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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69화 (270/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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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흘러서 어느새 도서관에는 발걸음 소리조차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사람의 온기가 없어지니 도서관 내부도 쌀쌀한 새벽 공기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내부인들에게 나가라고 무언의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직사각형의 광활한 책상에는 어느새 나와 루나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허리를 폈고 앉아 있는 건 나 뿐이었다.

 루나는 어느새 책상에 엎드려서 새근새근하며 잠에 빠져 있었다.

 깊은 수면에 빠진 루나의 몸에는 내 망토가 올려져 있었다.

 ‘흠… 슬슬 깨워야겠다.’

 원래는 루나가 중간에 깨면 정신 차리게 한 뒤에 기숙사로 보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도통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재미있는 건 내 망토를 손에 움켜쥐고는 얼굴로 비비며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평소에 기품있는 모습과는 꽤 거리가 있는 루나의 모습은 신선했다.

 “루나.”

 “으읏… 으?”

 루나는 내가 흔들자 놀라서 뒤척인 뒤에 허리를 펴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게 상황 파악과 동시에 입을 가리고 작은 입술로 하품을 했다.

 “지금 시간이….”

 “꽤 늦었어. 먼저 들어가서 자.”

 “아뇨. 이왕이면 같이….”

 “아냐. 나는 아까 가르쳐준 부분 좀 더 보고 갈게. 먼저 가서 자.”

 “싫은데….”

 루나는 잠에 취했는지 투덜거리며 혼자 가기 싫다고 했지만, 나는 다음 날 컨디션을 앞세워서 그녀를 설득했다.

 “괜히 내일 수업 시간에 졸지 말고 빨리 돌아가.”

 “…알았어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여기 망토… 고마워요.”

 루나는 내가 덮어줬던 망토를 단정하게 갠 다음 양손에 올린 뒤 내 쪽으로 뻗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망토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냐, 지금 쌀쌀하더라. 그거 걸치고 가.”

 “…고마워요. 내일 돌려줄게요.”

 아까는 그렇게 치고받으며 가기 싫다고 생떼를 부리더니, 망토를 주는 건 단번에 오케이를 하며 살며시 어깨에 걸쳤다.

 “그럼… 무리하지 마세요. 여기서 주무시지도 마시고요.”

 “알았어. 조심히 들어가.”

 루나는 정말 피곤했는지 몸을 휘청거리며 책상을 정리하고는 출구로 향했다.

 그렇게 출구로 향하면서도 나를 몇 번 힐끗거리더니 피식 웃으며 자리를 완전히 떠났다.

 그렇게 루나가 떠나고 나니 내 주위에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도서관 내부는 환한 불빛으로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너무 조용하니,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야, 내가 무서운 거에 면역이 돼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살짝 무서웠을 거 같네.’

 [공포 게임을 많이 해보셨습니까?]

 ‘아니, 현실이 공포였거든.’

 [….]

 누나 새끼 돌아다니는 집이 귀신의 집이 아니면 뭐겠어.

 맨날 갑툭튀 하는 년 때문에 자위하다가도 놀라서 나자빠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상 자위조차 박살 내던 누나 새끼….

 ‘나도 그냥 가서 잘까? 보는 눈 없으면 굳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사실 내가 이 시간까지 여기에 있던 건 루나한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필기는 필살 루트가 있었고, 귀찮게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책을 덮고 정리를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내 등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자는 머리에 들어오냐?”

 “….”

 나는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고 책상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내 무시에도 불구하고 뒤에서는 놈팽이의 목소리가 쉴새 없이 들려왔다.

 “가려고? 한 글자라도 더 쑤셔 넣어야지 꼴찌는 면하지 않겠어?’, “하긴 너 같은 녀석은 백날 공부해도 머릿속에 남지 않겠네.”, “그래, 지금이라도 가서 잠 많이 자 둬라. 그래야 나중에 내 뒷바라지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테니까.”

 루이스는 내 뒷덜미를 향해서 쉴 새 없이 조잘조잘 말을 걸어왔다.

 ‘루나가 떠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구만….’

 [빨리 자리를 이탈하는 쪽이 수호 님을 위해서 좋을 거 같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지금 당장 이놈이랑 말싸움해봤자 나한테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놈팽이가 내뱉은 대사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놈팽이는 도서관에 비웃음 소리를 내면서 말을 내뱉었다.

 “루나가 졸리다고 자러 가는 네 녀석의 모습을 보면 뭔 생각을 할까.”

