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6 316화 위그드라실 (3-25)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던 거 같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다.
‘뭔 개소리야!’
다행히 그런 한여름의 상식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들이 있었다.
└뭔 소리야?
└내가 잘못 들은 건가?
└ㅋㅋㅋ허세 부리는 건가 보네.
└나는 언니랑 다르게 첫눈에 반한 거예욧! 오빠는 내 꺼예욧! 이러는 거 아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ㅋㅋㅋㅋㅋ 그놈 얼굴 보고 바로 첫눈에 반했다고?
한여름이 어이없어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씨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아무리 허세라고 해도 한봄, 니가 왜 그런 녀석을 한눈에 좋아했다고 말하는 건데!?’
한여름은 한봄이 어디까지나 민하연 앞에서 여자들의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수호를 한눈에 좋아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한봄이 남자 혐오가 있었어도 평생을 잘난 남자들에게 대쉬를 받으며 살아온 여자였었다.
그런데 평범한 남자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남자 새끼들 기싸움도 유치하지만, 여자들 기싸움도 만만치 않게 유치하네 ㅋㅋㅋㅋ
그 말 그대로였다.
‘멍청한 년…. 그런 새끼 첫눈에 반했다고 살랑거리는 게 인생에 뭐가 좋다고….’
한여름은 더 이상 괜찮은 정보 따위는 알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집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여름의 존재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하긴… 사실 나도 처음에 뭔가 꽉 꽂히는 게 있더라.”
“그치?”
한여름의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대화 소리가 그의 잠을 확 달아나게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민하연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헐,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말이 돼?
└ㅋㅋㅋㅋ 몸에서 무슨 발정제라도 풍기나?
‘씨발! 민하연! 너까지 왜 그러는 건데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 대화를 이해하면 그게 정상일 리가 없었다.
성수호는 분명 평범한 외형을 지닌 인물이었다.
분명 실력이 출중하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필요할 때마다 굉장한 능력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순간마다 저렇게 활약했다면 여자들이 반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민하연이나 한봄이라면 이해하는 걸 거부하고 싶을지언정 본능이 알아서 수긍시켜주었다.
하지만 첫눈?
아직 능력은 고사하고 무슨 성격인지도 모르는 평범한 외형의 남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아니, 한여름의 기준에서 있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씨발 새끼! 분명 뭔가 있을 거야! 분명 능력 중에 이상한 능력이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 속으로 열불을 태우는 순간이었다.
“봄아, 내가 조언 하나 해줄까?”
“응? 어떤 조언?”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머뭇거리지 마. 바로 잡아야 해.”
민하연의 말에 한여름의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뭐야? 둘이 싸우는 거 아님?
└ㅋㅋㅋㅋ민하연이 포기하려는 건가 봐.
└휴우… 그럼 이제 민하연 다시 한여름한테 오는 건가?
한여름은 채널의 존재들의 채팅을 보자 한 줄기의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마, 만약에 하연이만 일단 떨어뜨려 놓으면… 좋아! 하연이만 일단 되돌려 놓으면 한봄은… 씨발! 그래도 존나 싫은데….’
민하연을 구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생각이 있었지만, 그게 동생을 넘겨주는 것이라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소유했던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넘겨주는 것에 전혀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던 한여름이었다.
하지만 여동생, 그것도 친동생을 넘기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하, 하지만… 하, 하연이만 일단 되돌려 놓으면… 그 다음에 하연이한테 어떻게든 용서를 구하면….’
민하연이 성수호에게 처음을 뺏긴 건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여름에게 민하연은 모든 것이었다.
결혼할 때까지 손끝 하나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유일한 여자였다.
민하연 말고도 몇몇 여자들도 혼전순결을 앞세워서 살을 섞기를 거부했지만, 그가 유혹하면 금세 빠져들어서 다리를 벌리곤 했었다.
하지만 민하연은 달랐다.
그녀만큼은 최후에 최후까지 보석처럼 간직하고 싶어 했었다.
그녀의 속살을 보기 위해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기다려왔었다.
그동안 다른 여자를 따먹으며 그 욕구를 참아냈지만, 지금까지 만난 모든 여자와 비교해도 민하연에게 향하는 욕구를 해소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여자를 탐했던 것이었다.
