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1 291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27)
“잠시만요. 교수님, 이거… 답이… 다 맞는 거 같은데요?”
루이스는 그 대사에 순간 놀라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고는 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머릿속에 소냐에 대한 무례한 생각으로 가득채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와주려고 한다고? 멍청한….’
루이스는 한때 나름 호감을 느꼈던 여자라고 해도 자신에게 굴욕을 준 여자에게 일말의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육체를 보면 아직도 본능적으로 시선을 두기는 했지만, 속마음은 식은 지 오래된 상태였다.
‘도대체 저런 하급 인생을 사는 놈이 뭐가 좋다고….’
거기다 가뜩이나 싫어하는 놈에게 이런저런 정을 베풀어주는 모습을 보니, 차게 식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혐오감까지 피어오르고 있었다.
루이스는 소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주면서도 따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참에 저 머저리랑 같이 나가떨어졌으면 좋겠네.’
그렇게 속으로 소냐에 대한 폄하를 끊임없이 내보내는 중에도 교수들은 소냐를 중심으로 모여서 문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그런 모습에 고개를 절레거리며 성수호만 들리게 속삭였다.
“소냐 교수님도 참 못됐네. 너한테 희망 고문이나 하고 말이지. 그렇지 않냐?”
“야… 말 함부로 하지 말아라.”
루이스는 지금까지 무뚝뚝하게 자기 말을 대충 흘려듣던 성수호가 처음으로 짜증이 난 표정을 지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도발은 언제나 성수호의 몫이었다.
처음으로 반격을 했다는 사실에 루이스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다.
루나를 욕하는 건 루이스로서도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소냐에 대한 험담은 거미줄 뽑듯이 쭉 늘릴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더욱더 험담을 뽑아내려는 순간, 교수들이 몰려있는 쪽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교수들이 루이스나 성수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학생임에도 그 정도 수준의 실력을 냈기 때문이었다.
만약 교수들이 필기시험에 30분 이상 소모했다면 오히려 주변에 놀림을 당하며 평생 회자할 치욕적인 사건 중의 하나가 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그들은 수십 초 안에 문제를 전부 풀어내고는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우리가 단체로 노망이 난 게 아니고서야….)
(빨리 학장님에게….)
루이스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고는 교수들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교수들이 루이스의 노트를 들고 학장과 수석 교수에게 건네주면서 입을 열었다.
“그… 학장님, 문제가….”
“음?”
학장과 수석 교수가 같이 문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한 문제에 10초를 초과하지 않고, 빠르게 훑어보며 문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같이 시험 문제를 확인한 학장은 헛웃음을 내기 시작했고, 마그타는 한심함이 대략 5% 섞여 있는 미간을 찌푸린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야? 왜 저러는 거야?’
루이스는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하고 학장이 들고 있는 노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학장은 바로 루이스가 어떤 마음인지 눈치채면서 그에게 다가온 뒤에 노트를 건네줬다.
“한번 제대로 확인해보시죠.”
“…어떤 걸 말씀이시죠?”
“시험 문제를 직접 풀어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만?”
“아뇨, 시험 문제는… 분명… 확실히… 제가… 밤새….”
루이스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학장이 들고 있는 노트를 다급하게 받아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까 교수들이 순식간에 푼 문제일지라도 아직 루이스에게 그 정도의 연륜이 쌓인 건 아니었기에 암산으로 푸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수들의 수준에서의 이야기였다.
루이스는 이미 동급생 중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암산을 하며 문제를 순식간에 풀며 노트를 넘겼다.
앞에 네 문제는 그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정답이었다.
하지만 그 뒤부터 뭔가 이상했다.
자신의 필체임에도 전혀 다른 문제를 푸는 것처럼 이질적인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다섯 번째 문제의 답을 도출했을 때, 루이스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이 이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답이었다.
성수호가 적어낸 답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신이 기억해놓은 답이 오답이었던 것이었다.
