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70화 (271/898)

 ..

 ..

 오늘 오전 수업은 특수 마법학이었고, 루이스는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다.

 간혹 눈을 비비거나 기지개를 켜는 행동을 하긴 했지만, 수업 시간에 졸거나 벌점을 맞을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갑자기 날을 새면 생활 방식이 꼬이기 마련이다.

 나는 저녁이 될 때쯤에 루나와 같이 어김없이 도서관에 들렀고, 거기서 루이스를 만날 수 있었다.

 ‘하긴 겨우 하루 밤샌 걸로 컨디션이 갑자기 엉망이 되지는 않겠지.’

 루이스는 어제 앉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졸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루나는 다른 자리로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바로 그녀의 눈치를 무시하고 루이스 근처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루나는 그런 나와 루이스를 보면서 이마를 붙잡았다.

 “바보 같아….”

 사나이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에 바보 같다니….

 하지만 다행히 루이스도 그 말을 들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고, 나도 인상을 찌푸리며 녀석을 바라봤다.

 그렇게 밤샘 게임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

 ..

 탁…탁…탁….

 강의실에는 긴 침묵과 함께 교수가 대리석 바닥에 구두를 툭툭 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분명 강의실에는 수많은 학생이 앉아 있었지만, 다들 쥐 죽은 듯이 조용히 교수 쪽을 바라봤다.

 교수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신발 앞부분을 올렸다 내려치면서 강의실에 타격음을 울릴 뿐이었다.

 그렇게 수십 번의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교수가 주변 학생들을 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내 수업 시간에 자는 걸 보면 제 수업이 어지간히 지루했나 보군요.”

 “….”

 학생들은 교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교수는 학생들의 시선 회피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고,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려서 자는 학생의 정수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나는 이 상황에서도 세상모르고 자는 루이스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캬… 좀 만 버티면 기숙사 가서 실컷 잘 수 있었을 텐데.’

 이번 주의 마지막인 금요일 오전 수업, 그것도 수업 종료까지 한 시간을 남긴 시점에서 루이스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넉다운 되었다.

 수업 중간에 꾸벅꾸벅 조는 형태가 아닌 책상 위에 엎어져서 완전히 곯아떨어진 모습이었다.

 루나는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루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바보….”

 그리고 나도 봤다.

 설마 그 바보에 나도 포함되는 건 아니겠지?

 한창 교수가 루이스에 시선을 두고 있을 때 루나가 내게 고개를 슬며시 돌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요?”

 “아, 나는 괜찮아.”

 “….”

 루나는 걱정스러움과 의아함을 동시에 섞인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당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루나는 매일 나와 루이스가 새벽에 자지 않고 밤새워 공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잠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어도 내 수면 패턴은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기괴해 보일 것이다.

 루나 입장에서 나는 나흘간 한숨도 자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만 봐왔을 테니까.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루나를 보면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입을 열었다.

 “니가 알려준 부분만큼은 절대 틀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잠이 확 달아나더라.”

 “…정말이지.”

 루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정말이지… 보는 내가 조마조마했어요.”

 “알았어.”

 그렇게 우리 둘은 웃으면서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루이스는….

 “허허… 시험이 만만한가 보군요. 마지막 순간까지 자는 것을 보니…. 감점 10점입니다. 혹시라도 이 학생은 깨우지 마세요.”

 감점 10점을 받으며 수업 시간 끝까지 취침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

 “점심 정도는 같이 먹어도 되는데….”

 루나는 투덜거리며 동아리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친 뒤 루나는 성수호에게 같이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친구들이랑 먹어.)

 (…왜요?)

 (나는 지금 배고프지 않아서. 먹고 동아리실에서 보자.)

 성수호는 그렇게 말한 뒤 강의실을 떠났고, 루나는 결국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동아리실로 향했다.

 그리고 루나는 동아리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불현듯 떠올랐다.

 ‘아! 루이스!’

 루나는 성수호의 행동에 잠시 삐친 터라 루이스가 강의실에서 드러누워 자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애들이 깨워줬겠지?’

 워낙 유명 인물인지라 루나가 아니더라도 주변 인물이 분명 깨워줬으리라 판단했다.

