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1 301화 위그드라실 (3-10)
저 멀리 절망스러운 눈으로 민하연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여름은 금세 나를 향하는 분노의 눈빛으로 노려본 뒤 몸을 돌려서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한여름! 성장했구나. 드디어 NTR 3단계에 돌입하다니.’
[…NTR 3단계가 무엇입니까?]
나는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입안에 정액을 자랑하는 민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통신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NTR을 받아들이는 5단계.’
[혹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씁! 조용!’
[….]
나는 강의 중에 말대꾸하는 학생에게 일갈하듯 아르모니아의 입을 물리고 진행했다.
‘NTR을 받아들이는 1단계, 부정.’
이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애정을 품고 있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넘어간 것을 알거나, 넘어갔다고 느끼는 정황을 포착한 경우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상황은 결국 착각했을 거라는 희망 CPU와 소망 GPU를 무한히 돌리며 상황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2단계, 분노.’
사실 제일 껄끄러운 단계 중에 하나로, 이때 NTR 남을 잘못 길들이면 칼빵 엔딩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에 따라서 부정 단계 동안 안전장치를 많이 마련해놔야 하고, 부정 단계에서 너무 성급하게 나아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참고로 루이스는 현재 2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3단계, 타협.’
내가 볼 때, 현재 한여름은 타협 단계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컸다.
타협 단계는 NTR에 서서히 면역되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NTR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NTL 남에게 다가가서 설득을 시도하기도 하고, 여자에게 애걸복걸할 수도 있다.
이때부터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 있어도 외부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 3단계가 좀 위험한 경우가 많아.’
[어째서입니까? 부정 단계가 더 위험하지 않습니까?]
‘타협 단계는 NTR 남도 머리를 쓰기 시작하거든.’
진짜 머리를 쓴다기보다는 그동안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 품에서 허덕이는 걸 보는 게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나머지 4단계랑 5단계는 다음 시간에 계속….’
[….]
‘아마 이제부터는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뭔 짓을 하려고 할 테니까, 주의해야겠다.’
[루이스처럼 행동한다는 것이군요.]
‘어, 루이스는 분노도 나름 머리를 쓰긴 했지.’
루이스도 열심히 머리를 썼지만, 아쉽게도 이 성수호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꼴이었지만.
‘뭐,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루이스 같은 타입이 또 타협에서 좀 험하게 나오는 경향도 있으니까. 어떤 의미에서 주의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NTR학개론’을 마치며 민하연과 한동안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
다음 날, 마을 사냥터로 간 우리는 어김없이 방해꾼들을 만났고, 이번에도 시비가 붙기 시작했다.
모든 게 같았다.
거기다가 한여름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1, 2회차와 비슷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한봄이었다.
‘너무 말수가 적네.’
[본인은 모르겠지만, 걱정은 됩니다. 이러다가 한여름이 눈치채면….]
다행인 건 한여름은 한봄이 나와 섹스를 한 것은 확실히 기억했지만, 그녀의 행동을 전부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 듯싶었다.
즉, 큰 사건만 기억하는 듯 보였다.
거기다 본인 탓에 시작부터 다르게 진행되었으니 의심할 이유도 없고….
하지만 진행이 다르게 됐다고 해도 큰 이벤트는 변하지 않았다.
벤 크래쉬의 시비가 결국 극에 달했고, 자연스럽게 결투로 이어졌다.
결투가 결정되자마자 민하연은 한봄과 미녀 삼인방을 데리고 마을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봄의 시선은 역시나 저번 회차와 많이 다른 눈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이 이번에는 한봄이 나에게 어떻게 접근하느냐였다.
전에는 모유 촉진제 때문에 젖몸살로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접근했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다가오려나.’
그렇게 기대감에 부풀어 오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상대편 무리 중에 두목으로 보이는 벤 크래쉬라는 녀석이 앞장서서 내게 말했다.
“너를 배려해서 니가 들어가고 나서 5분 후에 잡으러 가주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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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크래쉬 외 126명이 당신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5분 후에 결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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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결투에는…
“와, 정말 잘 생기셨다!”
