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80화 (281/898)

EP.280 280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16)

쾅!

‘오! 반응 좋은데?’

나는 루이스가 책상을 내리치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딱 봐도 내 입 모양보다는 근처에 있던 여학생이 말실수하는 바람에 루이스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루나만 피 보고 있네.’

루나는 괜히 위로해주러 갔다가 루이스의 짜증만 옆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처음에 루이스에게 위로하러 간다고 했을 때, 살짝 질투심이 올라왔지만 내 입장에서 그녀의 행동은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는 남자인 내가 봐도 루나에게 완전 푹 빠진 상태였다.

그에 비해서 루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루나가 루이스에게 품는 감정은 남동생 정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나를 사랑하는 루이스의 감정, 루이스를 남동생으로 생각하는 루나의 감정.

모두 다 중요하다.

계속 쌓아가다가 루이스의 사랑하는 감정을 루나가 깨주게 만들려면 두 사람은 계속 저런 엇박자가 연속되는 관계를 지속해줘야 한다.

‘루이스 녀석이 발작하지 않게 루나가 계속 보살펴줘서 다행이다.’

[은혜를 잊지 않는 성격이 아마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루나에게 있는 [지은보은(知恩報恩)] 기질.

루이스 본인에게 은혜를 받은 게 아니더라도, 그녀가 이렇게 살아서 슈트라 마법 학교에 입학할 수 있던 건 전적으로 그의 가문 덕분이다.

루이스가 계속 귀찮게 굴어도 그를 쉽게 내칠 여자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뭐… 그것도 언젠가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

루나는 분명 언젠가 루이스와 나를 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그녀와 평생 옆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씨앗을 심은 상태다.

그에 비해서 루이스는 어디까지나 가끔 보고 싶은 친구로 지내고 싶은 남자라는 인식뿐이고.

하지만 씨앗도 꾸준히 깨끗한 물과 영양분이 풍부한 토양이 없으면 발아하지 않는 법이다.

나는 그녀의 내면에 있는 믿음의 씨앗에 깨끗한 물을 주고, 영양분이 풍부한 토양으로 계속 흙갈이를 해줘야 한다.

‘정액… 믿음의 씨앗을 키우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죠.’

[….]

깨끗한 수분과 훌륭한 영양분.

모두 갖춘 게 정액밖에 더 있겠어?

갑자기 믿음의 씨앗 생각에서 루나와 자고 싶다는 생각으로 뻗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복부에 흐르는 전율을 맛보고 있을 때, 마침 강의실로 조수들과 교수 두 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딱 봐도 한 교수는 저번처럼 정교수이고, 나머지 한 교수는 겸임 교수나 조교수인 듯싶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소냐가 없었다.

단상에는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파 교수가 서서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부속성 시험을 보겠습니다. 다들 알겠지만, 부속성은 과목이 학생마다 다릅니다. 시험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설명을 길게 하겠습니다.”

당연히 부속성은 모든 학생이 각자 다른 과목을 배우고 있어서 같은 속성끼리 강의실에 모이게 해서 시험을 치를 줄 알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강의실을 옮기는 일은 없었다.

다만 모든 학생의 배치를 교수들이 정해놓은 배치로 바꿔서 앉힌 다음 시험지만 따로 배분해서 시험을 보는 방식을 채택한다고 했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을 채택하는가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한군데에 몰려서 앉게 되면 나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죠. 의미 없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게 하려는 조치이니 다들 조수들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교체하시길 바랍니다.”

분명 말만 들으면 효율을 중시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뜻만 들으면 좀 다르게 들리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의미 없는 부정행위라…. 어차피 잡힐 거니까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구만.’

이어서 노파 교수는 시험 난이도에 관해 이야기도 했다.

“혹시라도 시험의 문제가 다르다고 난이도가 달아서 등수에 영향을 미쳤다는 소리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

과목이 다르면 당연히 시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난이도는 완벽하게 조절했으니 불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분이 보는 시험은 학장님, 대마법사 루트비히 리펜슈타인 님께서 난이도를 완벽하게 구성했습니다. 혹시라도 이상한 의구심을 품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수들이 가진 학장에 대한 충성심과 믿음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학장이 없는 자리라도 그에 대한 폄하는 절대 안 넘어갈 테니 주의하라는 경고처럼 들려왔다.

노파 교수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조수들이 일사불란하게 강의실 칠판에 자리 배치도를 적기 시작했다.

나는 배치도를 한참 보다가 피식 웃었다.

