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2 312화 위그드라실 (3-21)
“———!!”
민하연은 고막으로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밀려 들어오자 눈이 강제로 떠졌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두통과 현기증이 동시에 일어났지만, 민하연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그나마 보이는 건 아치 형태의 커다란 빛을 담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민하연은 그 빛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굴? 여긴….’
빛이 자신을 감싸는 게 아닌, 어두운 공간에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동굴이라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그녀의 고막에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떡해… 아저씨… 흐으윽….”
여자의 울음소리였다.
민하연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상태에서도 목소리의 주인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통 때문인지 확신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낀 민하연은 좀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목소리의 출처를 향해 고개를 돌려서 울음소리를 내는 여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대략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봄은 누군가의 팔을 붙잡고 울부짖고 있었다.
‘봄이? 옆에는….’
어두운 동굴의 환경에서 한봄에게 가려진 덕분에 상대방의 외형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봄의 대사로 상대방이 누군지 바로 추측할 수 있었다.
“아저씨…. 흐으윽.”
‘…수호구나.’
민하연은 성수호의 팔에 붙들고 울부짖는 한봄의 모습을 보면서 두통보다 서글픔이 더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봄이가 정말 힘들긴 했나 보네.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남자한테 저렇게 푹 빠진 걸 보면….’
민하연에게 한봄은 웬만한 친척들조차도 근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내온 인물이었다.
지금 나이를 기준으로 시간만 따지면 부모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오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낸 인물이었다.
그리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봄만큼은 절대 남자를 대충 보고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민하연의 시점에서 한봄은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였었다.
‘봄이한테는 수호가 정말 구원자 같았겠지? 그리고 오히려 내가 방해꾼이었을 테고….’
민하연은 오히려 한봄의 모습을 보니,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민하연은 분명 성수호를 사랑하지만, 한봄에 대한 가족애를 느끼며 놓아줘야 한다고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원함을 느끼는 동시에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싫어… 이대로 또 이런 식은 싫어!”
“…?”
뭐가 저렇게 싫다는 걸까?
민하연은 속으로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을 때, 마침 한봄이 내뱉은 대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죽지 마… 아저씨.”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민하연은 동굴을 무너뜨릴 듯이 소리를 지르며 내 쪽으로 달려왔다.
‘…엉망진창이다.’
진짜 이 말이야말로 지금 상황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한봄은 울며불며 내 팔에 매달렸고, 이제는 민하연까지 합세하게 생겼으니….
[계획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것 같습니다.]
‘그러게.’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이 엉망진창의 상황이 내가 나름 바라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던전을 빠져나오기 전, 민하연과 한여름이 다투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미친… 설마 하연이한테 약 먹인 건가?)
한여름이 민하연에게 어떻게 약을 먹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질 창에 떠 있는 상태로 민하연이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아식별 불가 환각제(-15분 45초)]
한봄에게 먹였던 것과 같은 존재였다.
(한여름… 진짜 갈 데까지 갔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대로 던전을 진행했고, 나와 민하연, 한봄, 그리고 한여름은 통로를 지나는 것과 동시에 외딴 숲으로 순간이동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하연의 환각 증세.
처음에 정말 기겁했던 것이 민하연이 환각 증세를 보이자마자 한봄에게 화살을 날렸다는 것이다.
‘내가 잠시 한눈팔았으면 진짜 큰일이었겠어.’
다행히 내가 바로 옆에서 주시하고 있어서 민하연의 화살을 막을 수 있었고, 민하연은 내 모습에 당황하더니 뒤에 있던 한여름에게 화살을 쏘고는 도주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아파아아앗!)
다행히 민하연은 한여름을 죽이지 않았고, 어깨에 화살을 맞춘 뒤에 그를 뛰어 넘어갔다.
그렇게 민하연은 도망갔고, 한봄은 몸이 얼어붙은 상태로 당황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끄아아악! 사, 살려줘!!!)
(한봄 씨! 일단 한여름 치료하고 오세요!)
(아! 네!)
나는 그런 한봄에게 한여름을 치료하고 오라고 외친 뒤 바로 민하연을 쫓아갔다.
아무리 붉은 초승달 집단이 내 수중에 있다고 해도 만약에라도 일이 틀어지면 민하연이 크게 다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아… 한여름… 끝까지 날 귀찮게 만드네.’
저주받은 단도.
