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도 모르고… 침입자에 대해서도 모른다… 거기다 괴생명체에 대해서도 금시초문….
‘아무리 생각해도 괴인 단체 말고 다른 놈들이 있는 거 같지?’
[가능성이 큽니다. 일단 조디악에서 정보를 알아내는 대로 바로 알려주겠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이거 뭐 초강현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귀찮은 일이 계속 일어나네….’
일단 내 주위에 쥐새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저놈이랑 연관시키면 그만이니까….
기과 교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초서현을 찾아갔다.
초서현은 나를 보고 아침 인사를 하고 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관리자 쪽으로 가고 싶죠?”
“역시 눈치가 엄청 빠르시네요.”
“후후….”
초서현은 팔짱을 끼고 곁눈 짓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사람은 이래서 인맥을 쌓으라는 건가 보다….
일단 초서현은 나를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겠다고 으스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맨입으로?”
“하하… 저번에 부탁하라고 하셨던 거 이번에 써도 될까요?”
전에 초서현은 내게 부탁 하나 들어주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일단 부탁이라는 게 형식상 백지수표의 형태를 띠고 있어도, 결국 한도라는 게 존재했다.
그리고 한도가 명확하지 않은 부탁은 이런 기회에 쓰면 서로 윈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나 혼자의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초서현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부탁을 겨우 이런 거에 쓰면 어떡해요….”
“네?”
“흥….”
초서현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팔짱은 낀 상태로 몸을 돌려서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제가 말해볼게요. 자, 수업 준비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 후에도 수업 내내 초서현은 입술을 삐쭉 내밀고 툴툴거리며 진행했다.
삐져 보이는 건 내 착각이겠지?
..
..
내가 담당한 기과의 오전 수업은 대련으로 이루어졌다.
습격 사건으로 인해서 큰 수업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제일 무난한 수업인 대련으로 정해졌다.
그렇다고 대련이 무작정 수준이 낮은 수업은 아니다.
이 세계는 괴인이 존재했고, 대인 훈련도 그만큼 중요했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지루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생도들은 초서현의 엄격한 지도에 열심히 훈련에 임했지만, 휴식 시간까지 지루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휴식 시간이 되고 나서 생도들이 훈련실 바닥에 앉아서 옹기종기 모여있을 때, 초서현이 내게 다가왔다.
“….”
“….”
그렇게 다가온 초서현은 별말 없이 내 옆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초서현은 정면을 바라보면서 침묵할 뿐이었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제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어떤 거 말인가요?”
“…그때 옥상에서 있었던 일.”
“….”
옥상에서 상황극이 끝나고 헤어질 때,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혹시라도 어제 있었던 일… 비밀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한 일이라는 건 옥상에서 지원사격을 해준 것을 뜻했다.
그리고 의외였던 건 초서현이 내 사정을 따로 물어보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알았어요.)
솔직히 의외였다.
뭐랄까…. 초서현이라면 이것저것 캐물었을 거 같았으니까.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초서현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세상 살다 보니까, 사람마다 사정이 있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괜히 오지랖 부려서 피해를 준 적도 있었고….”
“….”
“…나중에 말하고 싶으면 그때 말해줘요. 기다릴 테니까.”
“감사합니다.”
초서현은 피식 웃으면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러고 보니까, 관리자야 뭐 추천으로 뽑는다고 하지만 원하는 곳 있어요?”
“아….”
업무는 경비나 조리, 행정 등등 굉장히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업무가 세분되어 있다는 건 당연히 관리자도 업무마다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아까는 관련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데 어떻게 일을 하나 싶었는데….
[아마 전문성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형식상 배치해놓는 것 같습니다.]
일단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교관과 보조 교관이 아무리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해도 그 땅도 자기 영역이라면 일 자체를 제대로 못 해도 맡길 껀덕지가 있다는 의미였다.
영사관 보조 교관도 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니까.
일단 초서현이 말해준다면 원하는 곳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혹시… 경비 쪽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경비요?”
초서현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아니, 하필 골라도 왜 그렇게 귀찮은걸….”
영사관 내에서 귀찮은 일을 꼽으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경비를 꼽을 것이다.
낮과 밤이 자주 뒤바뀌고,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런데도 내가 이 귀찮은 일을 맡겠다고 한 이유는 단 하나다.