 “….”

 나는 가지런히 놓인 책을 놓고 아르모니아에게 물어봤다.

 ‘아르모니아.’

 [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나는 아르모니아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고,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가능합니다.]

 ‘좋아….’

 나는 아르모니아의 대답을 들은 뒤에 책을 그 자리에 놓고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책을 전부 놓고 떠나자 루이스가 나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품위라고는 쥐뿔도 없는 거냐? 귀족도 아닌 녀석이 책을 이렇게 어지르고 간다고? 당장 사서에게 말하면….”

 “가는 거 아니다.”

 “…?”

 “화장실 갔다 오려는 거다.”

 “흥….”

 루이스는 내 말을 듣고 콧바람을 날리며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나는 속으로 걸렸다고 외치며 입을 열었다.

 “루나가 스토커 같이 쫓아다니는 니 녀석의 존재를 알면 뭐라고 생각할까?”

 “…뭐?”

 루이스는 바로 반응하면서 내게 다가와서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누가 스토커냐…. 나는 그저 공부하러 왔을 뿐이다.”

 “오… 그럼 계속 공부할 거냐?”

 “흥, 내가 너처럼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그래.”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화장실로 향했고, 루이스가 정확히 들을 수 있게 나불거렸다.

 “루나가 좀 졸리다고 애처럼 징징거렸던 니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생각할까?”

 “네가 감히 나한테 그런 소리를….”

 “뭐, 더 공부하려고 하던가. 나는 화장실 갔다 온다.”

 나는 루이스의 대답을 무시하며 화장실로 향하면서 아르모니아에게 통신했다.

 ‘아르모니아, 워프 준비해줘.’

 루이스는 성수호가 떠난 자리를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는 속으로 분을 삭였다.

 지금 당장 떠나는 순간 패배자의 모습으로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가… 내가 왜 저런 녀석한테….’

 루이스도 도발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성수호에게 루나를 걸고 넘어뜨리려고 하다가 오히려 자기가 걸려서 진흙밭에 구른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고 싶은 마음 따위는 단 1도 없었다.

 ‘어차피 머리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 내용 억지로 넣으려고 하면 알아서 나가떨어지겠지.’

 루이스는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괜한 자존심으로 객기를 부리는 성수호의 모습을….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며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멍청한 녀석… 내가 너처럼 밤새우면서 공부한다고 타격 하나 입을 줄 알아?’

 루이스는 성수호가 처절하게 버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때, 마침 성수호가 나타나서 루이스를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성수호의 동공에 담긴 졸음은 설원에 눈처럼 수북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책상 위에 엎어져 자겠군.’

 루이스가 성수호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자 성수호가 뚱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진짜 안가냐?”

 “이왕 온 김에 공부하려고. 나는 너처럼 하찮은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거든.”

 “그래.”

 성수호는 뚱한 표정을 유지한 채 책상에 앉아서 기지개를 크게 켜더니, 공부를 시작했다.

 ‘…착각인가?’

 처음 성수호의 모습을 봤을 때는 졸음을 참는 듯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성수호의 모습은 한창 자고 일어나서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런 성수호의 모습을 보고 루이스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리를 비운 게 고작 해봐야 10분도 안 돼. 그사이에 자봤자 얼마나 잤겠어.’

 루이스는 바로 긴장을 풀고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왕 공부하는 거 다른 속성 공부나 해볼까? …아냐. 굳이 쓸데없는 지식을 주입할 필요는 없지.’

 루이스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화속성에 관련된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

 ..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던 도서관에 한 여자가 들어와서 성수호와 루이스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 왜 같이 있어요?”

 “어? 뭐야?”

 “루나…?”

 성수호는 루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이스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관자놀이를 세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가 두통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성수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벌써 아침이야?”

 “설마 밤새 여기서 공부했던 거예요?”

 “어… 그런 거 같은데? 나는 아침인 줄도 몰랐어.”

 “맙소사….”

 루나는 성수호에게 다가가서 그의 상태를 점검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상태를 봐줘야 할 건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밤새 피로에 동공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최대한 참으면서 성수호가 꼬리를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루이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수호는 오히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공부에 빠져드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었다.

 ‘어차피 수업은 어렵지 않아서 상관없지만….’

 루이스는 지금 당장 드러누워서 자고 싶은 심경뿐이었다.

 하지만 루나 앞에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거기다 이제 오전 수업을 앞둔 상황이었다.

 루나는 성수호의 머리를 슬며시 다듬어 주면서 입을 열었다.

