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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지긋이 먹는 교수 세 명이 테라스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또 시험 기간이군요.”
“네, 학장님께 시험 내용 평가받으려면 또 골치입니다.”
“뭐, 워낙 꼼꼼한 분이시니까….”
세 교수는 지금 학교에 제일 중요한 행사인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학년의 시험 문제는 교수들이 만들고, 교수들이 만든 모든 문제를 학장이 단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평가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치르는 모든 시험 문제는 학장에게 평가받아야지 비로소 시험지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뇌속성… 학생이 있다면서요?”
“아… 한 명 있었지. 그거 시험 어떻게 본답니까?”
“…학장님이 필기랑 실기 둘 다 직접 나서서 해결하신다더군.”
“어이구…. 그 학생 무슨 죄랍니까.”
질문을 했던 교수는 웃으면서 일면식도 없는 학생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한 교수가 이 중에 제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교수를 향해서 묻기 시작했다.
“마그타 교수님, 저번에 그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마그타 거트. 현재 슈트라의 수석 교수로, 교수 중에서는 최연장자인 노파 교수였다.
하얀 머리의 노파 교수는 대답해줬다.
“아… 죽은 조교수 사건 말인가?”
“네, 생각보다 조용해서 놀랐습니다. 지금쯤이면 범인을 잡았을 줄 알았는데.”
“그거 묻혔어.”
“…네?”
다른 교수도 무슨 소린지 몰라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노파 교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지속된 시선을 받던 마그타 교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읊조렸다.
“학장님께서 조용히 넘기라더군.”
“…진짜입니까?”
“학장님이 학교의 인물이 죽었는데, 그냥 넘어가라니….”
두 사람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해고가 확정됐다고 해도 죽었던 조교수는 아직 슈트라 소속이었다.
학장은 아무리 세간에 악인이라고 평가받는 자라고 해도 자기 편은 확실히 챙기는 인물이었다.
지금 테라스에 있는 세 교수의 나이만 평균 90이었다.
그들도 슈트라에 입학하면서 70년간 학장을 봐왔고, 학장이라는 인물을 그렇게 알고 지내왔었다.
“학장님이 내리신 결정이니, 현명한 이유가 존재할 걸세.”
마그타 교수는 별일 아니라는 듯한 눈빛으로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그런데… 자네들 혹시 요새 학장님이 달라진 거 느껴지나?”
“네? 글쎄요… 제 눈에는 언제나처럼 기분이 좋으신 거 같습니다만….”
“마그타 교수님이야, 슈트라에 입학하셨을 때부터 짝사랑하셔서 그렇지, 저희는 그냥 존경만 해서 그런 부분까지는….”
“이런 미친놈이!”
마거트의 버럭거리는 외침에 두 교수는 웃기 시작했다.
마거트는 그들의 웃음에 동조해서 미소를 띠었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석연찮음을 완벽히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착각하는 건가?’
그녀는 그의 곁에서 제일 오랜 시간을 보내온 수석교수였다.
분명 겉으로 언제나 웃고 있고, 보기에도 평상시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그타 교수는 학장에게 알 수 없는 이질적인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거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장님이 갑자기 변할 리도 없지.’
그렇게 마그타 교수는 학장에 관한 생각을 접고 다시 교수들과 다른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
루나는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열혈 강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일단 시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져요. 필기와 실기.”
일단 필기의 범주는 전 과목으로, 지금 배우고 있는 과목은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과목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속성 과목이에요.”
화속성, 수속성, 풍속성, 토속성, 뇌속성.
주속성과 부속성 과목은 소위 속성 과목이라고 해서 제일 중요하게 여겨진다.
“주속성과 부속성 시험은 총점수에서 70점의 점수를 가지고 가요.”
“100점 만점에 70점?”
“네, 그만큼 중요하죠.”
그 외의 과목, 특수 마법학이라든지 기초 속성학 등등의 과목들은 다 합쳐도 고작 30점이라고 했다.
즉, 주속성과 부속성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실기인데…. 이건 주속성과 부속성만 보게 될 거예요.”
“아하….”
“그런데… 저도 지금 실기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아요.”
루나가 알아낸 바로는 하루 만에 끝나는 시험이 아니라고 설명해줬다.
총수업은 2주간 진행된다.
1주일은 필기, 나머지 1주일은 실기.
그리고 실기는 교수 앞에서 잠깐 재롱을 부리는 식으로 진행하는 시험이 아니었다.
