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혹시라도 내일부터는 점심은 따로 먹어야 할 거 같아요.”
“네!? 왜요!?”
“무, 무슨 일로….”
초서현의 큰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일제히 쳐다봤고, 성수아의 당황하는 표정에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해 버렸다.
실수다.
나중에 얘기할걸….
저기 멀리서 식판에 밥을 담던 녀석이 나를 보더니, 놀라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후다닥 달려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내 눈에 안 띄려는 게 눈에 보였다.
‘도망가는 것도 촐싹대네….’
나는 고충신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다시 성수아와 초서현을 바라봤다.
일단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지워질 때까지 기다린 뒤에 입을 열었다.
“제가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데, 경비하시는 분들이랑 밥 정도는 같이 먹어야 할 거 같아서요.”
“아니, 굳이….”
“그래요. 오히려 그분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요?”
일단 저는 지금 이 자리가 불편합니다만….
나는 속으로 불만을 잠재우면서 최대한 두 사람을 설득했다.
어차피 밥 먹는 건 일과 중에 한 부분일 뿐이고, 무엇보다 나는 내 탓을 하면서 사과를 했다.
“괜히 저 때문에 두 분이 불편하신 거 같아서요.”
“아니… 그게….”
“그런 게 아닌데….”
두 사람도 찔리는 게 있는지 반박을 하지는 않았다.
자존심 싸움이라는 게 겉으로 보면 바보같이 보여도 당사자들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싸움이다.
별것도 아니지만, 자존심 싸움에서 지면 굴욕감이 온몸을 펴 바르듯 감싸진다.
초서현과 성수아가 지금 하는 행동은 사랑을 빼앗는 싸움보다는 그냥 기 싸움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한테 전혀 좋을 게 없고….
하지만 지금은 강하게 나가야 한다.
특히 이유를 댈 수 있는 상황이 왔기 때문에 더욱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색한 점심이 끝나고 초서현은 섭섭한 눈으로 나를 흘겨본 뒤 기과 교무실로 돌아갔고, 나는 성수아와 같이 마과 교실로 향했다.
성수아는 내 눈치를 보면서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괜히 제가 불편하게 해서….”
“아, 그런 게 아니에요. 정말 경비원 직원들이랑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
“성수아 교관님이 불편하신 게 안쓰러워서 그랬어요.”
“아….”
성수아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바람둥이 전략!’
[….]
일단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뻥카를 쳐서라도 기분을 업 시켜준 뒤에 두 사람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따로 밥을 먹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초서현 교관님이 아침에는 오지 않으시니까, 아침은 저희끼리같이 편하게 먹어요. 저녁은 초서현 교관님이랑 먹을게요. 그래도 동료니까. 신경 써야죠.”
“그래도 언니랑 굳이 불편하게 드실 필요는….”
“직장이잖아요. 그리고….”
“…?”
“저희는 굳이 저녁 같이 안 먹어도 밤에 만날 수 있잖아요.”
“아! 그, 그렇죠….”
성수아는 내 말뜻을 이해하고 바로 미소를 지었다.
..
..
나는 초서현에게도 비슷한 말로 상황을 모면했다.
“하긴 걔가 귀찮게 하긴 하죠.”
“하하….”
그리고 초서현도 이해해줬다.
일단 교묘하게 한 쪽 편을 들어주면서 기분을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애처럼 굴었네요. 미안해요.”
“사과하실 일은 아니죠.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죠.”
“…흥.”
초서현은 코웃음을 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문뜩 떠올랐는지 내게 물었다.
“그런데 교장실에는 가봤어요?”
“아뇨. 거기보다 일단 초서현 교관님한테 말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흐흥…. 가, 가봐요.”
초서현의 독특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교장실로 향했다.
일단 초서현과 성수아의 관계는 한시름 놓은 듯싶었다.
다행인 건 타이밍이 좋았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점심은 경비 직원들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오전은 성수아, 오후는 초서현.
그렇게 식사하면 딱 맞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한동안 영사관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좀 그렇네… 고충신을 그냥 놓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녀석이다.
