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5 335화 위그드라실 (3-44)
“저, 저기 저거 설마… 좀비… 맞죠?”
박선희의 말이 시발점이 되어서 주변에 있던 파티원이 소리를 지르며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뭐, 뭐야! 진짜야! 진짜라고!”
그리고 그 혼비백산 사이에는 민하연과 한봄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 어떡해! 자, 잠깐!”
“다, 다가오고 있어!”
어떤 의미에서 진귀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민하연은 지금까지 괴상망측한 몬스터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위압감을 가져다준 쇼크비와 직접 싸워본 경험이 있는 여자였다.
그런데도 사람 모양의 시체가 걸어 다가온다는 사실만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주입된 공포.
한번 물리는 순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지성과 기억을 모두 잃고 살덩이 껍데기만 움직이는 괴물이 된다는 공포.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을 한 채, 하염없이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존재들.
그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좀비였다.
그리고 그 공포는 나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었다.
‘아르모니아! 저거 뭐야? 진짜 좀비야?!’
아무리 게임에서 많이 봐왔다고 해도 실제로 보는 건 완전 다른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아르모니아는 내 다급한 질문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일단 하층에 있는 조디악에게 온 정보에 존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물리면 항마력이나 독내성 수치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좀비화 됩니다.]
‘씨방! 뭐로 처치해야 해!? 불화살? 마법? 빨리 말해줘!’
웬만한 상황에서도 나름 침착하는 나도 좀비 앞에서는 당황함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물려도 문제, 아군이 물려도 문제.
일단 민하연이나 한봄에게 손톱 하나 스치는 순간 그녀들의 몰골을 보고 싶지 않아서라도 그녀들을 여기에 놓고 회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당황하는 나를 침착시킨 건 다름 아닌 아르모니아였다.
[침착하시길 바랍니다. 치유가 가능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엥?’
좀비 상태를 치료하는 치료제가 있다?
어느 우산 제약에서 만든 백신을 연금술로 만들 수 있나? 아니면 에넬로 만들거나?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모든 것을 설명해줬다.
[상태 이상 해제 스킬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와우.’
그건 또 몰랐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저런 좀비가 사는 세상이라면 좀비가 조금이라도 증식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인데, 위그드라실이 좀비로 들썩인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내면에 자리를 잡던 공포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결책을 알아내는 순간 내면에 피어올랐던 잠재된 공포가 싹 씻겨나가는 게 느껴졌다.
‘좀비가 무섭긴 무섭구나. 아니… 지식이 무섭다고 해야하나?’
어느 매체로도 접할 수 있는 좀비.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재미있게 콘텐츠로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것은 완전 다른 상황이었다.
사람에게 각인된 공포가 어느 정도의 위력을 풍기는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해결법을 알았다면 완전 역전되는 상황.
하지만 역전되는 건 나뿐이었다.
“수, 수호야! 다, 다가오고 있어!”
“어, 언니 빨리 쏴! 빨리!”
“하, 하지만 사, 사람이!”
그리고 궁극적으로 민하연의 활시위에서 화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몬스터의 형태.
“지, 진짜 좀비 맞아!? 혹시 사, 사람이면 어떡해!”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들은 전부 괴상 흉측하게 생기긴 했어도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스멀스멀 걸어오는 존재들은 썩은 시체의 형태이긴 했지만, 분명 인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형태 중에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전에 봤던 루시엔과 비슷한 엘프도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키가 짤막한 드워프, 그리고 보라색 피부의 엘프까지… 다양했다.
그어어어…. 크어어어….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지성 따위는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괴수의 울음일 뿐이었다.
‘안 되겠다. 일단 여기서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나뿐이네.’
삼인방은 물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천천히 다가오는 좀비들에게 전혀 다가가지를 못했고, 민하연도 사람의 모양을 한 좀비에게 화살을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화살을 활시위에 걸어서 제일 가까이 다가온 녀석의 머리를 관통했다.
쏴아악! 파악! 그어어어…. 철퍽!
머리를 맞은 좀비는 그 자리에 고꾸라지더니 금세 홀로그램 형태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는 한 발 더 쏘면서 말했다.
“일단 세 분은 뒤로 오세요! 혹시 물리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네, 네!”
패닉 상태에 빠졌던 삼인방이 내 외침에 정신을 차리더니, 후다닥 내 뒤로 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봄, 삼인방이 내 뒤에 몰려와서는 새끼 새들 마냥 내 뒤에 꼭꼭 숨었다.
유일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하아… 하아… 어, 어떻게….”
