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9 299화 위그드라실 (3-8)
‘하아… 다행이다.’
프리뭄 마을을 눈앞에 두면서 한봄이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성수호와 한창 즐겁게 지낸 뒤 두 사람이 한여름을 찾았을 때는 이미 그는 사라진 상태였었다.
아무리 싫어해도 가족이었고 한여름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회귀였었다.
‘분명 다음에도 가능하겠지?’
아직 한번 밖에 경험하지 않은 아리송한 회귀.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래도 최대한 말조심해야지.’
회귀를 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결국 회귀의 주체는 한여름이었다.
한봄도 지금이야 한여름과 같이 회귀한다고 하지만, 언젠가 모든 것을 잊고 회귀에 휩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성수호와 끈덕지게 달라붙고 그의 터져 나오는 욕구를 전부 마셔준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흐흐흐… 그럼 가볼까.’
한봄은 성수호의 기억이 잃었다는 사실보다 회귀로 그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성수호가 있을 만한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 중앙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도대체 죽기 전에 뭔 일을 당했길래.’
한여름은 기절한 상태였고, 성수호와 민하연이 그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었다.
한봄은 민하연과의 감동의 재회를 연기하고, 그녀의 일행을 자기가 지내는 숙소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가는 내내 보이는 성수호의 시선.
‘…진짜 언니만 뚫어지게 쳐다보네.’
섭섭했지만, 이해했다.
이해했지만, 짜증 났다.
짜증 났지만, 인내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민하연이었다.
민하연은 한봄이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 자기가 원하면서 바라던 이상향의 여성이었다.
한봄의 노력은 민하연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민하연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감탄을 하면 했지, 질투심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봄은 살면서 민하연에게 어떠한 악감정도 가져보지 않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처음으로 금이 서서히 가기 시작했다.
‘…진짜 싫다.’
질투하는 자기 자신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혐오감이 더 증가하게 되는 건 바로 민하연이 지금까지 한여름과 사귀는 게 바로 본인 탓이라는 것이었다.
‘저 병신이랑 사귀는 거 부추기고, 달라붙게 만들어 놓고 인제 와서….’
한봄이 민하연과 한여름을 사이를 중재하며 노력했던 건 절대 한여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민하연과 떨어지지 않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건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간절히 민하연이 옆에 있길 원했고, 만약에라도 헤어지게 된다면 모든 관계까지 틀어질까 봐 무서웠던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민하연이 옆에 있었으면 하는 이기심과 그녀를 시기하는 질투심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봄의 시야에는 성수호가 계속 들어왔다.
‘쓰레기야… 나는….’
안된다고 계속 속삭여도 그녀의 시야에는 언제나 성수호가 들어왔다.
아까까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사랑을 나눴던 남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우울감이 한봄의 가슴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회귀… 마냥 좋은 건 아니구나.’
한봄은 그렇게 우울감을 가지며 민하연과 성수호에게 식사를 마치고, 한여름에게 갔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든 끼고 싶었지만, 첫 만남을 가장해야 하는 한봄은 자연스러운 행동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사이좋은 두 사람을 놓고 숙소로 올라와서 기절한 한여름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아… 내가 왜 이 병신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는 건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누구는 꽁냥꽁냥 노는데, 자기는 한심한 가족이나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자 심기가 점점 뒤틀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한여름이 깨어났다.
하지만 한여름은 한봄의 기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흥분한 상태로 입을 열었다.
“지금 그 새끼 어디 있어?”
“…밑에서 언니랑 얘기하고 있어.”
“씨발!”
한여름은 욕설을 내뱉으며 숙소를 뛰쳐나갔고, 한봄은 그런 한여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하아… 짜증나.”
***
“….”
“….”
“….”
한 테이블에 네 명이 앉아서 서로를 바라보며 경계심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계심의 중심은 다름 아닌 나였다.
‘…개 짜증 나네.’
귀찮을 것을 넘어서서 짜증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한여름은 깨어나자마자 내게 와서는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건 참을만했다.
다행히 시비 자체는 오래가지 않았다.
문제는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지 않나?
“…혹시라도 말하는데, 나 게이 아니다. 너 같은 새끼 관심 없으니까. 적당히 해.”
“뭐!? 게이? 이 개새끼가!”
