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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허어억!”
남자 생도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경기를 일으키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살펴왔다.
세 개의 텐트와 주위를 비추는 랜턴, 그리고 어깨에 기대고 솔솔 자는 여자 생도.
그 모습을 모두 확인하고 안도하면서 큰 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잠깐 졸은 사이에 별 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생도는 맥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축 늘였다.
그리고 그렇게 축 늘였던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서 여자 생도를 바라봤다.
“…하필 얘도 자고 있냐.”
처음에는 자기 어깨에 기대고 자는 여자 생도를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서서히 진정되자 마냥 나쁜 상황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 생도는 그 상태로 깨우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
“생도들은 왜 연애 금지냐….”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면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응?”
딱히 눈에 뭔가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귓속으로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끄에엑….
자기 고막에 닿은 소리의 정체를 파악한 남자 생도는 표정을 굳히고 바로 옆에 있는 여자 생도의 머리를 어깨로 치면서 이어났다.
빡!
“끄아악! 뭐, 뭐야!?”
“다들 기상! 적이야!”
“저, 적!?”
생도의 외침과 함께 흐릿했던 어둠 속에서 점점 선명해지는 괴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
콰직!
“끼에엑….”
몸통이 분리된 곤충형 괴수는 짧은 단말마와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박연희는 그 괴수의 죽음과 함께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필 자고 있을 때….”
“끄응….”
“괜찮아?”
박희연은 오진호에게 가서 안부를 물었다.
오진호는 박희연이나 다른 생도들에 비해서 굉장히 피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응… 괜찮아….”
“전혀 괜찮은 모습이 아니구만….”
박희연은 웃으면서 오진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잠에 약한 건 평생 못 고치나 보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박희연은 주위를 둘러봤다.
돌발 상황이라 아까와 다르게 생도들도 전투에 참여한 상태였다.
‘에이씨… 이번 견학은 정말 운도 지지리 없네.’
박희연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생도들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고생하셨습니다.”
“뭐, 이런 것도 경험 아니겠어?”
생도들은 박희연에 말에 쓴 웃음으로 대답했고, 다들 사체들을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박희연은 그런 생도들을 향해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자, 다들 일단 사체를 저쪽에 놓… 잠깐….”
“…?”
박희연의 말에 다들 침묵하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오진호도 반응하면서 그녀를 올려다봤다.
“왜 그래?”
“다들… 무기 들어….”
박희연의 말에 생도들은 천천히 그녀가 보고 있는 시선을 따라서 어둠 속을 바라봤다.
어둠 속을 바라보는 박희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너… 누구냐?”
“….”
어둠 속 공간에 망토를 쓴 인물이 검을 들고 사신처럼 곧게 서 있었다.
챙! 채앵! 차아앙!
“다들 공격 집중해!”
“네, 네!”
박희연과 생도들은 망토를 두른 인물을 향해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박희연은 공격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상대방의 실력을 점차 느낄 수 있었다.
영웅으로 활동하면서 무수한 상대들을 만나왔고, 그들과 무수하게 싸워봤다.
그렇게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혀온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보통 녀석이 아냐! 나 혼자서는 절대 못 이겨!’
그저 실력이 좀 더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망토를 두른 정체불명의 괴한은 박희연의 검을 완벽하게 받아치는 것도 모자라서 생도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회피하고 있었다.
박희연은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오진호에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마법 사용해!”
“그, 그게!”
박희연은 평소에 호감을 느끼던 오진호라고 해도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까지 다정다감한 말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지금 졸린다고 정신 못 차릴 상황이야!? 빨리 사용하라고!!”
“아, 안 나가!! 마법이… 아, 안 나간다고!!”
“그게 무슨… 아악!”
촤악!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박희연의 어깨에 노란빛이 담긴 검날이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스쳐 지나간 수준이었지만, 한번 유효한 공격을 당한 만큼 형세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박희연은 인상을 찡그리며 상처를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너 뭐 하는 녀석이야!”
“….”
박희연의 외침에도 괴한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모든 공격을 차분히 막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는…. 아! 맞다!’
박희연은 한 가지 사실이 떠올리면서 오진호에게 소리쳤다.
“그거 써! 그거!!”
“그, 그게 뭔데!”
평소에는 침착하게 대응하던 오진호는 안절부절못하며 생도들도 하지 않을 얼간이 행세를 하고 있었다.
박희연은 인상을 구기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아까 사용했던 거! 멍청아!”
“아까… 아!”
오진호는 그제야 박희연의 말뜻을 이해하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시도했다.
그 순간이었다.
채, 채채챙!
“크읏!”
“허억!”
“하읏!”
망토를 쓴 괴한이 휘두른 검 한방에 생도뿐만 아니라, 박희연의 무기까지 전부 튕겨져 나갔다.
생도들은 모두 무기를 떨어뜨려 버렸다.
그나마 박희연만 검을 쥐고 있었지만, 그녀도 팔 전체가 뒤로 꺾인 상태였다.
그리고 포위되었던 괴한이 포위를 뚫고 어딘가로 신형을 날렸다.
말도 안 되는 속도의 신형을 알아챈 건 박희연뿐이었다.
“조심해!!!”
“응? 끄아아아악!”
촤아아악!
오진호에게 신형을 날린 괴한은 검을 사선으로 그으며 그의 팔을 어깨째 잘라냈다.
오진호는 팔이 잘리는 것과 동시에 뒤로 나자빠지면서 고통을 느끼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이 새끼! 죽여버리겠어!”
팔이 잘린 오진호의 모습을 본 박희연은 눈이 뒤집힌 듯 괴한에게 검격을 퍼부었다.
