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82화 (283/898)

EP.282 282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18)

아침부터 강의실은 시끌벅적하며 학생들의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주제는 대부분 비슷했다.

“루이스는 어떻게 됐대?”

“들어보니까, 어제 훈계받고 바로 기숙사로 갔다고 하더라.”

“하긴… 시험도 망치고, 거기다 창피할 테니까.”

그리고 그 강의실 뒤편에 앉아 있는 나는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팔로 얼굴을 지탱하며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에 떠드는 소리 따위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나한테는 루이스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하지만 그런 떠드는 소리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나도 딱 한 명의 목소리에는 온 신경에 전류를 보내며 반응을 보내왔다.

“공부 열심히 했어요?”

“아… 왔어.”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루나는 의자에 앉은 뒤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어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무것도 아냐.”

“설마 밤새워 공부한 건 아니죠?”

아무리 주속성 시험이 중요하다고 해도 내가 필기시험 공부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아냐, 그냥 다른 생각 하고 있었어. 어젯밤에 잘 잤어?”

“그, 그건 왜 물어보시는데요!?”

루나가 갑자기 몸을 뒤로 뻬면서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강의실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행동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우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느끼지만 저 두 사람 진짜 친하지?)

(맨날 테라스에서 같이 앉아 있는 걸 보면 심상치는 않아보여.)

나는 주변 소리를 최대한 의식하면서 말했다.

“아니, 그냥 컨디션 조절 잘했냐는 의미지.”

“그… 잘 잤어요.”

루나는 새침하게 고개를 팽 돌리더니 시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위라도 했나? 왜 저렇게 예민해.’

[….]

사랑하는 여자지만 가끔 저러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창 시험 준비를 하는 루나는 두고 다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일단 조디악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알려준다고 했지만….]

‘그런데 만약 늦어지면….’

실기시험이 어떤 시험인지는 알아냈다.

문제는 그 실기 문제가… 정확히 뭔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시험의 방식은 알아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와 해답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학장은 실기시험을 만들어놓고 머릿속에만 넣어놓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실기시험 당일이 되면 정교수들에게 공표하겠다고….

[조디악 측도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그 의사는 바로 에넬이었다.

혹시 모르니 50만 에넬 줄 테니까, 일단 급한 불이 생기면 꺼보라는 식으로 전해왔다.

덕분에 에넬은 100만 에넬.

하지만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최대한 주속성 공부는 좀 해놓자.’

공부는 지겹게 했다고 해도 혹시 모르니까….

실기시험의 시간은 5일.

5일 동안 계속 실기시험이 이루어지니 그래도 여유는 있었다.

만약 내가 그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해도 조디악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그렇게 실기시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강의실에 조수와 교수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옆에 앉아 있던 루나를 바라봤다.

루나도 나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학생들이 야단법석을 피우며 자리에 앉는 상황에서 다른 학생은 몰라도 단 한 명이 없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루이스가… 없는데?’

설마 어제 난리 쳐서 아예 시험 자체를 못 치르는 건가?

내심 속으로 기쁨을 토해내고 있을 때,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아르모니아가 통신으로 말했다.

[수호 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응? 그게 중요한 게 아니면 뭐가 더 중요한데?’

우리 목표가 루이스인뎁쇼?

[지금 강의실로 들어오는 자를 보시길 바랍니다.]

‘아니, 저 양반은 또 왜….’

한 남자가 겸허하게 웃으며 차분하게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이는 고작 30대 초반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걸음과 기품을 풍기는 남자.

그가 단상에 올라가서 입을 열었다.

“허허,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강의실에서 감독을 맡게 된 루트비히 리펜슈타인입니다.”

..

..

시험은 어제 치른 부속성 시험과 마찬가지로 자리 배치를 변경한 다음 시험을 치르는 형식이었다.

그런데도 학장은 전날, 노파 교수가 말한 것과 비슷한 말들을 차분히 읊으며 설명했다.

“아, 그리고 시험에 앞서 이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학우에 대해서 궁금한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은 전부 긴장한 얼굴로 학장을 바라봤다.

”어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은 오늘 따로 마그타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녀의 감독하에 시험을 정상적으로 치르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길 바랍니다.”

학장은 허허 웃으며 설명했지만, 그 설명이 내 속을 새까맣게 태우기 시작했다.

