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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신은 파리로 빙의한 상태로 성수호의 방에 침입했다.
운이 좋게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서 그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수호를 최대한 감시하며 그가 가진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성수호의 방에 있으면 안 되는 인물이 버젓이 그와 같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뭐야! 윤지아, 여기 왜 있어?’
여자친구가 외간 남자의 방에 같이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빙의를 풀고, 성수호의 방에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금세 진정하고 침착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아냐… 일단 지켜봐… 씨발 이게 무슨….’
교단이 자신의 본진이라고 해도 지금 고충신의 입장상 실수를 하면 오히려 버려질 가능성이 컸다.
외부에서는 교단을 영웅들이 동경하는 화려한 낙원처럼 꾸며졌지만, 실상은 달랐다.
추악한 뱀들이 지배한 에덴의 동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추악한 뱀 중에 한 명이 바로 고충신이었고….
그는 파리의 몸을 쓰레기통 뒤에 최대한 숨긴 상태로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그렇게 숨어서 관찰하려는 순간 성수호와 눈이 마주쳤다.
‘헉!’
그는 다시 쓰레기통 뒤에 몸을 숨겨서 최대한 날갯짓은커녕 파리의 손과 발도 미세한 진동 하나 나지 않게 집중했다.
그렇게 10초 정도 흐르고 나서 다시 고개를 삐쭉 내밀어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성수호는 다시 윤지아에게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휴… 또 걸린 줄 알았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두 사람을 유심히 관찰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윤지아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오늘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못한 거 같아서요.”
“대화요?”
“네… 일주일간 같이 지낼 건데, 일정을 자세히 알려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윤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성수호에게 견학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했다.
고충신은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냥 일 얘기였나….’
윤지아와 성수호는 어색함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내일 어디를 갈 것이며, 그다음 날은 어떤 실습이 있을 것이며… 등등 윤지아는 차근차근 성수호에게 일정을 설명해줬다.
사실 일정은 별것 없었다.
다만 내일부터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피곤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고충신은 이미 견학에 관한 내용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귀찮음에 한숨이 나왔다.
‘하아… 저 개새끼가 또 뭔 짓을 시킬지….’
고충신이 그렇게 파리 상태로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성수호가 윤지아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두 분은 언제부터 사귄 사이인가요?”
“…네?”
‘…뭐?’
당황한 윤지아와 마찬가지로 고충신도 파리 상태로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성수호를 바라봤다.
윤지아는 말을 더듬으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두 분? 누구를….”
“아까 싸우는 대화 언뜻 들었어요.”
“아….”
윤지아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들켰다고….
‘아씨! 멍청아!! 거기서 그런 표정을 지으면 사귄다고 광고하는 꼴이잖아!!’
고충신은 그렇게 파리 상태로 날갯짓하려는 순간이었다.
홱!
“응!?”
고충신의 날갯짓과 함께 성수호가 전광석화같이 고개를 돌려서 쓰레기통 쪽을 바라봤다.
‘헉!’
그 모습에 윤지아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이신가요!?”
“…아뇨. 착각인가 봐요.”
성수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윤지아를 바라봤다.
고충신은 파리의 다리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아니, 씨발, 도대체 파리 날갯소리를 어떻게 듣는 건데….’
그는 다시 진정하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대화를 이어 들었다.
“어쩌다 보니 듣게 되었습니다.”
“그, 그게 오해예요…. 그런 게 아니라….”
“하지만 대화 내용을 대충 들어보면 분명 사귀는 것 같았습니다만….”
윤지아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사, 사귀는 게 아니라! 예, 예전에 사귀던 사이였어요! 지금은 헤어진 상태예요!”
‘…뭐?’
고충신은 윤지아의 말에 순간 정신줄이 끊어진 듯한 파리 모습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
나는 윤지아의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요?”
“네! 지, 지금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에요!”
“흠… 그런데 분명 대화 내용은….”
“저, 정말이에요! 오랜만에 보더니 그, 그 사람이 계속 달라붙어서….”
윤지아는 고충신을 감싸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웃긴 건 그 고충신이 저기 멀리서 그녀의 말을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듣고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거 재미있네.’
[지금 바로 해치우지 않으십니까?]
‘좀 만 지켜보자.’
고충신이 가지고 있는 [승령 빙의].
