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8 318화 위그드라실 (3-27)
민하연과 한봄은 평소에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증명하듯 아침 해가 떠오르자마자 기상한 뒤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서 나는 두 사람과 다르게 평소에 얼마나 게을렀는지 확인 시켜주듯 잠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정작 내 몸을 깨워주는 건 민하연과 한봄이 아닌, 아르모니아였다.
[수호 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르모니아가 중요한 말이 있다는 식으로 대화를 걸어왔다.
나는 눈을 비비며 통신으로 중얼거렸다.
‘뭔데?’
[민하연과 한봄을 저희 소속으로 만들어 놓는 게 어떻습니까?]
‘…?’
무슨 소린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었다.
‘일단 소속으로 만든다는 의미는 알겠는데, 무슨 수로?’
NTL 코퍼레이션에 소속되어 있는 인물들은 이미 존재했다.
인재의 능력에 따라 소모치가 달라지지만, 에넬을 사용하면 우리 쪽 소속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언제나 아르모니아가 전부 해결해온 문제라서 저 부분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간단합니다. 두 사람에게 동의받으면 됩니다.]
‘엥? 계약서 같은 거 없어?’
[우주의 법칙에 근거해, 구두 계약이면 충분합니다.]
‘….’
위험한 계약 같은 분위기 풍기지 마….
생각해보니까, 나도 구두 계약했잖아? 나중에 계약서 따로 보여달라고 해야겠네.
나는 더 자세한 방식을 설명받은 뒤에 민하연과 한봄에게 채널의 송출을 잠시 중단할 것을 부탁했다.
두 사람은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로 이행해줬고, 나를 보며 다음 말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러고 보니까, 두 사람도 내가 다른 세계 갔다 왔다는 거 알고 있지?”
“어… 그렇지?”
“네.”
민하연에게는 진작에 술 마시며 했던 이야기고, 한봄에게도 적당히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밑밥은 깐 건 두 사람에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이거 받아.”
“응?”
나는 두 사람에게 사원증 비슷한 것을 건네줬다.
다만 이름이나 사진, 직위 란이 전부 공백으로 되어 있는 사원증이었다.
“두 사람이 소속되는 것에 동의하면 거기에 모두 표시될 거야.”
“그런데 이건 왜?”
“전에 이야기했지만, 나도 다른 세계에 있다가 이렇게 강제로 끌려 온 거잖아. 두 사람도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하….”
홀로 우연히 다른 세계로 빠지게 되면 그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나는 그런 점을 이용해서 만약에라도 내가 갔던 세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두 사람에게 건네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득은 두 사람을 바로 수긍하게 했다.
“뭐, 이상한 건 아니겠지.”
“아저씨가 이상한 걸 억지로 강요할 거 같지는 않으니까. 할게요.”
두 사람이 그렇게 동의하는 것과 동시에 사원증에 이름과 사진, 그리고 직위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오오… 신기해.”
“와~!”
두 사람은 처음 마법을 봤을 때처럼 놀란 표정을 지으며 사원증을 바라봤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아르모니아가 말해줬다.
[이제 됐습니다. 이제부터 수호 님께서 다른 세계에 있더라도 두 사람의 행동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오!’
그거 좋네.
[다만 다른 세계에 있을 때는 전송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실시간 확인은 불가능하다는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디야.’
배속이 100배 차이가 난다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큰일은 안 일어나겠지만, 두 사람의 행방을 간혹 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다.
그렇게 민하연과 한봄은 NTL 코퍼레이션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우리 소속이 되어서는 웃으면서 사원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회귀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
민하연과 한봄은 내 말을 듣고 서로 바라보더니, 조용히 끄덕였다.
한여름은 회귀자다.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회귀가 이루어지는 스위치는 바로 한여름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민하연과 한봄이 아리송해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전에는 내가 회귀했는데, 왜 이번에는 봄이가 회귀하는 걸까?”
“그러게… 왜 바뀐 거지?”
두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강제로 두 사람의 신체 시간을 멈춘 뒤 회귀시키는 것이니 알 도리가 있나….