파리 빙의남….
그 녀석을 직접 감시하고 뭐 하는 녀석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저번에 영사관 사건도 있고 해서 경비 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끙…. 그래도 그렇지, 왜 굳이 힘든 일을….”
초서현은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중얼거리다가 말했다.
“알았어요…. 만약 힘들면 바로 말해요. 어떻게든 다시 말해서 바꿔줄 테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솔직히 아무리 힘들어도 중간에 바꿔 달라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일단 초서현이 추천한다고 완벽하게 이뤄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녀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전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
..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원해서 하는 건데요 뭘….”
성수아와 점심을 같이 먹고 그녀와 함께 마과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초서현과 성수아 사이에 낀 나는 숨 막히는 점심시간을 경험했고,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며 대화 한 톨 나누지 않다가 우연히 한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경비 업무 쪽 관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내 이야기였다.
초서현에 말을 듣고 나서 교실로 향하는 내내 성수아는 계속 내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유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괜찮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받아쳤고, 성수아는 결국 포기했다는 듯이 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혹시라도 힘들거나 문제가 있으면 꼭 말씀해주세요. 제가 최대한 도와줄게요.”
“하하… 감사합니다.”
행복하다 두 여자가 나를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게….
그런데 뭐랄까… 남자로서라기보다는 애 같이 보는 거 같은 건 착각인가?
사실 초서현이나 성수아나 둘다 경비에 대해서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었다.
나도 그 파리남이 뭔 짓을 꾸미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경비 쪽을 지원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성수아에게도 초서현에게 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부탁했다.
“그날 일은 꼭 비밀 부탁드립니다.”
“…왜 그렇게 비밀로 하시려는 거예요?”
옥상에서 내가 쏘았던 화살.
성수아는 내가 보여준 화살을 떠올리면서 이야기했다.
“그야 더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그 정도 실력이면 영웅 협회에 재인증을 요청하면 정식 영웅으로 발탁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수아는 노란 빛줄기의 화살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활 실력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영웅으로 승격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성수아는 나를 보조 교관이 아닌, 자신과 같은 교관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한테 그건 독이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지내야 하니까….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좋은 변명도 존재하고….
“그날 사용한 건 저도 급하게 사용한 거였어요. 솔직히 지금도 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요.”
“…정말인가요?”
“네. 그때 성수아 교관님 보고 놀라서 저도 모르게 사용한 거였어요. 당시에도 기절 직전까지 마나가 빨려서 제대로 정신도 못차렸고요.”
“…알았어요.”
알았다고 해서 안심이 되긴 하는데, 성수아가 평소에 비해서 과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성수아와 대화를 나누며 마과 교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교실에 도착하고 나서 평소와 다른 점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지은 생도가 안 보이네요?”
“네, 저번 습격 건으로 당분간 등교를 못 할 거 같다고 연락이 왔어요.”
서지은은 불안감과 별개로, 언제나 수업에 참여하기보다는 견학하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앉아서 대기하고 있으면 대개 2~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의자를 놓고 생도들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으니까.
성수아는 그녀가 등교하지 않은 이유가 불안감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설명해줬다.
“금요일에 수업 마치자마자 집에 돌아가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만약 직접 대면했으면 싸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칫 또 폭주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긴… 싸우다가 자기한테 칼날을 들이민다고 했죠?”
서지은의 능력은 그림자 마법.
원래라면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생도였지만, 어느 순간 문제가 생기면서 자신의 그림자들이 그녀에게 덤비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발밑에 암살자를 두고 사는 건 보통 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괴생명체의 습격 때, 영사관에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성수아는 생도들을 앞에 두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수호 교관님, 혹시 조만간 수업 마치고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언제든 가능합니다.”
동물의 마을을 하자는 건가?
그런데 그건 굳이 이런 약속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하자는 식으로 말하면 그만이니까.
성수아는 내 즉답에 미소를 지으며 시간을 내달라고 한 이유를 말해줬다.
“조만간 서지은 생도의 집으로 직접 방문해볼까 해서요.”
“아….”
딱히 싫은 게 아니다.
다만 저번에 뒤에서 몰래 봤던 일이 생각나서 좀 꺼리긴 했다.
