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5 305화 위그드라실 (3-14)
낮에 사냥을 마친 뒤, 같이 밥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봄아, 1층에는 마을이 몇 개 더 있다고 했지?”
“응. 듣기로는 지금 있는 마을까지 총 세 개가 존재하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다고 들었어.”
한봄은 그 말을 하면서 어둠이 드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제로 한봄은 파티를 맺은 상태로 다른 마을로 향하는 도중에 같은 파티원들이 몰살당한 경험을 체험했다.
두려움과 죄책감이 평생 그녀가 잊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여기서 허황된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런데 2층은 어떻게 가는 거지?”
민하연의 물음에 한봄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미안, 그건 나도 모르겠어. 마을에서 텃세 부리던 녀석들이 위층에서 내려왔다고는 들었는데, 아무리 알아보려고 해도 어떻게 올라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어.”
“그래….”
여기 있는 모두가 답답한 심정이었다.
양지현은 올라가는 방법을 알겠지만, 그녀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어보는 즉시 내가 전 수장이라는 것을 의심할 테니까.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마을로 가보자. 여기서 정보를 못 찾는 거라면 분명 그쪽에 힌트가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가지? 가는 길목에 레드 소환사들이 득실득실할 텐데.”
“가는 방법이 있긴 있어. 지하수로로 가면 돼.”
한봄은 지하수로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고, 나와 민하연은 처음 듣는 설명처럼 집중해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원래 이 지하수로 던전에 대해서는 양지현이 나서서 먼저 제시하는 상황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전에 사냥터를 방해하는 녀석들을 미리 양지현을 통해서 배제 시켜놨었다.
덕분에 사냥 자체가 편해지니 여기에서 지내는 초심자들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니 굳이 떠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건 민하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지하수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어.”
“그래도 알아보니까, 던전 탐색 중에는 레드 소환사 걱정은 없다고 하더라.”
“흠….”
민하연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중에서 제일 난감한 상황에 놓인 게 바로 민하연일 것이다.
나와 한봄이야 사실상 내부가 어떤지 알고 있어서 큰 걱정은 안 되지만, 내부를 전혀 모르는 민하연은 걱정과 두려움을 쉽게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민하연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해보자.”
..
..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와 민하연, 한봄은 같이 던전을 탐색할 인원을 찾아 나섰고, 합류한 인원이 바로 미녀 삼인방과 양지현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하아… 한여름… 얜 또 어디 간 거야.”
“내가 찾아볼게.”
하지만 저녁이 될 때까지 한여름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던전 탐색을 위해 모인 멤버들은 결국 탐색을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오빠를 놓고 갈 수가 없어서….”
“괜찮아요. 그건 당연한 거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양지현은 그렇게 한봄을 배려하는 말과 함께 자신의 숙소로 갔고, 미녀 삼인방도 미리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렇게 남은 나와 민하연과 한봄.
한봄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내일부터는 목줄이라도 걸어놓을까?”
그 말에 민하연은 웃으면서 한 수 더 거들었다.
“걘 목줄로는 소용없어. 정조대를 채워야 해.”
그렇게 한여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들 즐겁게 웃었다.
하지만 웃고 떠드는 것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우리도 슬슬 자자.”
내일 있을 던전 탐색을 위해 술자리를 가지기 애매하다고 판단했고, 우리는 일어나서 각자의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방으로 향하려고 하자 민하연이 은근슬쩍 붙어오며 숨소리로 귓불을 간지럽혔다.
“오늘… 같이 잘래?”
“오늘은 넘기는 게 좋지 않을까?”
“…왜?”
방금 전까지 유혹하며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던 민하연은 내 말에 듣자마자 입술을 내밀며 자신의 기분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입술을 내민 표정을 보아하니 삐짐 모드로 돌변한다고 경고를 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민하연의 모습이 귀여워서 볼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내일 던전 들어가잖아. 컨디션 문제로 던전 안에서 사고 나면 큰일이잖아.”
“그럼 그냥 같이 자기라도 하자.”
“그건 그거대로 곤란할 거 같은데….”
민하연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나는 바로 해명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같이 자면 분명 할 거 같단 말이지. 너를 옆에 두고 내가 그냥 잠들 리가 없잖아.”
“치….”
“다음 마을에 도착하면 거부해도 내가 달려들 거니까 기대해.”
“흥, 누가 해준대?”
민하연은 혀를 내밀며 메롱을 날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바로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서 내게 들릴 수 있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는 거 봐서… 용서해줄지 말지 결정할 거야.”
