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3 313화 위그드라실 (3-22)
“언니? 회귀?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조금 전까지 심각한 분위기로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민하연도 회귀라는 단어에 난감한 기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죽음을 앞둔 탓에 민하연도 정신이 없었고, 그런 부분이 그녀의 이성을 잠시 상실시킨 것이었다.
이성이 잠시 희미해진 탓에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던 민하연은 실수로 회귀라는 단어를 입에 올려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좋아!’
내가 이끌어온 상황이었다.
원래 계획은 한봄의 입에서 실수로 나오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민하연이 환각제를 먹는 바람에 급하게 계획을 수정한 것이었다.
나는 당황한 민하연을 보면서 말했다.
“하연아… 이제 말하자.”
“하, 하지만….”
“나는 니가 걱정하는 것처럼 한봄 씨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같지가 않아. 그리고 이 뒤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미리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아.”
“….”
민하연은 내 말에도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회귀라는 사실은 최대한 말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하지 않을 수 있으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민하연은 지금까지 한봄을 한여름의 편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결정 내리기 어려워 보였다.
“하연아, 나를 믿고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한봄 씨를 믿어.”
“…알았어.”
그렇게 고민하던 민하연은 내 눈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봄은 묘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나와 민하연을 보더니, 물었다.
“두, 둘이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봄아… 할 말 있어.”
민하연은 내 품에서 빠져나온 뒤에 한봄을 향해서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정말 비밀이어야 해. 특히 한여름한테….”
“어….”
“봄아… 나 너 믿어도 될까?”
민하연의 표정에 한봄은 주먹을 꽉 쥐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누구한테도 절대 말하지 않을게.”
민하연은 한봄의 대답을 듣고는 폐를 터트릴 듯이 크게 숨을 들이 마신 뒤 내쉬며 말했다.
“내 말이 정말 황당하겠지만… 네 오빠… 그러니까, 한여름이 회귀자야.”
“…허?”
“그리고… 나는 한여름이 회귀할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같이 회귀하고 있어.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
“어, 언니….”
한봄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자 민하연이 고개를 절레거리며 말했다.
“나도 알아 미친 소리라는 거… 하지만… 진짜로 회귀가….”
민하연이 외계인이나 귀신을 봤다는 것을 해명하는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한봄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입을 벌리며 말했다.
“어, 언니도… 회귀?”
“있어. …응?”
“설마… 언니도 경험한 거야?”
“…너도?”
…야, 너도?
..
..
한봄은 민하연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남김없이 했다.
“그럼 봄이 너도….”
“나는 이걸로 세 번 째야.”
한봄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전부 말하기 시작했다.
한두 가지 정도는 숨길 줄 알았는데, 상대가 민하연이라 그런지 술술 불어서 모든 것을 말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과정에서 나와 있었던 일들도 모조리 설명했다.
“그럼… 그때 수호랑….”
“언니… 미안해.”
“아냐. 오히려 다 말해줘서 고마워.”
민하연은 모든 사실을 말한 한봄을 끌어안으며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힘들었지? 그동안 내가 계속 바보같이 화만 내서….”
“아냐! 오히려 내가 언니한테 나쁜 짓을 한 거잖아….”
하지만 두 사람의 가족애가 넘치는 분위기는 여기까지였다.
민하연은 한봄은 품에서 떨어뜨린 뒤 눈에 힘을 주며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수호부터 해결하자.”
“하, 하지만… 말했다시피 전에도 결국 치료하지 못했어.”
“윽….”
민하연은 내 팔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나와 한봄이 둘 다 불가능하다가 판단하니, 그녀로서도 앞길이 캄캄해졌는지 고민보다는 절망하는 눈빛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동안 가지고 있던 특유의 침착성을 발휘하며 계속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한여름! 걔가 이 아이템 줬잖아. 그럼 혹시 치료제도 있지 않을까?”
“아! 그, 그런데….”
“봄아! 한여름 어디 있어!?”
민하연의 외침에 한봄은 난감한 기색을 표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까 치료하자마자 그 자리에 놓고 바로 언니랑 아저씨 쫓아왔어.”
“봄아, 그 장소 어딘지 알겠어?”
“여기서 멀지 않아. 동굴 나가자마자 왼쪽으로 3~4분 가다 보면 있을 거야.”
