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보조 교관은 무조건 동행해야 해요.”
“아하….”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라는 건가….
일단 영사관이 생긴 이래로 견학 중에 큰 사건이나 사고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거의….
초서현이 걱정하는 부분이 그 부분이었다.
괜히 갔다가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조심해야겠네요.”
“….”
초서현은 잠시 나를 골똘히 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아직 간다고 확정된 건 아니지만… 문제 생기면 꼭 연락해요.”
“알았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초서현이 고민하던 문제는 성수아도 비슷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기과 수업이 끝나고 점심 식사 후에 성수아와 마과 교실로 향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마과 애들은 뭐랄까… 좀 자유분방한 성격이 강해서 불만이 금방 쌓이는 거 같아요.”
“이래저래 문제네요.”
기과는 그래도 사관학교 느낌을 좀 이어받았다면 마과는 자유분방한 고등학교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과는 수업 특성상 스트레스가 덜하므로 불만이 쌓이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는 것 정도?
아직은 외부적으로 생도들도 큰 문제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생도들의 외출, 외박이 아니었다.
또 견학이었다.
“아마 견학이 확정되면 성수호 교관님이 같이 가게 될 거 같아요….”
“제가 할 일이면 해야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과 생도들은 기본적으로 탑에서 실습 견학을 주도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서 사건, 사고가 기과보다 현저히 낮다고 설명해줬다.
어디까지나 현저히….
기과, 마과 둘 중 하나라도 재수 없게 생도들에게 피해가 가면 자칫 ‘유어 파이어!’를 들으며 프로필이 불타오르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갔다가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서 성수아와 나는 마과 교실로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했다.
‘전산망 회복해서 좀 편해졌다 싶더니, 일이 계속 늘어나네.’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대처할 수 있는 인재가 옆에 따로 붙어있을 테니, 큰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도들이 각 길드에 실습 견학을 가게 되면 그쪽에서도 심혈을 기울여서 생도들을 돌본다고 한다.
길드의 입장에서 방문한 우등생들이 자신의 길드 소속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길드를 위해서라도 어설픈 실력자들을 붙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뭐, 지금 당장 할지 안 할지 결정도 못 한 거 같으니까.’
거기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운이 좋으면 견학을 보류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었다.
결정하는 건 직접 가는 보조 교관이 아닌, 윗선이 결정하는 거니까.
이래서 용의 꼬리가 싫다.
..
..
‘캬… 이래서 뱀의 머리가 좋다는 거군.’
[….]
나는 보조 교관 업무를 마치고 경비과를 돌아다니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직원이 나를 보자마자 바로 인사를 해준다.
비록 허리를 숙이는 건 아니지만,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오셨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무수한 인사를 받으며 관리자실에 들어와서 환하게 웃었다.
‘크… 이거 너무 좋아!’
[….]
분명 일이 늘어나서 귀찮은 건 사실이었다.
원래 지금 시간이면 초서현과 시간을 가지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초서현은 VR 훈련실의 문제로 같이 만날 장소가 없어졌고, 전산망이 복구되면서 생도들의 채점이 자동화되어서 수업도 편리해졌다.
시간도 여유가 생기고, 몸도 편해진 상태.
비록 매일 출근해서 이런저런 업무를 봐야 하지만,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만했다.
아니, 오히려 알았으면 더 일찍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보조 교관들은 전부 일반 직원이 아닌 관리자 쪽으로 넘어갔다.
괜히 시작부터 관리자를 준다고 하면 설렁설렁 면접을 볼 거 같아서 교장 쪽에서 꼼수를 부린 듯싶었다.
‘알 게 뭐야. 내가 좋으면 장땡이지.’
일단 어찌 됐든 내가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어제 받은 매뉴얼을 찬찬히 살펴봤다.
내용이 생각보다 많아서 내가 외울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이거 너무 많은데?’
[일단 보고 계시면 제가 숙지하겠습니다.]
‘역시 우리 CEO님.’
시험 볼 때 대박이겠는데?
이런 식으로 이용하면 나중에 슈트라 같은 곳에서 시험 볼 때는 만점도 쉽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뉴얼을 훑어보고 있을 때, 눈에 띄는 항목이 보였다.
<영웅 사관학교 내에 근무하는 경비원은 사내 연애를 엄격히 금지한다. (교내의 전 직원 포함)>
‘오… 신기하네.’
[아마 연애를 하면 그만큼 경비가 소홀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이유가 그런 식으로 명시가 되어 있었다.
