까 봤던 괴수가 충분히 돌아다닐 만큼 여유로운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다.
‘눈에 걸리면 그냥 죽는다는 소리네….’
그 말은 도망치기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나마 지나가면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가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일단 통로는 이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응, 너무 어두워서 진짜 위급한 상황에서만 들어가야겠다.’
실로 벌레의 기분은 잠시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내 집을 몰래 돌아다니던 벌레들이 지금 내 심정이겠지.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어디 있어요!)
(조, 조용히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크게 소리치면….)
(그렇다고 마냥 조용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목소리의 톤과 형태, 그로 인해 느껴지는 성격과 태도에서 알 수 있었다.
박선희와 박진희였다.
나는 바로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갑자기 들려오는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내 모습을 보고는 바로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네!”
“진짜… 아예 다른 공간으로 온 거 아니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두 분 괜찮으세요?”
나는 두 사람을 바로 진정시키고, 홀로그램을 보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2시간 동안 도망쳐야 하는 거 같아요.”
“하긴… 그런 괴물이랑 싸우라고 하는 거였으면 그냥 차라리 자살하는 쪽이 마음 편할 거 같아요.”
“나는… 지금이라도 자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서워….”
두 사람도 나름 이 세계에 적응했다고 하지만, 아까 보여줬던 케르베로스가 바로 그녀들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아까 본 케르베로스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비슷한 부류를 봐왔던 나조차도 전의를 상실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예전에 마왕성에서 변종 케르베로스를 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할 뿐 위압감은 차원이 달랐다.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지옥에 끌려가는 듯한 위압감을 주는 괴물.
몬스터가 아니었다.
지옥 그 자체가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일단 다른 분들을 찾죠.”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쿵… 쿵… 쿵….
미세하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박선희와 박희연이 사색이 된 채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지진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런 두 명에게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저쪽으로 가죠.”
나는 땅이 흔들리는 반대편을 향해서 손을 뻗어서 지시했다.
박진희와 박선희는 사색이 된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재깍재깍 내 지시에 따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녀석이 오는 방향에는 파티원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어렵게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걱정이었다.
‘…한여름 위치는 모르지?’
[그렇습니다. 일단 다른 인원과 마주하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한여름이 죽으면 안 된다.
한여름이 괴물에게 찢기는 한이 있어도 최소한 바로 옆에 민하연과 한봄이 같이 있어야 했다.
일단 아직 회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죽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한여름… 제발 끝까지 살아남아라. 제발….’
우리는 최대한 발걸음을 줄인 채 다른 멤버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
쿵… 쿵… 쿵….
‘이게 뭔데! 이게 뭐냐고!’
한여름은 터널 사이로 들리는 진동 소리를 들으며 쥐 죽은 듯이 숨어서 입을 틀어막았다.
박선희와 박진희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들에게 가려던 찰나 갑자기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서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봤고, 다행히 사람이 들어가서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씨발 쥐구멍도 아니고….’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선 상태로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아니었다.
높이가 낮아서 허리를 숙인 뒤 벌레처럼 기어가야 하는 구멍이었었다.
한여름이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눈앞에 푸른색 홀로그램이 하나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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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4
생존자 : 7명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구멍에 있습니다. 붕괴까지 남은 시간 15분 2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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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은 그 홀로그램을 보자마자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이 통로에 계속 숨을 수 없는 거야? 좆같은 안전지대!’
안전지대처럼 편안한 공간도 아닌 곳이 시간이 지나면 붕괴하는 설정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한여름은 저 멀리 보이는 통로의 끝을 바라봤다.
한없이 어둠으로 감싸진 통로는 한여름의 이성이 앞으로 나가지 말라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공포감을 주입하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통로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기다리며 발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갔다가 막힌 길이면? 그냥 여기서 죽치고 있다가 나가…. 뭐… 뭐…. 뭐야….’
한여름은 몸을 돌려서 케르베로스가 지나갔는지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허… 허윽… 허어… 허어….”
크후… 크후…. 쿠흐….
공포심에 마비되었던 청각이 살아나면서 한여름이 들어왔던 굴에는 거대한 초록색 눈이 세로로 그어진 동공과 함께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존심과 자만심으로 모든 인간을 세상을 발밑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가 처음으로 미물이 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저 만화나 게임에서 그저 지나가는 몬스터 같은 것이 아니었다.
넘을 수 없는 존재.
한여름이라는 한낱 미물을 신이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한여름의 모습에 채팅창은 그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고작 똥개 보고 기겁하냐 ㅋㅋㅋㅋㅋ
└평소에 우릴 죽이겠다 어쩌구 하면서 발악하던 녀석이 똥개 앞에서 벌벌 기네.
채널의 존재들은 한여름을 미물처럼 보는 케르베로스를 동네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작은 유기견 정도로 대하고 있었다.
그저 포인트를 주며 귀찮게 굴던 존재들.
└저 귀여운 애를 왜 저렇게 무서워하는 거지?
└야, 야…. 우리랑 기준을 똑같이 하면 안 되지.
└ㅋㅋㅋㅋ 야, 쟤는 우리니까 웃으면서 대하지. 기본적으로 반신들도 벌벌 떨게 만드는 녀석임
처음으로 그들에 대한 공포심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씨, 씨발… 저 새끼 왜 안 가는 거야?’
한여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케르베로스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초록색의 불타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크후… 크르르… 크후….
니가 여기 있는 한 절대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안 되겠어….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이대로는 저 녀석한테 먹히든, 여기가 무너지든 분명 죽을 거야!’
한여름은 다급한 마음에 일어서서 굴 안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두려움에 이성이 거부하던 어둠.
하지만 지금 그의 내면에 있는 이성은 케르베로스의 눈빛에 사망 선고를 받고, 그의 감성이 모든 것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일단 반대편으로 도망치자! 한 시간만 버티면 돼!’
성수호와 한 계약은 한 시간 후 자동으로 만료가 된다.
그리고 한여름이 그렇게 원하던 보석은 이미 그의 수중에 있었다.
‘하, 한 시간만 버티고, 영상을 본 다음에 저 새끼한테 먹히면… 머, 먹히면!’
죽는 것과 먹히는 것.
지금까지 한여름에게 위의 두 가지는 같은 회귀 스위치였지만, 지금 그는 죽는 것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먹히는 것에 더 큰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씨발! 싫어! 저런 괴물한테 먹히기 싫다고!”
한여름은 이미 죽어버린 이성을 먹고 자란 공포심에 지배된 상태로 그나마 희망이 느껴지는 어둠을 향해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