민하연은 한봄의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내가 가서 한여름 데리고 올게. 기다려.”
“안돼! 지금 밖에 레드 소환사들 돌아다니고 있어!”
나는 피를 흘리는 팔을 부여잡고 바로 민하연을 막아섰다.
“갈 거면 다 같이 가야 해.”
“너 지금 그 상처로….”
“괜찮아. 아까 한봄 씨도 말했지만, 전에도 저녁까지 버텼다고 말했잖아. 아직 낮이고, 지금 출혈량도 엄청나지는 않아.”
아까 민하연이 내게 단도를 찌를 당시에 얼굴을 겨냥했었고, 내가 팔로 막은 덕분에 빗겨나가서 그런지 상처 자체는 크게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출혈 자체는 치료할 수 없어서 위험하지만, 혼자 이 숲을 돌아다니는 건 더욱더 위험하다는 것을 말해줬다.
“그, 그럼… 일단 출혈이라도 막아보자.”
민하연은 바로 인벤토리에서 지혈을 할 수 있을 만한 천을 꺼내서 내 팔에 돌돌 말아서 묶기 시작했다.
일단 민하연이 묶어준 천 덕분에 지혈 효과는 있었지만, 출혈 자체는 멈추지 않았다.
민하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내 팔을 바라보고는 다부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자!”
민하연은 그렇게 말하며 내 왼팔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오른팔을 한봄이 호다닥 와서 부축하기 시작했다.
..
..
“부, 분명 여기 맞을 텐데….”
“설마 어디로 갔나?”
민하연과 한봄은 처음 소환된 장소에 도착해서는 주위를 조용히 둘러보며 한여름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여름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여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잘 데리고 갔겠지?’
[일단 저번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잘 해냈으리라 추측됩니다.]
회귀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한여름이 살아있다는 것이고,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붉은 초승달이 한여름을 잘 데리고 갔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연락망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보니 직접 만나기 전에는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한번 명령한 건 잘 듣는 녀석들인 만큼 믿는 게 중요했다.
‘자, 그럼… 이제 치료 방법인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민하연이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없어….”
“이 새끼 저번 회차에 납치당한 적 있어. 아마 그런 거 아닐까!?”
“그, 그럼 지금 당장은….”
민하연은 그나마 저주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한여름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에 또 절망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당장 치료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일단 민하연과 한봄의 회귀 사실을 서로 알게 되었다.
거기다 나름 서로 힘든 점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 오히려 서로 의지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저주를 푸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일단 두 사람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저주를 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싱겁게 저주를 풀어버리면 힘겹게 쌓아온 지금 상황을 무너뜨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고난은 관계를 더욱더 끈끈하게 이어주는 법이다.
나는 울상을 짓고 있는 민하연과 한봄을 보면서 말했다.
“혹시….”
“…?”
내 말을 듣자마자 두 사람은 내게 고개를 돌리고는 내 다음 말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말했다.
“아까 그 레드 소환사 중에 위층에서 온 녀석들도 있지 않을까?”
“아마 대부분 위층에서 오지 않았을까요? 여관 뺏던 녀석들처럼….”
“그럼… 그 녀석 중에 이 저주 푸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녀석도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은 내 말을 듣고 서로를 잠시 바라보며 눈빛 교환을 하더니, 나를 보며 외쳤다.
““잡자!””
***
한여름은 동굴 바닥에 누운 상태로 속으로 욕설을 날리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 같은 편이어도 똑같잖아!’
그는 전 회차에서 누워있던 동굴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이 마비약을 흡입하고는 송장처럼 누워있었다.
아까까지 한여름은 한봄에게 치료를 받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한여름은 설마하니 민하연이 자기에게 화살을 날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환각제가 정확히 언제 약효를 발휘하는지 몰랐던 한여름은 바로 약효를 보인 민하연을 보면서 얼어붙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민하연이 뒤를 돌아서 자기에게 화살을 쏜 것이었다.
거기다 더 굴욕적인 건 민하연이 쓰러진 한여름의 얼굴을 밟고 넘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씨발… 이빨 깨진 거 같은데…. 이것도 회복으로 치료되나?’
민하연이 한여름의 얼굴을 밟았을 때, 그의 송곳니가 부러져 버렸다.
하지만 이빨 생각도 잠시였다.
