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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22화 (223/898)

 생각해보면 거기서 잠을 잔 기억도 없고….

 일단 관리자실이 구린 건 구린 거고…, 경비원들 명단이나 보자.

 나는 쭉 훑어보다가 어느 지점에서 종이를 멈추고 이름을 확인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일단 이력서에 적혀있는 내용은 전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고충신의 프로필을 확인해 본 결과, 이름이 다르게 기재되어 있었다.

 고민혁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이름, 능력, 불분명한 소속.

 삼위일체다.

 문제는 조디악에서도 아직 신원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나서서 선빵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뭐, 일단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나는 그 뒤에 다른 직원들의 프로필을 훑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관리자니까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 별거 없었다.

 보조 교관 일을 최우선시하되, 남은 시간에 경비원들의 순찰 시간, 구역 배정을 하고 보고를 받는 업무뿐이었다.

 어차피 내가 직접 순찰하거나 경비를 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피곤할 일은 없었다.

 나는 야간 근무를 서게 된 경비원들을 모아놓고 인사했다.

 “보조 교관 성수호입니다. 오늘부터 경비과 관리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박수를 받은 나는, 으레 상급자로 배정받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쏼라쏼라 떠들었다.

 오늘도 수고해줘라, 문제가 생기면 말해줘라, 근무 시간 중에는 집중해달라….

 경비원들이 경비하기도 전에 졸릴 수 있는 말들을 막 내뱉었다. 하지만 그들이 졸릴수록 나는 점점 더 쌩쌩한 게 느껴졌다.

 이 맛에 관리자를 하는군.

 “그리고 저번에 침입 사건에 대해서 잘 아실 겁니다. 부디 긴장하며 경비를 서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끝으로 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인사를 하는 내내 나를 노려보는 고충신도 똑똑히 봤다.

 ‘저 새끼는 몰래 들어 온 주제에 의심받을 짓을 골라 하네….’

 노려보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저놈은 너무 노골적으로 내게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아마 수호 님께서 일을 방해한 게 굉장히 거슬린 모양입니다.]

 ‘그런가?’

 옥상에서 저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건 레나가 나타나고 나서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설마 동료들이 죽어서 나한테 원한이 생겼나? 그런데 그전에도 옥상에 오자마자 나한테 원한이 있어 보였단 말이지….

 당시에 촐싹대는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상하게 나한테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나에게 적의를 보이는 고충신이라는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하나였다.

 ‘흐흐흐… 근무 시간을 계속 오전, 오후, 야간으로 변경해서 미치는 게 뭔지 알려주마.’

 [….]

 침입자여… 3교대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

 ..

 나는 이번 주 근무표를 작성하고는 헤실헤실 웃으며 기숙사로 향했다.

 내 웃는 모습을 본 아르모니아는 의문이 섞인 목소리로 질문을 해왔다.

 [수호 님, 어째서 아까 말씀처럼 고충신의 근무 시간을 중구난방 하지 않으신 겁니까?]

 ‘굳이 바로 할 필요는 없잖아.’

 고충신의 시간표는 수요일까지 야간 경비, 그다음 날 목요일부터 오후 경비를 설 수 있게 근무표를 작성했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중구난방으로 근무표를 작성하면 다른 경비들도 나를 좋게 볼 리 없었다.

 나중에 살살 약 올리는 듯이 하루 이틀 변경하는 게 핵심이었다.

 ‘저 녀석 아까 보니까, 나 노려본 것도 그렇고 참는 성격이 아닌 거 같아.’

 [기질에도 ‘인내심 부족’이 있습니다.]

 ‘흐흐… 좋네.’

 나중에 나한테 대들면 나도 그 녀석에게 불이익을 줄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두 개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핵심이다.

 ‘빨리 성수아 보러 가자…. 응?’

 내가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기숙사로 향하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기질창을 달고 있는 녀석이 여자 기숙사 뒤편으로 향하는 것을 목격했다.

 사실 사람이 보인 것보다 멀리서 조그마한 기질창이 보여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한 수준이었다.

 일단 생도는 아니다. 생도 기숙사는 교관 기숙사와 꽤 떨어져 있으므로 이 늦은 시간에 생도가 이곳을 지날 리는 없었다.

 ‘성수아? 초서현?’

 내 물음에 아르모니아가 바로 해답을 줬다.

 [고충신이었습니다.]

 ‘뭐? 걔가 왜 여깄지?’