“엘프가 현생 한 줄 알았어요!”
“혹시 방 없으시면 저랑 같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나를 노려보는 한여름도 참여했다.
‘이번에는 어떤 바보짓을 해올까?’
나는 한여름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하며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덩치 큰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끄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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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크래쉬 패배. (남은 인원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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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도 괜찮겠지?’
[굳이 똑같이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애초에 이번 회차는 한여름 본인의 실수로 어긋났으니, 수호 님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 녀석을 살려둘까 했지만, 이럴 때 변수를 시험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죽인 것이었다.
어차피 양지현은 모임을 갖기 전에 미리 손을 써두면 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럼 이제 한여름을…. 응?’
내가 그렇게 한여름을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한여름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차분히 걸어오던 녀석이 멀리서 멈추고는 벤 크래쉬를 보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설마 죽였어?”
“어, 그럼 살려두겠냐?”
“….”
한여름은 뭔가 일이 꼬였다는 표정을 지으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한여름은 눈썹을 비틀며 허공에 터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홀로그램 하나가 떴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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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결투 승리자 : 성수호
보상 : 2,113,353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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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은 아니꼬운 눈으로 나를 보며 내 근처에 와서는 입을 열었다.
“네가 이겼다.”
“….”
변수다.
‘쓰읍… 이거 별론데?’
[…?]
이 녀석을 한껏 요리하며 즐겁게 가지고 놀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오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놀이동산에서 실컷 놀다가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롤러코스터를 타려는 순간, 기계 불량으로 운행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본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머릿속이 텅텅 빈 줄 알았는데, 대기 마을에서 뇌가 새로 생성되긴 했나 보구나.”
“이 새끼가….”
한여름은 내 말을 듣고 한참을 노려보며 이를 갈다가 몸을 획 돌려서 여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바보 아냐?’
[…?]
나는 멋 부리며 걸어가는 한여름의 뒤통수를 보면서 따라갔다.
‘지금 결투 참여해서 나한테 포인트 다 뺏겼지 않나?’
***
한여름은 평생 무계획으로 살아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살던 현대 사회에서 그의 무계획은 언제나 완벽하게 마무리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면 여자, 행운이면 행운, 당연하게 주목받고, 당연하게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그의 계획은 언제나 찌질한 프롤로그로 시작했지만, 엔딩은 장대한 서사시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여름은 계획을 짜는 데에 익숙하기는커녕 평범한 하루 계획표를 작성하는 것도 못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 문제점이 여기서 나왔다.
한여름은 여관으로 향하면서 자신의 손등에 LED처럼 표시된 0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씨발 생각해보니까, 포인트가 없잖아….’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성수호와 결투를 하고, 거기서 적당히 패배한 뒤 다음 날 레드 소환사 집단과 접선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회귀가 있더라도 포인트를 써서 꾸준히 성장하지 않으면 평생 성수호에게 굴욕적인 언사를 당하는 나날이 반복될 뿐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을 덜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한봄이 포인트 주겠지. 그거 받으면 그만이야.’
1회차의 한여름은 결투에 참여해서 포인트를 몰수당한 경험이 있었다.
‘일단 오늘은 최대한 똑같이 했으니까… 내일 혼자 있으면 녀석들이 찾아오겠지? 그리고 그년들….’
한여름이 세운 큰 계획은 두 가지였다.
레드 소환사 집단과의 접촉하는 것과 미녀 삼인방을 이용하는 것.
‘일단 여자들을 꼬셔서 성수호한테 접근시키면 분명 걸려들 거야. 발정난 원숭이 같은 놈이니까.’
한여름은 과거에도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잠자리를 한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넘겨주곤 했었다.
일말의 죄책감 같은 건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여자를 평생 데리고 다니는 건 불가능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진행하면서도 걱정되는 점이 있었다.
‘성수호 이 새끼,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뭔 짓을 할지 걱정인데.’
한여름이 처음 계획했던, 성수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계획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가 되어버렸다.
‘일단 그 레드 소환사 새끼들이 누군지, 알아내는 게 중요해!’
하지만 그는 지금 세운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그런 굴욕적인 일을 또 당할 수는 없었다.
