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86화 (287/898)

EP.286 286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22)

“저를… 죽여 주셨으면 합니다.”

“….”

그냥 고개를 숙여서 하기 힘든 부탁을 하는 사람의 태도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환한 미소로 가면을 쓰고 있던 그는 가면을 벗어내고 절망이 가득 찬 표정으로 진짜… 간청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죽여달라니….”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일은 언제나 잘 풀렸다.

불안한 요소가 보이면 금세 성장하면서 안정되었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행운이 나타나 모면시켜줬으며, 절체절명에 위기의 순간에는 기적이 내리며 모든 것을 해결해줬다.

당시에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 능력이라고 치부했다.

그렇게 그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 한마디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왕조차 그의 발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벌벌 떨었고, 그가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도 귀족들은 쉬쉬하며 넘어가곤 했다.

자만이라는 글자로도 부족한 그의 성품은 점차 도를 넘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자만이 세상의 격변을 불러일으켰다.

언제나 중심일 줄 알았던 그는 또 하나의 중심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칭점.

그 존재가 알려지고 나서 세상은 반으로 나뉘었다.

선과 악.

하지만 누가 선인지 누가 악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승리한 자는 역자에 길이 남을 선으로 남게 될 것이고, 패배한 자는 역사에 길이 남을 악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오십 년이 넘는 전쟁으로 세상은 피폐해져 갔음에도 그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기는 것뿐.

상대방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뿐.

그게 그를 이끄는 원동력이자, 숙명이었다.

그리고… 결국 승리자는 결정되었다.

역사서에 아직도 기록이 되고 있으며 살아있는 성인(聖人)으로 활약하고 있는 자.

그가 바로 내 눈앞에 있는 학장, 루트비히 리펜슈타인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한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인형… 저는 결국 인형이었던 것이죠.”

“….”

“차라리… 그 전쟁에서 죽었다면 이렇게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세상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앞만 보며 달려갔던 그에게 남겨진 건 피폐해진 세상과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몇백 년이나 산 그는 처음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세상을 재건하고,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개전했어도 결국 그에게 남겨진 허망함은 점차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에게 미래(생명)는 무한했지만, 미래(삶)는 끝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결국 혼자더군요.”

“지금 옆에 계신 분들도 계시잖아요?”

“…이제 옆에 있는 친구들도 조만간 떠날 것이고… 저는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겠죠. 하지만… 그건 정말 지옥입니다.”

과거의 나라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의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자기보다 먼저 갈 것을 알고도 친해진다?

아르모니아, 비올라, 루나, 레나, 성수아, 초서현, 민하연, 한봄… 잠깐 생각해보니까 존나 많네.

하여튼….

이 여자들이 내 살아생전에 죽는다? 그것도 치명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자연히 시간이 흘러서 늙어 죽는다?

지옥이다.

나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떠나간다.

그건 지옥이라는 표현 말고는 도저히 다른 단어로 대체될 수 없었다.

“그들도… 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 같지만, 도통 제 삶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이더군요.”

“….”

지금 조디악에게 학장은 그나마 유의미하게 남아 있는 동아줄이었다.

하물며 시간을 잠시 느리게 설정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뻔했던 곳이다.

학장을 놓아줄 리가 없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자살을 못 하시는 거죠?”

“…제 능력으로 저를 죽일 수가 없습니다.”

“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해했다.

에넬… 조디악은 그걸로 학장의 신체를 본인이 피해를 줄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아마 항마력 부분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신체의 강도를 크게 올렸을 가능성이 컸다.

자신의 마법으로도 못 뚫을 정도로….

“….”

“…무리한 부탁입니까?”

반 천년을 살아온 이 양반도 결국 우주에 티끌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가 현자와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이 행성 안에서만 유효한 결과값을 낼 뿐이다.

하지만….

“….”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이건 이타적인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이 결합한 결과였다.