지금까지 별 관심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드러운 능력 하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저 녀석이 처음에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고, 죽이려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전 애인이라는 거죠?”
“네!”
“그러면 더 큰 문제네요.”
“…네?”
그녀로서는 어떻게든 고충신을 감싸려고 했던 변명이었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큰 약점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스마트 워치를 작동시켜서 통화를 할 것처럼 제스쳐를 취했다.
“교관님에게 스토커 짓을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바로 연락해서 붙잡는 게….”
“그, 그건! 자, 잠시만요….”
윤지아는 내가 들어 올린 스마트 워치를 붙잡고 횡설수설 해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그랬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대로 두면 계속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윤지아는 그 이후로 열과 성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설명해왔다.
나는 그렇게 열을 토해내며 해명하는 윤지아를 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이 건은 보류로 하겠습니다.”
“보… 보류요?”
“만약 그 녀석이 윤지아 교관님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게 보이면 일단 바로 영사관에 보고하겠습니다.”
“후… 네.”
윤지아는 그나마 그 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수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것과 관련돼서 중요한 할 말이 있습니다.”
“어, 어떤 건가요?”
“그건….”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속으로 천둥과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주거어어어엇!!!’
[….]
파지지직….
미세한 전기 흐르는 소리를 감지한 윤지아가 의문을 가지는 표정으로 쓰레기통을 바라봤다.
“응? 무슨 소리가?”
“아, 쓰레기통 덮개가 잘 안 덮여 있었나 보네요.”
“아… 그래서 중요한 말씀이…?”
나는 윤지아의 물음에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견학하는 동안 계속 같이 붙어 있는 게 좋을 거 같네요.”
***
고충신은 벼락에 맞은 것처럼 몸을 배배 꼬면서 침대에서 발버둥 쳤다.
“끄아아아아악!!!”
(깜짝이야! 뭐야!?)
기절한 고충신을 옆 방의 동료가 발견했고, 그는 그 후 의료진의 치료를 받아서 생명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고충신은 다음 날이 되어서야 간신히 깨어날 수 있었다.
윤지아는 내 설명을 간략하게 듣고 방을 나가면서 내 배웅을 받았다.
“일단 저는 윤지아 교관님을 믿고 고민혁(고충신의 위장 신분) 씨에 대해서는 따로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고민혁 씨요?”
“…? 남자 친구분이요.”
“아! 아아….”
윤지아의 태도나 행동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거짓말 못 하는 성격이구만….’
그런데도 이렇게 와서 고충신을 감싼 것을 보면 의존적 성격이 어떤 기질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의존하는 상대가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흐흐… 빨리 나한테 의존하게 만들어야겠어.’
궁금하다.
윤지아는 과연 의존의 대상이 바뀌면 고충신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될까….
“일단 당분간 계속 붙어 있고, 만약 고민혁 씨가 이상한 연락을 해오면 제가 바로 대처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 네…. 부탁드립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윤지아는 일단 고충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어서 인지 내 말에 모두 수긍했다.
그리고 밤에 잘 때를 빼고는 어느 정도 붙어 있기로 했다.
그야 쉬는 시간 내내 붙어 있겠다는 건 아니고, 현장 실습을 갈 때 같이 외부에 나가면 같이 붙어서 고충신을 주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윤지아는 내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후… 그럼….”
나는 방문을 닫고 혼자 중얼거리며 쓰레기통 뒤쪽을 확인했다.
‘으엑… 드러워….’
파리… 그것도 내장이 전부 터져서 진물이 흘러나오는 파리가 바닥에 붙어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휴지로 파리를 감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안 되겠다. 물티슈로 닦자… 으에엫….’
나는 물티슈 3장을 쓰면서 파리의 잔여물을 분자 단위로 깔끔하게 물로 변환 시킨 뒤에야 닦는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다 닦고 마무리를 하자, 스마트 워치로 연락이 왔다. 발신이 경비원으로 되어 있었다.
“여보세요?”
(성수호 관리자님, 드릴 말씀이….)
연락이 온 건 연차가 있는 경비원이었고, 고민혁에 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옆 방에 있던 고민혁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기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는 통화였다.
“아, 제가 교단 쪽에 의료진을 부탁할게요. 혹시 다른 이상은 없나요?”
