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8 278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14)
“소냐 프리드리히.”
“…네.”
소냐는 한 교수의 앞에서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미세한 떨림조차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혹시 모를 머릿결조차 흩날릴까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긴장한 소냐를 향해 교수가 손을 아래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게. 누가 보면 자네가 큰 죄라도 진 줄 알겠네.”
“하지만 저로 인해서 교수님께서 피해를….”
소냐는 전날 루이스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현재 눈앞에 두고 있는 교수에게 외출 건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그 부탁으로 인해서 교수는 루이스를 찾느라 지금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는 밤을 새운 것치고 별로 화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다.
“피해는 무슨… 어차피 시험지 보안 문제 때문에 남아 있었던 거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오히려 자네가 걱정되어서 그렇네.”
“제 걱정… 말씀이신가요?”
“그래. 학생들한테 잘해주는 건 좋네. 내가 자네를 조교수로 추천한 것도 그런 이유가 컸으니까.”
“….”
소냐의 앞에서 있는 교수는 그녀를 조교수로 추천한 교수였다.
소냐를 추천한 교수는 그녀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말을 이어갔다.
“자네는 좀 이기적일 필요가 있어.”
“이기적….”
“그래. 학생들 한 명 도와주다가 자네가 발목이 걸리면 어쩌겠는가.”
“호, 혹시 조교수는….”
소냐는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불안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겨우 그런 걸로 조교수 승진 건이 무효화 되면 쓰겠나….”
“휴우….”
“이거 보게. 자네도 자신의 앞날이 중요하지 않은가?”
교수는 질타와 조언을 섞어가며 그녀에게 현 상황에 대해서 계속 상기시켜줬다.
“소냐 프리드리히. 학생을 가르치고, 위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네. 하지만 그렇게 모든 학생에게 정을 내주다가는 정작 진심으로 정을 주고 싶은 학생이 나타났을 때, 텅텅 빈 마음으로 그 학생을 대하게 될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이해했으면 됐네. 슬슬 시험 시간이군. 가세.”
소냐는 교수를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정을 주고 싶은 학생이라….’
소냐는 지금까지 모든 학생에게 정을 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호감이 생기지 않는 학생일지라도 그 학생의 미래를 위해서 정을 주며 교육열을 불태웠었다.
‘교육…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렇게 불타오르며 열심히 한 걸까?’
소냐가 처음부터 이렇게 열정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할 뿐, 학생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열과 성의를 다해서 학생을 가르쳤고,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그 행위에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
‘…조언을 최대한 마음속에 새겨 놓자.’
소냐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험 감독을 담당하게 된 강의실에 교수와 같이 들어갔다.
강의실에는 조교들과 많은 학생이 소냐와 교수를 향해 시선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학생 중의 한 명이 소냐의 눈에 들어왔다.
‘후후…. 시험 준비는 잘했으려나.’
소냐는 성수호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편애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소냐도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모든 학생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싶어도 결국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준 남자에게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강의실 단상에 교수가 올라가고, 소냐가 교수의 옆에 다소곳이 서서 학생들을 바라봤다.
단상에 올라간 교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험 방식에 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교수는 매년 하는 이야기지만, 처음 듣는 학생들을 위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대충 요약하자면 쓸데없이 의심 살만한 행동을 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푼 학생은 시험지를 건네준 후 퇴실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번 퇴실하면 다시 재입실이 불가능이었다.
“일단 기초 속성학부터 보겠습니다.”
교수의 말과 동시에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조교들이 교탁에 올려져 있는 시험지들을 일사불란하게 나눠 가진 뒤, 학생들의 책상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시험지의 크기와 페이지 수를 보며 표정으로 긴장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시험지는 대자보 크기의 종이로 15장이나 되는 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첫 시험, 그것도 제일 난도가 낮다는 기초 속성학부터 이런 분량으로 시작하니 학생들은 위압감에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첫 시험 보는 학생들의 모습은 다 똑같네.’
긴장하는 학생 중에는 루나와 루이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긴장감을 완벽하게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역시 루나 학생도 긴장하고 있네. 그리고… 응?’
소냐는 쭉 훑어보던 시야를 고정하고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소냐의 눈동자에는 성수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어머….’
소냐는 언제나 자신 앞에서 어리고, 재롱둥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모습과 다르게 차분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수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 모습이 있었네. 하긴… 남자다운 모습도 있으니까, 루나 학생도 좋아했겠지.’
