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9 279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15)
나는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서 바로 테라스로 나왔다.
“이야, 아침에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
예전에 테라스에 왔을 때는 저녁노을이 비치는 시간이라 노란빛으로 물들었다면 지금은 검은색과 하얀색의 장식들이 서로 어우러져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학교는 조용했다.
테라스로 오는 동안 학교 복도에서 감시하는 조교들이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긴 했지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나는 테라스에 도착하자마자 내 전용 좌석에 앉아서 편하게 등을 기댔다.
‘크으… 시험 기간 최고.’
[조디악이 알려준 문제가 그대로 나와서 다행이었습니다.]
시험지에 있던 문제.
나는 혹시나 해서 시험지를 전부 확인해보며 문제에 틀린 부분이 있나 한참을 찾아봤지만, 그런 부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조디악이 알려준 문제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출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험의 문제는 문제가 없었지만, 내 행동에는 문제가 조금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루이스와의 대결은 성적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굳이 빨리 풀어내실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자존심….’
[자존심 때문이십니까?]
‘아니… 나 말고, 루이스.’
루이스와 하는 내기는 필기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실기도 포함이었다.
지금 당장 필기로 이기거나 무승부가 되더라도 실기에서 압도적인 실력 차로 지게 되면 지금 만점은 전혀 소용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나마 보험을 들어놓으려고 하는 게 바로 필기시험을 보는 속도였다.
‘계속 도발해야지. 어차피 부속성 주속성 시험은 목요일, 금요일이잖아. 그때까지 계속 자존심 갉아 놓으려고.’
지금부터 수요일까지 보는 시험들은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험들이 아니었다.
그동안 계속 도발해서 제일 중요한 시험인 주속성, 부속성 시험 때 최대한 정신을 흐트러뜨릴 생각이었다.
루이스가 내 의도대로 따를지는 모르지만, 일단 자존심이 밥보다 중요한 놈이니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확실히 의심을 사더라도 이기려면 그런 방법도 좋을 거 같긴 합니다.]
‘거기다 루나도 내 실력 알아차리면 호감도 면에도 좋을 거 같아서.’
유치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성적표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분명 성적표가 나오면 루이스 녀석의 표정이 볼만할 테니까.
[전반적으로 도움이 되는 상황이지만, 나중에 부정행위로 몰아갈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내기에서 지는 것보다 일단 이기고 나서 뭔가 진행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그래도 나중을 대비해서 에넬은 최대한 쓰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응, 알았어.’
전부터 계속 귀찮게 해서 한번 제대로 먹이려고 했는데, 내가 먹히면 곤란해지긴 하겠지.
하지만 속으로 반성하는 와중에도 루이스의 표정이 상상되니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성적 나오면 제대로 놀려줘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 낄낄거렸다.
언제나 저녁노을에 비치는 평소와 봐왔던 테라스와 다르게 환한 햇빛이 비치니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암… 아르모니아, 다음 시험은 얼마 후야?’
[1시간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잠깐 눈 좀 붙일게.’
나는 눈을 감고 나중에 루이스에게 어떤 굴욕을 줄지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로 잠이 들었다.
..
..
“태평하시네요.”
“응? 아, 왔어?”
나는 흐리멍덩한 시야를 교정하기 위해 눈을 비비면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물었다.
“시험 잘 봤어?”
“…그게 할 말인가요?”
루나는 차분하게 내 옆에 앉더니, 훈계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뭘?”
“뭐라뇨…. 왜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그냥 나가셨냐는 거죠.”
나는 입을 가리며 크게 하품을 했고, 루나는 그사이에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품을 하고 나서 그녀를 나긋하게 바라봤고, 루나는 그런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기겠다고 하신 거 아니셨어요?”
“그렇지. 이겨야지.”
“그럼 도대체 왜….”
루나는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 지긋이 바라봤고, 나는 눈을 뜬 상태로 허공을 보면서 말했다.