괜히 야간 근무나 중요한 구역을 순찰 중에 딴짓하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정해놓은 사규인 듯 보였다.
경비는 일 자체가 힘들고 고되지만, 타 부서(보조 교관 제외)보다 급여와 복지가 좋은 편에 속한다.
대표적인 예로 기숙사이다.
다른 부서는 2인 1실, 3인 1실처럼 몇 명이 같이 생활하는 경우가 있지만, 경비는 1인 1실로 잠자리만큼은 편의를 보장해주고 있었다.
거기다 월급도 높은 편이고….
그만큼 중요한 업무이니 엄격한 사규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매뉴얼에 이 항목이 있는 건 관리자인 내가 그만큼 신경을 쓰라는 의미였다.
매뉴얼에 명시된 항목에도, 경비원들의 사내 연애를 보게 되면 즉시 상부에 보고하라고 나와 있었다.
극단적인 예시로 정식 교관과도 연애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있었다.
‘캬… 장황하게 적혀있는 거 보니까, 중요하긴 한가 보네.’
경고는 한 줄이지만, 그 밑에 수많은 예시와 이유가 적혀있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중요한 사실을 보면서 나는 입가를 씰룩였다.
‘뱀의 머리… 너무 좋아!’
..
..
나는 야간 근무를 나가려는 경비원들을 모아놓고 열심히 훈화했다.
비록 경비원들은 정말 뜻대로 훈.화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아시겠지만, 당분간 정신 차리고 근무를 서주시길 바랍니다.”
어제처럼 긴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고, 적당한 선에서 열심히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아, 혹시라도 이번에 새로 오신 분들이 많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다들 뭔가 싶어서 내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영사관은 경비원분들의 사내 연애를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부서 막론하고 절대 금지입니다.”
“….”
“그러니 생도나 교관분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에는 말을 걸어서 오해를 받지 않게 주의해주길 바랍니다.”
괜히 예쁘거나 잘생겼다고 추근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을 말해줬다.
“만약 연애하다가 걸리면 제 임의로 해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당연히 내 임의로 해고할 수 없었다.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하고 시키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말의 핵심이 중요했다.
연애=해고
나는 그 말을 하는 순간 고충신을 바라봤고, 녀석이 당황하는 모습도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너 말이야, 너. 이 새끼야~’
일단 엄포를 놓았으니 당분간 한눈파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다들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하고 이만 마칩니다. 수고하세요.”
다들 내 마무리 인사를 듣고 바로 자신의 근무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후다닥 자리를 떠나는 고충신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아쉬운 건 저 녀석이 어제 만났던 여자를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사귀는 건 맞는 거 같은데….
[왜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고 엄포를 놓으신 겁니까?]
‘어제 농땡이 치다가 걸렸잖아…. 저 녀석 한동안 조심할 거야.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초장에 해놔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게 좋거든.’
여친의 얼굴을 못 본 건 아쉽지만, 사실 저 고충신이라는 녀석의 숨통을 턱턱 막히게 하는 게 더 즐거웠다.
‘뭐… 기질 띄워놨으니까, 언젠가 찾겠지.’
나는 그렇게 고민을 털고, 고충신을 갈굴 생각에 룰루랄라 하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 고충신을 찾아간 뒤에 그에게 계속 말을 붙이며 이야기했다.
사실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냥 내가 계속 질문하면 고충신이 계속 답변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의 형식은 대개 고충신의 신상 정보에 관한 내용이었다.
“고향이 어디야?”
“…서울입니다.”
“어디 대학 나왔어?”
“그, 그게….”
“설마 고졸?”
“으득….”
내 말에 고충신을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고충신은 불편한 기색을 보일지언정 괜한 분쟁이 일어날 만한 말은 내뱉지 않았다.
‘말실수하면 그날로 니 모가지가 날아가는 겨~’
[….]
거기다 내가 하는 말들이 다 정보를 유도하는 말들이라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잘못 말했다가 나중에 이력서랑 다른 내용이 나오는 순간 큰일일 테니까.
거기다 고충신이 딱히 위조 이력서를 꼼꼼하게 살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말실수하면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겠네.’
어차피 이 녀석이 누군지는 관심 없다.
뒷배가 누군지 알아야 하는 게 일 순위이고, 나머지는 괴롭히기 위한 재미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보를 캐내는 것 이상으로 재미있는 게 있었다.
“그… 대학교는 말씀드리기 민망해서….”
“뭐, 요새 대학교가 중요한가…. 고졸, 중졸도 취업이 중요하지.”
“크윽….”
