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이 안 좋아.”
예리엘은 괴생명체에게 습격을 당하던 무리를 구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동행하던 교관이 빠르게 대처해서 생도들은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외부의 상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애들한테 불안감만 심어주는 꼴이 되겠어.’
평소에 생기발랄하던 마과 생도들은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끼며 겁에 질려하고 있었다.
지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질 것이라는 미래가 그려지는 게 무서운 것이었다.
상황이 난잡해도 괴생명체는 어찌어찌 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견학의 의미는 오히려 퇴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다.
‘도대체 저런 녀석들은 어디서 나온 건지….’
예리엘은 또 달려드는 괴생명체를 공 모양으로 압축시키며 스마트 워치를 작동시켰다.
“괜찮으세요?
(저도 괜찮고, 얘들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예리엘은 현성들에게 모두 통화를 걸어서 그들의 안부와 그들과 같이 있는 생도들의 안부를 물었다.
일단 괴생명체가 항마력이 높다고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생도나 교관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현성들에게 지금 나타난 괴생명체는 연구 소재로 흥미로운 존재들일 뿐이었다.
(이놈들 데리고 가서 한번 실험 좀 해봐야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최대한 지원해드릴게요. 일단 생도들을 데리고 외부로 탈출해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성들은 제각기 비슷한 말로 대답하고는 통신을 종료했다.
예리엘은 안도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이야. 그나마 생도들만 따로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았군. 대부분 세 그룹 이상으로 나누지는 않았어.’
아무리 독기가 약하고, 이미 답파가 된 던전이라고 해도 분명 괴수가 존재하고, 기믹이 존재하는 던전이었다.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교관들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려고 노력한 모습이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나가야….’
예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또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고, 바로 몸을 공중에 띄우며 근방에 있는 교관들에게 명령했다.
“빨리 생도들을 데리고 밖으로!”
“예!”
예리엘은 교관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확인하고, 바로 비명이 울리는 곳으로 날아갔다.
***
“—_!”
괴생명체 한 마리가 가슴에 돌덩이가 박히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성수아는 그런 괴생명체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생도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다들 괜찮니?”
“네….”
성수아의 걱정에 생도들은 대답하면서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찮으시려나?’
성수호와 연락했던 것이 불과 십 분 전이었지만, 성수아는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만약 먼저 연락을 주지 않으셨으면 대처가 늦을 뻔했어.’
만약 성수호가 먼저 전화를 걸어서 위험한 상황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성수아는 괴생명체를 보고 던전을 돌아다니는 생도나 교관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렇게 위험한 장소가 아니기에 얼추 사람의 모양새를 띄고 있으면 경계심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성수아는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생도들을 최대한 안심시키며, 생도들과 주위를 둘러보며 성수호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고 나서의 일이었다.
뚜벅… 뚜벅….
“응?”
발걸음 소리에 처음에는 괴생명체가 다가오나 싶어서 전원이 어둠 속에 인형을 향해 노려봤다.
성수아는 한참을 노려보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호전적으로 뛰어오던 괴생명체와 다르게 지금 다가오는 검은 인형은 차분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걷는 폼이 어설프고, 점점 괴상한 목소리를 벽에 튕기며 걸어왔다.
‘부상자? 아냐… 그런데… 지금까지 보던 녀석들이랑 뭔가….’
차라리 괴생명체들처럼 바로 달려들면 즉시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분명 성수아의 일행을 인지하면서도 고개를 꺾으며 희미한 괴상한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으으어….”
“애들아….”
“네?”
성수아는 눈매를 좁히며 어둠 속을 꿰뚫어 보려고 노력했고, 어느 순간 그녀의 시야에 정체불명 존재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다들 내 뒤로 물러서!”
“끄에에에아악!”
인식 방해의 능력이 담긴 망토를 쓴 존재가 비명을 지르며 성수아에게 달려들었다.
***
“괜찮으세요?”
“으으…네.”