분노한 박희연의 검술에 생도들은 도저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아까 여러 명이 달려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격렬한 공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생도 중의 한 명이 다급하게 외쳤다.
“일단 내가 교관님께 연락해볼게!”
“그래! 그동안 우리는… 젠장, 지금 상태로는 우리가 달려들어도 오히려 방해될 거 같아!”
박희연과 괴한의 맹공에 다른 생도들은 달려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생도들은 팔이 잘려서 기절한 오진호를 데리고 와서 치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괴한의 뒤편에 쓰러진 오진호를 데리고 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황하는 사이에 한 생도가 성수호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교관님!”
생도는 성수호에게 모든 정황을 알려줬다.
성수호는 생도의 요약한 정황을 전부 듣고, 잠시 침묵을 유지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최대한 박희연 영웅님을 도와! 우리도 바로 그쪽을 찾아볼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바로 통화가 종료됐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어찌해야 하나 갈팡질팡하는 순간이었다.
촤악!
“아악!”
박희연은 괴한에게 베였던 팔을 또 베이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런 씨….”
“….”
박희연이 상처에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괴한은 뒤에 기절한 오진호를 단번에 들쳐멨다.
오진호의 잘린 어깨 쪽에서는 엄청난 피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생명의 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었다.
괴한이 오진호를 들쳐멘 모습을 보자마자 박희연은 사백안처럼 눈을 뜨고 노기를 발산하면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놔…. 죽인다.”
“….”
괴한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발밑에 있던 오진호의 팔을 발로 찼다.
파악!
바로 박희연이 있는 쪽으로.
“이런 씨발!”
박희연은 욕을 내뱉으며 오진호의 팔에 생채기가 날까 싶어 최대한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그런 박희연의 빈틈을 노린 괴한이 오진호를 들쳐멘 채 도주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기다려!!”
오진호의 팔을 한 손에 든 박희연은 생도들을 놓고 괴한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생도들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중얼거렸다.
“…어쩌지?”
***
나는 스마트 워치를 통해 생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대기하고 있어.”
(그,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두 분을 따라가야 하는 게….)
“…모두 내가 책임진다. 너희들은 최대한 안전에 신경 써.”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신을 마치고 통신으로 흥얼거렸다.
‘크으… 역시 레나가 실력 하나는 끝내주네.’
[항마력이 부족한 부분을 해체술로 해결하신 부분도 대단하십니다.]
‘역시 마법진이 최고야.’
오진호가 마법을 쓰지 못해서 당황한 건 내가 사용한 해체술 때문이었다.
레나가 싸우는 동안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은신 상태로 싸움을 지켜봤다.
나는 오진호가 마법을 사용하려는 행동을 보이면 바로 마법력의 흐름을 파악해서 해체술을 사용했다.
오진호는 재능 부분에서는 슈트라에 있는 학생들을 뛰어넘을지언정 결국 기술적인 부분은 원시적이었다.
‘잘돼서 다행이다. 그래도 두 명 이상은 쉽지 않아 보여.’
[그리고 마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자에게는 속도에서 뒤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체술은 분명 사기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문제는 마법진을 그리는 건 일단 바로 즉각 그릴 수 있었지만, 해체술에 필요한 마나의 흐름을 파악하는 건 결국 마법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늦게 알아차려도 바로 마법진을 만들 수 있어서 오진호의 마법을 막을 수 있었다.
[마법력을 올리다 보면 분명 쉽게 사용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역시 1순위는 마법력이라는 거네.’
나는 웃으면서 원래 텐트를 쳤던 곳으로 향했다.
내가 레나에게 지시한 건 오진호를 데리고 우리가 빠져나왔던 던전 안쪽으로 들어가라는 지시였다.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버리고 도망가라고 말해줘.’
[레나 씨의 성격상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최대한 강경하게 말해놓겠습니다.]
오진호와 박희연에게 복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레나다.
레나가 다친다면 이런 일을 하는 이득이 전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당장 레나가 도망치더라도 충분히 본전을 넘어서서 코인 초창기마냥 엄청난 수익을 낸 상태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낸 뒤에 요리조리 살펴봤다.
‘…이게 백 억짜리 아이템이라는 거지?’
[확실히 그 정도 가격의 값어치는 하는 아이템 같습니다.]
‘박희연… 좋아하는 남자 팔만 챙기느라 이건 생각도 못 한 거 같더라.’
레나가 오진호의 잘린 팔을 걷어찼을 때, 박희연이 날아오는 팔에 정신이 팔려서 레나의 도주를 막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이유로 팔을 걷어찬 것이 아니었다.
잘린 팔이 쥐고 있던 구슬을 멀리 있던 나에게 넘겨줄 계획으로 찬 것이었다.
구슬은 내 손기술에 의해서 자석처럼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고, 일석이조의 효과로 레나는 손쉽게 도주할 수 있었다.
‘진짜 레나는 나중에 원하는 소원 하나는 들어줘야겠다.’
[저도 그 말에는 동감합니다.]
아르모니아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인재였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어가서야 원래 본거지로 올 수 있었다.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베아트리체를 레나 쪽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알았다냥.”
베아트리체는 갑자기 사족보행을 시작하더니 쏜살같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박쥐 날개를 달고 고양이처럼 뛰어가는 여자.
‘좀 채 알 수 없는 애야. 자, 그럼….’
나는 숨을 들이마신 뒤에 크게 내뱉으며 소리쳤다.
“다들 일어나도록!!”
그렇게 텐트 안에서 자는 생도들을 부랴부랴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