민하연과 한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추측하기 시작했다.
“혹시 한여름이랑 제일 연관이 있는 사람이 같이 휩쓸리는 건가?”
“그렇다면 언니가 제일 연관이 깊잖아? 내가 휩쓸릴 이유가 없는데….”
“아냐, 나는 그… 대기 마을에서 한여름이랑 완전 개판 나서 관계가 멀어졌다고 판단될 수도 있잖아.”
“그런가…? 그래도 뭔가 부족한데….”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주고 나누며 회귀에 휩쓸리는 이유를 추측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추측하다가 유력한 이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혹시… 수호랑 근처에 있을 때, 영향을 미치는 거 아닐까?”
“아! 그거 가능성 있어!”
전제 자체는 이상하지만, 두 사람이 회귀에 휩쓸리는 순간에는 언제나 내가 옆에 있었다.
그것도 회귀에 휩쓸릴 당시에 두 사람은 나와 완전히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의 관점에서 충분히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아저씨, 혹시 그런 능력 있어요?”
“설마요…. 회귀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능력인데.”
“끙….”
결국 민하연과 한봄은 적당한 선에서 회귀에 대해 추론을 하면서 몇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는 이야기를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결국 가설들만 잔뜩 나온 탓에 시원하게 해결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마무리 짓고 나서 저기 멀리 동굴 안에 누워있는 한여름을 보면서 말했다.
“일단 원래 마을로 돌아가자.”
민하연과 한봄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원래 우리 파티의 계획 자체는 다른 마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와 민하연, 한봄과 한여름은 외딴 숲으로 강제 전송된 상태였다.
일단 다른 마을로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길잡이 나침반은 이미 한번 들른 장소만 가리키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마을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출발하자.”
그렇게 나와 민하연과 한봄은… 한여름을 포댓자루에 둘둘 말아서 묶고는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가볼까.’
[슬슬 마비독이 풀릴 시간입니다. 베아트리체 씨를 출격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응? 아냐. 하지 마.’
[…?]
아르모니아는 내 대답에 의문을 가진 듯 보였고, 나는 그런 아르모니아를 향해서 말했다.
‘이번에는 깨우려고.’
***
쓰으윽! 쓰으윽!
한여름이 묶여 있는 포댓자루를 끌고 가는 도중에 민하연이 짜증이 나는 톤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씨… 짜증 나.”
“하아… 하아… 언니, 미안해.”
“아냐. 니가 왜 미안해.”
그리고 그녀의 짜증 나는 음색을 들을 때마다 굴욕감에 몸서리치는 존재가 있었다.
‘씨발… 씨발….’
민하연이 내뱉는 말은 한여름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거기다 이렇게 하찮게 끌려다니는 자기의 모습이 그의 수치심을 계속 끌어올렸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풀려! 씨발 마비독만 풀리면!’
한여름이 절박하게 독이 풀리길 간절히 기도하는 순간이었다.
“흐끄으…. 흐으! 끄에이응!”
한여름은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신음을 내뱉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의 신음과 동시에 민하연과 한봄이 놀란 소리를 내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어!? 뭐야? 깨어났어?”
“뭐, 뭐지… 왜 지금….”
그리고 두 여자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와 동시에 채팅창도 난리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NTR의 신께서 깨어나셨다.
└이제는 어떤 병신 짓을 선사해주실까 기대가 되는구만.
└딸딸이는 치지 마라. 남자 새끼 자위는 진짜 보기 시름.
한여름은 채팅창에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이마에 빨간 핏줄을 진하게 그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즈, 즈겨허리게쓰….”
정확히 들을 수 없는 단어였지만, 채널의 존재들이 저 말의 의미를 바로 해석하고는 또 조롱을 일삼기 시작했다.
└흐즈말르그!
└즈겨브리그라고!
└자위해버리겠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그 해석이 맞는 듯 ㅋㅋㅋㅋㅋㅋ
채널의 존재들은 더 이상 한여름에게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당하는 행위에 더 이상 감정 이입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당하는 모습을 즐길 뿐이었다.
