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8 298화 위그드라실 (3-7)
안전지대 안을 둘러보며 흥얼거렸다.
‘타이밍 좋네.’
나는 한여름을 멀리 덩그러니 놓고는 한봄과 소풍 분위기를 내며 개울을 옆에 끼고 식사를 시작했다.
당시에 태양이 주황빛을 띄며 붉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여름을 멀리 둘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 냄새는 참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푸대자루에 돌돌 말려 있어서 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퍼지는 냄새의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냄새를 맡으며 식사를 하고 싶은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한여름이 사라진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후에 한여름이 죽었다는 회귀 경고 알람음이 울려왔다.
한여름을 납치한 범인은….
‘어때?’
[다행히 임무에 대한 불평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시 돌아온 것을 아쉬워할 정도였습니다.]
베아트리체였다.
나는 전에 한여름에게 사용한 세척액을 베아트리체에게 주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한여름에게 수면을 건 뒤에 그를 포박하고 몬스터 무리에 던져두고 오라는 것이었다.
베아트리체라도 세척액이 없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흥얼거리며 상층 버튼을 눌렀다.
‘자, 보자.’
한여름…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올까나.
쏴아아악!
푸른 빛이 내 시야를 감싸며 1층에 처음 들어서는 것을 환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 장소에는….
“수, 수호야….”
나를 보며 당황하는 민하연과….
“으게엑….”
장을 게워내며 쓰러진 한여름이 있었다.
..
..
3회차.
지금 한봄과 내가 프리뭄에서 겪은 회차의 숫자였다.
그리고 3회차는 지금까지와 완전 다른 느낌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민하연은 갑자기 기절한 한여름을 보며 당황했고, 한여름이 기절한 사이에 한봄이 나타났다.
한봄은 민하연과 감동의 재회 인사를 나눈 뒤 우리를 여관으로 안내해주고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귀에 한봄의 설명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한 여자만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와… 하연이 진짜 예쁘네.’
빛을 반사하는 유광의 기다란 갈색 생머리, 속옷을 드문드문 비춰주는 하얀색 블라우스, 골반을 부각하는 청바지.
한바탕하면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 정도로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당장 달려들어서 키스한 뒤에 거사를 치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고 싶다.’
[….]
내가 그렇게 민하연을 뚫어지게 보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자, 옆에 앉아 있던 민하연이 내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응?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이렇게 보니까, 진짜 이쁘다 싶어서.”
“뭐, 뭐야. 갑자기….”
민하연은 쑥스럽게 웃으며 볼을 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나와 민하연을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봄.
한봄한테 미안했지만, 지금 당장 그녀에게 좋은 대접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귀했다는 사실을 잘 숨겨야 하니까.
오히려 질투심을 끌어올리는 쪽이 내게 여러모로 유리했다.
‘두 사람이 나중에 한바탕하지는 않겠지?’
캣파도 어디까지나 티격태격하는 수준이 좋은 것이다.
진짜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순간 진짜 답 없어지는 거다.
[일단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한 만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행이지.’
그렇게 속으로 내심 안심하면서 다시 한봄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 여기 있는 여관이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야.”
“봄아, 힘들었지?”
두 사람은 아르모니아의 생각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이야… 봄이가 연기력은 좋네. 감동이라는 게 인위적으로 나오기는 힘든데…. 하연이는 연기력이 꽝이라 바로 이상하게 보였을 텐데.’
민하연은 천성이 연기랑 먼데다가 여장부 기질도 있어서 괜히 없는 감동을 끌어내는 애가 아니다.
그만큼 민하연은 정말 한봄을 보며 정말 감동하는 것이었다.
민하연은 그렇게 감동의 재회를 마치고, 내게 다가와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수호야, 잠깐 따로 얘기 좀….”
“응?”
민하연은 나를 데리고 여관 뒤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오! 설마 여기서 해주려는 건가?’
[아직 대낮이고 금방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킬 것입니다.]
