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29화 (230/898)

 ***

 나는 워오레에서 로그아웃하며 흥겹게 속삭였다.

 ‘존나 재밌다.’

 평소에도 윤지아랑 할 때는 나름 즐겁게 하는 편이었지만, 오늘만큼 재밌던 적은 없었다.

 상대방이 누군지 알고, 그 상대방이 죽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의 즐거움이 대폭 상승했다.

 다만 윤지아가 그사이에 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고의성이 다분히 보이는 실수를 자주 한 것을 봐서는 고충신이 지시한 게 확실해 보입니다.]

 ‘아까 대놓고 울더라.’

 그녀의 입장에서 캐릭터로 보이리라 생각해서 그런지 내 눈치를 보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울수록 고충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어서 편한 점도 있었다.

 고충신이 이상한 지시를 해서 윤지아를 난처하게 만들고, 그런 윤지아를 내가 위로한다.

 사람 마음을 잡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야 고작 게임에서 좀 잘해준 걸로 꼬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손쉽게 유대감을 쌓기에는 게임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현실처럼 느껴지는 VR 속이라면 더더욱 효과가 좋을 것이고….

 윤지아 같은 스타일은 일단 친절하게 다가가서 거리감이 좁혀지면 확 휘어잡아줘야 한다.

 지금 고충신과 사귀는 것도 성격이 우연히 잘 맞아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남에게 의존하는 성격을 지닌 여자는 언제나 나쁜 남자에게 걸려들기 마련이니까….

 ‘일단 주말에도 접속할 가능성이 크니까, 가끔 들어가서 확인해봐야겠다.’

 나는 그렇게 흥얼거리며 동물의 마을에 접속했다.

 ..

 ..

 관리자의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귀찮게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네….’

 바로 한창 자야 할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영사관에 있는 모든 부서는 주말에도 운영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경비와 식당이었다.

 그래서 근무표에 휴무를 지정해서 주말에 쉬는 사람과 평일에 쉬는 사람을 상시 교체해줘야 한다.

 원하는 휴무 날짜가 있는 직원들은 내게 찾아와서 요청하고, 나는 그 직원의 근무태도나 현재 인원 상황에 따라서 휴무를 임의로 교체했다.

 그야 내가 편하게 원하는 날짜에 다 쑤셔 넣으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되면 경비원들이 나를 좋게 볼 리 없었다.

 나는 고충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고충신이 정식적인 항의를 해도 묵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체는 언제나 과반수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아무리 관리자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과반수가 내 말을 잘 따르게 만드는 게 단체를 계속 이끌어가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들어줄 수 있는 건 다 들어주는 게 좋겠지.’

 나는 몇몇 직원이 와서 부탁한 휴일을 토대로 2주일 치 근무표를 작성한 뒤에 식당으로 향했다.

 주말 식당이지만 점심이라 사람이 꽤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띈 인물….

 나는 음식을 식판에 담고 조심스럽게 그 인물의 옆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반찬 맛있어?”

 “크읍! 커억! 콜록, 콜록!”

 고충신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에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헛웃음을 내면서 등을 두드려줬다.

 “천천히 먹지.”

 “크흡… 콜록, 콜록!”

 고충신은 간신히 사레를 진정시키면서 입을 열었다.

 “시, 식사하러 오셨습니까….”

 “응, 마침 보이길래.”

 내 말에 고충신의 얼굴은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석유가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뭉개졌다.

 고충신은 표정에서부터 오늘 어떤 기분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너는 여기서 지내는 동안 편할 날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아침은 성수아, 저녁은 초서현.

 그리고 점심은 고충신.

 나는 밥을 먹는 고충신에게 계속 말을 걸면서 위를 자극해줬다.

 “오늘은 오후 근무지?”

 “그, 그렇습니다….”

 “주말에 날씨 좋아서 생도들이랑 교관들이 하하 호호 한다고 너도 풀어지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견학 때 잘 부탁해~”

 “크흡… 네….”