한여름은 내 말에 발끈하면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욕설 핸썸남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화장실을 왜 따라오는데?”
“…네 새끼 또 이상한 짓 할 게 뻔하니까 따라간 것뿐이야.”
“이상한 짓은 니가 하잖아. 남자 뒤 졸졸 따라다니면서….”
“닥쳐!!”
“제발 좀 조용히 좀 해!”
“그래, 여기 너 혼자 있는 거 아니라고!”
“으윽….”
한여름은 두 여자의 일갈에 기세가 꺾이며 다시 얌전해지기 시작했다.
분위기 좋게 술이나 좀 마시자고 만든 자리가 회귀자들의 어색한 모임이 되어 버렸다.
다들 술만 홀짝일 뿐,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일단 제일 큰 이유는 당연히 한여름.
하지만 거기에 만만치 않게 플러스 요인을 만드는 것이 바로 한봄이었다.
한봄은 전회차와 다르게 민하연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까는 그래도 반기는 분위기였다면 어느 순간 침울해서 힘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민하연은 한봄이 지금 사정이 힘들어서 저렇겠거니 하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안 되겠다. 일단 내가 자리를 빠져야겠어.’
일단 두 사람만 두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건 무조건 한봄이 직접 해결 해야 하는 문제였다.
괜히 내가 나서봤자 민하연이 이상한 오해를 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하연아, 나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
“응? 왜 같이 있지….”
“아냐. 생각해보니까, 나 때문에 조용한 거 같기도 하고….”
나는 한봄을 힐끗 보면서 쓰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이것저것 알아볼 겸 근처만 돌다 올게.”
“으음… 그래, 조심하고.”
민하연도 한봄이 걱정되어서 그런지 따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기에 나를 흔쾌히 보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여름은 나를 놓아주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이 씨발 새끼 너 어디가?”
“몰라도 돼. 이 게이 새끼야.”
“그 말 하지 말라고!”
내가 일어서고 여관을 나서려고 하자, 한여름이 바로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혐오감이 가득 표출하는 표정으로 한여름을 스토커를 보듯이 쳐다봤다.
“이 게이 새끼야. 계속 쫓아 오면 신고한다?”
“닥쳐!”
나는 여관을 나서면서 걱정과 동시에 두 사람을 믿기로 결심했다.
‘…하연이가 잘 보듬어주길 바라야지.’
..
..
특별한 수확은 없었다.
‘있을 수가 없지. 저 새끼가 계속 따라붙는데 뭘 할 수가 없네.’
한여름은 내가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쉬지 않고 나를 쫓아다녔다.
제 딴에는 거리를 두며 감시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감시해서 뭘 얻을 게 있는 의문이었다.
[경계가 심해졌습니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건지고 싶은 심정이겠지.’
사실 나도 첫날에는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바람을 쐴 겸 밖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양지현을 미리 만나서 계획을 꾸며볼까 싶었지만, 그것도 여의치는 않았다.
양지현이 나를 돕는답시고 다음 날 있을 결투를 무효화 시킬 가능성도 컸으니까.
‘슬슬 돌아갈까…. 응?’
여관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에 한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무리 중에 가운데에 있던 여성이 풀이 죽은 미소로 손을 살살 흔들며 내게 다가왔다.
박희연이 내게 먼저 인사를 걸어왔다.
“여기서 뭐 하세요?”
“아,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괜찮은 정보나 알아낼 수 있을까 해서 돌아다니는 중이에요. 세분은요?”
“저희도요.”
아까 한여름의 기절, 한봄의 재회, 그리고 이어지는 재회 기념 식사, 그리고 또 이어지는 재회 기념 술자리.
이런 것들이 뒤섞이다 보니 뒷전으로 밀려난 세 여자는 이 마을을 둘러보면서 도움이 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돌아다닌 듯싶었다.
미녀 삼인방은 0층에서 나와 민하연, 한여름이 사라지고 나서 서로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보다 더 친해진 상태였었다.
“그러고 보니까. 성함이 성수호 씨, 맞죠?”
“네.”
“아까 들었어요. 그 보스전이라는 거 클리어했다면서요?”
“그놈 쌔던가요?”
“들어보니까. 살아 나온 게 기적이라고 하던데….”
“하하….”