한여름에게 민하연은 전부였다.
‘일단… 회귀가 있어. 기분은 더럽지만, 하연이가 헤어질 수 있는 상황을 알아냈다는 게 중요해!’
하지만 한여름이 희망 회로를 돌리는 사이에 채팅은 그의 희망 회로에 저항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이어지는 건 별개의 상황 아닌가? 그동안 너무 찌질하게 행동했음
└ㄹㅇ 아마 그냥 한여름이랑도 헤어지지 않겠음?
└시발 ㅋㅋㅋ 그러면 한여름 패배 자위 같은 거 하는 거 아냐? ㅋㅋㅋㅋㅋㅋ
└여름아 그럴 거면 그냥 강간해. 나는 남자 새끼 패배 자위 따위는 절대 보고 싶지 않아.
한여름은 채팅을 보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띄워져 있는 채팅창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새끼들이 자기 일 아니라고 계속 지껄이는 거냐!’
하지만 한여름의 욕설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일단 하연이만 떨어뜨려 놓으면 그걸로 만족하자. 나중에 회귀하다 보면 더 좋은 방법이….’
그렇게 장막 속에 감춰져 있던 희망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여름이 봤던 장막 속의 빛은 희망의 빛이 아닌, 절망을 암시하는 핵폭탄이었다.
“내가 유도해줄 테니까. 수호랑 섹스해봐.”
민하연의 말에 채팅창은 갈고리 파티로 붐비기 시작했다.
└?????
└????????
└???????????
└뭐야? 송출 문제 생겼나? 사운드랑 채팅창이 병신이 됐네. 씨발 요정 부르기 귀찮은데….
그리고 그건 한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그렇지?’
하지만 한여름의 현실 회피를 한봄의 대답으로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시켜줬다.
“어, 언니… 하지만 나 이런 거 무서워서….”
“처음만 무섭다니까? 나도 강간당할 때나 무서웠지. 막상 하고 나니까 진짜 좋더라!”
“그, 그래?”
도저히 상큼하고 발랄한 톤으로 나눌 대사가 아니었다.
└송출이 문제가 아니라, 내 뇌가 문제인가 보다ㅋㅋㅋㅋㅋ
└죄송한데, 뇌는 어떻게 고치죠?
└하앍, 하앍 일단 한 발 빼면 고쳐질 거야!
└미친놈인가 지금 상황에서 발기가 됨?
└진정한 성욕은 소유에서 오지 않습니다. 무소유에서 옵니다. 자, 다들 고환 안에 담긴 것들을 무소유할 준비를 하시죠.
└미친놈아 ㅋㅋㅋㅋ
한여름의 머리 회로가 전혀 돌아가지 않는 와중에도 채팅과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럼… 언니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수호야! 들어와!”
민하연의 외침에 밖에서 정리하고 있던 성수호가 동굴로 들어왔다.
“이야기 다 끝났어?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너 솔직하게 말해봐. 봄이 어떻게 생각해?”
“…뭐?”
오히려 성수호가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성수호는 말을 뭉개면서 대충 둘러대기 시작했다.
“음… 좋은 분이지?”
“….”
민하연의 침묵에 좀 더 변명하기 시작했다.
“동료 같은 분? 친구…는 좀 오버인가? 하하하….”
“….”
그렇게 성수호의 변명에도 민하연은 특별한 반응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성수호까지 침묵하게 되니, 민하연 쪽에서 먼저 입을 열어서 말했다.
“던전 탐색할 때… 두 사람이 밤에 뭔 짓 했는지 이미 알고 있어.”
“아….”
“나랑 따로 수색할 때, 텐트 안에서 같이 잤다며?”
“그… 그게….”
저 사실은 민하연이 혼자 알아낸 정보가 아니었다.
바로 한여름이 민하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두 사람의 행위를 일러바치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뭐야? 저번에 알려주니까 엄청나게 화내더니, 먼저 저 얘기를 꺼낸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해할 수 없었다.
한봄에게 섹스하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두 사람의 치부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성수호의 난감한 기색은 한여름뿐만 아니라, 한여름의 채널에 들어와 있는 존재들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뭐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겨?
└설마 함정 파놓는 반전?