거기다….
‘그 녀석 가지고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
[….]
솔직히 2주일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너무 괴로웠다.
‘어쩌지 충신이가 너무 보고 싶을 거 같아!’
[….]
주말마다 영사관을 들러서 괴롭혀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 물어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경비원… 한 명 대동하는 것 정도는 물어볼 수 있잖아?’
내가 누구냐?
경비과 관리자다.
충분히 물어보고도 남을 정도의 권력을 지닌 남자다!
..
..
“흠… 나쁘지는 않지만….”
“어디까지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드린 말씀입니다.”
“….”
교장은 내 말을 듣고 커다란 손가락을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한 의견은 간단했다.
이번 생도들의 견학에 경비원을 대동시키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더라도 소수의 인원을 대동해서 생도들의 안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바로 신뢰였다.
경비원들도 대거 새로 뽑았으니, 보조 교관들이 옆에서 관찰하면서 괜찮은 인물들인지 확인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의도를 담아서 말했다.
“저번 경비원 중에서 내부자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보조 교관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인지 확인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교장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더니 강렬할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3명. 각 인솔당 3명을 뽑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인원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제가 인원을 추려서 명단을 제출하겠습니다.”
“허허… 경비과 관리자를 제대로 뽑았군요.”
교장은 웃으면서 나에 대한 좋은 평가를 해줬다.
그게 진심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교장은 그렇게 웃더니 시계를 보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회과의 교관님이 늦으시는군요. 아마 수업이 길어져서 그런 건지….”
철컥!
내 뒤에서는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교장실을 울렸다.
“죄송합니다!”
“아, 오셨군요.”
교장은 내 뒤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딱히 뒤를 돌지 않고 여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옆에 사람의 서 있는 기척이 느껴졌고, 여자는 교장과 내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생도들이 물어보는 걸 대답해주느라….”
“하하, 오히려 너무 일찍 불러서 제가 사과를 해야겠군요.”
“으으… 죄송합니다.”
나는 그때 서야 고개를 돌려서 여자를 바라봤다.
나를 향해 사과하는 여자.
“죄송합니다….”
“….”
나는 그 여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이름 : 윤지아
-기질-
[회복], [친절함], [배려심], [의존적 성격]…
=====
세인트블루였다.
‘이게 뭔 일이냐….’
나는 세인트블루… 아니, 윤지아와 복도를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일주일간 잘 부탁드려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윤지아는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문뜩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질문을 해왔다.
“혹시… 저희 어디서 뵌 적 있나요?”
“흠…? 지나가다가 뵌 적은 있지 않을까요?”
“아~ 그런가 보다….”
그녀가 가지는 의문은 나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신기한 게 목소리만 가지고는 정확히 기억을 끄집어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나는 세인트블루의 얼굴과 목소리를 알고 있음에도 고충신과 밤에 몰래 만났을 때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같은 인물로 매칭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기질과 얼굴, 목소리를 답안지 보듯 정확히 확인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단 그녀의 말들을 종합 정리해보면 고충신의 소속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단.’
윤지아는 교단 소속이고, 그녀는 분명 워오레에서 남자친구와 같은 소속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날 있었던 일은 교단이 벌인 일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다음 날 자기들이 전부 수습해서 처리했다.
그야말로 완전 범죄.
‘뭐,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일단 윤지아나 신경 쓰자.’
어차피 윤지아 자체보다 그녀를 통해서 고충신의 속셈을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윤지아의 이야기와 워오레에 있는 세인트블루의 말을 퍼즐처럼 맞추다 보면 괜찮은 정보로 추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충신의 소속을 알아낸 것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다만 윤지아 본인과 직접적으로 친해진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와 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은 견학과 관련된 업무의 내용뿐이었다.
월요일에 생도 6명을 모아서 영사관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네, 그때 뵙겠습니다.”
나는 윤지아와 대충 인사를 마치고 경비과로 향했다.
혼자 경비과로 향하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고충신… 감히 사규를 무시하고 여자랑 사귀어?’
