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18화 (219/898)

 거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마트 워치가 작동되지 않았고, 덕분에 연락을 취할 어떠한 방법도 없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영사관 뒤에 있는 산에서 도망 다니느라 정신없었어요.”

 “하아….”

 초서현은 내 말을 전부 듣고 나서 내 양팔을 잡고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걱정했잖아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내 팔을 붙잡고 고개를 숙이던 초서현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초서현의 모습은 평소에 보여주는 모습과 사뭇 달랐다.

 엄격한 교관, 엉뚱한 동료, 다정다감한 여자.

 모든 인간이 사람마다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초서현은 그 선을 확실히 지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초서현은 자신의 모습들을 나한테 계속 바꾸며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초서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같이 식사하기에는 너무 늦은 듯하네요.”

 “하… 그게 중요해요?”

 초서현은 헛웃음을 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과 불안감이 싹 사라진 상태였다.

 오로지 안도하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하긴… 지금까지 실종됐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밥 먹기는 늦었죠? 하는 게 웃겨 보이긴 할 거 같다.

 나는 그런 초서현에게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꼭 약속 지키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까, 슬슬 들어가서….”

 “잠깐….”

 나는 당연히 시간이 시간인 만큼 기숙사로 돌아가자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초서현이 내 말을 끊고 내 옷소매를 손에 살며시 쥐고는 제지했다.

 하지만 그렇게 제지하고 나서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 침묵만 하고 있었다.

 “…? 초서현 교관님?”

 “그… 시간… 아직 안 지났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미 밤은 넘어서 조금 있으면 새벽이라고 불러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여기서 도시락을 까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그렇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초서현이 웅얼거리는 소리로 작게 말했다.

 “아직… 12시… 더… 가….”

 “네? 죄송합니다. 잘 안들….”

 내가 초서현의 말에 귀 기울이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갔을 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초서현의 얼굴이 보였고, 그녀는 주먹을 쥐고 내가 들릴 수 있게 말했다.

 “아직… 12시 안 지났잖아요…. 좀 더 있다 가요….”

 “….”

 직장 동료끼리도 평소에 밥 먹자는 것과 만나자는 건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밤중에 같이 있다 가자고 하는 건 의미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아직 초서현과의 관계는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녀는 나에게 가야 할 길을 계속 제시해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알려준 길을 믿고 차분히 걸어갈 뿐이었다.

 나는 초서현의 곁에 다가가서 슬며시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초서현 생도가 바란다면 그렇게 해줘야지.”

 “자, 잠깐! 그, 그건….”

 “응? 그만할까요?”

 “….”

 초서현의 동공은 오밤중에도 떨림이 보일 정도로 강렬하게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던 초서현은 웅얼거리며 말했다.

 “마, 마음대로… 해, 해주세요….”

 “하하….”

 그 뒤로 옥상에서 초서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

 성수아는 탑에서 온 마법사들을 배웅하면서 인사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무 도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을 바라보고 있었고, 탑에서 온 자들도 영사관에서 온종일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배웅을 마치고 성수아는 옥상을 향해 바라봤다.

 “…언니, 아직도 있겠지.”

 성수아는 천천히 건물 옥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그녀는 계단을 천천히 오르면서 몸에 기운이 빠지며 현기증이 오기 시작했다.

 전날 있었던 사건은 성수아에게도 꽤 큰 피로도를 남겨주었다.

 마나도 다 쓰고, 거기다 이틀가량을 잠 한숨 자지 않고 성수호를 찾아 헤맸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진작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신과 육체를 최대한 끈질기게 잡으며 초서현이 있는 옥상으로 향했다.

 진작에 전화로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괜히 전화하면 또 오해를 살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일단… 언니한테… 상황을 말해주고…. 하아… 하아….”

 성수아는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옥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열려 있는 쇠문으로 찬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오고 있었다.

 “밖에 언니가….”

 그렇게 옥상으로 나가려는 순간 바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괘, 괜찮나…요?”

 “응, 자세 좋네.”

 성수아는 어지러운 머리를 통해 들어오는 초서현의 목소리를 캐치할 수 있었다.

 ‘뭐지? 누가 같이 있나?’

 성수아는 문밖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서 바라봤다.

 어두운 옥상에는 키 차이가 확연히 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초서현과… 그녀를 껴안고 있는 성수호였다.

 ‘…뭐야?’

 성수아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뇌가 마비가 온 듯 두 사람의 행동을 멍하니 지켜봤다.

 껴안고 있다고 생각한 성수호는 초서현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좋아, 확실히 자세가 많이 좋아졌어.”

 “가, 감사합니다….”

 초서현은 활을 든 상태로 활시위를 당겨서 자세를 잡았고, 성수호는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자세를 봐주고 있었다.

 ‘왜… 두 사람이….’

 성수아에게는 모든 게 이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실종된 성수호를 찾았는데, 그는 어느 순간 나타나서 초서현을 껴안고 있었다.

 거기다 평소에 태도와 전혀 다르게 초서현은 존댓말을 쓰고, 성수호는 반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교관과 생도의 대화와 비슷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을 보면서 성수아는 심장 한켠에 피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화려한 화원이 존재했다.

 비록 쓸쓸함으로 생기가 덜해졌을 뿐, 언제나 그녀를 지탱해주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화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 화원에 한줄기의 검은 씨앗이 심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성수아는 그동안 보여줬던 싱그러운 미소가 아닌, 날카롭고 거친 눈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그렇게 힘들게 찾아 헤맸는데…. 언니는 이렇게….’