“화속성. 특출난 장점도 없지만, 단점도 없는 효율적인 속성. 수속성, 운용력이 뛰어나며….”
“…? 갑자기 무슨 말씀을….”
“적은 마나를 소모하는 장점이 있다. 풍속성….”
나는 루나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내 할 말만 이어갔다.
루나는 처음에 나를 괴상한 인간처럼 보더니, 점차 표정을 굳히면서 내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마는 쓸데없는 말 하나 넣지 않고, 아까 작성한 답을 정확하게 루나 앞에서 이야기해줬다.
간단한 서술형 문제부터 깊은 수식이 필요한 문제까지 시험에 나왔던 문제의 답을 순서대로 나열해서 똑같이 읽어줬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거침없이 답안지를 쏟아냈다.
“그로 인해 나오는 답은 반올림 수치인 48마압과 7483마나.”
“마지막 수치…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48마압과 7483마나.
“….”
루나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서 루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답안지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어때? 대답이 충분했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니 덕분이야.”
“…네?”
나는 루나의 은빛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까 시험지 보니까, 니가 알려준 것들이 바로 떠오르더라. 고마워.”
“….”
루나는 침묵을 유지하더니, 내 팔을 살며시 끌어안고는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수호 씨랑 있으면 언제나 걱정투성일 거 같네요.”
“하하… 조심할게.”
나는 웃으면서 루나와 쉬는 시간을 보냈다.
..
..
사실 불안하긴 했다.
놈팽이만 지랄해서 내기를 무효로 하면 그래도 녀석의 자존심을 제대로 굽힐 수 있어서 남는 장사게 되지만, 만약 학교에서 직접 부정행위로 몰아가면 파산신청하는 신세가 되는 거니까.
그래도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이럴 때 한여름 새끼 있으면 자살시켜서 회귀하면 참 편한데….’
[….]
한여름 클론을 만들어서 여기에다가 가둬두고 필요할 때마다 죽이면 참 편할 텐데….
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
‘설마 재시험 보라고 압박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진짜 귀찮은데.’
[일단 조디악에 말은 해놓겠습니다만…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학장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학장이 나한테 뭔 짓을 하지는 않았단 말이지….’
애초에 학장이 나한테 악감정이 있었다면 당시에 정학이 아니라, 퇴학을 시켰을 것이다.
거기다 시험문제도 조디악 몰래 어떻게든 조작을 했을 가능성도 있고.
[그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 손으로 가리고 막 시험문제 몰래 적었을 수도 있잖아.’
[…그런 식으로 숨길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 저와 수호 님의 관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관음증 같은 거?’
[….]
왜? 나 관음하는 거 아니었어?
아르모니아는 나를 관음… 아니, 철두철미하게 감시하는 형태로 나를 매일 확인하고 있다.
내가 몰래 행동한다고 해도 내 시야를 아르모니아와 공유하기 때문에 몰래 하고 싶다고 해도 모든 것이 들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건 학장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거기다 조디악과 성전은 우리 쪽과 다르게 자신이 조종하는 주인공의 의지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속마음을 완전히 읽지는 못하지만, 자아는 대충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공유도 하고 있다고 한다.
학장이 빡치면, 조디악 측의 조종자도 빡치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기분이 흘러들어온다고 한다.
즉, 숨긴다고 해서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감정에서 불온한 감정이 느껴졌고, 행동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게 조디악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흥미가 있어서 그런가?’
전에 마왕도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굉장히 흥미롭게 본 경우가 있었다.
그냥 다른 세계 인물이라 흥미를 느끼는 건가 싶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사실도 제대로 대답을 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의하셔야 합니다.]
‘침묵 일관이라….’
내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시험지를 끄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수호 님, 루이스가 마지막 시험지를 풀고 있습니다.]
‘오케이.’
나는 적당히 시간에 맞춰서 루이스 녀석이 마지막 장을 풀기 전에 전부 풀어서 단상으로 시험지를 가지고 가서 제출했다.
