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330화 (331/898)

EP.330 330화 위그드라실 (3-39)

솔직히 위그드라실에 올 때 한가지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엘프.

별의별 몬스터가 다 나오는 세상인데, 엘프 정도는 당연히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내가 그런 생각을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건 그동안 내 옆에 엘프 같은 여자가 버젓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하연은 진짜 동양과 서양의 외모를 아우르는 그런 존재니까.

그런데 진짜가 나타났다.

“그대가 한 행동을 뒤에서 지켜봤다. 여성의 중요 부위를 함부로 만지다니 수치스러운 줄 알아라.”

“….”

오뚝 선 코와 기다랗게 뻗은 귀, 냉철한 눈매, 그리고 휘날리는 황금색 머리카락.

키는 170 중반에 이 장소에서 여자 중에서는 제일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시원하게 드러내고, 상체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박힌 경갑이 둘러싸여 있으며, 하체는 이동성을 위해서인지 가죽 바지를 입고 있었다.

비록 내가 아는 나무에서 나무를 뛰어 넘어 다니는 날렵한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고고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그녀의 손목 촉감을 느끼던 내 정신을 깨우는 건 나 자신도, 민하연도 아니었다.

“당신이 뭔데, 내 손님한테 윽박지르는 건데?”

나와 민하연이 구경하던 좌판의 상인이었다.

거무튀튀한 망토를 쓰고 있어서 몰랐지만, 얼굴을 드러낸 모습을 보니 만만치 않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엥? 엘프?’

[일단 피부색이 다른 것을 보면 종족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엘프와 신체적인 외형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피부색이 검보라색으로 되어 있어서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엘프와 완전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엘프와 다르게 남성에다가 중년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년에다가 남자임에도 미인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엘프가 남자의 거친 음성에도 크게 반응 없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사를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이 남성의 행태가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흥, 바보 아냐? 오히려 행태를 봐줄 수 없는 녀석은 너인 거 같은데?”

“…? 무슨 소리인지?”

우리 앞에 있던 창백한 남자는 콧방귀를 끼며 입을 열었다.

“딱 보니까, 연인인 거 같은데. 오히려 니가 방해했다는 생각은 안 드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연인의 몸을 저렇게 함부로 만질 리가….”

“저….”

두 사람의 중간에서 고개를 숙이고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민하연.

그녀가 조용히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엘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배려 감사합니다. 저랑 그런 관계의 친구니까 손목 놔주셔도 돼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황금 머리 엘프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으로 내 손목을 조심스럽게 놔줬다.

예의를 지키며 손목을 놔줬지만, 그녀는 나를 향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오해를 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아뇨. 뭐… 오해 살만했으니까 괜찮아요.”

“그럼 저는 이만….”

엘프는 황금색의 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몸을 돌려 자기 갈 길을 가려는 것 같았다.

‘아쉽네… 좀 더 보고 싶었는데.’

너무 이질적인 존재라 그런지 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신기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게임이나 소설에서나 보던 존재를 실제로 눈으로 본다는 건 경이로운 체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지속되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봐?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하고 그냥 가려고?”

“….”

창백한 상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자 엘프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사과드렸다.”

“아… 사과했으면 땡이다? 그 고고하신 낮의 주민께서는 말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건가?”

“….”

창백한 상인의 비아냥에도 엘프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다만 분위기 자체만 놓고 보자면 적의가 분명 보이긴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적의는 상인뿐만이 아니었다.

‘뭐지? 마을 주민들이 이 여자를 싫어하는 분위기인데?’

마을 주인들은 우리를 볼 때처럼 신기한 눈이 아닌, 불쾌한 눈으로 엘프를 쳐다보고 있었다.

엘프는 잠시 고민하더니 우리를 보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그대들에게 큰 실례를 범했군요. 괜찮으시다면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이게 왠 떡이냐.

..

..

그 후 우리는 아닌 밤중에 식당에 와서 식사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후회나 귀찮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 물론 나랑 한여름만….

“….”