나는 한 명의 경비원을 조심스럽게 눕힌 후에 옆에 서 있는 생도들에게 안부를 물어봤다.
“괜찮니?”
“네. 감사합니다.”
나는 생도들을 이끌고 성수아가 있는 방향으로 가는 중에 우연히 괴생명체들의 습격을 받는 그룹과 만나서 그들을 도와줬다.
그리고 생도들에게 황당한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교관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습격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교관님은 어디로 가셨니?”
“그, 그게… 아까 급한 일이 있다고 저희에게 대기하라고… 아! 오시고 계세요.”
저 멀리서 눈이 퀭한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우리 쪽에 도착하더니, 투덜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응? 무슨 일이죠? 왜 우리 생도들이랑 댁이랑….”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시나요?”
던전에서 생도들을 놓고 간 것도 모자라서 이 인간은 사태 파악이 전혀 안 된 눈치였다.
나는 간략하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해줬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에이씨… 하필 이럴 때….”
“일단 예리엘 님께서 흩어진 그룹과 만나서 출구를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겠수.”
“….”
이놈 말본새 보소….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생도들을 구해줬는데, 전혀 고마워하는 눈치가 없었다.
그저 귀찮은 일이 더 생겨서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지….
‘일단 이런 놈 신경 쓰는 것보다 성수아를….’
그렇게 다시 성수아를 찾으려는 순간이었다.
타타타탁!!
엄청난 양의 발걸음 소리에 생도뿐만 아니라, 나도 놀라서 그쪽으로 화살을 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건 생도들이었다.
“하악!하악! 하앆!!”
“응? 뭐야? 너희들….”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마과 7반의 생도들과 아이들을 따라다니던 경비원이었다.
나는 생도들에게 바로 다가가서 안부를 물었다.
“괜찮니?”
“그게! 그게!”
생도 중의 한 명이 숨을 몰아쉬더니, 숨을 크게 머금으며 소리쳤다.
“성수아… 성수아 교관님이 위험해요!”
성수아는 숨을 몰아쉬며 동굴 한켠에 숨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어디서 저런 괴물이….”
다른 괴생명체들과 다르게 망토를 두르고 있던 녀석은 괴성과 함께 성수아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성수아는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것처럼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괴생명체에게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괴생명체에게 닿은 마법은 순식간에 파쇄되었고, 오히려 괴생명체가 달려들면서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아… 애들은 괜찮을까?’
성수아는 날아오는 마법들을 자신의 마법으로 상쇄시키면서 생도들을 대피시켰다.
그리고 공격으로 괴생명체의 시선을 끌고, 곧장 생도들과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시선을 끌고, 유인할 수 있었던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 성수아는 자신을 쫓아오는 괴생명체와 숨바꼭질을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마법이 아예 먹히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한 마력을 방출해야지만 그나마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문제는 상대의 마법이 더 강하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저런 녀석들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건….’
탑의 견학, 그것도 예리엘과 현성들이 직접 나서서 진행하는 곳에 이런 식으로 습격을 한다는 건 제정신으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문제는 상대가 누군지 특정할 수 없었다.
영사관을 습격했던 괴생명체는 모두 교단이 회수해 갔지만, 어떠한 단서도 못 찾았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결국 특정할 수 있는 건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괴인들이 갑자기 이렇게 움직이는 이유가 있을까?’
괴인들이 사회에 피해를 끼치는 암약을 벌여온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독특한 점이 있다면 괴인 단체가 쉽게 건드리지 않는 단체가 두 군데 있었다.
에브리카와 탑.
마찰이 아예 없는 것을 아니지만, 세간에 의심을 살 정도로 괴인 쪽에게서는 두 단체를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안’ 건드리는 게 아니라, ‘못’ 건드리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건 성수아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까지는….
‘일단 지금 그런 생각보다 빨리 이곳을….’
성수아가 숨을 고르고 침착하게 다시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이었다.
“__-▀▄!!”
“큭!”