 루나는 그렇게 뒤끝이 찜찜한 느낌을 받으며 동아리실 문을 조심히 잡고 열었다.

 ‘혹시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가서 확인해 볼까? …응?’

 루나가 동아리실 문을 열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성수호의 모습이었다.

 루나는 조심히 문을 닫고 고양이 발걸음처럼 사뿐사뿐 움직이며 성수호에게 다가간 뒤에 그의 옆자리에 있는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많이 피곤했겠지.”

 애초에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공부를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성수호는 꾸준히 해줬다.

 “바보 같은데… 왠지 모르게 이런 점이 좋네.”

 루나는 그 말과 함께 눈을 감으며 성수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기대기 시작했다.

 ‘어우… 안 되겠다. 가서 잠시 눈 좀 붙이자.’

 나는 졸음이 담긴 눈으로 간신히 앞을 보며 동아리실로 향했다.

 함선에서 정말 편히 잘 수 있었다.

 원래라면 적당히 0.1배 속을 하고 잘까 했지만, 아르모니아의 추천으로 함선을 일루니아 대륙이 있는 행성에 정박하고 0.01배속으로 해놓고 속 편하게 잠을 잤다.

 잠은 충분히 잘 수 있었다.

 문제는 내 생활패턴도 마냥 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은 16시간 깨어있고, 8시간 취침하는 것이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치면 나는 24시간 깨어있고, 10시간을 넘게 취침하는 식이었다.

 그야 루이스처럼 무식하게 잠을 안 자는 것과 비교하면 아름다운 인권이 보장된 수면이었지만, 나도 자고 일어나는 패턴이 꼬이니 몸에 피로가 서서히 누적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간단한 식사라도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에넬로 김밥 같은 것 좀 만들어줘. 그거 먹고 바로 자야겠다.’

 나는 동아리실에 들어가자마자 간단하게 뭔가 먹고 책상에 앉아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한창 꿀 같은 낮잠을 즐기고 있을 때, 팔 쪽에 누군가 감싸는 느낌과 함께 어깨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응?”

 “….”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루나가 내 팔을 살며시 끌어안고 어깨에 기대서 새근거리며 자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언제 왔었데….’

 [한 시간쯤 됐습니다.]

 ‘나도 엄청 깊이 잠들었었나 보네.’

 팔짱 낀 채 허리 펴고 자면 아무리 졸려도 얕은 수면이라 주변에 조그마한 반응이 느껴지면 깰만한데 한 시간 동안 반응이 없었던 걸 보면 나도 정말 피곤하긴 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 상태로 움직이지 않고 내 어깨에 고개를 눕히고 자는 루나의 모습을 계속 바라봤다.

 막상 이렇게 바라보니….

 ‘가슴 크긴 진짜 크네.’

 [….]

 저속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차분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까 체감이 되었다.

 루나가 귀족 출신에 실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평민에 평범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면 바로 여학생들이 따돌렸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유는 남자.

 지금 루나는 기품있는 외모와 행동 덕분에 주위에 있는 남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거기다 루이스와도 크게 접점을 두지 않으니 여학생들에게 자격지심을 심어주는 일도 없었다.

 나랑 이렇게 몰래 만나다 보니 남자에게 꼬리치는 이미지가 생길 일이 없어서 여학생들과도 두런두런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야 왕따든 뭐든 간에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루나가 나처럼 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루나의 머리카락이 살짝 흐트러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루나가 끌어 앉고 있는 반대 팔을 들어 올려서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 쪽으로 손을 옮겼다.

 종착지는 흐트러진 머리카락.

 하지만….

 말랑….

 ‘가슴 쩔어….’

 [….]

 나도 모르게 루나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누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렇게 쿡쿡 누르며 감탄하고 있자 번개 같은 속도로 루나의 손바닥이 내 팔을 강타했다.

 짝!

 “아얏!”

 “진짜 분위기 깨는 건 선수네요.”

 “깨어났어?”

 루나는 내 팔을 끌어안고 있는 상태로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깼었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설마 손이 아래로 갈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하하….”

 머리카락으로 향하던 손이 아래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도 봤나 보네.