“이, 이럴 리가 없어!”
루이스는 다음 문제, 그리고 그다음 문제를 계속 연이어서 풀어냈다.
하지만 모두 정답과 오답이었다.
성수호의 답은 모두 정답이라고 증명했고, 자신의 답이 모두 거짓이라고 증명했다.
“아냐… 이럴 리가 없어….”
마지막 문제를 앞에 둔 루이스는 떨리는 도저히 문제를 전부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제일 난도가 높은 문제마저 자신이 틀려버린다면 창피함을 넘어서서 학교생활이 지옥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새파래진 루이스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마지막 문제를 풀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학장이 다가가서 물었다.
“어떻게, 풀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무, 문제가 이상합니다!”
“허허허, 문제가 어떻게 이상합니까?”
“부, 분명… 누군가가… 몰래… 수치를 바꾼 게….”
“허허….”
학장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이 문제는 누가 봐도 당신이 만든 겁니다. 문제를 수정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정교한 방식으로 수정했다고 해도 이 짧은 시간에 뭔 수로 수정했겠습니까?”
“그, 그렇지만….”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서 강당 내부를 둘러봤다.
강당에 몰려있는 어마어마한 학생들이 루이스를 보며 대충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하는 듯 보였다.
(뭐야? 왜 저래?)
(성수호가 틀린 게 아니라, 루이스가 문제를 잘못 만들었나 보네.)
(하긴 아무리 원래 있던 문제를 변형한 거라고 해도 학생 수준으로 쉽지는 않았겠지.)
(막상 저렇게 나오니까, 루이스도 평범한 학생 같아 보이긴 하네.)
(2등이 좀 빡치긴 했나 봐.)
다들 그동안 루이스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탓에 그에 대해서 크게 질타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귀에는 학생들의 대화가, 자신의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내 울려 퍼지는 한편의 지옥 동요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대박, 그럼 성수호가 좀 더 맞췄다는 이야긴가?)
(전부 맞춘 거 아냐?)
(에이, 말도 안 돼…. 루이스가 저렇게 벼르고 만든 문제였으면 존나 어려운 거였을 텐데.)
(아직 얼마나 맞춘 지 모르잖아. 좀 더 기다려야지.)
아까까지 루이스와 동조하던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지 다들 루이스가 실수하더라도 성수호가 그대로 부정 행위자로 낙인찍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등수가 올라가는 것과 자신들의 죄악감을 지우려는 목적이었다.
그나마 아까 소수의 의견을 내던 학생들이 다시 입을 모아서 성수호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까 학장님 말대로 시험지를 훔치다니 말도 안 되지.)
(맞아. 거기다 실기는 그럼 어떻게 1등을 했겠어.)
다들 술렁이는 가운데 학장이 앞으로 나서서 학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성수호 학생은 루이스 학생의 문제를 전부 완벽하게 풀어냈습니다. 답은 완벽했으며 이번에는 부정행위가 일어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죠, 루이스 학생?”
“하, 하지만… 분명….”
“허허… 그리고 학생이 간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
다들 학장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봤고, 학장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시에 제가 감독을 맡았던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알겠지만, 주속성 시험 때 제가 성수호 학생이 문제를 푸는 것을 뒤에서 계속 관찰했습니다.”
“…네?”
루이스의 의문에 학생들은 이제야 기억난다는 듯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감독 교수인 마그타 교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를 비워서 제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워낙 시험을 빨리 푼다는 학생이 있다고 해서 궁금한 나머지 처음부터 끝까지 뒤에서 관찰했습니다.”
“하, 하지만! 시, 실기에서 뭔가를….”
“실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네?”
“실기 시험 당시에 궁금해서 실기 시험을 치르는 성수호 학생의 방 안에서 구경했습니다.”