 고충신은 분명 근무지가 여기서 한참 떨어진 영사관 외곽일 텐데….

 맙소사 근무 첫날부터 허튼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관리자로서 책임감을 일깨우며 고충신의 근무 태만을 체크하기 위해 은신을 사용해서 바로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뒤쫓으니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걱정이네… 만약 이상한 놈들이랑 접선하다가 내 은신 걸리면 어떡하지?’

 [혹시 모르니 워프를 준비해놓겠습니다. 또한 레나 씨도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들키지 않게 조심할게.’

 일단 레나가 온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문제는 피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최대한 안 들키는 쪽이 중요했다.

 나는 은신 상태로 여자 교관 기숙사 뒤편으로 그를 따라갔다.

 여자 교관 기숙사 뒤편으로 가는 게 좀 불안하긴 했지만, 일단 들켜도 저 녀석 핑계를 대면 큰일 없이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기숙사 뒤편에 도착할 때쯤 서서히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너는 왜 굳이 여기를 와….”

 “그냥… 오빠 걱정돼서 그렇지….”

 귀만 기울여서 들어보면 일단 많은 사람은 아니고, 두 남녀의 대화 소리만 들려왔다.

 남자는 일단 고충신이 확실했다.

 그런데….

 ‘뭐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여자의 목소리가 분명 어디서 들었던 느낌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막상 기억하려고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생도인가?

 원래라면 은신이 걸릴 위험을 고려해서 몰래 숨어서 대화 내용만 들으려고 했지만, 속에서 피어나오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일단 건물 뒤편이라 조명이 없어서 정확한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아르모니아, 저 여자 기질 좀.’

 여자로 추정되는 자의 기질창이 머리 위에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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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윤지아

 -기질-

 [회복], [친절함], [배려심], [의존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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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기질창에 표시된 성격을 봐서는 굉장히 고분고분한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친구인가?’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대화를 들어보면 대충 고충신이 여자에게 왜 따라왔냐며 타박하는 내용이었다.

 웃긴 건 여자의 능력만 보면 남자에게 꿀릴 게 전혀 없어 보였다.

 -[회복 LV 32], [상태 이상 해제 LV 25]…-

 파리에 빙의하는 병신 같은 능력이 아닌 딱 봐도 회과에서 교관으로 있을 법한 능력치를 지닌 여자였다.

 보이지 않는 얼굴을 어떻게든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볼 수 없었다.

 “하아… 지아야, 미안해. 그냥… 괜히 너까지 힘들어지는 거 같아서 좀 화냈어.”

 “아냐, 그럴 수 있지.”

 두 사람은 어느새 화해하고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단 내일 아침에 전화나 메시지 보낼게. 빨리 가서 자.”

 “응… 오빠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여자는 몸을 돌려서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걸어가는 여자의 검은 실루엣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에잉…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는데.’

 지금 와서 기숙사 반대편으로 뛰어가기에는 기숙사 건물이 너무 크고, 괜히 잘못해서 걸리면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일단 기질을 파악했다는 걸 위안 삼기로 했다.

 [일단 저 여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충신이라는 자와의 관계를 조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좋아… 그럼 일단 저 여자는 나중에 신경 쓰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나는 고충신이 내 쪽으로 오는 것을 확인하고, 그가 건물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났다.

 고충신이 나를 보자마자 바로 놀라며 욕설을 내뱉었다.

 “으악! 씨발!”

 “뭐지? 너는 누군데 여자 교관 기숙사를…. 경비?”

 “흡….”

 고충신을 내 정체를 확인하고 경직된 얼굴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게… 수, 순찰 중이어서…. 호, 혹시 몰라서….”

 고충신은 딱 느낌이 사회생활 전혀 안 해본 티가 났었다.

 말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않고 중간에 어설프게 반말처럼 들리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눈썹을 비틀며 한심한 놈을 보듯 조용히 질책했다.

 “말을 똑바로 해라.”

 “그….”

 고충신은 내 질책에 빡쳐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침묵하다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입을 열었다.

 “근처에서 순찰하다가 기숙사 뒤를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래… 말은 그렇게 해야지.”

 “….”

 오우,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좀비 영화에서 좀비가 되기 직전에 경련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일단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상대는 공격 스킬이 없습니다. 좀 더 강하게 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냐, 아냐….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나는 갑질도 NTL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NTL과 갑질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상대방이 지닌 희망과 열정이 커질수록, 내가 행하는 NTL과 갑질의 쾌락도 비례해서 증가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희망과 열정을 최대한 키운 다음,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수족관에 넣어서 감상하는 것이야말로 NTL과 갑질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희망과 열정을 키우는 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고양이 낚싯대로 고양이랑 놀아주는 것처럼 해주면 된다.