다만 루나도 반에 친분이 있는 학생들에게 얼핏 들은 게 전부인지라 정확하지 않다고 설명해줬다.
“실기는 매년 다른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해서 정확하지는 않아요.”
“그래….”
난감한 상황이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정작 그 부분을 해결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실기가 제일 마지막이니까. 그때까지 에넬이라도 최대한 모아놔야겠다.’
현재 일주일에 십만 에넬씩 받는 상태였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에넬은 대략 20만.
실기를 볼 때쯤이면 50만이 될 것이고, 필요하다면 50만을 전부 사용해서라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구안해내야 했다.
이렇게 되니, 또 할 게 없어진 상황이 되었다.
어차피 나는 필기를 공부해도 의미가 없었고, 어디까지나 실기만이 제일 중요했는데….
나는 슬며시 일어나면서 열창을 하듯 설명하는 루나에게 살며시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짝!
“아얏!”
루나가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찰싹하고 때렸다.
아픈 건 아닌데, 뭔가 소리가 경쾌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와버렸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서 루나가 입술을 오므리더니,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적당히 넘어갔지만, 오늘은 안 돼요!”
“그치만….”
“하아… 지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수호 씨가 더 잘 아시잖아요….”
내 시무룩한 표정에 마음이 살짝 풀어졌는지 표정을 풀면서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았다.
“저는 루이스가 수호 씨에게 무슨 짓을 할지 걱정돼서 그래요.”
“그렇긴 하지만….”
“…알았어요.”
“오!!”
내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루나를 와락 끌어안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루나는 허락한 것과 반대로 양 손바닥을 펼쳐서 내 가슴에 감싼 뒤에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만약….”
“…?”
“만약에 수호 씨가 루이스와의 내기에서 이기면 그때 하고 싶은 거 전부 해드릴게요.”
“…정말?”
“네, 대신 지금은 안되고… 응?”
나는 루나가 말을 마치기 전에 책상에 앉아서 열정적인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자! 빨리 공부하자!”
“정말이지… 당신이라는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루나는 웃으면서 다시 시험에 관해서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철컥!
성수호가 동아리실 문을 잠그고 있을 때, 그의 뒤에서 서 있던 루나가 입을 열었다.
“저녁 먹고 나서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해봐요.”
“그래. 그런데 저녁은 따로 먹자.”
“…왜요?”
성수호의 등 뒤에서 루나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동아리실 문이 확실하게 잠긴 것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보니까 너도 친구 생겼던데, 나랑만 밥 먹으면 그렇잖아. 밥 정도는 친구랑 먹어.”
“굳이 그럴 필요는….”
“내 말 들어. 나야 같이 있으면 좋지만, 친구도 중요하잖아.”
“치….”
루나는 툴툴대면서도 바로 성수호의 말에 수긍했다.
‘생각해보면 실기 쪽은 나도 정보가 부족해. 애들한테 정보를 알아내야 해.’
루나는 최대한 그를 돕고 싶었다.
루이스와 척지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루나에서 성수호라는 인물은 그녀의 큰 부분을 차지한 상태였고, 루이스의 철부지 같은 행동에 더는 따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아무리 루이스의 집안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그와는 결국 친구 사이였다.
루나는 루이스가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저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성수호의 곁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짜증이 나서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루이스도 언젠가 이해해주겠지….’
그녀가 그토록 성장하고 싶은 갈망을 품고 있는 이유는 바로 루이스의 집안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루이스도 포함이었다.
하지만 루나에게 루이스는 이성이 아닌 가족 같은 존재였다.
결국 남동생 같은 존재와 진심으로 가족이 되고 싶은 존재 중에서 후자에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루나는 최대한 성수호의 편에 서면서 천천히 루이스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성수호가 너무 처참한 성적을 받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만약 수호 씨가 지면… 내가 어떻게든 루이스에게 부탁해서라도 무마시켜야지.’
루나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성수호에게 말했다.
“그럼 저녁 먹고 도서관 입구에서 봬요.”
“응, 이따 보자.”
루나는 혹시라도 친한 학생들이 이미 밥을 먹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식당으로 빠르게 향했다.
..
..
“작년에는 예술적인 형태로 마법을 표현하라는 게 1학년 봄학기 실기시험이었대.”
“그리고 가을학기 실기는 실용적인 마법을 고안해내라는 거였고.”
“…매년 달라지는구나.”
루나는 같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루나나 성수호와 다르게 여기 있는 여학생들은 대규모나 소규모 동아리에 몸을 담은 상태였고, 선배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듣고 있었다.