“하하….”
민하연은 그렇게 말한 뒤 실실 웃으며 자기 방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저런 애를 놓고 다른 여자한테 눈을 돌린 걸 보면 한여름이 진짜 병신이긴 한가 보다.’
[아마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다른 여자와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더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한여름은 민하연의 혼전순결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을 것이다.
민하연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울 리가 없고 무엇보다 동생들이 나서서 그녀를 잡아주고 있으니 민하연은 무조건 자기 소유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뭐, 병신 짓 덕분에 나만 꿀 빨았지만.’
나는 한여름에게 감사한 생각을 가지며 옷을 갈아입은 뒤에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눕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똑, 똑, 똑.
“…설마 못 참는 건가?”
이렇게까지 찾아왔다며 나도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더 이상 거절하면 진짜 민하연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
“왜? 정말 못 참겠어? …응?”
“못 참다뇨?”
내 예상과 다르게 문 앞에 서 있던 건 한봄이었다.
나는 한봄의 모습에 당황하면서 질문에 답을 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그… 잠깐 안에서 얘기 좀 해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나는 어제와 다르게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그녀를 방 안으로 들였다.
한봄은 방 안으로 들어와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내뱉고는 흥얼거렸다.
“방 깔끔하네요.”
“…? 여관방은 다 비슷하지 않나요?”
“…빈말은 좀 흘려듣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그러면 참 좋을 텐데.”
“미안해요….”
내 사과를 듣고는 피식 웃던 한봄은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물어봤다.
“저기 앉아서 얘기 나눠도 돼요?”
“그럼요. 앉아요.”
한봄은 내 말을 듣고 나서 바로 사각 테이블에 앉았다.
비록 숙소에 있는 테이블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네 명이 앉기에는 적당한 크기로 되어 있었고 테이블보가 덮여 있어서 남녀 간의 대화하기에는 꽤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한봄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허벅지에 테이블보를 덮으며 식탁 밑으로 넣었고, 나는 그녀의 건너편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한봄은 조용히 기다리던 나를 보더니, 사과하기 시작했다.
“오빠일… 정말 죄송해요.”
“그건 한봄 씨가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아뇨. 제가 애초에 관리를 잘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죠.”
원래 오늘 던전에 들어가려는 것을 한여름 덕분에 들어가진 못했다.
그리고 한봄은 그것에 대해서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한봄을 보면서 손을 저으며 미소를 웃었다.
“한봄 씨는 진짜 착하시네요.”
“네?”
“처음에는 한여름 동생이라고 해서 오해했었는데, 지금은 진짜 생각이 달라졌어요.”
“….”
거짓말은 아니었다.
1회차 초기에 만난 한봄은 정말 나를 싫어하는 눈치였으니까.
한봄은 내 말을 듣고는 의자에서 일어선 다음 내 앞에 서서는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데요?”
“어… 지금은 믿음이 가는 분이죠. 솔직히 이런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굉장히 행운이죠.”
“그거 말고는… 없나요?”
“하하… 차츰 알아가면 좋지 않을까요?”
한봄은 매혹적인 미소를 풍기며 나를 살며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 시발, 하고 싶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덮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실제로 지금 테이블 안에서 솟아오른 내 자지가 불알을 인질(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훗날 사람이 될 존재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이기에 맞는 말)로 붙잡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당장 한봄의 질 속으로 자신을 다이빙시키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쓰게 미소를 지으며 참아냈다.
하지만 한봄은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어서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봄은 내 뒤에서 살며시 내 목덜미를 감싸며 귓속으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는 지금….”
그렇게 내 귓속을 간지를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이었다.
똑, 똑, 똑.
“!”
“!”
나뿐만 아니라, 한봄도 놀란 표정으로 나무 울림이 퍼진 방문을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보던 문에서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야…, 자고 있어?)
한봄은 나와 문을 번갈아 가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나대로 발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하연의 목소리가 한봄의 몸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했다.
(일단 좀 들어갈게.)
“이, 일단 숨을게요.”
한봄은 소곤소곤 말하며 급하게 테이블 밑으로 숨어서 몸을 테이블보로 가렸다.
끼이익.
한봄이 숨자마자 기막힌 타이밍으로 문이 열렸고, 문 건너편에서는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하연이 서 있었다.
“응? 자는 거 아니었네?”
“어, 어! 잠깐 앉아서 생각 좀 하느라.”