마을 외곽에 있는 후미진 여관이긴 했지만, 문제는 이 여관에 거주하는 초보자들이 너무 많은 터라 분명 행위를 하면 바로 발각될 것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이벤트이다 보니 뭔가 싶어서 궁금한 찰나에 민하연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수호야, 이상하지 않아?”
“응? 뭐가?”
“그… 아까 여름이… 갑자기 왜 기절한 걸까?”
“응? 그, 그야 대기 마을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자, 잠깐… 이거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민하연은 손가락을 턱을 짚더니 쓱쓱 문지르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여름이… 혹시 회귀한 거 아닐까?”
“뭐?”
나는 민하연의 말에 정신이 멍해지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내 표정을 잘 못 이해한 뒤 자기가 생각한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상하지 않아? 분명 아까까지는 기운이 없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저러는 거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민하연 입장에서는 이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기 마을에서 한여름이 피폐해졌다고 해도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테니까.
민하연이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건 한여름이 그만큼 이질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민하연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까, 하연이, 니 말이 일리가 있는 거 같아.”
“그치?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
“회귀 지점이 달라진 걸지도 몰라.”
“….”
대단하다.
나야, 회귀 자체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 민하연은 회귀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회귀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혼자 상황을 파악하고 정리한다?
‘이야…. 이거 적당히 해 먹어야지 너무 재미 보다가 걸리면 골치 아파지겠는데?’
민하연을 사랑한다.
그런데 한봄도 사랑한다.
분명 언젠가 한봄과의 관계를 민하연에게 걸리는 날이 올 것이다.
필연적이었다.
안 걸리고는 한여름 멘탈을 부수지 못하거든….
다만 중요한 건 걸리는 상황에서 한봄과 민하연의 관계가 어긋나는 것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걸 타개할 좋은 방법이 있었다.
민하연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성벽… 진짜 괜찮을까?’
나는 일찍이 민하연에게 종속은 걸었지만, 성벽을 작성하지 않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에 봤던 귀족녀들에게는 성벽을 작성하는데 큰 죄책감이 없었고, 지금 같이 다니는 미녀 삼인방도 작성하려고 하면 큰 걱정 없이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하연은 다르다.
내 고민이 섞인 표정을 읽은 아르모니아가 진지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수호 님… 분명 성벽이 민하연의 의지를 비켜나가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떠한 족쇄도 걸어놓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녀 자체가 수호 님에게 완벽한 족쇄가 될 것입니다.]
‘흐음.’
[무엇보다 종속의 능력을 강화하다 보면 언젠가 더 좋은 방식이 나올 것입니다.]
‘…알았어.’
이미 결정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건 아르모니아의 설득을 듣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설득.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민하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호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전처럼 분명 해결책이 있을 거야.”
“…그래.”
내가 웃으며 민하연을 살포시 껴안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민하연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흐응? 여기서? 너무 대담한 거 아냐?”
“지금 이렇게라도 붙어 있고 싶어서.”
“어이구, 우리 성수호.”
민하연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을 받으며 성벽을 작성했다.
성벽을 작성하자마자 갑자기 민하연이 몸을 흠칫 떨면서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흐응?”
“왜그래?”
“아, 아냐. 아무것도 갑자기 뭐, 뭐랄까….”
하지만 민하연의 말은 누군가의 난입으로 끊겼다.
“언니?”
“흐얏!”
퍼억!
“크허얽!”
한봄의 목소리에 민하연은 내 가슴팍을 쳐내며 밀어냈고, 나는 그대로 쌍장을 맞고 뒤로 튕겨 나갔다.
“보, 봄아! 무, 무슨 일이야?”
“그게….”
한봄은 곁눈질로 나를 힐끔 보고는 쓰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침 저녁 시간이잖아. 같이 밥이나 먹을래?”
“그래!”
민하연은 나를 힐끗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한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한봄은 민하연이 옆에 다가올 때까지도 조용히 침묵하며 요지부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를 보며 민하연이 입을 열었다.
“봄아, 가자.”
“….”
“봄아?”
민하연이 재차 물어보자 한봄은 나를 보며 말했다.
“그… 아저씨도 같이 먹어요.”