학장의 삶이 불쌍한 것도 있었지만, 결국 지금 도와주지 않으면 학장이 뭔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당신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저도 결국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겠죠.”

“하아….”

단번에 그가 말하는 다른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루이스.

본인이 자살할 수 없으니, 루이스를 성장시켜서 자신을 죽이게 할 가능성도 컸다.

조디악의 재정난으로 더 이상 학장을 성장시키는 건 무리일 것이다.

분명 루이스가 성장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장과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럼 분명 학장은 죽음을 택할 것이다.

문제는 내 임무뿐만 아니라, 루나에게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지….

내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알았습니다.”

“정말… 정말 제 말씀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다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학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까?”

“…최소 3년입니다.”

“졸업 때까지군요.”

그냥 죽여서는 안 된다.

아르모니아와 나는 조디악의 의뢰를 받는 처지다.

만약 어떠한 방법을 찾아내서 학장을 마음대로 죽인다면 NTL 코퍼레이션이 위험해진다.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지금 받은 의뢰를 적당한 선에서 완료한 다음 몰래 죽인다면 문제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게 내 계획이다.

“일단… 궁금한 게 있는데요. 지금 그쪽에도 학장님과 제 대화가 아예 단절되는 건가요?”

“네, 가끔 그들의 시선이 싫어서 잠시라도 여유롭게 있고 싶은 마음에 제가 슈트라를 건설하고 나서 개발한 마법진입니다.”

“하하….”

실패하면 오히려 문제가 되니까, 머릿속으로 완벽하게 계산하고 그들이 보내는 신호의 실마리를 잡아내서 만든 마법진이라고 설명해줬다.

“무엇보다 그들이 저를 감시하지 않는 시간대를 고르고 고르다 보니 지금 이 시각이 되었습니다.”

“응? 마법 썼잖아요.”

“변수를 줄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결국 저도 우물안에 개구리였나 봅니다. 아까 그 일은 잊을 수 없군요.”

레나가 나타나고, 그녀가 갑자기 덮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학장은 내게 손을 뻗으며 물었다.

“저는 신뢰를 중시합니다. 약속의 징표를 새겨도 되겠습니까?”

“…?”

“간단한 마법진입니다.”

내 손바닥에 마법진을 새긴다는 의미였다.

타인에게 지금 대화 내용을 절대 발설하지 못하게 하는 마법진이라고 설명했다.

“…설마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폭발하는 건가요?”

“하하하!”

학장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더니,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과격하군요.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저는 신뢰를 중시합니다. 대화 내용만 발설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법진입니다.”

일단 내 수준으로 해체는 불가능.

이유는 육안으로 마법진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안 보이네요.”

“미안하지만, 보험이라고 해두죠. 다만 당신에게 어떠한 해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학장의 말을 믿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믿지 않으면 나만 피곤해진다.

이 마법진에 저주 같은 거 걸린 거 아닌지 신경 쓰다 보면 나만 피곤해진다.

그리고 이 양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만든 종속은 연금술로 만든 건데, 이 양반은 진짜 투명한 마법진을 개발한 거잖아? 대단하구만.’

그래도 일단 상황은 정리됐다.

하지만 나도 여기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나갈 생각은 없었다.

“저….”

“…?”

학장은 마법진을 풀려고 하는 중에 내 말에 멈칫하며 돌아봤다.

나는 학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

..

나는 학장의 호명을 듣고 단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손바닥을 빤히 보고 있자, 아르모니아가 또 걱정하는 말투로 통신을 걸어왔다.

[수호 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어, 정말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

학장과 있었던 일 이후에 아르모니아는 하루 내내 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걸어놓은 마법진 덕분에 아르모니아에게조차 내용 발설이 불가능했고, 하물며 메모해서 보여주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궁금해서 보는 거야. 무슨 마법진을 넣었는지.’

[…알겠습니다.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만약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에넬을 사용해서라도 푸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알았어.’

아르모니아도 모르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겠지만, 고작 이런 마법진에 에넬을 사용할 이유는 없었다.