이번에도 내 시험지를 받아준 건 소냐였다.
“…잘 보셨나요?”
“네.”
아까 걱정하는 표정과 다르게 미소를 지으며 내 시험지를 받아서 정돈하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어요. 내일 시험도 잘 보시길 빌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잠시 뒤돌아서 나를 노려보는 루이스에게 윙크를 날렸다.
‘오오… 이마에 튀어나온 혈관이 여기서도 보이네. 아르모니아.’
[네.]
‘저거 동영상으로 남겨줘.’
[알겠습니다.]
나는 실실 웃으며 루이스의 이마의 돋아난 아름다운 혈관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며 강의실을 나왔다.
..
..
나는 루나와 함께 테라스에 앉아서 그녀에게 내가 적어낸 정답을 술술 불어냈다.
루나는 한참을 집중하더니,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똑같네요.”
“다행이네. 너랑 똑같으면 다 맞았다는 소리니까.”
“…반대 같은데요? 저는 수호 씨 답 듣고 안심을 했는데?”
나는 피식 웃으면서 테라스 주위를 훑어봤다.
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오늘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나와 같은 반에 있는 학생들도 두루 있었다.
그 학생들은 나와 루나를 눈치를 보면서 계속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다.
나는 루나에게 말했다.
“너는 친구들이랑 가서 이야기 좀 하고 그래.”
“…수호 씨는 가서 친구 좀 만드는 게 어때요?”
응수 한번 기깔나게 하는구만….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내가 아니다.
“내가 지금 친구 만들 상황이 아니잖아. 그리고 너는 기껏 만든 친구 나 때문에 틀어지면 곤란하고.”
“…전혀 곤란하지 않아요.”
“하여튼 가서 대화 좀 나눠. 나는 기숙사에 갈게.”
“시험공부는요?”
“당분간 기숙사에서 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당분간은 친구들이랑 공부해.”
좀 차갑게 보일 수 있었지만, 나는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나야 혼자여도 괜찮지만, 루나가 간신히 사귄 친구들이 나 때문에 멀어질까봐 걱정됐다.
루나는 앉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거렸다.
“…나쁜 사람.”
“이따 저녁은 같이 먹자.”
“흥… 알았어요.”
나는 루나의 코웃음을 들으며 미소를 짓고, 기숙사로 향했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목요일이 되었고, 모든 학생은 부속성 시험을 앞두게 되었다.
다들 그간 치른 시험에 관한 이야기와 오늘 치를 시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느라 시끌벅적한 강의실에, 문이 열리면서 시선을 집중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존재는 루이스.
그를 보자마자 그의 추종자와 같은 여학생들이 달려들어서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루이스! 괜찮으세요?”
“어… 난 괜찮아.”
“다행이다… 정말 걱정했어요. 매일 불려가서 걱정했는데, 어떻게 해결되셨나요?”
“으, 응… 잘 해결했어. 걱정하지 마.”
루이스는 쓴웃음과 함께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의 이동과 함께 어미 새를 쫓아가는 새끼 새처럼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루이스는 그동안 시험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교수들에게 질책받으며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어떤 이유로 복귀를 하지 않은 건지, 신분을 이용해서 슈트라의 경비원들을 속인 이유까지… 낱낱이 물어봐 왔다.
다행히 큰 사건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루이스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시험이 끝나는 족족 징계실로 불려가서 취침 시간까지 반성문을 쓰는 처지가 되었다.
‘씨발…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루이스에게 이런 질책과 굴욕을 준 건 그의 부모님뿐이었다.
평생 부모님에게 말고는 질책을 받아본 적 없던 루이스에게 반성문을 작성하는 행위는 평생 간직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다행히 그 행위에 관한 이야기는 밖으로 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학처럼 기록에 남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야. 만약 기록에 남았다면 나중에 본국에서 아버지께 무슨 꾸중을 당할지….’