 “일단 두 사람, 빨리 아침 식사하러 가요. 오늘 왜 안 오나 기다렸어요.”

 “아, 갑자기 배고파지네. 루이스, 진짜 대단한데? 이 시간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흥… 내가 너 같은 녀석한테 칭찬받으려고 공부하는 줄 알아?”

 루이스는 루나 앞에서 모욕당하는 느낌이 들자 잠결에 화를 내려는 순간이었다.

 성수호는 오히려 역으로 도발을 걸어왔다.

 “나는 오늘도 밤새워 공부하려고 하는데. 너도 할거지?”

 “내가 왜 너랑…!”

 “아니면 졸린 것도 못 참을 정도로 인내심 부족이라 어쩔 수 없나?”

 “…웃기지 마. 내가 너처럼 그렇게 나약한 놈인 줄 알아?”

 “그래, 그럼 이따 보자.”

 성수호는 책상을 정리하고는 웃으며 도서관은 나갔고, 루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루이스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루이스, 너무 무리하지 마. 나는 두 사람이 내기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어느 한쪽이 큰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해서 중재를 하는 것뿐이야.”

 “루나….”

 “그럼 이따 수업 시간에 보자.”

 루나는 그렇게 루이스에게 미소를 지으며 위로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런 루나에게 잠시 위로를 받은 루이스는 성수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부르르 떨었다.

 “성수호…. 내가 너 같은 놈한테 질 줄 알아?”

 루이스는 이를 으드득 갈면서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도서관을 나갔다.

 ***

 나는 루나와 같이 아침 햇살을 맛보면서 통신으로 흥얼거렸다.

 ‘이야… 이거 좋은데?’

 [루이스 브란트루프가 자존심이 세서 그런지 잘 먹혀 들었습니다.]

 어제 도발이 잘 먹혔는지 루이스는 내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로 화장실을 갔다 온 뒤에는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화장실을 갔다 온 뒤에 말이지….

 ‘역시 잠자리는 함선이 최고야.’

 나는 화장실을 간다는 명목하에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 사이에 함선으로 이동해서 슈트라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동안 편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슈트라에 있는 내 기숙사 방은 입학 당시의 낮은 등수 덕분에 시설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침구류도 형편없었고….

 그에 비해서 내 집무실에 있는 침대는 천사의 품에 안기는 안락함을 선사해줬다.

 ‘집무실 침대 좋더라.’

 […만족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런 것도 다 에넬로 만든 거야?’

 […아닙니다. 그 침대는 예전에 손재주가 좋았던 자가 만들어준 것입니다.]

 ‘오호… 누구?’

 […예전 직원입니다.]

 …아까부터 뜸을 들이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물어봐도 대답해줄 거 같지 않았다.

 언제나 생각했지만, 아르모니아는 비밀이 참 많은 여자다.

 에넬 다 모으면 그 비밀을 전부 알 수 있겠지?

 내가 그렇게 아르모니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며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 걷고 있던 루나가 나를 보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무리를 하셨어요?”

 “응? 아… 잠깐 공부한다는 게 어느새 아침이더라.”

 “…정말이지.”

 루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내 앞에 서서는 나를 가로막았다.

 뭔가 싶어서 루나를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품에 안고 있던 내 망토를 크게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펼친 망토를 내 어깨에 조심스럽게 둘러준 다음 단추를 잠그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하하… 나 이래 봬도 잠이 적은 편이라 괜찮아.”

 “…들었던 대로 남자들은 정말 말을 안 듣네요.”

 루나는 피식 웃으며 단추를 잘 잠갔는지 확인한 뒤에 말했다.

 “망토… 정말 잘 썼어요.”

 아침에 넥타이를 매주는 와이프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슬쩍 망토에 묻어 있는 루나의 체취가 나는 것을 느끼며 냄새를 맡아봤다.

 “설마 기숙사에 가서 이거 덮고 잤어?”

 “저, 저를 뭘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루나는 내 말에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고, 나는 그런 루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덮고 자면 어때서?”

 “네?”

 루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루나를 옆에 두고 정면을 보면서 말했다.

 “니가 내 망토를 어떻게 쓰든 상관없어. 너한테 어떤 식이든 도움이 되라고 넘겨준 망토였으니까.”

 “….”

 “자, 이러다가 수업 늦겠다. 빨리 밥 먹으러 가자.”

 “…네.”

 루나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내 옆에서 살랑살랑 나와 발을 맞춰서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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