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8 308화 위그드라실 (3-17)
‘하연이가 봄이를 정말 애지중지 생각하더라.’
두 사람이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한봄이 과거에 어떤 여자였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민하연을 놓고 바람피우는 오빠를 싫어하고, 그런 인간을 싫어하다 보니 어느새 남자 혐오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민하연이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질색하며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아… 언니, 그 이야기는 좀 빼면 안 돼?)
민하연을 우상으로 생각하던 한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심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까워서 그렇지. 저번에 너 우리 양궁부 잠깐 들렸을 때 다들….)
그에 비해서 민하연은 한여름 때문에 남자 혐오를 하게 된 한봄이 안타까워서 그런지 계속 그녀에게 비슷한 주제를 던진 것이었다.
민하연이야 종교 집안에서 자란 탓에 남자에게 거리를 둔 것이지, 한봄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언니, 나 진짜 남자 관심 없어. 아니, 오히려 싫어. 그러니까, 그 말만 하지 말아줘.)
(후우… 그냥 좀 걱정돼서 그랬어. 미안.)
그렇게 한봄은 한여름 때문에 꽃 같은 사춘기에 남자를 점점 피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는 한봄을 안타깝게 생각한 민하연은 혼자 있을 때마다 그녀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또 다짐했다.
(나중에 봄이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사람 보이면 바로 이어 주자. 잠깐… 혹시 여자를 좋아하나?)
만약 한봄이 레즈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면 민하연이 진작 말을 꺼내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아냐…. 애초에 그랬으면 내가 몰랐을 리 없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내가 더 응원해줘야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민하연은 방 안에 있던 상황이나, 내 모습을 보고 오해한 게 아니었다.
테이블 안에서 나온 한봄을 보고 억지로 NTR 각을 짜 맞춘 것도 아니었다.
민하연은 한봄의 그 찰나의 지나가는 표정을 보고 확신한 것이었다.
한봄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왜… 왜 하필 두 사람이….)
민하연은 꿈속에서도 그 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감이 좋은 건지 앞뒤 상황도 모를 텐데. 그걸 콕 집어서 확신한 거 같더라.’
[그동안 한봄이 보여왔던 걸 생각하면 민하연은 본인의 사랑보다 한봄의 사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민하연은 1층에 와서 회귀를 경험한 적이 없는 상태였다.
민하연이 봤을 때, 내가 전에 했던 결투와 더불어서 구원자 스타일로 등장하니 한봄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민하연은 내 방에 있던 한봄의 표정을 완전히 읽고는 그것으로 추론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결단은….
‘본인이 포기해서라도 물러나려고 하는 거 같았어.’
지금 민하연의 꿈속 상황과 현실을 대조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꿈속에서도 그 말을 했으니까.
(봄이가 정말 좋아하는 거라면… 내가 정리하는 게 맞겠지?)
그것도 울면서….
민하연은 표면상으로는 한여름과 연애 중이지만, 나와 사귀는 것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 둘은 진짜 연인보다 가까운 섹스 프렌드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민하연이 자기가 희생해서 한봄의 사랑을 지켜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민하연의 입장에서는 수호 님께서 두 명과 동시에 사귀는 것을 아예 상정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견해차긴 하지….’
이미 한봄이 좋아하고 있다고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에서 민하연이 계속 나와의 관계를 고집한다?
지금 내가 볼 때는 민하연의 자존심보다 한봄에 대한 양보심이 더 크게 작용해서 눈물을 머금고 멀리서 바라보는 관계로 남으려고 할 것이다.
‘지금 대처 방법을 강구해야지 회귀를 하고 나서도 해결이 될 텐데 말이지….’
하지만 결국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
..
“두 그룹으로 나누죠.”
세 갈림길을 앞에 둔 양지현의 말이었다.
원래라면 세 그룹으로 나뉘어서 진행해야 했지만, 한여름의 존재가 밸런스를 맞추기 힘들게 만들었다.
일단 삼인방은 한여름과 같은 그룹이 되기를 꺼려했고, 그렇다고 묶여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한여름을 누군가가 혼자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민하연이 나와 한봄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혼자 데리고 가겠다고 나섰지만, 양지현이 위험성을 따지며 기각했다.
그리고 나눠진 그룹이 바로 나와 민하연, 한여름, 그리고 양지현이 한 팀.
한봄과 삼인방이 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이 팀의 구성은 내가 계획한 것이었다.
‘일단 봄이랑 떨어뜨려 놓자.’
민하연과 한봄이 동행하다가 말이 꼬이는 순간 내 하렘의 꿈은 물 건너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떨어뜨려 놓아도 딱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던전을 진행하는 내내 민하연은 나와 대화 한 톨 나누지 않았고, 한여름은 그런 내게 깐죽거리며 약 올릴 뿐이었다.