루나는 그 덕분에 필기에 대해서도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실기는 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응용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루나는 성수호가 걱정되는 한편 또 기대하기도 했다.
‘필기는 약해도 오히려 독특한 분야에서는 강한 타입이니까. 괜찮을지도 몰라.’
루나가 성수호와 가까워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그의 마법진 구사 능력을 알게 된 일 때문이었다.
간혹 엉성한 면을 보여주는 성수호였지만, 독특한 부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그였기 때문에 루나의 마음속에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면 결국 필기를 잘 봐야 해. 당분간 빡빡하게 가르쳐줘야겠어.’
루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여학생들과 계속 식사를 이어갔다.
***
슈트라 마법 학교에 있는 도서관은 대륙 최대 명문 학교답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학교 내에 있는 건물 중에서 제일 크고 웅장한 외관을 가진데다가 내부는 먼지 한 톨 날아다니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비록 학생들이 열람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 한정된 부분조차도 대륙에 있는 왕립 도서관에 버금갈 정도의 지식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런 도서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와, 사람 많네.”
시험 기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도서관에는 어마어마한 학생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 때문에 아무리 조용히 움직이고, 책장을 넘긴다고 해도 결국 작은 소리가 뭉치면서 내가 살던 세상에 있던 카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카페 분위기가 풍기는 도서관 내부를 루나와 같이 돌아보면서 대화를 나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공부만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네.”
“네, 아마 시험 기간이라 그런가 봐요.”
갑자기 고함을 지르지 않는 한 학생들도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모여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나와 루나는 책 몇 권을 고른 뒤에 직사각형의 광활한 테이블에 같이 앉아서 책을 펼쳐봤다.
우리가 도서관에 와서 공부하는 이유는 심플했다.
루나가 우등생이긴 했지만, 천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성실히 수업받았다고 해도 결국 그 모든 것을 기억해놓고 응용하는 건 재능이 필요했다.
루나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건 맞지만, 결국 노력이 가미되지 않으면 평범한 학생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성전이나 조디악의 선택을 받지 않은 루나는 가지고 있는 재능을 계속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는 루나는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세상 불합리하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에넬로 능력을 올리는 녀석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거 아냐.’
[원래 세상은 불합리합니다. 희대의 재능을 타고났어도 고아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는가 하면, 재능 하나 없이 태어나도 천운의 환경을 타고나서 최상위 계층에서 군림하는 자도 있습니다.]
루나는 평생 모를 것이다.
자기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불행한 건 아니다.
결국 노력하며 자기 삶을 살아간다면 그건 자기 자신의 주인공이 되는 길이니까.
루나는 그런 길을 착실히 밟아가면서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뚫어지게 바라보자 루나가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기 시작했다.
루나는 뚱한 표정으로 내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또 이상한 생각하시는 거죠?”
“….”
내 이미지가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구만.
나는 속으로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거 아냐. 그냥…. 미안해서.”
“…뭐가요?”
“괜히 나 때문에 너 공부할 시간도 줄어들고 있잖아. 생각해보면 내가 많이 이기적인 거 같아.”
“….”
루나와 다르게 나는 이 슈트라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다.
여기서 실패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루나는 아니다.
그녀에게 이 세계는 처음이자 마지막 세계이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그녀의 시간을 뺏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적지 않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루나는 그런 내 얼굴로 천천히 손을 뻗어 왔다.
가느다랗고 하얀 살결에 생기가 담긴 손가락들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아… 야야야얏.”
내 볼을 꼬집고는 쭈욱 당기기 시작했다.
엄청 아프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당기는 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창 내 볼을 당기던 루나는 손가락을 놓고 나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야… 내가 너 공부하는 시간을 뺏고 있잖아.”
“전혀 그렇지 않아요. 가르치는 것도 그만큼 공부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루나는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기적이었던 건 오히려 저였잖아요. 수호 씨한테 차갑게 굴어놓고 제가 원하는 걸 당신이 가졌다는 이유로 다가갔던 거니까.”
“그런가? 나는 그걸 그렇게 이기적으로 본 건 아니라서….”
루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저는 전에 혼자였을 때보다 지금이 좋아요.”
“…그래.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해서 미안해.”
“알았으면 됐어요. 자, 다시 집중하죠. 저한테 소원 빌고 싶으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겠어요?”
“오… 의욕이 확 살아나는데?”
루나는 내 철없어 보이는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내 볼을 어루만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