***
한여름은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한 두통을 느끼며 앓는 소리를 내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크으… 여, 여긴 어디야?”
“야, 괜찮냐?”
“끄아악!”
한여름은 여자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 뒤에서 벌떡 튀어 올랐다.
그렇게 튀어 오르고 나서 정신을 차린 그에게는, 팔짱을 끼고 한심하게 바라보는 한봄이 눈에 들어왔다.
한여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봄과 이 장소의 연관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설마 그때 죽어서 회귀한 뒤에 바로 기절한 건가?’
한여름을 가지고 놀듯 물어뜯는 몬스터.
지옥이었다.
차라리 무기를 들고 싸웠다면 몬스터들이 위협을 느끼고 바로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한여름이 저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여러 마리가 유희하듯 그를 물어뜯으며 가지고 놀았다.
결국 한여름은 십여 분을 넘게 몬스터들의 장난감으로 취급받다가 과다출혈로 간신히 죽을 수 있었다.
문제는 회귀하자마자 바로 그 충격으로 기절했다는 것이었다.
“한봄?”
“하아… 다행히 사람은 알아보네.”
한봄은 한숨을 쉰 뒤에 모르는 척하며 한여름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너 도대체 왜 갑자기 기절한 거야? 그리고 하연이 언니랑… 저 아저씨는 어떻게 된 사이고?”
“아, 아저씨? 씨, 씨발! 그 새끼 죽여버리겠어!!!”
“시끄러워 병신아! 여기 너 혼자 아냐!”
한여름은 아저씨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이마와 눈에 핏줄을 돋아나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발광하던 한여름은 한봄이 간신히 진정시켰다.
하지만 진정한 건 어디까지나 입뿐이었다.
나머지 다른 신체, 온몸에 돌아다니는 세포 하나하나가 성수호를 죽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좀 제대로 설명 좀 해보라고.”
“….”
한여름의 눈에는 그제야 한봄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싸가지 없는 표정에 툭툭 내뱉는 욕설.
지금 저 모습은 아직 성수호에게 보여주는 모습일 것이다.
한여름은 한봄의 지금 모습을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일단 최대한 그 새끼를 감시해야겠어….’
민하연의 실패를 거름 삼아 다시 한번 기회가 온 한여름은 살짝 냉정해지며 머리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게….”
한여름은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성수호와 민하연과 있었던 일을 상세히… 아니, 과장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봄은 처음에 한여름에게 설명을 들은 것과 똑같이 반응했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그리고 똑같은 결론을 내었다.
“일단 너는 언니한테 신경 써. 내가 아저씨를….”
“안돼!”
“병신아, 제발 소리 좀 줄여.”
한여름은 한봄의 일갈에 다시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입을 열었다.
“절대 안 돼. 그 새끼 분명 하연이한테도 이상한 짓 한 거 같아.”
“그건 말도 안 되잖아. 그러면 분명 바로 레드 소환사 될 건데?”
“크으… 모, 모르겠어. 하여튼 괜히 근처에 다가가지 마! 알았어?”
“그럼 어떻게 언니를 되찾을 건데?”
“그, 그건….”
한여름은 이미 계획이 있었다.
첫 번째는 성수호의 뒤를 캐면서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회귀하면서 몰래 감시하면 무슨 짓을 꾸미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두 번째는 레드 소환사 집단을 찾아서 접선하는 것이었다.
‘저번에는 그 새끼랑 붙어 있어서 내게 접근하지 못한 걸 거야. 이번에는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서 접선하길 기다려야겠어.’
레드 소환사 집단.
분명 한여름은 그 집단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하지만 이이제이라고 지금 당장 그가 손을 벌릴 수 있는 곳은 레드 소환사 집단뿐이었다.
한번 손을 잡아봤던 기억을 되살려서 이번에도 비슷한 루트로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성수호… 이번에는 어떻게든 그 새끼들을 이용해서 널 철저하게 죽여주겠어. 일단….’
성수호와 붉은 초승달과의 관계를 모르는 한여름은 그렇게 다짐하며 한봄에게 물었다.
“지금 그 새끼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