└그런데 그 함정이 사실 성수호를 가로채려는 반전의 반전?
└사실은 성수호와 한봄을 이어주려는 반전의 반전의 반전?
└그만해 미친놈들아 ㅋㅋㅋㅋ
성수호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하, 하연아! 그게! 무슨 이상한 짓을 한 게 아니라….”
“…같이 잔 게 이상한 게 아니야?”
“그, 그게, 그 이상 이상한 짓을 한 게 아니라….”
“…좋아.”
“응?”
한여름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민하연은 갑자기 뭔가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의 정체는 채널의 존재들이 말해줘서 알 수 있었다.
└무슨 소리지?
└텐트 치는 거 같은데?
정말 텐트를 치는 소리였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리가 수그러들었고, 민하연은 한봄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봄아, 일단 텐트에 들어가서 기다려.”
“응….”
한봄은 조심스럽게 대답한 뒤 민하연이 만든 텐트로 들어가는 듯했다.
그렇게 한봄이 텐트에 들어가고 나서 민하연이 성수호를 끌고 한여름 쪽으로 데리고 온 뒤 말하기 시작했다.
“봄이가 너 좋아하는 거 너도 알고 있지?”
“흐으응? 그, 글쎄…?”
“내가 널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지?”
“그… 그렇지?”
성수호와 민하연의 대화 소리가 또렷하게 한여름의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야…. 니가 다른 여자한테 눈 돌려도 괜찮아.”
“…뭐?”
한여름은 민하연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쐐기가 박혀서 뇌출혈이 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두통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나한테 했던 것처럼 밑밥 까는 거야? 왜!?’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민하연이 바람을 피우는 것에 극도로 증오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한여름이었다.
그리고 민하연이 사귀고 나서 몸 관계를 거부하며 했던 말이 저 대사와 비슷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사가 비슷하다고 해서 상황까지 비슷한 건 아니었다.
“다른 여자한테 눈 돌려도 돼. 그런데 하나만 약속해.”
“어떤 거?”
민하연의 말도 안 되는 대사가 한여름의 귓속에 파고들어 왔다.
“섹프를 만들던 적당히 즐기고 넘길 여자를 만들든 상관없어.”
“….”
“마지막은 무조건… 나여야 해. 약속해줄 수 있어?”
한여름뿐만 아니라, 그의 채널에 있는 존재들도 두 사람의 대화에 침묵하기 시작했다.
└….
‘….’
분명 무슨 말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정신에 오류가 발생한 것처럼 한여름과 채널의 존재들이 침묵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성수호의 대답이 나왔다.
“응… 약속할게.”
성수호의 대답을 들은 민하연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들어가… 그리고… 봄이한테는 나보다 더 좋은 경험시켜줘.”
“…응.”
성수호는 그 대답을 남기고 텐트로 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텐트 안에서 한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어저씨? 언니가 뭐래요?)
(한봄 씨.)
(아, 아저… 흐읍!)
그 후 텐트 안에서 두 사람의 달달한 키스 소리가 점차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민하연은 텐트 안에서 들려오는 키스 소리를 무시하고는 한여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여름아… 들려?”
한여름은 유황불을 삼킨 것마냥 속으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민하연!! 네가 막아야지! 너 바람피우는 거 싫어하잖아!! 막아! 막으라고!!’
한여름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결국 끝끝내 민하연의 귀속에 닿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민하연은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싫어… 나도 저렇게 수호가 다른 여자랑 키스하는 소리 들으니까 진짜 가슴이 찢어질 거 같아.”
그것도 상대는 그저 평범한 여자가 아닌 민하연이 가족처럼 여겼던 한봄이었다.
그런 친동생 같은 아이를 다른 남자에게 넘겨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한여름의 뒤통수 쪽으로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그런데… 가슴이 찢어질 거 같은데….”
민하연의 요염한 목소리가 한여름의 귓속을 간지럽혔고.
‘뭐, 뭐야!’
그의 뒤통수에서 점액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씨발 말이 안 되는데 ㅋㅋㅋㅋㅋ
└무소유의 시간이다!!!
찌걱… 찌걱… 찌걱….
“하아… 하아… 성수호… 나쁜 새끼… 하으읏!”
민하연의 자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