어제는 고충신에게 나름 상급자로서의 격식을 차려서 대화를 나눴지만, 지금은 반말로 아예 하대하듯 말했다.
거기다 꼰대 짓!
“일해서 번 돈 괜히 쓸데없는 곳에 쓰지 말고, 계속 저축하고.”
고충신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슬며시 돌려서 꿍얼거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네 …알겠 …습니다.”
이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꼰대 짓을 왜 하는지 이제는 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슬슬 꼰대 짓을 마무리 짓고 기숙사로 갈 준비를 했다.
딱히 불쌍하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재미는 있는데… 슬슬 그만 가자.’
어차피 괴롭히는 건 나중에도 가능하다.
나는 고충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나는 들어가 볼 테니까, 수고해.”
“…네.”
고충신은 하대하는 말을 듣고 잠시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내가 간다는 말에 기분이 금방 풀어져서 어색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나는 고충신을 뒤로 하고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기숙사로 향하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거 진짜 재미있는데?’
[반응을 봐서는 쉽게 발끈해서 반항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게… 계속 강도를 높여도 되겠던데?’
고충신의 기질에 대놓고 인내심 부족이 있는데, 저렇게 참는 것을 보면 그만큼 신분이 발각되면 안 되는 상황인 것 같았다.
다만 걱정되는 게 있다면 어느 시기에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일주일 안에 뭔 짓을 하고 잠적할 예정이라면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이 재미를 짧게 끝내긴 싫단 말이지….’
[….]
사건이 터지든 말든 초서현과 성수아, 그리고 내가 안전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저 녀석 까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라서 그냥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고충신은 한여름만큼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비록 NTL은 아니지만….
‘잠깐… 아르모니아, 고충신 은신 감지 없었지?’
[없습니다.]
‘몰래 가서 뭐 하는지 보자.’
어제 크게 걸려서 딴짓하지는 않을 거 같았지만, 자질구레한 짓을 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기숙사로 향하던 몸을 돌려서 다시 고충신이 근무를 서던 외각으로 향했다.
은신 상태로 접근하니, 내 존재를 느끼지 못한 고충신이 어둠 속에서 뭔가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야… 신성한 근무시간에 스마트 워치를 사용하신다?’
[그런데 영사관에서 지급한 스마트 워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네?’
처음에는 손목에 있는 스마트 워치를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적당히 다가가니 다른 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몰래 녀석의 뒤쪽으로 돌아가서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해봤다.
고충신은 스마트 워치가 아닌 손바닥에 띄워져 있는 홀로그램을 보며 타자를 치고 있었다.
스마트 워치랑 다르게 손바닥에 출력되게끔 하는 다른 기기를 사용하는 거 같았다.
다만 원리는 딱 봐도 그냥 공중에 홀로그램을 띄우는 스마트 워치와 같아 보였다.
문제는 거리가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은신이 있어서 거리를 좀 더 좁혀도 되긴 하지만 혹시라도 다른 경비가 나타나는 것을 고려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좀 더 거리를 좁혀야 하나….’
[시야 확대가 가능한 쌍안경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내 손에 쌍안경이 생성됐고, 나는 바로 안경을 눈에 맞추며 중얼거렸다.
‘…천리안 스킬을 배울 수는 없을까?’
[나중에 그런 스킬을 가진 인물을 만나시면 가능합니다.]
젠장… 지나가다가 한두 번 정도는 만났을 줄 알았는데.
파리 빙의하는 새끼도 만난 마당에 천리안 배운 애는 왜 아직 내 눈앞에 안 나타나는 건지….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쌍안경으로 고충신의 손바닥을 자세히 관찰했다.
(오빠, 피곤하지?)
(괜찮아.)
이야… 뭐 거창한 스파이 짓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여자친구랑 노닥거리시는 거였네요?
그런데 저 정도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 진짜 애정이 있는 듯 보였다.
기질에 편애가 있는 것을 봐서는 여자친구를 꽤 아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존나 재미없었다.
‘쯧… 존나 재미없네. 그냥 갈까.’
몰래 무슨 짓을 하나 기대했는데, 갑자기 김이 팍 새는 기분이었다.
계속 염탐할까, 기숙사로 갈까 고민하며 쌍안경을 든 손에 힘을 풀려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문자 내용을 보고 내 눈에 힘이 빡 들어갔다.
(너도 이제 자. 이따 아침에 문자 할게.)
(응… 오빠 이 일 1년 동안 하는 거라고 했지?)
(응 올해만 버티면 진짜 모두 끝이야.)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