‘이야… 최고의 자리인데?’

..

..

사삭… 사사삭….

나는 펜촉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문제를… 베껴 적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내 옆에서 거기에 맞춰서 펜이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사삭… 사사사삭… 사삭….

다만 좀 다른 느낌이 있다면 나보다 좀 더 빠르다는 것 정도?

나는 히죽 웃으며 펜촉의 움직임에 좀 더 속력을 더해줬다.

사사삭… 사사사삭… 사사사삭.

내 소리에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은 흠칫 놀라면서 나보다 더 빨리 시험지에 펜을 유려하게 그어대기 시작했다.

사사사삭!! 사사사사사삭!

‘저 새끼는 진짜 푸는 거 맞나?’

내가 속으로 웃으면서 옆자리를 살며시 바라봤고, 옆자리에 있던 녀석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힐끗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시험 중에 이렇게 눈치를 보다가는 부정행위로 간주할 우려가 있었지만, 나나 옆에 자리에 있는 녀석은 해당 사항이 아니라 괜찮았다.

나는 지금 1학년 중에 단 한 명만 보는 뇌속성 시험을 푸는 중이고, 루이스는 지속성 시험을 푸는 중이라 부정행위는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오해를 사는 건 조심해야겠지만.

‘웃긴 놈일세.’

나는 루이스를 보면서 펭 웃으며 다시 시험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험 시작 전, 칠판에 자리 배치표가 적혔고 거기에는 나와 루이스는 바로 옆자리에 앉게끔 배치되어 있었다.

루이스는 내 옆에 앉자마자 불쾌감을 드러내며 비꼬는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단 한마디로 응수했다.

-느림보.-

“….”

으드득….

내 무언의 뻐끔거리는 입에 루이스는 이를 가는 소리로 응수해왔다.

문제는 내가 벌린 입은 소리가 나지 않는 무언이었다면 루이스의 이가 갈리는 소리는 강의실을 울리는 한편의 바이올린 현이 찢기는 소리와 같았다는 것이다.

“누가 소리를 냅니까. 아무리 부속성 시험이 눈치를 덜 본다고 해도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지 않게 주의하세요.”

“….”

노파 교수는 단번에 이갈이의 정체를 알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루이스 쪽을 노려봤다.

‘까비…. 퇴실 안 시켜주려나?’

[루이스의 시험지가 절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좋아!’

나는 그렇게 속으로 아쉬워했지만, 한편으로 희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천운을 놓칠 내가 아니다.

나는 최대한 속력을 내면서 해설지에 적혀 있는 수식들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아까는 루이스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적당히 즐기는 수준이었다면 나도 이제는 봐주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부분 문제가 뒤로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해도 루이스가 갑자기 풀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목적은 루이스의 페이스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과연 루이스는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 하나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자존심을 버리고 마시멜로 한 봉지를 기다리며 버틸 것인가.

갑자기 내 빠른 필기 소리에 루이스는 놀란 표정으로 내 쪽으로 힐끗 바라봤고, 나는 루이스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쥐새끼 꼬리 짓보다도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느.림.보오오오…”

“….”

아까 이를 가는 것 때문에 혼나서 그런지 옆에서 끙끙대는 루이스의 몸짓이 내 흰자위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사사사사사삭!!!

나보다 빠른 속도로 필기를 휘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루이스의 행동에 안심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야… 저거 진짜 푸는 거 맞겠지?’

[아마 허투루 풀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그저 베껴 쓰는 거라고 한다면 루이스는 중간중간 멈칫하면서 굳이 계산이 필요 없는 곳에서는 과감하게 암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도 대충 암산으로 넘어가는 척했지만, 루이스는 펜촉이 긁는 소리부터가 엘리트의 본질을 타고난 듯했다.

루이스의 재능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좋아…. 실수 한 번만 제대로 터지면 걷잡을 수 없겠는데?’

즐거웠다.

저런 재능인이 나같이 꼼수를 부리는 인간에게 밀리고, 더 나아가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그 쾌감.

거기다 그가 간절히 원하던 여자의 마음도 이미 내 것이었다.

과연 모든 것을 잃은 루이스의 표정은 어떨까….

[아직 시험이 종료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알지…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어.’

저 루이스가 절망에 빠뜨리려면 내가 저 녀석을 이겨야 한다.

실기가 불안하지만, 그 불안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최소한 루이스가 1등이라도 못하게 만든다면 승산이 있었다.

‘필기를 조지는 게 최고지!’