그는 부모님에 관한 생각에 잠시 몸을 오소소 떨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루나가 루이스 앞에 서서 그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루이스, 괜찮아?”
“어… 괜찮아.”
루이스는 루나의 배려에 기쁘면서도 창피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나 잘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루나에게 창피한 꼴만 보여주다 보니 그녀의 눈을 바라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루이스는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루나에게 물었다.
“루나, 시험 잘 봤어?”
“최선을 다했어.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하하… 루나 너라면 5위 안에는 무난하게 들지 않겠어?”
“글쎄….”
루나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루이스를 내려다봤다.
루이스는 그 모습에 마음에 안식을 느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루나… 저 녀석은 어때?”
“….”
루이스가 말하는 저 녀석의 존재를 루나가 모를 리 없었다.
루이스는 루나의 뒤편으로 성수호를 힐끗 바라봤고, 루나는 그런 루이스를 입술을 닫고는 계속 응시할 뿐이었다.
요 며칠간 루이스는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데, 성수호로 인해서 컨디션까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번 시험을 볼 때마다 자신보다 앞에 서서 시험지를 제출하는 성수호.
꼭 거의 다 풀어가면 성수호는 자신의 시험지를 꿰뚫어 보듯이 먼저 나가서 루이스를 매번 도발해왔다.
(느림보….)
(흥, 어차피 제대로 풀지도…)
(느림보.)
(이 새끼가….)
(느림보.)
(이 씨발….)
(느.림.보.)
성수호는 단 한 단어로 루이스를 계속 도발했고, 루이스는 어느새 성수호에게 저 단어를 들을 때마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반성문을 쓰면서도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한 단어.
느림보.
루이스의 머릿속에 또 단어가 울려 퍼졌고, 그는 양손을 꽉 쥔 채 부들거리며 성수호를 노려봤다.
그런 성수호가 루이스와 눈이 마주치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뻐끔거렸다.
-느림보.-
으드득….
루이스는 이빨을 갈면서 얼굴을 부들부들 떨었다.
루나는 그런 루이스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루이스… 지금이라도 그 내기, 그만두는 게….”
“아니, 그만둘 생각 없어.”
루이스는 루나의 씁쓸한 표정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루나가 아무리 부탁해도 내기를 무를 생각 따위는 없어. 어떻게든 시험에서 이기면 그동안 당해온 굴욕을 한 번에 갚아 주겠어.’
루이스가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 여학생들이 그의 눈치를 보며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그러게… 들어보니까, 시험도 굉장히 잘 봤다던데….”
“빨리 퇴실한 것도 너무 쉬워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루이스는 옆에 여학생들의 소곤거림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고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여학생들의 대화 내용은 루이스를 걱정하면서도 성수호를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동안 정학으로 공부도 제대로 못 하고, 언제나 자신보다 빨리 퇴실하는 성수호가 좋은 성적을 받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흥… 역시 멍청이들이라 이상한 소문에 휩쓸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보군.’
루이스는 그렇게 고개를 절레거리며 무시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가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말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흘러들어왔다.
“만약 저분이 정말 성적이 잘 나와서 루이스를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거야?”
“루이스보다 성적도 높은데, 빨리 풀면 그건 그거대로….”
“풀이 속도가 느린 게 나쁜 게 아니잖아. 성적만 잘 나오면 느려도….”
여학생들의 말과 함께 루이스의 머릿속에 또 성수호의 말이 울려 퍼졌다.
느림보!
쾅!
루이스의 책상에서 큰 타격음이 울려 퍼졌고, 여학생뿐만 아니라, 강의실에 있던 모든 학생도 다 쳐다보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잠시 씩씩거리더니, 붉어진 얼굴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미안….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나서….”
“죄, 죄송해요….”
“아냐, 나야말로 미안하지.”
루이스는 붉은색 이마를 꿈틀거리며 자신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성수호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성적은 이미 완승이야. 저 녀석이 잘 볼 리가 없어. 이번에는 내가….’
루이스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성수호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