“오호… 생각이라니 무슨 생각?”
민하연은 실실 웃으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민하연의 차림은 평소와 완전 다른 상태였었다.
하얀색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전부 벗어 던지고, 베이지색으로 뒤덮인 상의와 바지가 따로 존재하는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민하연의 상의 단추는 스파이더맨이 거미줄로 기차를 세울 때처럼 실을 당기며 그녀의 가슴 앞으로 튀어 나가지 않게 열심히 당기고 있었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온 민하연은 내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빼내며 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밤중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 그냥 이런저런… 헉!”
“왜, 왜 그래?”
민하연의 내 경련에 놀란 표정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나는 바로 손사래를 치면서 그녀의 행동을 제지했다.
“아, 아냐. 그냥 갑자기 전기가 올라서….”
“휴우… 깜작이야. 난 또 뭐라고.”
민하연은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의자를 테이블에 넣을수록 내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와… 미치겠네.’
[왜 그러십니까?]
‘안에 있는 한봄이 내 다리 사이로 들어오고 있어!’
테이블 크기는 어디까지나 간단한 식사나 티타임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의 테이블이었다.
그런 곳에 민하연의 긴 다리가 훅 들어와 버리니 당황한 한봄이 내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확 벌린 다리 사이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중요 부위가 그녀의 신체에 닿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가 발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그래서 하연아. 무슨 일이야?”
“흥… 네가 오지 않아서 내가 온 거야.”
“하하….”
민하연은 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실실 웃더니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너무한 거 아냐? 솔직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하… 내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잖아. 걱정돼서 그렇지.”
“흥, 중요하지. 음… 사실 그건 핑계고 다른 이야기 하러 왔어.”
“무슨 이야기?”
“…봄이 이야기.”
흠칫.
순간 내 다리 가랑이 사이에 끼어 있던 한봄의 떨리는 전신이 내 고간을 통해 전해졌다.
가뜩이나 발기되어 있는데, 한봄의 떨리는 몸이 내 사정감을 찐득하게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버텨내며 되물었다.
“한봄 씨? 왜?”
“왜긴… 아까 이야기했잖아. 봄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걱정이야.”
“아….”
지금 당장 팔짝 뛰어서 한봄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여기서 민하연이 한봄에 대한 험담 같은 것을 실수로라도 하게 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상처로 남게 된다.
민하연은 한봄이 있는지 모르고 그녀에 관한 생각을 술술 풀기 시작했고, 한봄은 몰래 숨어서 그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봄이가 접근하면 나한테 꼭 말해줘.”
“그럼… 말해야지.”
“내가 알고 있는 봄이는 절대 남자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냐. 너한테 접근한다는 건 아마 여름이 때문일 거야.”
오해가 살짝 걸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민하연은 자리에 없다고 생각하는 한봄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봄이가 아무리 여름이를 싫어해도 가족을 버릴 애가 아냐. 진짜 착한 애라서 정말 싫어해도 남자한테 접근할 수도 있어.”
“음….”
“알았지? 봄이가 접근하면 조용히 나한테 말만 해줘. 내가 어떻게든 설득할 테니까.”
만약 내게 한봄이 다가왔다면 그건 본인의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민하연은 한봄이 자기가 혐오하는 행동을 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것이었다.
한봄은 내 가랑이 사이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싶었다.
아마 만감이 교차하고 있을 것이다.
남자 꼬시러 왔는데, 그 남자 가랑이 사이에서 민하연의 믿음이 담긴 말을 듣고 있으니까.
‘좋지 않은데….’
상황 자체는 괜찮지만, 자칫 한봄의 저울이 죄책감으로 확 기울어지면서 내 곁을 떠날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민하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 말하러 온 거야. 사실 아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봄이도 보고 있어서 조용히 말하는 게 좋겠다 싶었거든.”
“응, 그럴 수 있지.”
“그럼 나 가볼게.”
민하연은 쿨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뒤 문으로 향했다.
나는 마중을 나가기 위해 잠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설마 이래도 안 붙잡…?”
민하연이 웃으며 뒤를 돌아봤고, 내가 일어나는 장면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이 내 바지로 가고 있었다.
‘에이 씨 걸렸나… 이러다가 자고 가는 거 아냐?’
그렇게 걱정하는 찰나에 민하연이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야?”
“응? 뭐가?”
설마 발기 시킨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는 건가?
싶었는데….
민하연은 굳은 얼굴로 테이블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식탁 안에 있는 거…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