일단 내가 미치도록 베껴 쓰면서 다행이라고 여긴 점은 루이스가 이번에는 나보다 빨리 풀어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는 점이다.

확실히 그동안의 도발이 제대로 먹혀들긴 한 모양이었다.

루이스는 얼핏 봐도 광기에 젖은 눈빛으로 미친 듯이 문제를 풀어대고 있었다.

왠지 기질에 [노이로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드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험이 어느새 1시간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이야… 마지막 문제가 예술이네.’

부속성 시험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문제는 시험지 한 장을 통째로 쓸 정도로 어려워 보이는 문제였다.

나야 이해 못 해도 상관없지만, 루이스는 다를 것이다.

나와 동시에 마지막 장에 도착한 루이스는 두 차례 손가락을 움켜쥐며 손을 풀고는 바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시험 성적으로는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였지만, 나보다 늦게 풀고 싶지 않은 마음도 꽉 찬 모습이었다.

‘괜히 여유 부렸다가 정말 풀어내면 내가 골치 아파지겠지?’

지금 푸는 문제의 수준은 루나도 일찍이 풀었던 문제의 수준과 비슷했다.

예전에 루나에게 내준 5문제 중에 한 문제가 바로 루나가 보는 수속성 관련 부속성 시험의 마지막 문제의 변형된 문제였으니까.

루이스라면 분명 루나가 풀지 못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나조차 결국 못 푼 문제를 단시간에 푸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루이스가 한창 시험문제를 풀고 있을 때, 정답을 적고 일어섰다.

혹시라도 이번에는 다른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조용히 의자를 빼고 일어섰다.

“!!”

콰당!

내가 일어난 모습에 당황한 루이스가 갑자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반응 진짜 좋네.’

솔직히 이 정도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냥 시험문제를 후다닥 풀다가 실수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먼저 나갈 것 같으니까,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내 옷 소매를 잡아 버린 것이었다.

[정말 지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너무 좋은데?’

내게는 최고의 상황이었다.

루이스의 돌발행동에 강의실에 있던 모든 학생과 조수, 교수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특히 정교수로 보이는 노파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말했다.

“무슨 소란이죠?”

나는 교수를 향해 예의를 차리며 입을 열었다.

“그… 시험을 다 치렀습니다. 시험지를 제출하려고 합니다.”

“그럼 조용히 제출하세요. 지금 시험 중이니까.”

“죄송합니다.’

나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해 사과하고 어떻게든 루이스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루이스는 시험지를 뚫어지게 보면서도 내 옷소매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학생들도 어느새 시험지에서 눈을 떼고 우리를 보기 시작했다.

“야… 놔….”

“크읏….”

내가 왜 남자 새끼한테 옷 소매를 잡혀야 하는지….

덕분에 BL의 퀴퀴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더러운 시간이었고, 나는 빨리 손을 뿌리치려고 노력했다.

루이스는 손가락에 힘이 풀리면서 다시 쓰러진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루이스를 향해서 다른 학생들이 보이지 않게 입을 뻥긋거려줬다.

“평생 내 뒤에서 시험문제나 풀어라 느림보.”

“이 개새끼가….”

루이스는 의자에 앉지 않고 시험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갈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이스의 선택은 결국 억울한 표정과 함께 자리에 다시 앉는 것이었다.

루이스는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억울함을 넘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깝다.’

[정말 아쉬운 상황입니다. 정말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서 앞장서면 잠깐 기분이 좋을 수는 있지만, 결국 멍청한 짓에 불과하다는 걸 본인도 알 테니까.

‘박차고 일어나서 시험지를 제출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었겠지.’

나는 아쉬움을 속으로 삼키며 강의실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그렇게 강의실 입구로 향하는 중에 교수가 내 쪽을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학생. 지금 뭐 하는 거죠?’

“…네? 시험지 제출하려고 가는 중입니다.”

“아니.”

“…?”

교수의 시선이 내 어깨 너머로 관통하더니 뒤쪽에 동공의 빛을 맞췄다.

“그 뒤에 학생.”

“…네?”

루이스는 울먹이며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교수의 말에 대답했고, 교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시험지 제출 안 합니까?”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속이 안 좋아서 그랬습니다.”

루이스가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만년필을 잡는 순간이었다.

“속이 안 좋으면 시험 중에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배웠습니까?”

“…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루이스의 면상으로 교수가 일갈했다.

“지금 당장 시험지를 가지고 나오세요. 학생은 더 이상 시험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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