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슈트라 수업 중에서 풍속성 수업을 두 번째로 좋아한다.
이유는 심플하다.
‘이동 수업은 앉고 싶은 대로 앉을 수 있어서 참 좋아.’
참고로 제일 좋아하는 수업은 뇌속성 수업이다.
그냥 바닥에 누워도 되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강의실 구석에 있는 창가 쪽에 앉아서 루나를 기다렸다.
학생들은 서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나를 한 번씩 힐끗거렸다.
전에 파리 교수에게 소리쳤을 때, 좋은 인상을 남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정학이라는 꼬리표가 달리자마자 학생들은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거기다 하필 정학이 학기 초에 일어났던 게 제일 큰 원인인 듯싶었다.
학기 초에 다들 서로 친해지기 시작하는 기간에 혼자 붕 떠버렸으니….
다들 이미 무리를 지어서 친해진 상태였다.
‘나야 이런 게 편해서 좋긴 한데, 이대로 평가가 더 곤두박질칠까 봐서 걱정이네.’
아르모니아는 내 말을 듣자마자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
[의외이십니다.]
‘왜?’
[전에 슈트라에 계실 때는 주변 평가에 관심이 없으셨지 않습니까.]
‘하긴… 나도 많이 변했네. 그런데 나 혼자 편해지자고 걱정하는 게 아냐.’
일단 현재 내 목적은 루나다.
그리고 그 목적을 만들어준 것이 바로 루이스다.
루이스는 1학년 중에 외모, 집안, 성적 모든 것이 최상위의 위치에 있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주위 사람들에게 내 폄하를 하기 시작한다면 분명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수긍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긍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훗날 루이스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도 진실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그 거짓을 본인들도 퍼트리고 다닐 테니까.
그때까지 거짓을 진실처럼 떠벌리고 다닌 자들은 자신에게 있는 죄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거짓을 진실이라고 억지로 세뇌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정학까지 갔다 왔으니, 나에 관한 거짓이 담긴 폄하를 쉽게 믿을 가능성이 컸다.
‘혹시라도 나랑 루나의 관계가 주변에 퍼지면 내 평판 때문에 피해를 줄 수 있잖아.’
[….]
나 혼자 욕먹는 건 지금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내 여자가 욕먹는 상황은 겪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옆에 슬며시 다가와서 의자 다리를 끌면서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에 와서 정신이 없나요?”
“아….”
루나는 허리를 세우며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가뜩이나 눈에 띄는 루나가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내 옆에 앉자, 나를 바라보던 학생들이 더 술렁이기 시작했다.
전에도 몇 번 같이 앉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서로의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다른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루나는 루나대로 유명해졌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 유명해졌을 것이다.
한쪽은 다른 여학생들을 압살할 정도의 외모를 지닌 여학생.
다른 한쪽은 입학하자마자 정학을 당하는 남학생.
누가 봐도 언밸런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선도 잠시였다.
드르르륵.
“좋은 아침입니다. 풍속성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
..
수업은 전에 받았던 수업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전에 풍속성 수업을 받을 때도 난도가 꽤 있어서 쉽게 이해 못 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충 비유하자면 외국어가 외계어로 바뀐 느낌이었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옆에 있던 루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응? 뭐가?”
“그동안 못 들은 내용이 많아서 이해하기 힘드실 거 같아서요.”
못 들은 내용이 많아서 이해하기 힘든 게 아니라, 원래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하지만 남자가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면 가오가 안 살지.
“아주 좋은 수업이었는데?”
“….”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네.”
“….”
루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라보던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일단 오늘부터 오후 수업은 없으니까, 제가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을 알려드릴게요.”
“정말 괜찮은데.”
“…저랑 있는 게 싫으신가요?”
루나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대지, 오히려 같이 있으면 집중이 안 될 거 같으니까. 그렇지.”
“….”
루나는 내 말을 듣고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침묵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한테 배울 때는 좀 긴장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저 이래 봬도 무서워요.”
“하하하하.”
