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단의 지원이 오는 것과 동시에 사건의 수습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괴생명체들은 전부 교단 측에서 회수해 가지고 갔고, 피해를 본 생도와 교관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했다.
치료, 구조… 그리고 시체의 안치까지….
어느 정도 사건이 진정세를 보일 때쯤 영사관 교관들과 교장이 만나서 회의를 진행했다.
“경보도 안 울려… 경비도 사라져… 거기다… 캡슐까지 도난당해….”
“내부자가 있는 거네.”
다들 그 말에 침묵했다.
사실 이곳에 있는 교관들 모두가 생각했던 것이지만, 직접 입 밖으로 나오니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경비의 경우에는 확인해보니, 모두 다 사라진 건 아니더군요. 대부분…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경보는… 완전히 배선을 제대로 골라서 잘라놨더군요. 거기다 정확히 필요한 부분만 잘라냈습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전선 관리 능력 같은 것도 생긴 건가?”
다들 그 말에 실실 웃고 있었다.
단 두 사람만 빼고….
초서현은 손으로 턱을 괴고, 입술을 깨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성수아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 상황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지금 단 한 사람만 자리하고 있었다.
성수호.
그가 사라졌다.
옥상에서 엄청난 성과를 내며 성수아와 초서현을 구하던 그가 사라졌다.
엄청난 양의 혈흔을 남긴 채….
‘한두 사람이 흘린 혈액의 양이 아니야….’
‘그렇다는 건 분명 엄청난 싸움이 벌어졌다는 거야…. 그런데….’
초서현과 성수아는 새벽 내내 잠 한숨 자지 않고 성수호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성수호의 실종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주위 분위기와 전혀 맞추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서 교장이 입을 열었다.
“어제 성수아 교관과 초서현 교관 덕분에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군. 고맙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
그나마 성수아는 정신 차리고 대답을 했지만, 초서현은 생각에 잠긴 채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초서현의 옆에 있는 교관이 툭툭 두드리자, 그제야 정신 차리고 말했다.
“응? 뭐? 왜?”
“교장님이요….”
교장은 다시 웃으며 재차 반복해서 말했다.
“어제 성수아 교관과 초서현 교관 덕분에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군. 고맙네.”
“아… 운이 좋았어요. 도와준 사람이 있어서….”
초서현은 지금 당장 뛰쳐나가서 다시 성수호를 찾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건 성수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손을 슬며시 들고 입을 열었다.
“그… 실종자들에 대해서는 아직 소식이 없나요?”
“음… 일단 교단 측에서도 수색하고는 있지만…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없네.”
“…네.”
성수아가 실망한 기색으로 손을 내릴 때, 마과 교관 중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뭐… 보니까, 실종된 사람 경비랑 보조 교관 정도더군요.’
다들 그에게 시선이 갔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안경을 쓰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태도가 불량해 보이는 남자였다.
초서현은 미간을 꿈틀거리며 그를 봤고, 성수아는 그를 보면서 최대한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분들도 여기 직원분이에요.”
“맞죠… 직원분…. 그런데 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경비나 보조 교관이야… 그러라고 뽑은 사람들 아닙니까?”
“뭐!?”
그 말에 초서현은 벌떡 일어나서 그를 노려봤다.
그녀의 기세에 눌린 남자는 잠시 움찔하더니, 지기 싫은 마음에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하하… 아니… 그렇다고 생도나 교관이 납치됐으면 좋겠습니까?”
“그래도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초서현을 대신해서 말을 꺼낸 건 성수아였다.
아까까지 풀어졌던 분위기가 폭풍 전의 고요함을 알리는 듯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 사람 덕분에 그 폭풍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자, 자… 실종자는 최선을 다해 수색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네.”
“….”
그 일을 기점으로 회의는 마무리가 되었다.
..
..
“어디 간 거야 도대체….”
“다시 한번 주위를 찾아봐요. 분명 찾을 수….”
성수아가 초서현을 다독이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두 여자를 향해 귓가를 살랑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네. 두 사람.”