소냐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기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교수가 강의실에 목소리를 울리며 시험 시작을 알렸다.
“자, 지금부터 2시간입니다. 시험지를 펼치세요.”
촤르르르륵!
단번에 펼쳐지는 시험지 소리가 강의실을 휘저으며 시험이 시작되었다.
소냐는 바로 학생들을 돌아다니며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최우선의 목표는 부정행위 방지.
단상에 교수가 전방을 확인하고, 나머지 인원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부정행위를 방지하는 시스템이었다.
소냐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뒤를 돌아다니며 시험지를 확인했다.
‘정말 균형이 딱 맞는 문제들이야. 언제나 생각하지만, 학장님은 대단하시네.’
소냐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시험문제를 대충 훑어봤고, 루나의 자리를 지나치며 그녀의 시험지를 확인했다.
루나는 보는 사람의 마음도 차분하게 만들 정도로 깔끔한 글씨를 써가며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성격처럼 정말 꼼꼼하네. 다른 학생들이라면 저러다가 시간이 지체되겠지만, 루나 학생은 빠르게 적어내니 시간은 전혀 부족하지 않겠어.’
소냐는 루나의 상태를 확인한 뒤 안심하며 다시 이동했고, 마침 루이스의 자리를 지나칠 수 있었다.
루이스의 시험지는 루나에 비해서 별로 글씨가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굉장해. 필요 이상의 계산은 암산으로 넘기는 건가?’
루이스를 보면서 인간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하지 못하는 소냐도, 학생으로서의 루이스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언뜻 보기에도 풀이 과정뿐만 아니라, 속도도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처음 시험지를 제출하는 건 루이스겠네.’
소냐로서는 루이스 이상의 속도를 내는 학생은 볼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왜냐하면 소냐 본인도 슈트라를 다니면서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 학생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인도 포함해서….
루이스의 지식은 아직 학생에 머물렀지만, 응용 수준은 교수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소냐는 그대로 다시 발을 옮겨서 다른 학생들의 시험지를 훑어봤다.
다들 고작 시험지 두세 장이 넘어갔을 뿐인데도 머리나 손톱을 뜯으며 무수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긴 저게 정상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가 기대하던 학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소냐의 입장에서 그의 마법 실력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그의 시험지를 보고 싶은 건 어디까지나 궁금해서였다.
‘음… 응?’
소냐는 자기 눈이 잘못됐나 하고 쓱쓱 비빈 다음 다시 확인했다.
성수호의 시험지는 깨끗했고, 그는 시험문제를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시험지를 계속 넘겨보며 문제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하물며 시험지 첫 장에 있는 제일 쉬운 문제들조차도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시험지를 쭉 훑어보는 건가? 아냐, 굳이 시간 아깝게 그럴 필요가 없는데….’
소냐는 시험 감독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사심이 담긴 표정으로 성수호의 뒤에서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냐의 걱정이 무색하게 성수호는 시험지에 전혀 펜촉을 대지 않고 있었다.
‘설마 정말 어려워서 그런가? 정말 정학하는 동안 배우지 못해서…?’
소냐는 자신의 시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처럼 성수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걱정하는 것과 별개로 계속해서 한 학생의 뒤를 염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아… 일단 다른 곳을 둘러보고 오자.’
소냐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뒤에서 펜촉이 종이를 자르듯 그어지는 소리와 종이가 흩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삭사삭…. 사삭사삭….
소냐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펜촉이 긋는 소리를 들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그래, 못 풀 리가 없지.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소냐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감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여러 학생의 시험지를 구경했지만, 그 와중에도 성수호 쪽으로는 일부러 발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소냐는 궁금한 것과 별개로 성수호가 자신의 시선에 의식해서 집중하지 못할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어느새 4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삭… 사사삭… 사사사삭.
만년필이 종이를 고문하는 소리만이 맴도는 가운데 강의실에 대리석을 찢을 듯이 긁어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끼이익!
“…?”
단상에 있는 교수뿐만 아니라, 강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마찰음을 향해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루나와 소냐, 루이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곳에 시선을 두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학생? 시험을 다 푸셨습니까?”
“네.”
“….”
성수호였다.
성수호는 시험지를 들고 어떻게 해야 하냐는 표정을 짓자, 교수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냐를 바라봤다.