 너무 높이 들어서 포기하게 만들어도 안 되고, 너무 낮게 들어서 흥미를 잃게 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하면서 고충신의 희망과 열정을 키우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녀석을 내가 곱게 보내줄 수는 없지.’

 [….]

 나는 속으로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며 고충신에게 말했다.

 “그런데 자네… 아까 얼굴이 기억나는데… 근무지가 다른 곳이지 않나?”

 “그, 그게….”

 “흠….”

 나는 고충신의 대답을 듣지 않고 스마트 워치를 들어 올려서 메모장을 켰다.

 메모장에 간략한 메모를 입력했다.

 -고민혁, 근무지 무단이탈-

 나는 일부러 녀석에게 메모를 보여주며 입력했고, 고충신은 메모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나는 메모를 저장하고 나서 고충신에게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 근무지로 돌아가도록.”

 “…네.”

 고충신은 이를 갈면서 나를 지나쳐서 자리를 이탈했다.

 나는 그 녀석의 뒤통수를 보면서 쾌감에 젖은 감성으로 외쳤다.

 ‘크아… 역시 권력이 최고야!’

 [….]

 나는 밤인데도 불구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늦네….”

 성수아는 동물의 마을 한복판에서 앉아서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성수호를 기다렸다.

 며칠 전,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니, 전에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씩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성수호.

 실종된 그를 찾아 헤맨 자신.

 우연히 보게 된 초서현과 성수호의 모습.

 거기에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진 성수아.

 성수아는 여기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연 성수호와 같이 있던 게 초서현이 아닌 다른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 상황이 펼쳐지기 전에 성수호가 먼저 동물의 마을을 접속했다.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성수아는 어린 모습의 성수호를 반기며 잡생각을 떨치고 그와 게임을 즐겼다.

 그리고 오늘은 성수호가 다른 방향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을 제안했다.

 “슬슬 집을 다음 단계로 높이는 게 어떨까요?”

 바로 집 증축이었다.

 이 게임의 핵심은 마을을 꾸미는 것도 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자신의 집을 크게 꾸미는 게 중요 포인트였다.

 슬로우라이프라고 해도 허름한 오두막보다는 별장 같은 곳이 훨씬 좋을 테니까.

 집을 증축하는 방식은 지금 있는 빚을 전부 갚으면 알아서 다음 단계의 집을 지어주면서 대출이 생기는 구조였다.

 성수아도 이왕이면 허름한 집보다는 깔끔한 집이 좋다고 생각하며 성수호의 말에 동의했다.

 “하긴 게임 시작한 지 꽤 됐는데, 슬슬 높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럼 오늘은 물고기랑 벌레를 최대한 잡아서 팔아보죠.”

 그렇게 두 사람의 싹쓸이 밀렵이 시작되었다.

 ..

 ..

 집을 증축하는 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어느 정도 대출금을 갚은 상태여서 두 사람이 자기 전에 첫 번째 증축을 완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완료와 동시에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내부 인테리어는 그대로 둔 채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 현상.

 “쿨….”

 “….”

 성수아는 옆에서 자는 성수호를 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수호와 성수아는 어느 순간 동료라는 친분을 넘어선 상태였다.

 당연히 성수아도 그런 감정을 인지하고 있었다.

 성수아는 성수호를 껴안은 상태로 다시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정말 멋있었지.’

 자신의 위기를 구해준 성수호에 대한 호감이 그날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상승했었다.

 그전에도 이성으로서 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과는 판이한 상태였다.

 그리고 성수호에 대한 호감의 한계치를 뚫는데 부추긴 것이 바로 초서현이었다.

 성수아는 초강현을 뺏겼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뺏겼다고 생각했음에도 성수아는 초서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초서현은 진짜 피가 이어진 가족이었고, 성수아는 그런 가족애를 존중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너무해…. 언니는 매번 그런 식으로….’

 성수아의 이성은 초서현이 고의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그녀의 감성이 판단을 계속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성수아도 이번만큼은 결심했다.

 ‘안 뺏길 거야… 이번에는….’

 그리고 그 결심과 함께 성수아의 마음속에서는 음습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성수아는 김이 서린 숨을 내뱉으며 성수호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전에도 자주 만진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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