 계속 스트레스를 줘야 한다.

 그래야 그 스트레스를 윤지아에게 또 발산할 테니까.

 나는 부랴부랴 밥을 먹고 자리를 떠나는 고충신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따 주변 돌아보면서 들를 테니까, 근무 똑바로 서고~”

 “…네.”

 고충신은 썩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

 고충신은 게임 내내 똑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씨발!!”

 그는 오늘도 근무를 마치자마자 씻지도 않고 워오레에 접속했다.

 그리고 윤지아를 통해서 강탈자를 만나며 계속 게임을 진행했다.

 하지만 승리는커녕 킬 한번 딴 적이 없을 정도로 실력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었다.

 “씨발! 죽어!! 죽으라고!! 씨발!!!”

 그리고 한두 번 정도 갱이 와서 킬 각이 나왔음에도 되려 정글과 함께 강탈자에게 골드를 강제로 상납하는 존재로 전락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군들의 목소리….

 (시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봇 뭐하냐?)

 (미친 나 저 새끼 어제도 봤는데, 돈 받고 져주는 듯)

 (씨발 나 지금 승급전이야! 좆같은 새끼야! 저 새끼 신고해!!)

 “….”

 고충신은 그들의 말을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발언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저 새끼는 엄마 아빠 데리고 와서 사과 시켜야 함)

 (참아, 없는 분들을 데리고 올 수는 없잖아.)

 “이 개 같은 새끼들이!!”

 고충신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씨발! 정글이 문제야! 정글이!!”

 (미친, 뭐만 하면 내 탓이래.)

 (정글이 존재 자체가 문제이긴 하지만 너는 그 말할 자격이 없지.)

 (그래, 너는 정글 욕할 자격이 없어. 정글이 문제는 맞지만)

 (이 시발놈들이….)

 어찌 보면 내부분열처럼 보였지만, 이 게임은 정글을 욕하는 게 기본 매너라고 할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고충신을 까면서 오히려 내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충신은 부활하자마자 이빨을 갈면서 강탈자가 있는 라인으로 향했다.

 ‘안 되겠어… 씨발 이대로는 어제처럼 좆 발릴 뿐이야….’

 고충신은 라인에 도착하자마자 강탈자의 옆에 있는 윤지아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이고 게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스펙까지 밀려서는 안 돼….’

 고충신은 눈에 강탈자라는 귀신이 씌워진 상태였다.

 그는 윤지아에게 귓속말을 걸었다.

 (지아야.)

 (…응?)

 그가 내린 결단은 하나였다.

 (나한테 죽어줘.)

 (나한테 죽어줘.)

 (…뭐?)

 윤지아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울상이 아닌 인상을 쓰며 귓속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녀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대사가 다시 읊어지고 있었다.

 (나한테 킬 좀 줘.)

 (그게… 무슨….)

 윤지아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고충신이 원하는 상황이 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강탈자 본인을 죽이는 게 불가능하니, 아예 자신을 죽여서 스펙을 올리겠다는 심산이라고 판단했다.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게임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그의 심리를 이해했다.

 분명 게임이기에 죽고 죽는 게 큰 문제의 소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고충신이 내뱉은 말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죽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연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의심까지 들었다.

 그녀는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게임을 종료하고 VR 헤드기어를 벗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얼마나 이상한 짓을 시킬지 보자.’

 넘치려는 짜증을 이성이라는 뚜껑으로 덮어서 막고는 고충신의 말에 승낙했다.

 (알았어….)

 (괜히 쓸데없이 눈치 보지 말고 빨리 와!)

 (….)

 윤지아의 눈에 고충신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윤지아는 강탈자의 눈치를 살폈다.

 강탈자는 주위를 이리저리 확인하면서도 모든 화살이 정확히 고충신을 맞추며 피해를 주고 있었다.