학생들은 그 말을 듣고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성수호와 학장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일생일대를 가르는 중요한 시험인데, 학장이 뒤에서 관찰한다면 제대로 볼 수 있는 학생은 얼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성수호는 실기 1등을 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학장의 말을 전부 듣고 서로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화의 내용은 소수들의 의견이 점차 삼키며 거대화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말도 안 돼….”
절망에 물든 루이스의 눈동자에 각자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수호와 루나.
두 사람은 분명 떨어져서 그를 바라봤지만, 루이스에게 그 두 사람은 하나의 장면으로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서서히 다리에 힘이 풀리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마그타 교수가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일단 사건은 마무리됐으니, 잠시 나 좀 따라오시죠.”
“흐으읏… 네….”
루이스는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만이 충동처럼 심장을 강타하고 있었다.
학생들, 교수들, 학장, 성수호, 소냐, 그리고… 루나.
이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향해 있었고, 이 시선만 피할 수 있다면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빨리 자리를 빠져나가려는 루이스의 어깨를 한 남자가 툭툭 치며 그의 발을 멈춰 세웠다.
루이스가 새파래진 얼굴로 뒤를 돌자 그를 멈춰 세우던 남자가 조용히 속삭였다.
“내기, 기대할게. 설마… 이대로 그냥 모른 척 넘어가지는 않을 거지?”
“이 새끼가….”
창피, 굴욕, 치욕, 수치.
성수호의 표정을 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의 뇌 속 혈관을 자극하며 살인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가문의 명예가 그의 정신을 온전하게 만들었고, 모든 힘을 다해서 살인 욕구를 참으며 입을 열었다.
“나… 루이스 브란트루프…. 한번 한 약속은 절대 지킨다.”
“좋아, 좋아. 기대할게.”
으드드득….
성수호의 촐랑거리는 표정에 루이스는 이를 갈면서 몸을 돌렸다.
루이스는 억울함과 동시에 굴욕감이 밀려 들어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을 흘리며 마그타 교수 뒤를 후다닥 뛰어갔다.
***
‘성능 확실하구만!’
[발상이 좋았습니다.]
‘자기 실수 말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까.’
루이스 정도 되는 귀족이라면 분명 자신의 필체 정도는 확실하게 알아봤을 것이고, 분명 자신의 실수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애초에 주변에서 교수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문제를 수정할 미친놈이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 미친놈이죠.’
나는 루이스가 만든 문제를 에넬을 써서 종이에 전혀 손상 없이 수정했고, 덕분에 루이스를 희대의 병신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아까까지 선동당했던 학생들은 아직 루이스의 편에서 대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루이스가 끌려가기는 했지만, 큰 질책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앞서서 학생들을 대표했다고 말하면 그만이니까.
‘뭐, 그 정도 정신이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루이스가 나중에 어떤 몰골을 하고 나타날지 기대를 하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학장은 내게 다가와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토닥여줬다.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의심을 풀어서 정말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학장은 내 감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교수들에게 가서 해산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당에 있던 학생들과 교수들은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기 위해 강당을 떠났고, 강당에는 어느새 나와 루나만 남아 있었다.
루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
“….”
루나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어떠한 말도 건네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루나는 분명 루이스가 귀찮은 짓을 해서 짜증이 날법한데도 놈팽이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루나가 언젠가 놈팽이를 완전히 버리고 나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하니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없었다면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
“미안해.”
“…뭐가 미안하신데요?”
루나는 갑자기 내가 내뱉은 사과의 말에 고개를 슬며시 들어 올려서 의아한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진심을 담아서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솔직히 네가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 것도 모르고 수호 씨를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루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입을 열었다.
“그게 인생이라면 받아들여야죠. 물과 불이 섞이지 않는 않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두 존재 중에 하나를 아예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해요.”
“….”
“그리고….”
루나는 내 손을 깍지를 끼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타나지 않았으면 이라는 말씀 말아주세요. 그게… 제일 큰 상처가 되는 말이니까요.”
“…알았어.”
나는 루나의 손을 꽉 쥐며 그녀의 입술에 살포시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