다시 지금 상황에 대해서 분노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분명 나랑 계약했잖아! 왜 또 이런 취급을 하는 건데!?’
잠시 쉬던 사이에 한여름은 레드 소환사들에게 포위되었고, 대화를 주고받을 사이도 없이 바로 공격을 받아서 기절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기절한 사이에 또 저번과 같은 동굴에 온 것이었다.
마비독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그렇게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누군가가 다가와서 한여름의 동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니 깬 거 같습니다.”
“…좋아.”
한여름의 기억 속에 담긴 목소리였다.
한봄의 추태를 보여준 남자.
그와 동시에 성수호를 죽여주겠다고 다가왔던 남자.
각기 다른 회차에서 봤던 존재는 분명 같은 목소리를 내는 남자였다.
한여름은 목소리의 정체를 확신하며 눈빛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새끼가!! 계약했잖아! 빨리 나를 풀어줘!’
남자는 한여름의 눈빛을 보더니,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거래를 한 입장에서 불만스럽겠지만, 참아라. 여기는 우리 아지트라서 너 같은 녀석을 그냥 아무런 조치도 없이 들일 수는 없다.”
“….”
“음… 일단 들리는 걸로 판단하고 이야기를 진행하지.”
보리스는 인벤토리에서 몇 개의 푸른 사파이어를 꺼내면서 바닥에 놓기 시작했다.
어림잡아서 대략 20개의 보석이었다.
‘이건!’
대충 봐도 진짜 보석이 아니라, 촬영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네가 원하던 그 성수호라는 녀석이 마을에 있는 동안 우리가 감시할 때 쓰던 녹화 아이템이다.”
보석 하나당 1시간 정도 기록이 담겨 있다고 설명해줬다.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숙소 안에 있는 일까지는 힘들더군. 하지만 이거라면 충분히 계약은 이행한 거로 생각하겠다.”
보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한여름 앞에서 계약서를 꺼낸 뒤에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흔들리던 계약서가 붉은빛을 받더니, 마법사들이 종이를 태우듯 순식간에 불에 타더니 재가 되어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럼 계약은 마무리됐다.”
“….”
한여름은 비록 눈빛뿐이었지만, 눈앞에 흩뿌려져 있는 보석을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일단 하나라도 정보를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빨리 마비가 풀려야….’
한여름은 처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내용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퍼져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동굴 밖에서 소란스러운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끄아악!”
“크억!”
지금까지 냉정함을 잘 유지하던 보리스가 갑자기 울려 퍼지는 비명에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이야!”
“조, 조장님! 지금 침입자가! 크어억!”
콰당!
보고하기 위해서 동굴로 달려오던 레드 소환사 한 명이 다리에 화살을 맞고 고꾸라졌다.
“이런 젠장!”
보리스는 기습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인벤토리에서 일본도를 꺼내서 동굴 입구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입구 쪽에는 햇빛을 등지고 있는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는 바로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서 순식간에 쏘아냈다.
쏴아아악!
“흥!”
보리스는 화살의 궤도를 확인한 뒤 막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이 정도 속도의 화살쯤은! 뭐, 뭐야!”
화살에 방향에 맞춰서 검을 휘둘렀지만, 갑자기 노란 빛이 생기더니 화살의 방향이 바뀌며 그의 하체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콰직!
“끄아악!”
그는 화살을 피할 새도 없이 결국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는 한여름의 눈앞에 쓰러져서 고통의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크아악!”
한여름은 덜덜 떨리는 눈빛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보리스를 보며 동시에 공포를 전달받는 느낌을 받았다.
‘뭔데! 뭐냐고!! 씨발!!’
한여름은 눈앞에 고통에 몸부림치는 보리스의 모습과 뒤에서 점차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지금까지 맛봤던 최고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더니, 급기야 그의 뒤통수에 있는 머리카락을 밟는 느낌이 들면서 소리가 멈췄다.
‘끄으읏! 씨발… 머리카락 빠지겠어!’
그냥 한두 가닥이 아니라, 아예 뒤통수에 난 머리카락을 전부 밟은 것이었다.
하지만 통증도 잠시, 금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깃들면서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저 영상만 보면 돼! 죽이지 말라고! 누군지 모르지만….’
그렇게 비는 순간이었다.
한여름의 뒤통수에서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영상의 존재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뭐야? 한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