“지금 웃으시는 거예요?”
루나는 앙다문 입술로 나를 향해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와 루나는 수업이 끝났음에도 강의실을 나가지 않고 서로 속닥거렸다.
한편의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 같았다.
지금까지는….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시끌벅적하며 이동하는 학생들 사이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그 발걸음 소리로 인해서 주위가 갑자기 다들 석상이 된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런 조용한 공간을 만들어낸 존재는 우리 앞까지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둘이 많이 친해졌네?”
“….”
“루이스….”
루이스는 조용해진 강의실의 주인이 된 것처럼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때? 시험은 잘 보겠어?”
“뭐… 아마 잘 볼 거 같은데?”
“하하하…. 머리에 든 게 없는데, 어떻게 잘 본다는 거야?”
루이스의 도발에 걸려든 건 내가 아니라, 루나였다.
루나는 박차고 일어나서 루이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루이스!”
“루나! 넌 빠져!”
“뭐…?”
루나는 루이스의 외침에 놀란 표정으로 입을 어버버하기 시작했다.
어버버하는 모습도 기품있네.
루이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하고, 나를 비릿한 미소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응? 말해줘. 어떻게 잘 본다는 건데?”
“뭐… 과정을 설명하기는 그렇고….”
나는 피식 웃으며 도발했다.
“일단 너보다는 더 잘 볼 자신은 있는데?”
“…뭐?”
루이스의 가면에 살짝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내면에 본래 얼굴이 모두 드러난 건 아니었지만, 가면에 금이 간 부분을 살짝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면은 금세 복구가 되었고, 루이스는 다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잘 볼 자신이 있으면 시험성적으로 승부 보는 게 어때?”
“좋아, 하자.”
“자, 잠깐만!”
루나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뒤늦게서야 정신을 번뜩 차리고, 루이스를 제지하기 시작했다.
“루이스! 1달 동안 수업을 못 받은 사람이랑 시험 점수로 내기를 한다는 게 말이 돼?”
“흥, 안될 건 뭔데? 분명 순순히 응한 건 저 녀석이라고?”
“….”
루나는 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루이스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으스대기 시작했다.
“루나 말대로긴 하네. 내가 너무 유리해.”
상식적으로, 학기 초에 정학당해서 수업 대부분을 빠진 사람과 원래 재능이 보였는데 수업까지 착실히 받은 사람이 시험 성적으로 승부를 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루이스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어야 할 정도의 페널티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주변에서도 수긍할 테니까.
“마지막 날 종합 점수로 순위가 공표된다더군. 그리고 그중에서 5위권에 들어온 학생들은 특별 수상을 받고.”
1학년생의 숫자는 총 175명.
시험이 종료되면 모든 학생의 순위가 공표되고, 5위 안에 들어온 학생들에게는 학장이 직접 상장을 수여해준다.
간략한 내용은 이것이고, 루이스는 핵심을 설명했다.
“네가 5위 안에 들어오면 내가 위에 있더라도 네가 이긴 거로 쳐주지.”
“5위라….”
“단! 내가 1위를 하면 네가 5위 안에 들어와도 내 승리고.”
“흠….”
성수호는 눈을 감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 고민에 빠져있는 성수호를 보면서 루이스가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왜? 막상 질 거 같으니까 불안하냐?”
“아니….”
“…?”
성수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기에 흥미로운 게 걸려야지 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 같아서.”
“하하…. 미친놈….”
루이스는 눈썹을 찡그리면서 속으로 비웃었다.
‘실컷 자만심에 빠져있어라. 루나 앞에서 인생의 나락으로 계속 떨어뜨려 줄 테니까.’
루나는 분명 말했다.
(나는…
실력 있는 사람이 좋을 뿐이야. 그리고 그런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뿐이고.)
루이스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루나가 왜 성수호에게 호감을 보여주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잊었어…. 루나는 주위의 시선보다 자신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해왔어.’
언제나 성장을 갈망하던 루나였다.