설마 민하연이 단도로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격한다면 화살로 공격하리라 생각했지, 민하연이 단도를 쓸 것이라는 생각을 못 했었다.
‘일단 봄이한테 찔릴 때보다는 약하게 찔려서 다행이다.’
[일단 수혈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은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주의하셔야 합니다.]
‘예썰~’
통신으로 발랄하게 대답했지만, 표정만큼은 절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단도에 찔린 타이밍에 마친 붉은 초승달이 나타났고, 나는 급하게 민하연을 잠재운 뒤에 그 녀석들에게 몇 가지 명령한 뒤에 자리를 이탈하게 했다.
그리고 한봄이 나타났다.
한봄은 한여름을 대충 치료한 뒤에 바로 나를 쫓아왔고,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민하연의 상태를 보며 걱정하는 것과 동시에 내 팔을 보며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 설마! 아, 안돼!!”
이미 한번 경험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치료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출혈 상태로 민하연과 한봄을 데리고 바로 근처 동굴을 찾아서 숨었다.
거기서 한봄은 한참을 울며불며 내게 매달렸고, 그 모습을 보던 민하연이 어느 순간 깨서 내게 달려온 것이었다.
민하연의 질문에 한봄은 눈물을 흘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나는 나대로 힘이 없는 상태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하연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다그치기 시작했다.
“봄아!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 그게….”
한봄은 민하연에게 내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줬다.
민하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외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 포션! 포션 써보자!”
민하연은 허겁지겁 인벤토리에 있는 모든 포션을 꺼내서 내 어깨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왜… 왜 안 되는 건데!”
하지만 출혈이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한봄은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하연을 말리지 못했다.
그녀의 절박함을 본인도 충분히 느껴봤을 테니까.
민하연은 모든 포션을 붓고 나서도 전혀 치료되지 않는 상처를 보며 입술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이거 누가 그런 거야!? 응? 말해봐! 몬스터야? 아니면 레드 소환사?”
“그, 그게….”
“봄아! 빨리 말해봐! 이렇게 한 녀석을 찾으면 어쩌면 치료를….”
“어, 언니… 야.”
“…뭐?”
민하연은 한봄의 말을 잘 못 이해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봄아. 지금 신경전 벌일 상황이 아냐! 빨리 범인을….”
“하연아.”
나는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 끼며 말했다.
“후우… 아까 나한테 찔렀던 검 무슨 아이템이야?”
“뭐? 찔러? 내가? 무슨 소리야?”
“아까 니가 나한테 갑자기 검으로 찔렀잖아.”
“무슨… 어?”
민하연은 그제야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손으로 입술을 가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는 가운데 단도로 찔렀던 레드 소환사를….
분명 일면식이 없던 레드 소환사였고, 숨어 있다가 그 레드 소환사가 옆을 지나갈 때 그의 팔에 저주받은 단도로 찌른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 팔에 난 상처 주변을 손으로 쓰다듬더니,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 이거… 설마 진짜… 내가 한 거야?”
민하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항변하기 시작했다.
“아, 아냐… 수호야… 나 진짜 아냐… 그,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야… 진짜….”
“하연아.”
“어… 어?”
민하연은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민하연의 울고 있는 표정을 보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힘들게 해서 미안해.”
“그, 그런 말 하지 마! 지금 사과할 상황이….”
나는 그녀를 내 쪽으로 끌어와서 한봄이 들리지 않게 그녀의 귀속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다음에는 내가 말썽 피우면 한대 쥐어박아.”
“무, 무슨 소리야? 치, 치료할 방법 있는 거지!? 그렇지!?”
민하연은 내가 말한 다음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번에 나는 지금의 나처럼 너를 울리지 않게 하연이 니가 좀 혼내줘.”
“웃기지 마!”
민하연은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하고는 끌어안고는 울기 시작했다.
“방법이 있을 거야! 이대로 보내는 건 싫어!”
“하연아… 지금 내 연금술로도 저주를 푸는 약을 만들기에는 마나가 턱없이 모자라. 거기다….”
나는 민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너무 힘들게 해서 벌 받은 거 같아. 다음번에는….”
“지금이 중요해! 회귀하면 지금의 너는 어떻게 되는데! 싫어… 이대로 이런 식으로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민하연은 그렇게 울부짖으며 내 품에 고개를 파묻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울부짖음과 함께 옆에 울고 있던 한봄은 토끼 눈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회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