“하연아! 일단 쏴야 해!”
내가 그렇게 외치며 한발을 또 머리에 명중시켰다.
이내 고꾸라진 좀비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홀로그램 형태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홀로그램의 모습에도 민하연은 도통 화살을 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선뜻 활시위를 놓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연아! 그럼 일단 다리라도 맞춰!”
“아, 알았어!”
쏴아악! 그에에…. 철퍽!
민하연의 화살을 허벅지에 맞은 좀비가 고꾸라진 상태로 엉기적 기어 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속도가 느린 녀석들이라 그런지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네. 일단 내가 다 처치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무수한 화살 세례를 날렸다.
..
..
마지막 좀비가 쓰러지면서 가운데 보석에서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돗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후우… 살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수호 씨….”
싸움 자체는 어려움이 없었다.
좀비라고는 해도 결국 인간의 형태에다가 머리를 맞으면 한방에 즉사하는 건 다를 게 없었으니까.
거기다 지금까지 나온 몬스터들에 비해서 느리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물량을 거의 내가 혼자 처리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고역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팔로 느껴지는 근육통만 따지면 영사관에서 빡세게 훈련을 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강도였었다.
나는 돗자리에 앉은 채 팔을 저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그래도 느릿느릿하게 와서 다행이네요.”
“수호야, 미안해….”
민하연은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는지 덜덜 떨리는 팔을 부여잡으며 내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자책하는 것 같았다.
“아냐, 애초에 갑자기 그렇게 나오면 당황할 수밖에 없지.”
“하아….”
민하연은 시무룩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위협적으로 다가오던 좀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남긴 아이템들만 널려 있을 뿐이었다.
민하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쉽지 않겠는데?’
웨이브 막판에도 좀비가 지금처럼 여유 있게 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 이 정도 물량이라면 나중에는 더 거침없이 달려들 가능성도 컸다.
그런 내 걱정에 아르모니아가 몇 가지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수호 님, 일단 다른 멤버들이 물리지 않게 하고 싶다면 한봄을 이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응? 설마 봄이 물리라는 거야!?’
일단 물리고 상태 이상 치료를 해서 안심을 시키자는 의미인가 싶었지만, 아르모니아는 바로 오해를 풀기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 몰려오는 몬스터들은 소위 언데드 속성을 지닌 몬스터들입니다.]
‘뭐, 좀비가 대부분 그렇지… 아! 설마!’
[생각하신 부분이 제가 말씀드리려는 부분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봄의 회복 스킬이 유용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힐러와 언데드는 어느 세상에서나 반대되는 속성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두 존재의 상관관계는 대부분 힐러가 우위에 차지하는 편에 속했다.
대표적으로 아까 아르모니아가 설명했던 상태 이상 회복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아까는 왜 말해주지 않았어? 이미 알고 있었던 거 아냐?’
[일단 개인적으로 수호 님께서 해결할 수 있다면 모두 해결하는 쪽이 더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좀비의 숫자가 많아서 문제가 된 건 맞지만, 아르모니아가 봤을 때는 나 혼자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 다들 좀비에게 물리는 것을 걱정할 뿐, 실제로 물리더라도 해결 방법이 있으므로 그걸 또 이용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수호 님께서 모두 해결하면 그건 그거대로 좋고, 물리게 되면 수호 님께서 또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오… 역시 우리 CEO.’
아까 내가 당황했던 상황을 풀어줬던 것처럼 아르모니아는 냉정하게 상황을 주도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말해놓는 게 좋겠다.’
상태 이상 회복은 몰라도 회복 스킬로 언데드를 퇴치하는 부분은 빨리 말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한봄 씨.”
“네, 아저씨. 뭐 필요하세요?”
내 주위에는 이미 한봄뿐만 아니라, 삼인방에 민하연도 둘러싸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한여름은 똥 씹은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줍고 있었고….
여자들의 시선에 이제 한여름은 한 톨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극명한 차이가 나는 대우였다.
기분은 좋은데, 부담도 엄청나다….
나는 나를 걱정하는 눈으로 보는 한봄을 향해 말했다.
“한봄 씨, 혹시 마나 여유 될 거 같아요?”
“네, 거의 쓰지 않아서 아직 한참 여유 있어요. 어! 혹시 어디 다쳤어요!?”
다들 다쳤다는 말에 기겁하며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좀비랑 싸웠는데,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겁하는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뒤에서 보셨잖아요. 전혀 다치지 않았어요. 다만 한가지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거요?”
“이따 웨이브 다시 진입할 때, …좀비들한테 회복 스킬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