 그는 윤지아의 실수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와 수다를 떨면서 여유롭게 게임을 진행했다.

 “그러고 보니까, 저 사람 몇 번 봤던 사람 같지 않나요?”

 “아… 그, 그런 거 같아요.”

 “아이디가 독특해서 지금에서야 눈에 띄네요.”

 “하하….”

 윤지아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고민에 휩싸였다.

 강탈자는 고충신을 그냥 게임 상대,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고충신은 눈에 불을 켜고 강탈자를 이기기 위해 여자친구인 자신에게 죽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결국 한 사람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강탈자는 게임에서 만난 사람이었고, 고충신은 연인이었다.

 두 사람의 호감도가 역전되더라도 윤지아가 현실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고충신이었다.

 윤지아는 대충 눈치를 보다가 고충신이 자신을 잘 노릴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윤지아의 캐릭터 특성상 군중 제어(CC) 기술에 치중되어 있어서 몸이 약하고, 한번 타겟으로 잡히면 잘 죽는 편에 속하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녀의 위치를 확인한 고충신이 귓속말로 소리쳤다.

 (좋아! 거기 있어!)

 (….)

 윤지아는 두 눈을 꼭 감고 죽기만을 기다렸다.

 게임 속에서 죽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단계는 이미 지난 상태였다.

 대부분 워오레 게임 플레이어들이 초반에 잠시 죽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서 게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지만, 그 적응 기간을 거치면 오히려 죽는 것에 딱히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었다.

 그건 윤지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을 죽이던 상대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처럼 연인이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경우와 완전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 기분이….

 ‘…싫다.’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으니, 고충신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좋아!)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선명하게 귓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조심해요!”

 “!”

 윤지아는 강탈자의 외침에 눈을 더욱더 세게 감기면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뭐, 뭐야… 어,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죽었다는 알림이 와야 하는데, 전혀 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귓속으로 혐오감이 물들어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잡았다!!!)

 고충신의 목소리였다.

 “…어?”

 윤지아가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에 보인 건 사망 메시지가 아닌, 강탈자가 죽었다는 메시지였다.

 ..

 ..

 “저희 처음으로 져보네요.”

 “…죄송해요.”

 윤지아는 게임을 마무리하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고충신에게 죽으려고 각을 내준 윤지아는 눈을 감고 죽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고충신을 강탈자가 달려들어서 어떻게든 저지해줬다.

 문제는 본인이 죽었다.

 거기다 설상가상 탑과 미드 쪽 팀원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모든 라인이 밀리는데, 유독 강탈자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게임을 폭파한 것이었다.

 강탈자는 윤지아를 보면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게임에서 질 수도 있죠.”

 “하지만 저 때문에 욕먹고….”

 “그런 사람들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세인트블루 님이랑 게임 하는 게 재미있어서 같이 하는 것뿐이에요.”

 “….”

 세인트블루는 마음에 안정감을 가지며 한 가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탈자에게 윤지아의 모습은 해골 모양의 괴상한 캐릭터로 보일 텐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이왕이면 다른 캐릭터로 해볼까….’

 윤지아가 이 캐릭터를 고른 이유는 귀찮음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가뜩이나 고충신에게 끌려오듯 들어온 게임이라 내키지도 않는데, 여성스러운 캐릭터를 고르면 남자들이 달라붙어 왔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고충신도 그 상황이 싫어서 윤지아를 강제로 사신 모양의 캐릭터로 고르게 했다.

 덕분에 그 후에는 누구도 그녀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리고 윤지아도 사신 캐릭터를 하면서 전혀 불만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윤지아는 강탈자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분한테 해골 얼굴 보여주기는 싫은데….’

 그녀는 고민 끝에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얼굴 불편하지 않으세요?”

 “네?”

 강탈자는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갸우뚱하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 게임할 때 그런 건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라서 괜찮아요.”

 “그럼 다른 캐릭터도 해봐도 될까…요?”

 윤지아는 말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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