‘죽여버릴 거야! 너희들도 전부 기억해놓고 죽여버릴 거라고!’
한여름이 몸을 꿈틀거리자 민하연과 한봄이 다가와서 포댓자루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댓자루를 풀자마자 두 여자는 기겁하며 후다닥 뒤로 뛰쳐나갔다.
“아윽! 냄새!”
“꺄아악! 싫어!”
한여름이 포댓자루를 나올 수 있었던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
..
한여름이 신음을 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세 평소와 같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더라도 문제는 있었다.
“하아… 일단 너 어디서 씻고 와라.”
“참아주려고 해도… 우웩….”
민하연과 한봄뿐만 아니라, 성수호도 그의 곁에 다가가기를 꺼리고 있었다.
“아 진짜 코 썩는 거 같네….”
“크윽….”
성수호는 길바닥에 누워있는 노숙자나 전염병 환자 취급을 하고 있었다.
‘씨발 새끼가….’
한여름은 몸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 성수호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웠었다.
하지만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십여 분 정도가 소요됐었고, 시간이 흐른 덕분에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진정할 수 있었다.
‘일단… 저 새끼가 가지고 있는 보석… 그걸 되찾아야 해!’
한여름은 세 사람에게 거렁뱅이 취급을 받으며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입을 아꼈다.
무엇보다 한여름도 지금 상황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라고 해도 평생 익숙해질 수 없는 냄새라는 것을….
‘시발! 일단 씻어야겠어….’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씻기 위해 냇가를 찾으려는 순간이었다.
“야, 이거 받아.”
“흐억!”
툭.
성수호가 저 멀리서 병을 던져줬고, 한여름은 날아오는 병을 받지 못해서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다행히 흙더미에 떨어져서 병이 깨지는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거 세정액이야. 그냥 귀찮으니까 그걸로 씻어라.”
“수호야, 괜찮아?”
“아저씨, 저거 마나 많이 든다고 하지 않았어요?”
민하연과 한봄은 한여름의 추레한 몰골보다 성수호의 마나를 더 걱정해주고 있었다.
‘씨발! 그깟 마나 좀 썼다고 이런 대접을….’
한여름은 입 밖으로 한 소리를 내뱉고 싶었지만,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는 바로 세정액을 몸에 뿌려서 씻어냈다.
속으로 욕을 했지만, 세정액의 효과는 확실했다.
‘후우… 개운하네.’
증오는 증오이고, 상쾌함은 상쾌함이었다.
세정액을 뿌린 것만으로도 목욕탕에서 한 시간 동안 목욕을 했을 때의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개운함과 비례해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좆같은 연금술.’
한여름은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는 노비스라는 직업 같지도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누구는 연금술이랑 궁술, 심지어 마법도 사용하고 있었다.
불합리의 끝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남자들에게 평생 느끼게 해줬던 자격지심을 모조리 몰아서 받아내는 느낌이었다.
한여름이 불쾌한 이물질을 모두 씻어낸 뒤에야 민하연과 한봄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같이 있을 수 있지.”
“아까 진짜 뇌가 썩는 줄 알았어.”
“크으윽!”
민하연과 한봄의 굴욕적인 언사에도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수호의 말은 참고 넘길 수 없었다.
“니 냄새 때문에 몬스터들이 계속 달려들어서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이 개새끼가!”
“야! 한여름!”
“으윽! 왜, 왜 그래?”
민하연은 성수호에게 달려들려는 한여름을 막으며 소리쳤다.
“너 지금 도와준 애한테 그게 할 소리야!”
“도, 도와줘!? 저 새끼가? 나를 웃기지 마!”
“하아… 진짜 너 니가 무슨 꼴이었는지 전혀 모르지?”
민하연은 한여름을 다그치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해주며 그를 다그쳤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성수호가 한 행위는 한여름에게 도움 따위가 아니었다.
지옥과 같았다.