“소냐 교수. 이제부터 입구에서 시험지를 거둬주세요.”
“네….”
소냐는 성수호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강의실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오는 성수호.
소냐는 강의실 입구에 서자마자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게 성수호에게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했나요?”
“네, 아마 주속성 시험을 보더라도 이것보다 최선을 다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성수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소냐의 귓속에 입을 대고 조용하게 속삭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소냐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교과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풀어내고 싶었어요.”
“…후후.”
소냐는 평소에 보여주던 철부지 같은 성수호의 모습을 보며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렇게 그의 시험지를 받아드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
두 번째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원래 시험이 아무리 쉬워도 1시간 전에는 학생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물며 일어나는 일이 일어나도 그건 대부분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다른 조교에게 부축 당하며 강의실을 나갈 때가 전부였다.
소냐는 지금까지 1시간 전에 모든 문제를 풀고 나오는 학생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두 명을 보게 되었다.
루이스는 교수에게 묻지도 않고 바로 강의실 입구로 나와서 소냐에게 시험지를 내밀었다.
“여기, 전부 풀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소냐는 루이스의 시험지를 잘 정돈한 뒤에 성수호의 시험지와 같이 단상 위에 올려놨다.
그런데 고작 단상 위에 시험지를 놓는 행위만으로 루이스의 심기가 불편했는지 소냐에게 불평을 내뱉기 시작했다.
“소냐 교수님…. 아무리 그래도 여기 있는 녀석의 시험지까지 챙겨주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루이스는 성수호가 옆에 대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의 폄하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도 안 했으면 시험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문제가 안 풀어진다고 포기나 하는 녀석의 시험지를 굳이 챙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루이스 학생… 지금 그 발언….”
소냐는 루이스가 추행했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불쾌감을 보이며 시험 중이라는 것을 잊고 그에게 일갈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 루이스를 보면서 성수호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느림보 주제에 말은 유창하게 하네.”
“이 새끼가….”
루이스가 성수호에 작은 도발에 걸려서 그를 향해 위협을 주려는 순간이었다.
“거기 학생들. 시험 끝났으면 빨리 나가세요.”
“윽… 네.”
루이스는 자신에게 벌점을 주고 더불어서 외출 건으로 질타를 한 교수의 일갈에 몸을 흠칫거리며 성수호를 보면서 비아냥거렸다.
“어차피 결과는 시험 끝나면 나올 거니까. 그때까지 실컷 허세 부려라.”
루이스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갔다.
그런 루이스의 모습을 보고 나서 소냐가 성수호에게 다정다감하게 말했다.
“시험 고생했어요. 다음 시험도 최선을 다하세요.”
“감사합니다.”
성수호는 미소를 지으며 교실을 나섰다.
그런 성수호를 보면서 소냐는 그의 시험지를 곰곰이 관찰했다.
‘…한 번 확인해볼까?’
시험지를 걷는 겸임교수가 내용을 본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소냐는 천천히 성수호의 시험지를 들어서 조심스럽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
..
어느새 강의실에는 절반의 학생들이 빠진 상태였고, 소냐는 한 학생의 시험지를 받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잘 보셨나요?”
루나는 살짝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소냐에게 대답했다.
“네….”
“…? 잘 본 것 치고 너무 기운이 없는데요. 혹시 몸 상태가 안 좋나요?”
“그게….”
루나는 그제야 성수호와 루이스의 내기에 관한 이야기를 소냐에게 할 수 있었다.
그냥 내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걱정인데, 시험까지 빨리 치르고 나간 성수호의 모습 때문에 계속 걱정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루나는 소냐에게 고민하더니 한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소냐 교수님… 이런 말씀 실례겠지만, 아까 수호 씨 시험지 보신 거 맞죠? 어떤가요?”
“음… 그건….”
소냐는 강의실을 정리하는 조수들과 단상에 있는 교수의 눈치를 보더니, 루나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소곤거렸다.
“직접 가서 물어보세요.”
“…네?”
“자… 가세요. 본인한테 물어보는 게 최고 아니겠어요?”
“그… 네….”
소냐는 루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를 조심스럽게 강의실 밖으로 안내했다.
소냐는 그렇게 강의실 밖으로 나간 루나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부럽네. 정말… 부러워….’
소냐는 루나의 시험지를 들고 씁쓸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강의실 문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