망토를 두른 괴생명체가 자신을 바라보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대부분 실전을 경험해온 영웅들은 싸워보면 대충 상대방과의 실력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성수아는 지금 마주한 괴생명체와 자신의 실력을 대충 가늠한 상태였다.
‘불리해… 비이상적인 항마력에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마나! 정면승부는 피해야 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작 괴수 하나 상대한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대처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아앗!”
성수아는 즉시 주위에 있던 돌덩이들을 끌어 올린 다음 화염 속성의 불을 입힌 뒤 괴생명체에게 쏘아댔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불덩이를 바라본 괴생명체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부딪힐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설마!?’
잠시 시간을 끌어볼 생각으로 날렸던 마법.
“—_━▀▄!!!!!”
망토를 두른 녀석은 날아오는 불덩이들을 아무것도 맨손으로 전부 튕겨내며 속력을 전혀 줄이지 않고 성수아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오히려 시간을 끌기 위해 사용한 마법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든 셈이었다.
‘이, 이대로는!’
아직 마나는 여유가 있었지만, 돌진하는 녀석의 속도가 성수아가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괴생명체의 팔이 성수아의 코앞까지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파아앙!
파공음이 동굴을 무너뜨릴 듯 울려 퍼졌고, 노란 실선을 그리며 한 줄기의 빛이 괴생명체 쪽으로 날아왔다.
콰직!
“__———____-!!!!”
노란빛은 괴생명체의 뒤쪽에서 어깨를 관통하며 끝없이 날아갔고, 그 줄기의 시작점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성수아 교관님! 괜찮으세요!?”
***
우연히 성수아와 같이 다니던 생도들을 만나고, 그녀가 처한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생도들에게 지금 만난 교관을 따라가서 최대한 빨리 외부로 탈출하라고 명령했다.
그 과정에서 서지은을 포함해서 생도들이 자신도 돕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것을 간신히 말려서 피신 시켰다.
나는 생도들이 알려준 방향으로 향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애들이 생각보다 의기소침해졌을 줄 알았는데, 역시 영사관 출신이라 쉽게 무너지지는 않나 보네.’
초기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불안에 떨던 생도들은 생각보다 금세 적응해서 재빠르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입니다. 만약 생도들의 말대라면 상대는 아까 만난 괴물들과는 다른 종류인 듯싶습니다.]
‘그래도 성수아를 놓고 갈 수는 없으니까….’
하물며 만약 상대가 정말 예리엘 같은 괴물이라고 해도 성수아를 놓고 갈 수는 없었다.
아르모니아는 내 말을 듣고 걱정이 됐는지, 조용하게 내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 지금 레나 씨를 깨워서….]
‘아니! 하지 마.’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레나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창 자고 있을 시간에 혹시 모를 사태라는 이유로 깨우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위험하지 않게 행동할테니까, 그때까지는 대기해 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성수아를 찾기 위해 뛰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큰 굉음이 들려왔다.
분명 멀지만, 주황색의 불꽃들이 조그맣게 튀어 오르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보이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불탄 잿가루가 튀기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르모니아! 쌍안경!’
저 멀리 보이는 빛이 내가 들고 있는 쌍안경의 렌즈 안으로 여과 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웬 망토를 두르고 있는 녀석이 성수아에게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나는 초전도체 화살을 활시위에 걸면서 잠시 고민했다.
‘지금 상태에서 2단계는 안 돼.’
아무리 조준력이 있다고 해도 이 좁은 동굴 안에서 그런 화살을 사용하면 되레 성수아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나는 희미하게 보이는 불꽃이 사라지기 전에 녀석을 향해서 화살을 발사했다.
파아아앙!!!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화살이 괴한을 맞췄는지 멀리서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성수아 교관님! 괜찮으세요!?”
나는 소리를 지르며 성수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쌍안경을 다시 들어서 렌즈로 사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쌍안경을 들고 바라보는 순간 성수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심하세요!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이런….”
렌즈 안으로 검은 신형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젠장 빗맞은 건가?’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달려오는 모양새에서 빡침이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