“다행히 갈림길이 길지는 않네요.”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세 갈림길이 교차하는 지점에 도달했고, 얼마 후 다른 그룹도 도착하며 같이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삼인방이 양지현과 내게 와서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봄 씨, 여기 들어오고 나서부터 몸 상태가 안 좋나 봐요.”
“일단 열심히는 하시는데, 걱정이에요.”
한봄은 지금 혼자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고, 멀리서 봐도 컨디션 난조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애초에 1회차, 2회차 때도 던전의 습하고, 갑갑한 환경 때문에 곤욕을 치른 한봄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 민하연과 사이가 틀어졌다고 생각되니,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지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이마에 땀이 비처럼 쏟아지는 듯 보이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
그런 모습을 보는 민하연도 마냥 좋은 표정을 짓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가지 눈에 걸리는 점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큰일인데….’
한봄은 가슴을 부여잡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저 답답한 환경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서 그런가 싶겠지만,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슬슬 또 젖몸살 오나 본데?’
문제는 지금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봄이 먼저 다가와서 내게 부탁을 해야지 내가 손을 쓸 수 있는데, 지금 한봄은 민하연의 눈치를 보다 보니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내게 말을 한 번도 건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걱정하면서 삼인방에서 대량의 포션을 건네줬다.
“일단 이거 받으시고 필요하면 쓰세요. 포션 다 쓰셔도 되니까, 최대한 회복 스킬보다는 포션으로 치료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네.”
다들 내 말을 이해하고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민하연은 정신을 못 차리는 한봄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염없이 보냈지만, 결국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눈치 없이 자기 자신만 아는 놈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풀어.”
“풀어 주세요. 해야지.”
“씨발 놈이….”
한여름은 유독 내게만 와서 포박을 풀어달라고 말했다.
아마 여자들에게는 자존심에 금이 가서 그런 부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 이런 것을 말하는 건 어차피 회귀하면 잊으리라 생각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이 녀석 이번에도 똑같이 행동하겠지?’
[아마 이번에도 똑같이 행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여름은 한봄에게 환각제를 먹인 전적이 있었다.
그냥 사회 생활하다가 알게 된 동생이 아닌, 진짜 친동생에게 약을 먹인 것이었다.
자신이 건넨 약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어! 좋은 생각 났다.’
나는 한여름의 뒤에서 묶여 있는 케이블 타이를 하나씩 풀어줬다.
한여름은 케이블 타이가 끊기는 것을 느끼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나를 보며 실실 웃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얘, 이용하자.’
한여름은 내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도 나와 동행하는 인물에게 환각제를 먹이려고 할 것이다.
그럼,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만약 내가 민하연이랑 한봄, 두 사람이랑 같이 가면 한여름은 어느 쪽에 환각제를 먹일까?’
[아마 전에 이미 한번 먹였던 한봄에게 먹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그쪽이 회귀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루트일 것이다.
이미 먹여봐서 증명했으니까.
일단 양지현을 이용하면 나와 동행하는 인물을 정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의 한봄….
‘큰일이네. 슬슬 반응 오나 본데.’
한봄은 밥 생각이 없다며 잠시 쉬고 싶다며 텐트를 만들고 들어가 버렸다.
딱 봐도 젖몸살이 문제였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한봄은 젖몸살을 절대 혼자 해결할 수 없었다.
여기서 도움을 줄 수밖에 없는 게 나뿐인데, 그런 내가 지금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말을 걸 수도 없고….’
제일 큰 문제는 한봄이 지금 분위기에서 절대 먼저 다가와서 가슴 빨아달라고 할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계획대로 하실 생각이시면 한동안은 한봄에게 먼저 접근하는 건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미안하지만, 이건 한봄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한여름에게 묶여 있던 케이블 타이를 전부 잘라낸 뒤에 말했다.
“밥 먹고 다시 와라. 괜히 눈치 보면서 편하게 갈 생각하지 말고.”
“씨발….”
아무리 약을 올린다고 해도 포박당하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종일 뒷짐에다가 손가락들이 전부 묶인 채로 가는 것이다.
볼일도 내가 풀어 주지 않으면 해결도 불가능하다.
한여름은 내 눈치를 보며 식사를 최대한 늦게 먹었다.
하지만 결국 식사 시간은 마무리되었고, 다들 모여서 새로 등장한 갈림길에 대해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까처럼 양지현이 있었다.
“일단 이번에는 한봄 씨랑 민하연 씨가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굳이… 바꿀 필요 있을까요?”
민하연은 마음속에 양보심을 간직한 상태에서도 순간이나마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양지현은 그런 민하연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한번 교체해보는 거예요. 민하연 씨와 성수호 씨는 에이스니까,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실제로 아까 한봄과 삼인방이 우리보다 늦게 도착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포션은 최대한 가지고 가시면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그렇게 하죠.”
민하연은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조심스럽게 한봄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지금 한봄은 민하연의 시선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닌 듯 보였다.