괜히 찾아갔다가 이상한 취급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
하지만 내 속마음을 모르는 성수아는 내가 귀찮아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혹시… 귀찮으신가요?”
“에이, 설마요…. 괜히 제가 가면 생도가 어색해할까 봐서요.”
“괜찮아요. 조만간 시간 되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성수아와 나는 나중에 시간이 맞으면 그때 방문하기로 같이 약속했다.
..
..
“흠….”
“….”
마과 수업을 마치고 나서 나는 바로 교장에게 불려갔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보조 교관들도 불려왔다.
한 명씩 교장실 안으로 불려 들어가서 면담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까도 언뜻 보기는 했지만 덩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팔뚝이 내 허벅지보다 두꺼웠다.
아무리 봐도 교장이 아니라, 괴인이 인간으로 변장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
내 3배 정도 되는 몸을 가진 교장은 열심히 종이를 훑어보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성수호 교관님.”
“네.”
“혹시 초서현 교관님과 성수아 교관님이랑 사이가 안 좋습니까?”
“…? 아뇨.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교장의 모습을 보니, 현재 상황을 오해하는 듯 보였다.
경비에 대한 자세한 업무를 모르는 초서현이나 성수아도 하지 말라고 나를 말렸다.
같이 일하는 동료인 두 사람이 경비로 나를 추천했으니 겉으로 보면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 같았다.
교장은 종이를 내려놓고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성수호 교관님은 경비 관리자로 배정하겠습니다.”
교장은 나를 경비 관리자로 업무 배정을 하고, 내게 최소한의 설명을 하고 내보냈다.
교장의 설명은 업무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보조 교관과 경비 관리자, 두 개의 담당을 하다가 생기는 문제를 커버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분명 영사관에서 교관과 보조 교관의 대우가 달라도 보조 교관도 표면상 교관이다.
고생시키는 만큼 최대한 신경 써주고, 문제가 생겨도 어느 정도 눈감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교장실을 나오니,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내게 몇 장의 A4 용지를 건네주면서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경비 관리자의 기본 매뉴얼입니다. 그리고 몇몇 가지 숙지사항도 넣었습니다. 본 업무는 경비과로 가시면 더 정확하게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매뉴얼과 숙지사항이 적힌 문서를 받고 나서 바로 경비실로 향했다.
나는 경비과에 가서 바로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재직한지 6년 차가 된 직원은 내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아르모니아가 설명해줬다.
[저들도 원래 보조 교관을 지원했던 자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하…. 그런데 보조 교관을 못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는 거고?’
영웅들이 영사관에서 일하는 것을 군대에 가는 것처럼 귀찮은 일로 여기지만, 여기에 있는 등수 외의 존재들에게 영사관은 대기업과 같은 곳이라고 설명해줬다.
그중에서 최고는 보조 교관.
보조 교관의 주요 업무는 생도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다.
분명 일이 있기는 하지만 수업 특성상 생도들이 다치는 일이 드물었고, 사건 사고는 교관이 빠르게 대응하면 금방 묻히기 마련이다.
간혹 교관들의 히스테리를 감수하기는 하지만 이만큼 몸 편한 직종이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초봉부터 2~3배를 가지고 시작할 정도이니… 아니꼽게 볼만하긴 하겠다.
나나 저 양반이나 같은 등수 외의 존재들인데 누구는 힘들게 경비직하고, 누구는 애들 뒷바라지 좀 해주면서 높은 연봉을 받고….
거기다 이제는 상급자로 모셔야 할 판이니까….
박탈감이 생길만했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나는 속으로 흥얼거리며 설명을 계속 들었다.
직원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설명은 자세히 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6년 차 직원이라고 해도 나랑 기 싸움 해봤자 영사관 생활이 편할 리가 없을 테니까.
6년 차 직원은 나를 관리자실로 안내하며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일단 설명은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습니다. 만약 모르시는 게 있으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일 보세요.”
나는 직원이 나가자마자 바로 책상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경비 관리자실 내부.
‘…개구려.’
일단 사무실 자체는 깨끗했지만, 가구들이 오래 쓴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개인실이 있다는 것부터가 나름 보장을 해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는 딸도 못 치잖아.’
[…혹시라도 COO 집무실에서도 치시면 안 됩니다.]
태클 거는 부분이 좀 미묘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COO 실에서는 뭔 짓도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