‘씨발… 일단 보석을 받기 전에 얌전히 있어야 해. 그때까지는… 씨발!’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했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좋아. 그럼 다시 출발하자!”
그렇게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고, 네 사람을 다시 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
..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이 되었다.
마침 마주한 안전지대에 자리를 잡은 네 사람은 슬슬 식사하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하지만 한여름에게 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민하연과 한봄이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한여름은 성수호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야, 따라와. 할 말 있어.”
“꺼져. 난 없어.”
“이 씨발….”
눈길조차 주지 않고 대화를 거절하는 성수호에게 칼침을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히려 자기가 죽을 수 있는 위험성과 더불어서 안전지대이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한여름은 최대한 얌전한 톤으로 변경한 뒤 말했다.
“야… 진짜 잠깐이면 되니까. 얘기 좀 하자고.”
“얼마?”
“…? 얼마냐니?”
“너랑 얘기하려면 돈을 좀 받아야겠는데?”
“씨발….”
분노의 욕설이 아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한여름은 어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중얼거렸다.
“야…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지금까지 너한테 해준 걸 생각하면 같이 숨을 쉬어주는 것만으로도 포인트를 받아야겠는데?”
“씨이…발….”
으드득!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그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자기 모습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지지부진하게 끌 수도 없었다.
“야… 내가 진짜 포인트가… 없어. 그냥 얘기만….”
“좋아. 그럼 외상이라도 달아놔. 싸게 10분당 천 포인트 해줄게.”
“하…하…하….”
한여름의 허탈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성수호는 민하연과 한봄에게 상황을 말했다.
두 여자는 한여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성수호를 걱정할 뿐이었다.
성수호는 두 여자를 안심시킨 뒤 한여름과 같이 장소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하연과 한봄이 들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벌린 뒤에 한여름이 성수호에게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야… 너 레드 소환사들 쓸어버릴 때 얻었던 보석 있지?”
“응? 보석? 그게 뭐야?”
“모르는 척하지 마. 나 마비독 당하는 동안 네가 한 행동들 전부 보고 들었으니까.
“….”
성수호는 그때 서야 한여름의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좋아. 어제 하연이랑 한봄 몰래 했던 말을 협박 삼아서 말하면 넘겨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성수호의 입에서는 예기치 못한 말이 나왔다.
“그런데?”
“뭐? 그, 그런데? 어젯밤에 니가 몰래 했던 말 내가 하연이랑 봄이한테 한다?”
“하던가?”
“…미친.”
한여름은 성수호가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해서 오히려 자기가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죄를 짓고 있는 건 한여름, 오히려 성수호는 그런 한여름을 질책하는 분위기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야… 보석만 줘. 그것만 주면 내가 두 사람한테 말하지 않을게. 아니! 내가 나중에 ”
“오호….”
성수호는 그제야 원하는 반응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만약 이 녀석을 죽여도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은 뺏을 수 없어. 일단 잘 구슬려서….’
그렇게 계산하며 성수호의 비위를 맞춰주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뭘 해줄 건데?”
“아씨… 나중에 내가 포인트 존나 많이 줄게! 계약서라도 쓸까? 백만 포인트 줄게! 어때?”
“겨우 백만?”
“이런 씨발!”
한여름은 일단 백지 수표를 뿌리기로 결심했다.
‘백만이든 이백만이든 천만이든 좋아. 어차피 회귀하면 없던 일이야! 일단 보석만 받으면….’
한여름은 입장상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백지 수표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으는 포인트 전부 다 너 줄게! 내가 줄 수 있는 거 다 줄게! 나 드랍운 좋은 거 알지? 내가 나오는 아이템도 다 줄게!”
“오? 진짜?”
“어때?”
반응이 나왔다.
‘좋아! 물어라! 물으라고!’
한여름이 그렇게 속으로 성수호가 자신의 제안을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순간이었다.
성수호가 내뱉은 말을 듣자마자 한여름의 표정을 얼음장이 되어버렸다.
“나는 포인트나 아이템은 필요 없고, 부려 먹을 놈이 필요하거든? 전처럼 또 내 시다바리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