처음에는 민하연과 한봄, 삼인방도 엘프라는 존재 덕분에 넋이 나가서 구경하는 느낌이었지만, 금세 못마땅한 눈치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나를 특히나 노려보는 민하연과 한봄의 시선을 피하며 최대한 엘프와 대화를 주도했다.

“그러고 보니까, 소개를 드려야겠네요. 저는 성수호입니다.”

“루시엔 룩스 솔리스 입니다.”

그 후에 민하연을 시작으로 다들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루시엔이라고 밝힌 여자는 아까 일에 대한 사과와 동시에 나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릇 연인이라면 일생에 몇 안 되는 진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애정으로 대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네.”

“이세계에서 오신 분들에게 사상을 강요하지는 못하겠지만, 사랑하는 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소중히 대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한봄과 삼인방은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다행히 거기서 그칠 수 있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시엔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음식을 입에 넣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을 멈추는 존재가 있었다.

“루시엔 씨는… 갑옷 안 불편하세요?”

한봄의 말대로 루시엔은 갑주를 입은 상태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포크에 찍혀 있던 음식을 조용히 입에 넣고 다 먹은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1층에 계셔서 모르시겠지만, 위층은 전쟁 중입니다.”

전에 들었던 이야기였다.

우리가 있는 작은 규모의 지역이 아닌 큰 규모를 지닌 위층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그런데 전쟁이랑 갑옷 입고 밥을 먹는 게 무슨 상관일까….

“아무리 중립 지역에 왔다고 해도 저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입니다. 당연한 행동일 뿐입니다.”

“아하….”

한봄은 신기한 눈과 더불어서 감탄하고 있었다.

루시엔 룩스 솔리스…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대사였다.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한편으로 자기가 가진 신념을 관철하는 인물이었다.

좀 답답할 수는 있지만, 한봄이나 민하연은 좀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대개 저런 인물은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아니, 엄청 많지만, 대신 거짓이 없어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그렇게 다들 신기한 눈으로 루시엔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갑자기 훈훈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무라… 무슨 임무인데요?”

다들 그 말이 들려온 곳에 시선이 쏠렸다.

‘저 새끼 갑자기 목소리가 왜 저래?’

[….]

평소에 찌질하게 깐죽이는 목소리를 내뱉던 한여름이 갑자기 훈훈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

민하연과 한봄이 그를 기괴한 눈으로 바라봤고, 삼인방도 좀 다를 뿐이지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의 분위기를 읽지 못한 루시엔은 전혀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고 조용히 설명했다.

“큰 임무는 아닙니다.”

“흐음? 말하기 곤란한 겁니까?”

전쟁 중에 임무라면 사실상 말하기 곤란한 수준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함구해야 하는 수준일 것이다.

내 생각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그런 부분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한여름의 머쓱한 미소에도 루시엔은 별로 관심 없다는 듯이 대해주고 있었다.

‘캬… 한여름이 잘생겼어도 엘프라서 평소에 저런 녀석을 좀 봐와서 그런가? 전혀 넘어오지 않네.’

지금까지 봐온 여자들은 일단 한여름을 보면 무조건 홀린 듯 그를 바라봤다.

아, 민하연이랑 한봄은 빼고.

그리고 세 번째를 장식하는 인물이 바로 루시엔이었다.

아까부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여름의 말에 대충 대답만 할 뿐, 어떠한 호감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상인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그렇고 여기 주민분들이랑 사이가 안 좋으신 거 같언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왜 그런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나쁜 의도라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루시엔은 누가 봐도 선한 인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선한 인물을 적대시하니 혹시 여기 마을 사람들이 악인인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시엔의 말을 듣고 그들이 왜 그녀를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는 낮의 주민입니다. 그리고 낮의 주민과 밤의 주민은 적대적 관계였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전쟁도 지금 두 진영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진영 싸움인데, 루시엔은 낮의 주민으로 이 밤의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에 와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

“그럼, 여기 어떻게 있으신 거예요? 지금 전쟁 중이라면서요?”