단상으로 걸어가는 중간,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를 숙이고 세상을 모두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 남자.

나는 지나가는 길에 루이스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야, 허리 나가겠다.”

“….”

“그리고….”

루이스는 허리를 숙인 채 고개만 살며시 들어서 허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루이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진로 방해된다. 허리 저쪽으로 구부려라.”

“뭐… 뭐?”

“그럼 간다잉~”

나는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루이스를 뒤로하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단상에 도착하자 학장이 미소로 반겨주며 내게 상장을 건네준 뒤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잡자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음에도 잘 보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장의 말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루나의 옆에 섰다.

그 와중에 루나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루나를 힐끗 보면서 속삭였다.

“필기 1등… 축하해.”

“아… 고, 고마워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쉿,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

간혹 학생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장소에서 학장의 말에 방해가 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됐다.

분명 다른 교수들에게 찍힐 테니까.

“아, 알았어요. 수호 씨….”

“응?”

“실기 1등… 축하해요.”

“고마워.”

나는 말로써 고마움에 화답해줬고, 루나는 내 화답에 다시 미소로 보답해줬다.

그리고 강당 중앙에서는 나와 루나의 모습을 보는 루이스가 절망에 휩싸인 표정으로 맞이해줬다.

루나와 내가 있는 단상과 루이스가 있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아예 다른 세상인 것처럼….

그리고 학장이 드디어 학년별 통합 1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3학년, 2학년을 발표하며 환호성이 들려왔고, 대망에 1학년을 발표할 차례였다.

“이제 1학년 봄학기 통합 1등을 발표하겠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학년 2학년의 발표만큼 1학년 1등을 발표하기 전에도 꽤 많은 연설을 낭독하며 위상을 드높여주고 있었다.

“지금 호명되는 학생은 정말 의미가 있습니다.”

학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1등으로 호명된 학생은 이제 막 마법을 배운 새싹 같은 학생 중에 먼저 봉우리를 피워서 주변에 있는 새싹에 희망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자, 1등은….”

다들 침묵하며 학장의 입에 집중하고 있을 때, 학장이 종이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성수호, 루나 슈타트펠트!”

“…네?”

교수들을 제외하고 학생들은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루나도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1등 발표인데, 난데없이 두 명을 호명하니 다들 놀랄 수밖에….

“올해 1학년 통합 1등은… 두 사람입니다.”

짝짝짝짝짝!!

다들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학장의 말을 이해하고 박수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루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가자.”

“어…그…”

“자, 빨리.”

나는 루나의 어깨를 살포시 당기며 같이 학장이 서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학장은 미소를 지으며 나와 루나에게 상장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 합니다.”

루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상태로 상장을 겸손하게 받아들었고, 나는 상장을 받고 나서 강당 중앙에 멍청하게 서 있는 루이스를 바라봤다.

절망이었다.

‘에이, 난동 한 번쯤은 피워줄 줄 알았는데, 너무 조용하네.’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오히려 뒤에서 무슨 짓을 해올지 모릅니다.]

‘사내놈이 쪼잔하게 뒤통수치겠어….’

제대로 빡치면 진짜 할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루이스 녀석이 평소에 자기 가문을 중시하던 것을 보면 명예가 더럽혀질 일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몰래 할 수 있다면 분명히 하고도 넘칠 녀석이다.

학장은 나와 루나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여름 방학을 잘 보내시고, 가을 학기에 또 뵙겠습니다.”

학장의 말에 학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왔다.

나는 학생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를 들으며 그제야 루나를 보며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1등 축하해.”

“아….”

루나는 나를 올려다보더니, 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환하게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수호 씨도… 1등 축하해요.”

나와 루나는 서로 축하의 말을 주고받으며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한 사람의 손인 것처럼 손깍지를 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한 명의 엑스트라처럼 처량하게 서 있는 루이스가 나와 루나의 깍지를 끼고 있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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