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9 289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25)
‘후우… 진짜 체력 길러야겠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붙잡고 걸어갔다.
[회복이 안 되셨습니까?]
‘아니, 아픈 건 아닌데…. 뭐랄까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고 해야 하나?’
[…?]
어제 잠시 느꼈던 통증이 아직도 있는 것 같은 환상통의 느낌이 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루나를 들어 올릴 때는 전혀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자세로 허리와 하체를 혹사해보니 들박이 얼마나 미친 행위인지 알 수 있었다.
맨날 게임으로만 보다 보니 현실감각이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초서현이랑 같이할 때 연습 많이 해놔야겠다.’
들박 연습 상대로 최고의 히로인 초서현 양에게 부탁해봐야지….
생각해보니까, 경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들박 하자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다!
나도 실실 웃으며 식당으로 향했고, 식당으로 향하는 중에 한 남자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만나서 부지런히 수다 떠네.
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는 순간 나를 힐끗 보며 내 이름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쟤가 성수호야?”
“응, 그 실기 1등….”
“그거 진짜일까?”
‘그거’가 뭔데 씹덕들아?
그거라는 게 뭔지 궁금했지만, 이미 무리를 지나친 상태였고 신경을 끊고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상한 무리는 그 녀석들 뿐만이 아니었다.
다음에 만난 여학생 무리도, 그다음에 만난 남학생 무리도 몇몇 무리가 나를 힐끗 보면서 내 이름을 거론하고 있었다.
문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 정도….
‘1등 해서 유명해져서 그런가?’
관심을 주니까 내심 좋긴 한데, 매일 저렇게 본다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여름방학 지나면 알아서 풀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아르모니아가 통신으로 물어왔다.
[수호 님, 그런데 왜 바로 복귀하지 않으신 겁니까?]
‘아….’
어제 루나에게 들박을 한 뒤 바로 복귀할까 했지만, 루나를 데려다주고 나도 모르게 침대에 누워서 바로 잠을 청했다.
내가 함선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은 이유.
그건 바로….
“좋은 아침?”
“….”
루이스를 실컷 골리고 가기 위함이었다.
나는 식당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성이는 루이스를 보고는 바로 어깨를 툭툭 치며 그에게 물었다.
“어때? 시험은 잘 봤냐?”
“…흥.”
‘…반응이 생각보다 미지근한데?’
사실 나는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얼굴이 시뻘게진 루이스가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복귀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침착하게 나를 노려보며 콧방귀를 뀔 뿐,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러면 내가 복귀를 늦춘 이유가 없는데….
이왕이면 루이스가 원형 탈모가 올 정도로 화냈으면 좋겠는데….
나는 다시 한번 루이스에게 물었다.
“야, 시험 잘 봤냐니까? 아하. 설마 벌써 귀족 대우해 주는 거야? 귀족들은 원래 흥흥거리며 대화를 나누나 봐?”
“이 새끼가….”
내기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나마 좀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워낙 자존심이 센 녀석이니까 계속 골리다 보면 참지 못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밥 먹기 전에 골려주려는 순간 루이스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쓰레기 같은 놈.”
“…?”
“부정행위로 시험 잘 봐놓고 그렇게 유세를 부리냐? 창피하지 않아?”
루이스의 말에 식당 입구에 있던 학생들과 더불어서 안에 있던 학생들도 우르르 몰려와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 부정행위?”
“그래, 학교에 전부 퍼진 거 모르냐? 네 녀석이 시험 문제 몰래 빼돌려서 1등 한 거 이미 유명한데?”
“하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험지 훔쳐서 본 거 맞겠지?”
“정학당했는데, 그거 말고는 도저히 이해가….”
“원래 공부를 잘하는 스타일 아닐까? 보니까, 도서관에서도 늦게까지 공부하던데.”
“우린 뭐 놀았냐?”
내 입장을 대변해주는 학생들도 가끔 보였지만, 소수일 뿐이었다.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는 소문은 삽시간에 소수의 의견을 먹어 삼키고 진실처럼 학교를 떠돌기 시작했다.
‘진짜라서 할 말이 없네.’
[….]
사실 진짜 시험지 빼돌려서 1등 한 게 진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만약 진짜 내가 여기서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며 대충 넘어가면 루이스 녀석이 이 소문을 빌미 삼아서 내기를 없던 일로 만들 것이다.
여름방학 동안 루이스 본가에 가서 실컷 부려 먹을 계획이었는데, 이러다가는 틀어지게 생겼다.
‘내가 어떻게 이긴 내기인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나는 침착하게 루이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시험 문제를 빼돌렸다는 증거는?”
“확인이 필요한가? 그냥 네 실력에 맞지 않게 성적이 나왔으면 알아서 자수해야 하는 거 아냐?”
루이스는 내 부정행위를 확인 도장을 찍듯 입 밖으로 말을 술술 불어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자수해야 정학으로 끝나지 않겠어? 들어보니까, 진짜 걸리면 퇴학으로 안 끝난다던데. 목숨이라도 건지려면 자수해야지.”
“하하….”
어떻게든 내 부정행위를 정설로 만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나….’