한여름은 마비독을 흡입하는 상황만큼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저 새끼는 그년들 꼬신 다음에 붙여서 감시하게 만들자.’
한여름은 그렇게 계획을 세운 뒤, 뒤에서 따라오는 성수호를 의식하며 여관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걸어가다 보니 여관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저 멀리 여관 입구에서 한봄이 팔짱을 끼고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여름은 막상 한봄을 보니 갑자기 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뇌가 여기저기 흐느적거리며 시야를 뒤틀기 시작했다.
‘하아… 한봄….’
한여름은 무의식중에 머릿속에 한봄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하아앙! 아저씨! 좋아! 안에 싸줘! 하아앙!)
한여름은 회귀 전에 기억 속에 각인되었던 한봄의 교태가 머릿속에 울리며 하복부에 피가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졌다.
‘씨발! 내가 왜!!’
한여름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관심은커녕 혐오로 점철되었던 옷을 훤히 벗어 던진 한봄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알몸의 민하연도 같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성수호가 양팔로 두 여자의 어깨동무를 한 뒤 한 손씩 이용해서 두 여자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성수호와 민하연과 한봄, 이 세 명이 같이 껴안고 3P를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민하연의 성격으로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한여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여름의 상상력은 점점 피폐함으로 물들며 창의성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수호야. 거기 좋앗!)
(흐으읏… 아저씨…. 나, 나올 거 같앗!)
성수호에게 거대한 가슴을 내어주며 교성을 내뱉는 민하연, 성수호에게 매끈한 가슴을 내어준 뒤 모유를 뿜으며 교태를 부리는 한봄.
한번 자리 잡은 세 사람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여름은 하체에 익숙하던 감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안 되겠어!’
감각의 정체를 깨닫자마자 한여름은 고개를 숙이고 달리기 시작했다.
“야, 괜찮… 어, 어디가!?”
“쉴 거야!”
한여름은 그대로 자신을 보며 안부를 물으려는 한봄을 지나쳐서 여관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
..
“씨발… 씨발….”
한여름은 여관 숙소에 들어가서 이불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욕설을 내뱉었다.
머릿속에서 한봄과 민하연의 알몸이 지워지지 않았다.
차라리 그 둘만 나왔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겠지만, 성수호가 문제였다.
한여름의 머릿속에 주인인 것마냥 자리를 잡은 성수호는 그를 앞에 두고 민하연과 한봄의 몸을 만지며 희롱하고 즐기고 있었다.
(누구 먼저 박아줄까? 하연이? 봄이?)
(다, 당연히 나부터지! 처음은 나야!)
(언니… 나 첫 정액은 양보 못 해. 나부터 박아줘. 아저씨!)
한여름의 머릿속에 있는 민하연과 한봄은 한여름이 그토록 먹어오던 여자들과 다를 바 없는 추잡한 목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씨발! 웃기지 마!! 내가 왜!!’
그냥 상상 속에서 성수호가 나와서 두 사람을 희롱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참았을 것이다.
비록 민하연은 성수호에게 넘어갔지만, 한봄은 회귀 전으로 돌아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렇게 침대 안에서 속으로 울부짖는 이유는 하나였다.
‘씨발 빨리 가라앉으라고!!’
그의 하복부에 솟아오른 물건을 보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민하연을 보면서 욕정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물며 한봄을 보면서 욕정 하는 것도 싫었지만,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반사신경이라고 치부하며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여자가 성수호에게 따먹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닌, 상상하면서 발기하는 자기의 모습이 지옥 같았다.
‘씨발!!! 분명 요새 안 한 지 오래돼서 그런 걸 거야! 두 사람이 따먹히는 걸 생각하면서 설 리가 없잖아!’
한여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변태적인 상황을 숨길 수 있게 헐렁한 바지로 갈아입은 뒤 숙소를 나가며 생각했다.
‘일단 박희연… 그년이랑 한 번 하면 정신 차릴 수 있을 거야!’
한여름은 그렇게 생각하며 박희연을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서 다가간 한여름은 박희연의 친절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바빠서 시간을 내드릴 수가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