 나는 뻘쭘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손이 마력에 이끌리듯 그쪽으로 가더라고….”

 “말을 못 하면 몰라요.”

 루나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풀고 차분히 앉아서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머리를 다듬고 있는 루나에게 몸을 기대며 속삭였다.

 “지금 하면 안 될까?”

 “…조금 있으면 저녁이에요. 또 도서관에 가실 거 아니에요?”

 루나는 딱 잘라서 안 된다고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렇지? 오늘도 가려고.”

 “그럼 피곤하실 거 아니에요. 참으세요. 읏….”

 나는 루나를 살며시 껴안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

 “오히려 더 힘들어질 거 같다면?”

 “참기 힘들어요?”

 “요 며칠간 너 옆에 두고 정말 힘들었어.”

 “…그럼 어쩔 수 없죠.”

 루나도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해주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바라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페로몬 중독에 걸렸는데도 꾸역꾸역 버티며 내 공부에 대해 가르쳐준 것을 보면 루나도 대단한 여자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 보상을 지금 해줄 타이밍이었다.

 나는 새침하게 앉아 있는 루나의 체취를 맡으며 그녀의 망토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

 강의실 한쪽에서 여학생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루이스….”

 “으응….”

 “루이스!”

 “흐엇!”

 루이스는 고막을 치고 들어오는 듯한 울림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바라보는 여학생들이었다.

 여학생들은 걱정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스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 사태 파악을 하려고 해도 뇌가 얼어버린 것처럼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루이스에게 여학생이 다시 물었다.

 “루이스 괜찮아요?”

 “어… 여, 여긴….”

 “강의실이에요. 얼마나 피곤하셨길래….”

 여학생들은 루이스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수, 수업은!?”

 “아까 진작에 끝났어요. 그리고….”

 여학생 중의 한 명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아까 있었던 일들을 전부 빠짐없이 루이스에게 알려줬다.

 루이스는 여학생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여학생에게 들은 이야기는 평생 있어서는 안 될 창피함이 모조리 담겨 있었다.

 수업 중에 졸았어도 창피할 마당에 아예 엎드려서 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시신경이 모두 몸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었다.

 교수의 질책, 교수의 벌점, 학생들의 눈초리.

 그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이미지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하루였었다.

 거기다 최악은 루나와 성수호가 보고 있었다는 사실.

 ‘루나랑 그 새끼도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 씨발!!’

 유치한 싸움이라는 건 루이스도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치한 싸움에서 굴욕적으로 졌고, 무엇보다 그 지는 과정이 수치심을 한없이 유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씨….”

 “루이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시는 게 어때요?”

 “맞아요. 요새 밤새워 공부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하마터면 입 밖으로 욕설이 나올 뻔했지만, 루이스는 걱정하는 눈빛을 내보내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하하… 걱정해줘서 고마워.”

 루이스는 시뻘게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해가 떠 있는 낮이었지만, 옆으로 서서히 기우는 태양의 상태가 저녁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잠깐… 성수호 그 새끼는 지금 어디 있지?’

 루이스는 나흘간의 유치한 싸움으로 정신을 못 차려서 그의 행동에 제대로 의구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너무 졸린 나머지 뇌세포가 파괴되는 와중에도 이겨야겠다는 강박만이 그의 뇌 속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성수호는 분명 자신과 같이 잠을 자지 않았었고, 분명 지금쯤이면 어디서 자고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 녀석 도서관 오기 전에는 어디서 공부를 한 거지?’

 루이스는 오전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언제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성수호는 저녁이 되어서야 꼭 도서관에 나타나던 게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도서관 어딘가에서 공부를 하는 걸 거라는 생각만 했을 뿐, 다른 의심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새끼 설마….’

 루이스는 자신을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여학생 무리를 보며 쓰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 깨워줘서 고마워.”

 “어? 마침 저녁 시간 다 돼 가는데. 저녁이라도 같이….”

 “미안! 나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시험 끝나면 꼭 시간 내서 같이 먹자.”

 “네….”

 여학생들은 시무룩한 얼굴을 하며 루이스를 배웅했다.

 루이스는 그런 여학생들을 놓고 교실 밖으로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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