그 모습을 평생 봐왔던 루이스는 너무 오랫동안 옆에 있어서 당연해서 잊고 있었다.
‘분명 저 새끼가 생각보다 마법 실력이 괜찮은 거 같으니까 끌리는 게 분명해.’
비록 아직 새내기 수준이었지만, 성수호가 가진 마법진 구사의 수준이나 뇌속성을 즉시 익힌 능력을 보면 독특한 재능이 있다는 게 느껴졌었다.
특히 첫날 보여줬던 마법진 구사를 본 루이스도 살짝 질투심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꺾어놔야 해.’
루이스는 성수호가 확실히 물 수 있는 미끼를 던지기로 결심했다.
“만약 네가 이기면 이번 여름 방학 때, 너를 우리 가문으로 친히 초대해주지.”
“겨우 초대?”
“….”
루이스는 이를 으드득 물면서 분노를 삭였다.
‘이런 명예도 없는 거지 같은 놈이 우리 집안의 위상을 알 리가 없지…. 참자.’
루이스는 속을 삼키면서 좀 더 조건을 내밀었다.
“레빈 왕국으로 이동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가문에 지내는 동안 내가 너를 귀족처럼 대해주지. 모든 비용도 내가 내겠어. 어때?”
“오… 그럭저럭 괜찮겠는데?”
“….”
루이스는 성수호의 리액션을 보면서 자신의 미끼에 걸려들었다는 기쁨보다 조롱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었다.
그렇게 울화통을 참으며 물었다.
“그럼 너는 뭘 걸래?”
“흠… 나는….”
성수호가 가벼운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루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름 방학 동안 내 시종 노릇. 어때?”
“루이스! 그게 무슨!”
루나는 지금까지 참고 견디다가 인제야 입을 열고 두 사람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그런 루나를 보면서 짜증이 나는 한편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저런 녀석에게 왜 호감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발밑에다 두고 찌질하게 만들면 알아서 거리를 두겠지.’
루이스는 루나의 말을 무시하고 성수호를 몰아붙였다.
“왜? 질 거 같으면 지금이라도 그만해도 돼. 시종 노릇이 쉽지는 않지.”
“좋아. 하자.”
“자, 잠깐!”
루이스는 성수호의 말에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좋아! 저 새끼가 약속을 지키든, 어기든 저 녀석은 나락 확정이야!’
루나의 외침에도 루이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몸을 획 돌려서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 하하하!”
루이스는 환희에 찬 웃음소리를 내면서 강의실을 나갔다.
***
“왜 그러신 거예요!?”
[왜 그러신 겁니까?]
“….”
강의실 밖으로 나오고 나서 루나와 아르모니아가 하모니로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어느 쪽 장단에 먼저 맞춰줘야 할지….
루나로서는 내가 뻔히 불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서 이해가 갔다.
문제는 아르모니아….
[필기는 전에 말씀드린 대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합니다.]
아르모니아는 조디악 측으로부터 필기 시험지뿐만 아니라, 해답지까지 제공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아직 시험지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받지 않았을 뿐….
하지만 필기만 만점을 본다고 이기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실기….
[하지만 실기 시험이 너무 변수가 큽니다.]
‘….’
[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사실 루이스가 내게 도발하는 내내 아르모니아가 통신으로 나를 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아르모니아의 말을 듣지 않고 내기를 받아들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절하기에는 자존심 상해서.’
[….]
그거 말고 더 있겠나….
그렇게 도발을 해오는 녀석을 놓고 가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 아르모니아를 해결했으니, 앞에 있는 루나를 해결할….
[제 쪽도 해결 안 됐습니다.]
‘….’
…일단 루나를 해결할 차례다.
루나는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내 침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루나를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하아… 당신이라는 사람은….”
루나는 내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부여잡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루나를 보면서 옆에 나란히 서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나한테 비장의 수가 있어.”
“…정말 인가요?”
루나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고, 나는 그녀에게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공부 좀 가르쳐줘.”
“….”
짝!
복도에는 내 등짝 스매시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