작은 키의 꼬마가 두 사람을 향해 무표정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어머… 예리엘 님.”
“윽… 여긴 웬일이세요?”
예리엘을 보면 반기는 성수아에 비해서 초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난감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예리엘은 앙증맞은 손으로 초서현에게 삿대질을 하고는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 역시 이제 끝인가.”
“아이씨….”
“3년 만에 보는데 하나도 안 자란 걸 봐서는…. 너도 나처럼 이제 끝인가 보다.”
“아으!”
초서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특별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예리엘은 매번 초서현을 만나면 무표정으로 장난이 깃들 말로 그녀를 놀렸지만, 유일하게 초서현에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상대는 초등학생 외모에서 성장을 멈춘 여자.
초서현이 예리엘의 장난에 발끈하지 않는 건 그녀에게 발끈하면 뭔가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초서현은 한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지금 바빠요. 그럼….”
초서현은 그 말과 동시에 빠르게 그 자리를 이탈했다.
예리엘은 도망가는 초서현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도망치는 것도 여전하네.”
“하하….”
예리엘은 이미 사라진 초서현에게서 시선을 떼고, 성수아를 바라보며 무감정한 말투로 말했다.
“너는 어디 다친 데 없냐? 보니까,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아뇨. 외피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는데, 가슴에 있는 약점에 직접적인 타격으로 대처할 수 있었어요.”
“다행이네.”
예리엘은 무표정 속에 나름 안도감이 미묘하게 섞인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런 와중에 예리엘은 그녀의 표정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뭔가 급한 일 있어? 안절부절못하는 거 같네.”
“그… 동료가 실종돼서요.”
“그래…. 탑에 가서 추적 마법에 능한 사람을 보내줄게.”
“아! 감사합니다!”
예리엘은 성수아의 안도한 미소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너도 많이 바뀌었네.”
“…제가요?”
성수아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취하던 태도를 보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리엘은 그녀의 물음에 조곤조곤 답해줬다.
“그래, 많이 바뀐 거 같아.”
“….”
“언제나 흘러 다니기만 하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래도 수영 정도는 하는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네. 그럼 갈게, 잘 지내라.”
“네에….”
예리엘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보폭이 작은 발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가기 시작했다.
성수아는 예리엘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했다.
‘무슨 말씀이지? 내가 뭐 달라졌나?’
성수아는 그렇게 혼자 생각하는 중에 다시 성수호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럴 시간이… 빨리 찾아야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주변을 수색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
..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밤이 되었다.
초서현은 옥상 한켠에 서서 난간에 기대로 고개를 숙인 채 울먹거렸다.
“어디 간 거냐고….”
그녀가 온종일 주변을 탐색했지만, 성수호에 대한 단서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물며 같은 건물에 있었다는 사람 중에서 그가 옥상에 올라간 것을 본 사람만 있을 뿐, 내려오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교내 주변을 살펴봤다.
영사관 내부는 이미 전투의 흔적을 깔끔히 지운 후였다.
하물며 이곳을 몇 년 동안 다닌 사람들이 어제 사건을 모른다면 오늘도 평화롭다고 하면서 교내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 정도로 모든 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옥상에 있던 선혈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오히려 증거가 될 수 있는 부분까지 싹 다 정리해버린 것이었다.
“제발… 제발….”
초서현이 울먹거리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스마트 워치로 연락이 왔다.
성수아였다.
초서현은 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황급히 통화를 받았다.
“뭐야? 찾았어!?”
(…아뇨. 지금 탑에서 오신 분들도 찾지 못하셨어요.)
“…그래.”
초서현은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통신을 끊으려는 순간이었다.
(언니… 일단 쉬세요. 지금 이틀째 잠도 안 주무시고….)
“끊는다. 찾으면 연락해줘.”
초서현은 성수아의 말을 끊고 통화를 종료한 다음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난간에 양팔을 걸치고 고개를 파묻었다.
그렇게 있자, 성수호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 왔을 때, 자기에게 아이 같다고 말했던 사람.