(그게… 경련을 하는 모습이 좀 위험해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금방 연락해서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스마트 워치를 껐다.
“흐흐흐흐흐….”
이 통화로 확실한 사실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고충신이 그렇게 나를 싫어했던 이유….
‘파리가 죽으면 그냥 빙의가 끊기는 게 아니라, 그만큼 고통이 가해진다는 거네….’
[거기다 상성도 굉장히 좋습니다. 이제 굳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기질로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이용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충신의 기질을 파악했는데, 녀석이 빙의한 파리에도 그 기질이 띄워져 있었다.
거기다 내가 가진 마법은 파리를 잡기에 그야말로 적합한 능력이었다.
그러라고 배운 능력은 아니었지만….
‘일단 연락은 해놓자. 그 녀석이 죽으면 곤란하니까.’
이렇게 재미있는 장난감을 벌써 망가뜨릴 수는 없는 법이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스마트 워치로 교단 안내원에게 상황을 설명해서 고충신에게 의료진을 보냈다.
..
..
다음 날, 아침.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 고충신의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고충신은 안부를 듣는 것 치고는 내게 썩은 표정을 지으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나는 웃으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 줬다.
“많이 아픈가 보네…. 어떻게? 오늘 쉴래?”
“아, 아닙니다….”
겉으로 보면 다정다감해 보일 수 있겠지만, 우리 둘 사이에 그런 관계가 존재할 리가 없었다.
고충신은 윤지아와 내가 어제 했던 대화 내용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정말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쉬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겠지.
그렇게 아침을 먹고 우리는 첫 번째 현장 실습을 위해 교단의 안내에 따라 주차장으로 따라갔다.
어제와 다르게 출발 인원이 변경되어서 나는 생도들과 같이 차를 타지 못했다.
이유는 교단의 영웅 두 명이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윤지아는 두 사람을 옆에 두고 우리에게 소개해줬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오늘부터 일주일간 여러분들을 도와줄 박희연 씨와 오진호 씨입니다.”
“잘 부탁해~”
“잘 부탁합니다.”
짝짝짝.
생도들을 두 사람을 박수로 맞이해줬고, 두 사람은 생도들과 같이 차량에 탑승하기로 했다.
두 차량에 생도 3명, 도우미 영웅 한 명씩 타게 됐고, 경비원들은 어제와 같은 승합차에 탑승해서 우리를 따라오게 됐다.
그리고 나와 윤지아는….
‘영사관보다 여기가 훨씬 더 좋아!’
[어디까지나 견학이기에 편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단둘이 같은 차량에 탑승하게 되었다.
나는 차에 타면서 윤지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네, 잘 부탁해요….”
윤지아는 아직 나를 어려워했지만, 최대한 내가 신경에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는 게 눈에 보였다.
특히 저기 저렴한 승합차에 타려고 하는 고충신의 표정이 프라이팬에서 구워지는 베이컨처럼 꼬부라지는 모습을 보니 더욱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윤지아와 나는 단둘이 SUV를 탑승한 채 목적지로 향했다.
차의 앞좌석은 윤지아와 내가 앉아 있는 뒷좌석과 완전 분리가 되어 있었다.
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누려면 뒷좌석에 전화기로 통화를 걸어야 가능할 정도의 방음이 탑재되어 있었다.
뒷좌석에는 운전기사가 말한 것으로 추정되는 친절한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목적지 도착 예상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입니다. 그때까지 편하게 쉬시길 바랍니다.)
‘…영웅 되고 싶다.’
[….]
그 후 차량이 출발하기 시작했고, 나와 윤지아는 어색한 침묵으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감도는 침묵을 타개하고자 아르모니아에게 물어봤다.
‘음… 싼뿌리 게임이라도 해보자고 할까?’
[…? 싼뿌리 게임이 무엇입니까?]
‘쌀보리 게임 알아?’
[알고 있습니다.]
‘그거에서 그냥 말만 바꾼 거야. 싼다, 뿌린다 하면서 주먹으로….’
[…더 이상 알려주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공격은 무조건 남자고, 방어는 무조건 여자야. 뿌린다 했는데, 못 잡으면 부카게 당하면서 패배를….’
[알고 싶지 않습니다.]
‘….’
까칠하긴….
역시 내 유머가 통하지 않는 상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