외부에서 보면 그냥 컨디션 난조처럼 보이지만, 가까운 사이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진작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느낌도 결국 다른 이유라고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 출발하죠.”
그렇게 나와 한봄, 양지현과 한여름이 같은 그룹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
..
결국 예상대로 몇 시간 정도 흐른 뒤에 안전지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간상 애매하네요. 여기서 하룻밤 쉬고 가죠.”
“네.”
분명 파티원은 양지현을 빼고 세 명이었지만, 대답한 건 나 혼자뿐이었다.
한여름은 케이블 타이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한봄은 가슴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죄… 죄송한데, 먼저 잘게요.”
“네, 편히 쉬세요.”
양지현은 아픈 한봄을 걱정하는 말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눈치를 보더니, 후다닥 텐트를 만들고 안에 들어가서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옆에 끙끙거리는 한 놈이 또 등장했다.
“씨발… 빠, 빨리 풀어줘! 존나 아파!”
“….”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여름을 쳐다봤다.
‘이야… 자기 동생 아픈 건 진짜 전혀 신경 쓰지 않네.’
[신경을 안 쓰는 게 아닌, 못 쓰는 것 같습니다.]
한여름은 이틀째 포박상태로 우리를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밥 먹을 때와 볼일 볼 때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묶여 있었고, 무엇보다 그냥 손목만 묶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하나하나를 교차해서 묶어 놓고 있었다.
혹시라도 인벤토리에서 칼이라도 꺼내서 손목에 묶여 있는 케이블 타이를 자를 것을 대비해 어쩔 수 없이 해 놓은 강경책이었다.
그런데 손가락 하나하나에 케이블 타이가 압박을 가하니 손가락에 피도 안 통하고 아플 만했다.
무려 이틀동안….
무엇보다 한여름의 참을성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게 되려 신기했다.
하지만 그런 한여름의 사정을 생각해줄 내가 아니다.
“말 같지 않은 소리 말고 잠이나 자.”
“씨발… 좀 풀어 달라고! 손가락 잘릴 거 같단 말이야!”
“그걸로 손가락 잘린 놈 못 봤다.”
“이 씨발!”
한여름은 두 팔을 뒤로 묶인 상태로 내게 몸통 박치기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이 미친놈이….”
하지만 한여름의 몸통 박치기는 잉어킹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둔했고, 나는 손쉽게 피했다.
콰당!
“크아악!”
한여름은 바닥에 한껏 뒹굴더니, 목을 꺾어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내게 소리쳤다.
“어차피 안전지대잖아! 여기서 뭔 짓을 하고 싶어도 못 해!”
“그래도 약속이라 안 돼.”
나는 겉으로 명분은 내세우며 그를 약올린 뒤에 허리를 숙여서 한여름의 귓속에 속삭여줬다.
“그리고 내가 너를 풀어 줄 이유가 없잖아? 병신.”
“이… 씨발 새끼가!”
한여름은 엎어진 채 바둥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한여름을 뒤로하며 양지현에게 물었다.
“이 녀석 이대로 두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요? 이대로는 밤새 시끄럽게 떠들겠죠?”
“아…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럼 이거 어떨까요?”
“…?”
***
“끄으읍! 흐으으읍!”
안전지대 안에 한여름의 목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씨발 새끼가! 언젠가 죽여버릴 거야!’
그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외쳐댔지만, 그 소리를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는 없었다.
한여름은 눈에 안대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텐트도 없이 밖에 나뒹굴고 있었다.
설상가상 다리에도 케이블 타이가 묶여서 일어서는 것도 불가능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졌고, 입도 재갈이 물린 탓에 어떠한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건 촉각과 후각, 그리고 그나마 정보를 인식할 수 있는 청각뿐이었다.
‘죽여버릴 거야! 아니!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평생을 살게 만들어 주겠어!’
평범한 사람이 성수호와 이런 관계를 가지게 되면 진작에 굽혀서 얌전하게 굴었겠지만, 한여름은 아니었다.
실력도, 위세도 한참 아래 있는 그에게는 회귀가 있었다.
한여름은 아무리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회귀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일단 던전을 나가서 정보만 알아내면 돼! 그것만 알아내고 다음 회차에서는 좀 더 신중히…. 응?’
한여름이 분노를 가다듬으며 다음 회차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그의 귓속에 누군가의 신음이 울려 퍼졌다.
“흐윽… 아파… 하아… 하아악….”
목소리의 정체는 여성.
이 장소에 여성은 두 명이지만, 신음의 주인은 한여름의 귀에 익히 각인된 존재였었다.
‘뭐야? 한봄? 어디 아픈가?’
한여름은 손가락들과 손목을 압박하는 케이블 타이의 존재를 잠시 잊고,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신음과 동시에 다른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뚜벅….
동굴 안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였다.
하지만 자고 있다면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그리고 그 발소리가 끝나고 나서 남자의 작은 목소리가 한여름의 귓속을 안을 튕기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봄 씨. 괜찮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