자신의 투정과 잔소리, 그리고 더 나아가 괄시까지 받아줬던 사람.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해준 건 보복 같은 치졸한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초서현의 위기를 구해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을 인정해줬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는 초서현의 기둥이 되어줬다.
아직 어색했지만, 외롭고 쓸쓸한 길을 걷던 그녀에게 최고의 위안이 되어줬다.
초서현은 난간에 고개를 파묻은 채 울먹거렸다.
“약속해 놓고… 오늘 같이 만나자고 약속해 놓고….”
두 사람은 토요일에 같이 만나서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식사하고 나서 VR이 아닌, 현실에서 궁술 연습을 봐주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밤 11시.
누가 봐도 같이 식사하고, 대화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성수호가 죽었을 거라고 속삭였고, 그녀의 머리는 어떻게든 그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 채웠다.
두 존재의 충돌은 결국 초서현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초서현은 울먹거리는 것을 넘어서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약속 안 지켜도 되니까… 그냥 돌아와….”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옷소매에 눈물이 떨어지며 적시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고막을 적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네요. 약속 어겨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어?”
고개를 돌린 초서현의 눈에는 난간에 기대고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성수호가 있었다.
빛의 섬광과 같은 화살을 날린 뒤, 성수호는 바로 초서현에게 통화를 걸었다.
“두 분 괜찮으세요?”
성수호의 질문에 초서현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예요! 지금 그거 그쪽이 쏜 거예요?)
“일단 그건 나중에… 성수아 교관님은 괜찮으세요?”
내가 잠시 다른 생도들을 구해주고 있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성수아와 초서현 쪽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아르모니아의 말에 급하게 그녀들을 확인했고, 하필 성수아가 위험한 순간에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활시위를 당겨버렸다.
다만 그 과정에서 평범한 마법진이 아닌, 강화 버전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둘 다 고개를 들어서 어벙한 표정으로 옥상 쪽을 바라봤고, 내 기준에서 성수아는 정신이 없어 보여서 바로 초서현에게 통화를 걸었다.
초서현에게서 성수아의 신변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계속 엄호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고 나는 통화를 종료한 뒤,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수호 님, 괜찮으십니까?]
‘어…. 좀 어지럽긴 한데, 버틸 만해.’
1단계와 2단계.
약한 마법진을 1단계, 강화된 마법진을 2단계.
둘다 유용하고 굉장히 쓸만한 녀석들이다.
문제는 두 단계의 간극이 너무 컸다.
1단계는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한 데 비해서 2단계는 일단 풀 마나 상태에서도 한번 사용하면 빈혈이 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좋아졌네.’
처음에 뭣도 모르고 2단계짜리 썼다가 1시간 동안 산송장으로 누워 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한 발 쏘면 거기서 끝나는 게 문제였다.
‘후우…. 뭐, 한 발 쏘고 맨정신 유지할 수 있는 게 어디냐….’
나는 속에서 우러나오는 숨을 내뱉으며 집중해서 초서현을 지원해줬다.
[그래도 슬슬 주의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만약 옥상에 괴생명체가 나타나면 대처가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음… 하긴, 슬슬 빼도 되겠다.’
이미 초서현과 성수아 쪽으로 다른 교관들이 합세한 상태였다.
저 정도면 위험한 상황을 피한 것을 지나서 안전하다고 판단하기까지 했다.
나는 난간에 기대고 숨을 고르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휴우… 안 되겠다. 잠깐 쉬어야겠어.”
기절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현기증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 더는 마나를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쉬고 있을 때, 옥상 문이 열렸다.
내가 풀린 눈으로 골똘히 보고 있는데, 옥상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죄다 망토를 쓰고 전혀 얼굴을 식별할 수 없었다.
‘…뭐지? 나 지금 기절 중인가?’
[수호님… 적으로 보입니다. 긴장하셔야 합니다.]
‘…망했네.’
내가 그렇게 인상을 찌푸린 채 망토들을 둘러보자, 한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야! 이 새끼가 나를!”
“제발 조용히 좀 해. 멍청아….”
총 7명.
그중 두 명만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나머지 녀석들은 나를 향해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