“1층은 모든 지역이 중립 구역으로 NPC들은 절대 선제 공격을 감행할 수 없습니다.”

“아하….”

위층 놈들이 왜 여기에 와서 날뛰었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위층에서는 소환사뿐만 아니라, NPC도 위협이 되지만, 최소한 여기는 NPC의 위협은 사라져서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루시엔은 최대한 말을 아꼈고,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의 대화로 마무리되었다.

“아까 노점 앞에서의 일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럼….”

루시엔은 아쉬움이라고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바로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아쉽다.’

[아쉬우신 건 이해하지만 슬슬 분위기를 파악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어… 음…..’

민하연과 한봄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망했다. 오늘은 그냥 못 자겠다.’

[….]

..

..

다음 날.

“정말 뭘까요….”

우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빈손으로 마을에 도착했다.

저녁노을이 마을을 향해 비추며 밤 주민들의 기상을 시켜주는 건지, 서서히 마을에 주민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를 보며 신기하게 바라보는 밤의 주민들….

하지만 그런 주민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큰일이네. 슬슬 한여름이랑 했던 계약도 이제 끝나가는데….’

만약 한여름이 회귀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민하연과 한봄을 동시에 데리고 가면 되기 때문에 기억에 대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슬슬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만약에 회귀하더라도 최소한 이곳의 증표를 얻는 방법만큼은 알고 싶었다.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거기다 이틀이라고 하지만, 마지막 날 낮에 끝나는 셈이지.’

계약이 정확히 만료되는 시간은 낮이었다.

‘일단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지.’

우리는 오늘도 혹시 모를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살짝 다급한 마음에 파티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번에는 모두 흩어져서 찾아보는 게 어때요?”

나는 한여름만 한봄에게 붙여놓은 뒤에 나머지 멤버는 모두 혼자서 찾아보는 것을 제안했다.

다들 처음에는 밤중이라 좀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주민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오히려 낮에 무섭고, 밤에는 전혀 그런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다.”

“응, 한국 같네.”

다들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럼 여관에서 봬요.”

“네~.”

나는 나도 모르게 다급한 마음에 발 빠르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글쎄… 우리는 알려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이왕 온 거 물건이나 사가게.)

(예전처럼 소환사가 많았으면 포인트로 사거나 정보를 얻었겠소만, 지금은 자네들 말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군.)

나는 잠시 숨 좀 돌릴 겸 벤치에 앉아서 밤하늘을 쳐다봤다.

아름답게 뜬 은색 보름달이 정말 아름다웠다.

“하아… 아름다우면 뭐 하냐.”

하늘을 뻥 하니 뚫어놓은 듯한 보름달도 결국 내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벤치에 앉아서 하염없이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만난 것을 보면 당신과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응?”

갑자기 들려온 투박한 여성의 목소리에 귀가 쫑긋 반응하며 고개가 자동으로 돌려졌다.

옆에는 루시엔이 나를 내려다보며 진중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마을을 처음 방문하고 만난 분과 떠날 때도 만나게 된 것을 보면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떠나시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부디 평안한 여행이 되시길….”

그녀는 어제 내 이미지나 귀찮음 때문에라도 그냥 지나칠 법한데도 불구하고 나를 못 본척하지 않고 인사를 건네줬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와… 진짜 인사만 하고 가네.’

그녀는 정말 인사만 마친 뒤 마을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향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자기가 가진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을 것 같은 인물입니다.]

정말 작은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자기가 세운 기준을 절대 꺾지 않는 인물.

이런 단편적인 부분만으로 루시엔을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아르모니아의 말에 나도 동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빈말에 가까웠지만,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혹시라도 가는 길에 레드 소환사 조심하세요.”

“…레드 소환사가 이 구역에 있습니까?”

“네, 지천으로 깔렸다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돌아다녀요. 그것 때문에 처음 1층 왔을 때 고생했거든요.”

“….”

루시엔은 나를 진중한 눈빛으로 응시하더니, 갑자기 가던 방향을 틀어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옆에 나란히 앉아서 입을 열었다.

“혹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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