 성수아가 유일하게 시기심을 느끼는 존재가 있다면 초서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초강현이 자신을 멀리하게 된 계기가 초서현에게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초서현의 입장을 모르는 성수아는 그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초서현은 언제나 성수아를 보면 툴툴거렸고, 그녀를 못마땅해했다.

 성수아는 초서현이 이번에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성수아는 두 사람을 노려보면서 평생 입에 담아 본 적이 없었던 말을 속삭였다.

 “…짜증나.”

 성수아의 화원 한켠에 검은 꽃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

 나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느끼고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응?”

 분명 뒤에서 누가 보는 거 같았는데….

 초서현이 내 행동에 당황해서 쭈뼛거리며 존댓말로 물어봤다.

 “왜, 왜 그러세요?”

 “아… 아냐.”

 나는 그 서늘한 감각을 쉽사리 잊지 못한 채 초서현과의 상황극을 마무리했다.

 ..

 ..

 ‘와… 이건 좀 심한데?’

 나는 기숙사 내부로 들어오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보조 교관의 위치가 짐작이 가는 대우였습니다.]

 “그래도 실종됐다가 나타나면 그래도 신경 써주지 않나?”

 나는 초서현과 헤어지고 바로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 경비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들어가려는데….

 (다행이네요. 내일까지 실종됐으면 기숙사실 비워졌을 텐데. 하하하!)

 (….)

 뻔뻔하게 웃는 경비에게 주먹 한 방 날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근접전은 이길 자신이 없거든….

 그래도 시스템은 잘 되어 있어서 경비가 내 말을 듣고 바로 실종자 명단에서 제외해줬다고 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성수아였다.

 초서현의 말에 의하면 성수아도 밤새 나를 찾아 헤맸다고 했다.

 문제는 보조 교관인 내가 이 늦은 시간에 교내를 뒤지며 성수아를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운이 좋게 성수아는 기숙사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나도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찾아가 봐야겠다.’

 [성수아는 수호 님께서 구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꼭 보답할 것입니다.]

 ‘흐흐… 나중에 알몸 에이프런으로 요리해달라고 해야지~’

 [….]

 왜? 그게 얼마나 개 쩌는 건데.

 일단 성수아에게 올가미 하나를 걸어놨다는 게 중요했다.

 내가 아는 성수아는 절대 도움 받았던 것을 잊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분명 뭔가 보답을 해줄 여자였다.

 일단 성수아는 내일 만나면 된다… 문제는….

 ‘아르모니아, 어제 있었던 일 좀 영상으로 보여줘.’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내 눈 앞에 화면이 띄워졌다.

 장소는 옥상. 레나가 내 옆에 있었고, 주변에는 시체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괴현상들….

 주변의 물체들이 자유의지를 가진 듯 날아왔고, 레나의 검은 말도 안 되는 풍화작용과 함께 녹이 서서히 스며들더니 바스러지면서 주황색 쇳가루로 변해서 바닥에 쌓였다.

 사실 함선에서 아르모니아와 대화를 하면서 괴현상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

 ‘초강현… 맞겠지?’

 [그렇다고 생각은 됩니다만… 확신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평범한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괴했다.

 하지만 기괴하다고 무조건 초강현을 지목할 수도 없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그건… 일단 넘어가자.’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 억지로 끼워 맞춰봤자 소용없으니까.

 나는 제일 중요한 주제를 꺼냈다.

 ‘레나 항마력 올리는 거 어떻게 생각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나의 신체는 나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거기다 여기 있는 영웅이라고 불리는 자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녀의 치명적인 문제는 항마력이었다.

 일루니아에는 마법의 발전이 거의 없어서 애초에 항마력이 생겨날 이유도 없는 모양이었다.

 [참고로 저희….]

 ‘…?’

 저희, 뭐?

 아르모니아는 생각보다 말을 오래 쉬더니 다시 통신으로 말해왔다.

 [NT…L 코퍼레이션 소속의 인물은 에넬로 능력치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

 기업명을 아직도 제대로 못 부르다니, 쯧쯧….

 ‘일단 레나 항마력은 올려놓자.’

 [알겠습니다.]

 이왕이면 10까지 올리면 좋지만, 지금 우리 수중에 있는 에넬은 5만 정도였다.

 일단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심정으로 레나의 항마력을 개화시킨 다음에 8까지 올렸다.

 사용한 에넬은 2만 2천가량.

 어차피 이제 레나에게 수면이나 침몽 마법을 걸 일이 없어서 항마력을 올리는데 거침이 없었다.

 이제부터 나뿐만 아니라, 레나도 임무에 투입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후… 일단 끝이지?’

 [옥상에서의 괴현상에 대해서는 못 알아내서 아쉽지만, 차근차근 알아보면 될 것입니다.]

 ‘좋아… 그럼….’

 내 눈에는 VR 헤드기어가 눈에 들어왔다.

 ‘워오레나 들어가 볼까.’

 나는 바로 VR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게임으로 접속했다.

 “음… 없네.”

 워오레(워치 오브 레전드)에 접속하기 전에 성수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친구창에는 오프라인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뭐랄까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일단 워오레나 접속해보자.”

 만약 접속하고 나서 세인트블루가 없다면 그대로 종료하고 자면 그만이다.

 다행히 첫 번째 같은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워오레 게임 계정 친구창에 있는 유일한 친구는 온라인표시가 되어 있었다.

 마침 게임을 플레이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바로 세인트블루에게 말을 걸어봤다.

 “뭐 하세요?”

 (아… 아, 안녕하세요….)

 뭐랄까, 평소와 굉장히 다른 분위기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는 했지만….

 (…오랜만이시네요.)

 “네, 일이 있어서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게….)

 같은 대기실을 쓰는 상황이 아닌, 친구 대화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