‘에이… 이왕이면 마지막까지 한 방 먹였으면 좋았을 텐데.’

부루마불로 치자면 루이스를 무인도에 보낸 줄 알았는데, 그를 출발지로 보낸 샘이 되었다.

루이스 녀석이라면 몇십 개의 주사위로 왕창 굴려서 순식간에 부루마블 한 바퀴를 후다닥 돌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오늘 학장이 오게 된 이유가 바로 루이스와 연관되어 있었다.

“마그타 수석 교수가 자리를 비워서 제가 이렇게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혹여라도 부담 갖지 말고 열심히 시험을 보시길 바랍니다.”

학장은 허허 웃으며… 나를 봤다.

‘…귀찮아질 거 같은데.’

[….]

..

..

자리 배치가 완료되자마자 바로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지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나는 아르모니아가 띄워준 해석과 답을 보며 열심히 푸는 척을 했다.

다만 하나 다른 게 있었다.

“호…. 흐음….”

“….”

학장 새끼가 계속 내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도 뻔히 내가 베낀다는 것을 알 텐데도 불구하고 유심히 내려다보며 중후한 추임새를 끊임없이 넣고 있었다.

‘아니, 미친… 단상을 겸임 교수한테 맡기고 지가 왜 돌아다녀….’

[돌아다닌다기 보다는 노골적으로 수호 님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설명 해주지 않아도 알으….’

꼬투리 잡으려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설마 내가 보는 화면을 같이 보고 있나?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르모니아가 띄워주는 화면은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일단 긴장 때문에 시험을 망칠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최대한 집중하면서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계속 내가 문제를 풀 때마다….

“오호… 흐음….”

“….”

흥미로운 시선으로 내 문제 풀이를 바라봤다.

다른 평범한 교수가 옆에서 저렇게 추임새를 넣고 본다면 기분이 더러워질 거 같은데, 이 양반 추임새는 뭔가 사람 기분을 묘하게 평안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기분을 편해진다고 해서 불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호….”

“….”

그렇게 시험 끝까지 학장은 내 뒤에서 시험지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

..

나는 테라스에 오자마자 의자에 주저앉듯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와… 오래간만에 탈진할 뻔했네.’

[고생하셨습니다.]

결국 시험 끝까지 학장이 내게 이상한 짓을 벌이지는 않았다.

진짜 흥미로운 생명체를 발견해서 그런가?

어제 루이스를 골린 벌을 받는 건가?

학장이 계속 쳐다보는 바람에 결국 시험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문제 출제자가 보고 있는데, 대충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이로써 첫 번째 난관은 무사히 넘어갔다.

[필기는 끝났습니다. 다만 제일 큰 문제가 남았습니다.]

앞에 토요일, 일요일이 지나게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실기시험에 돌입하게 된다.

‘일단 지금 당장은 내가 루이스를 앞서는 상황이잖아. 주속성 시험도 완전히 나락으로 보내면 좋았겠지만….’

루이스 녀석이 부속성 시험을 얼마나 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지막 문제를 못 푼 건 확실하다.

고작 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문제는 최상위 학생들의 순위를 가리는 문제인 만큼 루이스에게 엄청난 타격이 갈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 시험에서 최고의 수혜자는 나보다는 최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일 것이다.

나야 루이스만 이겨서 농락시키는 게 목적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학생 중에 최상위권 학생들은 등수 하나하나가 엄청난 나비 효과를 일으킬 테니까.

[…어차피 수호 님이 위에 있으면 다시 제자리가 됩니다.]

‘그것은 무스비….’

생각해보면 최상위에 있는 애들은 그냥 1등만 바뀌는 꼴이겠네.

그렇게 점수에 대해서 생각하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루나는 이번 시험 잘 봤을까?’

일단 루나도 최상위권 학생이고, 그녀가 가진 능력이면 마지막 몇몇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쉽게 풀어냈을 것이다.

거기다 그렇게 풀고 보는 마지막 문제는 내가 변형해서 풀게 해줬다.

루나라면 아마 그 당시에 잘 이해했을 것이고, 지금 시험도 잘 풀어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루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은 나도 오래 걸려서 차이가 별로 없네.’