[….]
비록 취직하기 전부터 사귄 사이였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고충신은 명백히 사규를 어기고 있는 상태고 나는 그 녀석을 이곳에서 내쫓을 수 있는 약점을 잡은 셈이었다.
거기다 제일 중요한 정보를 하나 알아냈다.
‘버그킬러… 이름이랑 매칭이 잘 되네.’
일단 윤지아의 남자친구가 고충신이고, 고충신은 버그킬러라는 게 확실해졌다.
인제야 버그킬러가 왜 그동안 안 나타났는지 알 것 같았다.
‘게임 중독이든 뭐든 간에 게임을 할 시간이 없었겠네.’
[거기다 수호 님께서는 윤지아와 한두 판 플레이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만날 타이밍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 조율을 좀 해줘야겠는데?’
일단 고충신이 워오레를 플레이할 여건을 만들어줘야 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윤지아가 나한테 친구 요청을 한 건 본인의 의사는 아닌 것 같았다.
지금에야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처음에는 어색함이 감돌았으니까….
나와 아르모니아는 고충신이 일부러 윤지아에게 부탁해서 나에게 친구 요청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더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흐흐… 니가 날고 기어봤자 절대 날 못 이길 거다.’
고충신이 핵 같은 프로그램을 손에 넣지 않는 한 나를 이기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워오레 특성상 랭크가 올라간다고 능력이 올라가는 게임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고충신은 나를 상대로 킬을 먹기는커녕 제대로 된 위협도 주지 못했었다.
‘일단 그 녀석이 뭘 하는지는 알았고…. 일부터 마무리하자.’
나는 경비과 관리실에 도착해서 경비원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견학을 가게 될 인원들은 총 다섯 개의 조로 편성되어 있었다.
즉, 뽑아야 하는 경비들은 서른 명.
‘뭐, 대충 꾸겨 넣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새로 들어온 경비 두 명, 원래 근무하던 경비 한 명씩 배정하며 명단을 작성했다.
그리고 대망의 5조….
나는 망설이지 않고 5조의 명단에 한 명의 이름을 추가했다.
‘고충신….’
벌써 나를 어떻게 즐겁게 해줄 건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
“아니, 씨발 좆같네!”
고충신은 오후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벽 너머로 외침이 들려왔다.
(거, 자고 있는데, 조용히 합시다!)
“…시발.”
고충신은 조용히 웅얼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비록 경비원들이 1인 1실을 받았다고 해도 보조 교관과 교관이 사용하는 기숙사보다 시설이 열악한 편에 속했다.
방음이 썩 훌륭하지 않았고, 보안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고충신은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씨발… 한동안 편해지나 싶었는데….”
고충신은 최근 성수호가 견학 때문에 자리를 비운다는 사실을 알고 날 듯이 기뻐했었다.
다른 경비원들에게는 전혀 터치하지 않는 성수호는 유독 고충신을 집요하게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면 또 얌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하루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좆같네… 그 새끼 일부러 나 데리고 가는 거 같은데…. 거기다 지아도 동행이고… 아, 씨발….”
가뜩이나 성수호와 동행하는 것도 짜증 나는데, 여자친구인 윤지아도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자칫 여자친구 옆에서 굴욕적인 언사를 들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었다.
“그래도 견학지가 교단이라 다행이야…. 거기서 그 새끼를 최대한 감시해야겠어.”
고충신은 교단에게 성수호에 관한 이야기를 한 상태였다.
교단에서는 별 시답잖은 인물이라고 대충 넘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충신의 말을 마냥 흘려넘기지는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비록 견학을 참여하는 동안에는 교단 소속인 것을 절대 티를 내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고충신에게 뭔가 배려를 해줄 리 만무했다.
“일단… 참자. 시이바알….”
으드득….
그는 이빨을 갈면서 최대한 분을 삭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시발… 씨발…. 후우….”
그렇게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을 때, 마침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한번 접속해볼까.”
고충신은 VR 헤드기어를 머리에 쓰면서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