이 난관을 어떻게 타파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뒤쪽에서 카랑카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둥글게 무리를 짓고 있는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건 나이가 지긋한 세 명의 교수들이었다.
그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냈던 교수는 세 명 중 가운데에 있던 노파 교수였다.
“식당 입구에서 뭣들하고 있는 겁니까?”
“아… 그게.”
내가 멋쩍은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긁으며 입을 열려는 순간 루이스가 먼저 선방을 쳤다.
“지금 이 녀석의 부정행위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정행위?”
노파 교수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교수들도 부정행위라는 단어에 눈매를 올리며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귀찮아졌네….’
***
생각보다 반응이 엄청 뜨거웠다.
교수들 대부분이 헛소문으로 치부하며 넘기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학생 사이에 오르내리는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있었다.
루이스는 교수에게 불려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루이스의 말은 심플했다.
정황상 의심을 넘어서서 성수호의 부정행위는 확정으로 봐야 한다는 식으로 밀어붙였다.
교수들도 루이스의 말에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마냥 쉽게 넘기기는 힘들었다.
루이스 혼자만 억측한다면 그냥 미친놈 취급하며 넘겼겠지만, 많은 학생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루이스를 보면서 노파 교수가 입을 열었다.
“당신 말대로 저 학생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합시다. 그럼 증거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건….”
루이스도 증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한 채 우물거릴 뿐이었다.
그는 그저 내기를 무효로 만드는 게 최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증거도 없이 지금 이러는 겁니까?”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증명할 방법은 있습니다.”
“증명할 방법?”
루이스는 조심스럽게 마그타 교수에게 성수호의 부정행위를 검증할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마그타 교수는 그의 말을 들은 것과 동시에 큰 소리로 일갈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그 방법만이….”
“지금 학생이 한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소리인지 압니까? 학생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마그타 교수의 외침에 옆에 듣고 있던 교수들이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난감하군.”
“그러게, 밖에 학생들도 생각보다 동요하는 거 같고….”
마그타 교수는 옆에서 들려오는 교수들의 소리를 듣고 나서 눈을 감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부정행위에 대한 의심이 있더라도 이미 시험은 끝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괜한 의심으로 1등을 수상한 학생을 부정 행위자로 만드는 건 큰 문제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흐지부지 넘기게 되면 여름방학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더 큰 골치를 낳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만약 그 학생이 정말 부정행위를 한 게 아닌데, 이런 식으로 소문이 계속 퍼지면 학교로서도 곤란해.’
1등을 한 학생이 여름방학 끝나고 돌아왔더니, 학교에서 이미 부정 행위자라고 낙인이 찍혀버리면 학교와 학생의 이미지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마그타 교수의 표정을 보면서 루이스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성수호… 네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걸 모를 줄 알아? 두고 보자.’
..
..
“그런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일단 학생의 생각을 듣기 위해 불렀습니다.”
“아….”
마그타 교수는 바로 성수호를 불러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생의 입장이 곤란한 건 이해하지만, 이대로 그냥 넘기게 되면 오히려 더 곤란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그타 교수도 지금 하는 말이 워낙 어이없다 보니 학생에게 함부로 강요하지는 못했다.
“당연하지만 학생에게도 거부권이 있습니다. 굳이 억지로 시킬 생각까지는 아니에요.”
“음…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의심이긴 하죠.”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해결할 방법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마그타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까 학생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는 학생 중, 대표로 나선 학생이 자신만만하게 문제를 만들어왔다는군요.”
“그걸 풀라는 거군요?”
“맞아요. 솔직히 학생이 학생을 평가하는 상황은 저희도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나마 루이스가 2등이라는 실력을 발휘해서 이 정도까지 몰고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그가 2등은커녕 5등 밑에 있는 학생이었으면 바로 벌점 행이었을 것이다.
‘정말 애매해…. 정말 이 학생이 부정행위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학생이 등수 문제 때문에 모함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만약 마그타도 성수호가 정학당한 학생이 아니었다면 이런 문제에 쉽게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정학이었던 학생이 돌아오자마자 시험에서 필기 3등, 실기 1등을 했다는 사실은 마그타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성수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마그타에게 묻기 시작했다.
“실례되는 말씀이 아니라면… 교수님들께서 문제를 내주시는 게 더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성수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마그타 교수의 말처럼 학생이 학생을 평가한다는 건 웃기는 일이었고, 교수가 직접 문제를 낸다면 다들 알아서 입 다물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학생… 소냐 교수와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서요?”
“어… 네.”
성수호는 갑자기 생뚱맞은 인물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했고, 교수는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정말 웃기지만, 그 대표로 온 학생이 말하더군요. 친분을 이용해서 시험지를 몰래 유출한 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요.”
“아뇨!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성수호는 교수의 앞이라는 상황을 까먹고 벌떡 일어나 항변하기 시작했지만, 마그타는 바로 손을 밑으로 저으며 이야기했다.
“압니다. 우리도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애초에 겸임교수는 시험지는커녕 문제출제와도 전혀 관련이 없으니까.”
“아…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이라. 순간 화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일단… 어쩌겠어요?”
성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입가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학교에 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받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