루나는 내게 다가오자마자 평소와 똑같은 대사로 물어왔다.

“시험 잘 보셨어요?”

“어… 모르겠어.”

“…학장님이 엄청나게 보시더라구요.”

루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치마를 쓸어 내리며 옆에 앉았다.

“일단 그건 그거고… 정답 맞혀보자.”

“후… 좋아요.”

루나와 나의 주속성은 같은 풍속성.

같은 시험을 봤기 때문에 같이 정답을 맞혀보기 시작했다.

***

루이스가 시험지 마지막을 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그타 교수에게 향했다.

루이스가 먼저 말을 걸기 전에 마그타가 그의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설마 이번에도 배가 아파서 그러십니까?”

“크읏… 아, 아닙니다. 시험지 제출입니다.”

“좋아요. 주세요.”

마그타 교수는 루이스의 시험지를 받아서 자신의 책상에 올린 뒤 그에게 말했다.

“수고했어요. 나가셔도 좋습니다.”

“…네.”

루이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굴욕감으로 뒤범벅이 된 채 연구실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문 건너편에는 환한 미소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하얀색 머리카락에 자신보다 살짝 낮은 키, 하지만 그런데도 풍기는 엄청난 중압감.

루이스가 이런 중압감을 느꼈던 건 왕을 직접 만났을 때뿐이었다.

하물며 부모님들에게 심한 호통을 당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과연 서른 살의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기세를 풍기는 남자가 루이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시험 잘 보셨습니까?”

“하하… 네.”

루이스는 분명 학장을 존경….

했었다.

하지만 마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에 대한 적의가 계속 피어올랐다.

그 이유는 루이스 본인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짐작하자면 학장의 위상이 자신이 뿌리내린 국가보다 훨씬 높이 있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언젠가 짓눌러 주겠어.’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학장에 대한 혐오감으로 도배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침묵은 학장의 입으로 끊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학생 이름은 뭐죠?”

“루이스… 루이스 브란트루프입니다.”

루이스는 그제야 좀 기분이 풀려서 당당하게 자신의 성과 이름을 말했다.

아무리 혐오감이 드는 인물이라고 해도 대마법사라는 인물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에 내심 흐뭇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브란트루프라… 왠지 귀족적인 성이군요.”

“귀… 귀족적…. 저는 귀족입니다.”

“오호? 어디 출신인가요?”

평소에 학생의 이름에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던 학장이 루이스에게 관심을 두자 뒤에서 바라보던 마그타 교수도 의아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루이스는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간신이 입을 벌렸다.

“레빈… 레빈 왕국의 브란트루프 공.작.가의 자제 루이스 브란트루프입니다.”

평생 없었다.

자신의 가문을 어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식품 보듯이 보는 학장의 눈과 같은 모습을….

‘감히… 감히 우리 가문을 모르는 척해? 니가? 분명 알고 있으면서?’

루이스는 혼자 지레짐작하며 확신하고 있었다.

학장이 자신의 신분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학장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서글서글한 미소를 안타까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레빈 왕국이라….”

“…?”

“왕국의 이름을 오랜만에 들어보는군요. 한… 이백 년 됐던가?”

“….”

루이스는 눈에 혈관이 돋아나며 학장을 노려봤고, 학장은 루이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대화 즐거웠습니다. 부디 실기 시험은 큰 탈 없이 보기를 바랍니다.”

“…네.”

루이스는 악귀 같은 표정으로 마그타 교수의 연구실을 나갔다.

학장은 루이스를 지나치고 나서 살며시 뒤를 돌아서 그가 나간 흔적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보는 학장을 향해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학장님,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시험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아…. 학생들과 감독 교수님을 믿고 나왔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마그타는 헛웃음을 내면서 고개를 절레거렸다.

그런데 그녀의 웃음에 학장은 주위를 둘러보며 손을 살짝 휘젓기 시작했다.

“…?”

학장이 유려한 포즈로 순식간에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무슨 마법이지? 뇌속성?’

학장은 마그타가 마법진에 대해 이해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발동시켰다.

피앙….

마그타는 갑자기 일어난 공간의 일렁임에 웃음을 멈추고 학장을 바라봤다.

“…학장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단 제가 온 이유는….”

학장은 다시 미소를 짓고, 연구실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실기시험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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