나는 대충 쇼크 비(0층 보스)에 관해서 설명하면서 보스전에서 있었던 일들을 풀어내며 이야기해줬다.
어쩌다 보니 세 여자와 같이 공터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와… 그럼 보상도 보통이 아니겠네요?”
“일단 추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직업권을 주더라고요.”
“어… 그거 그냥 말씀하셔도 돼요?”
제일 소심해 보이던 박진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이 여자들도 대충 여기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대충 감을 잡은 듯싶었다.
너무 좋은 패를 여기저기 알리고 다녀봤자 절대 좋을 게 없다.
그것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고,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더.
나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것도 인연인데 너무 숨겨서는 좋을 게 없잖아요.”
“아….”
생각해보면 직업권은 어차피 내 인벤토리에 담겨 있는 아이템이라 훔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달라고 해서 줄 이유도 없고.
거기다 어차피 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막 발설하고 다닐 리도 없었다.
‘종속이 진짜 개 사기네.’
지금 내 눈에 세 여자의 하복부에는 족속 마법진이 옷의 면을 투과해서 내 눈에 들어왔다.
나 말고는 아무도 못 보겠지만….
그런데 내 별 생각 없이 했던 말에 세 여자는 나름 괜찮게 봤는지 내게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여기 오기 전에 뭐하셨어요?”, “와… 마법을 쓰신다고요?”, “신기하다….”
일단 세 여자가 나한테 달라붙는다고 해서 내가 기분 나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 여자들이 내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거나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애초에 쳐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종속도 걸려 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나를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지 내게 적의를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이었다.
‘설마 한여름이 자기들을 싫어하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응? 한여름 어딨어?’
[아까까지 화면에 잡혔지만, 금세 사라졌습니다.]
‘…설마 꼰지르러 간 건가.’
그렇게 잠깐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갈색 머리를 휘날리며 공터로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오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비쳤다.
‘…미친.’
한여름 씹새끼… 쓸데없는 건 존나 빠르게 잘하네.
..
..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무엇이었습니까?]
‘내 머리에 화살 꽂히는 거.’
[….]
반쯤 농담이었지만, 반은 또 진담이었다.
한여름이 민하연에게 어떤 식으로 이야기했는지에 따라서 상황이 많이 변했을 테니까.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고, 민하연이 오고 나서 나는 미녀 삼인방에게 대화가 즐거웠다는 식으로 마무리 지었다.
세 사람이 떠나고 공터에는 나와 민하연만 남았다.
살벌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민하연이….
“어, 음… 그… 한봄 씨랑은 이야기 잘했어?”
“아니, 누구누구 씨 덕분에 대화 중에 끊고 나왔지.”
“하.하.하….”
내가 흐릿한 눈으로 허공을 보며 웃자, 민하연이 괜히 말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이야기 했어?”
“그냥 서로 통성명하는 수준의 이야기였어.”
“정확히 얘기해봐.”
“…네.”
나는 민하연에게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세 여자와 했던 이야기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얘기해줬다.
가감하지 않고, 정확하게….
그리고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민하연이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닦달하기 시작했다.
“직업권 이야기는 왜 한 거야!?”
“앞으로 계속 볼 사이잖아. 굳이 숨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 아! 너는 이야기하지 마.”
“나는 왜?”
“이건 한번 시험해보는 거거든.”
“시험?”
아까 삼인방이야 종속에 걸려 있어서 내 말을 어디에 흘리지는 않겠지만, 민하연을 설득하려면 거짓도 섞어야 했다.
“만약 저 여자들이 내가 한 말을 어디에 떠벌리고 다닐까 싶어서 시험해보는 거야.”
“진짜 떠벌리고 다니면?”
“그때는 파티 해체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더 큰 이유가 있어.”
“…?”
“만약에 하연이, 니가 회귀하면 그때는 이게 좋은 정보가 되지 않겠어?”
“…흥.”
민하연은 팔짱을 끼고 콧바람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일단 화가 난 것과는 별개로 내가 하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풀어진 듯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가면 성수호가 아니지.
“하연아, 화 풀면 안 될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표시된 성벽을 확인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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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 대상(성수호)과 관련되어 생기는 집착에 비례해서 대상에 대한 성욕이 증가하고, 대상과의 성적 행위로 집착과 성욕이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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