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두 사람에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아까 황금빛 줄기에 잠시 주춤했던 괴생명체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앙….
“—__!”
멀리서 들려오는 성수호의 활 소리와 함께 초서현과 성수아에게 다가오던 괴생명체의 가슴팍에 화살이 꽂혔다.
성수아는 정신 차리고 말했다.
“이, 이상한 말 해서 죄송해요. 일단 이거부터 해결하죠.”
“….”
그 말에 동감하듯 초서현은 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 이후에는 생각보다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성수호의 화살은 계속해서 날아왔고, 초서현은 오히려 성수호의 엄호에 맞춰서 괴생명체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성수아는 초서현의 뒤에서 그녀의 보호를 받으며 대기했다.
성수아는 안도하는 한편 부끄러운 마음이 피어올랐다.
‘하필… 마나가 없을 때, 그렇게 봐서는….’
성수호가 도와준 상황은 그녀가 하필 마나가 전부 달았을 때의 상황이었다.
마나라는 게 채우고 싶다고 해서 순식간에 채울 수 있는 편의성을 지닌 힘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수아의 신경을 살살 건드리는 기억에 계속 떠올랐다.
무슨 내용인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빛줄기를 쏘고 나서 성수호는 바로 초서현에게 통화를 걸었다.
자신이 아닌….
‘두 사람… 통화할 정도로 친한가?’
초서현은 매번 점심시간마다 나타나서 성수호와 성수아의 사이에서 끼어서 밥을 먹었다.
식당에 전혀 발걸음을 올리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식당에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성수아는 초서현이 남자에게 관심을 두는 걸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는 상대가 성수호라는 것이었다.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 전혀 어울리지 않아.’
성수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서 주변을 살펴봤다.
초서현의 공세와 더불어서 성수호의 엄호가 이어지면서 아까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었다.
점점 침입하는 괴생명체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외에에엥!
그 순간 학교 지부 내에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면서 경고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영웅 사관 학교 내에 다수의 침입자 발생! 교내에 있는 전투원은 즉시 대응하고 비전투원은 신속히 건물 외부로 대피….>
경고 메시지에는 괴생명체의 약점을 계속 강조하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콰직!
“휴우… 한시름 놓았네.”
초서현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교내에서 교관들이 몇몇 나타났고, 합세해서 달려들었다.
괴생물체의 침입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상황은 거의 해결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초서현은 크게 한숨을 쉰 뒤에 스마트 워치를 들어서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스마트 워치를 한참 바라보던 초서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뭐야? 왜 안 받아?”
“성수호 교관님이요?”
“어…. 전화를 왜 안 받지?”
초서현의 의문에 성수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성수호 교관님… 옥상… 누구랑 갔어요?”
“….”
초서현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신형을 날리면서 소리쳤다.
“이런 씨발!”
“자, 잠깐 저도!”
“아냐! 넌 여기 있어!!”
초서현은 성수아를 그렇게 놓고 성수호가 올라갔던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생도와 교관들 사이를 가로질러서 지나쳤고, 아직 살아있는 괴생명체조차 무시하고 계단을 올랐다.
한번 점프로 층계참에 오르고, 그다음 점프로 다음 층을 올랐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오르면서 속으로 바랐다.
‘제발… 제발…!’
어떤 상태이든 좋으니, 제발 그에게 큰일이 일어나지만 않기를 빌었다.
콰앙!
그리고 그녀가 옥상에 도착해서 철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옥상으로 나갔다.
“하아… 하아… 하아… 뭐야….”
초서현의 눈에 비친 건 선혈이 낭자한 아무도 없는 옥상의 모습이었다.
***
밤에 일어난 난동은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수습되었다.
햇빛이 비치는 영사관 건물들은 아름다운 빛깔을 반사하며 위용을 드러냈지만, 주변의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영사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엄청난 격전이 일어났다는 것을 증명하듯 시체들이 즐비했다.
비록 대부분이 괴생명체의 시신이었지만, 몇몇 곳에서 움직임이 멈춘 싸늘한 생도들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생도뿐만 아니라, 영사관 전 직원이 나서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내 중앙 부지로 향하는 두 사람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며 대화를 나눴다.
“상황이 말이 아니군…. 피해 규모는?”
“죄송합니다. 아직 규모를 파악하기에는….”
질문을 한 남자는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외모로 180 중반의 험악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오진호로 영사관의 교장으로 재임 중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답한 여자는 키가 대략 170 중반에 단색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정장풍을 입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비서 느낌을 풀풀 풍기고 있는 이 여자의 이름은 박희현, 교장의 비서였다.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저번 방학 때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아주 물고 늘어지겠군.”
“일단 도난당한 물품을 보면 목적이 뚜렷한 것 같습니다.”
“…캡슐.”
남자는 영사관에 비치된 VR 훈련소에 있는 캡슐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그쪽에는 연락했어?”
“네. 하지만 VR 캡슐을 대여해준 에브리카 사측에서는 아직 특별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미치겠군…. 지금 볼 녀석들보다 그쪽이 더 신경 쓰이는데….”
에브리카 컴퍼니.
지금 현존하는, VR 기기들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세계 유일한 회사였다.
대개 VR 헤드기어를 판매하는 것으로 운영되고 있고, 간간이 몇몇 국가의 중요 기관에 VR 캡슐을 대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VR 캡슐을 대여받은 곳 중의 하나가 영사관이었다.
세간에는 VR 캡슐을 살 수 있는 것으로 알지만, 실상은 대여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에브리카 컴퍼니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엄격한 조건에 부합하는 기관에만 대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관리도 사측에서 보내는 직원으로만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거 캡슐 전부 빼라고 하면 나만 꼬리 자르고 교장직 퇴직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네.”
“그럴 일은…. 가능은…. 합니다만….”
“…그냥 가능하다고 말해.”
남자는 험상궂은 인상으로 툴툴거리며 중앙 건물로 향했다.
..
..
아까 두 남녀가 도착한 곳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인원은 4명.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였다.
각기 다른 나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이거… 교장님, 퇴직을 일찍 앞당기기 위해 벌어진 일이라는데, 맞습니까?”
“뭐? 이 미친놈이….”
처음 질문했던 남자는 낄낄 웃으며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그렇게 가벼운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교장이라고 불리는 자가 다시 요점으로 돌아와서 대화를 진행했다.
“여기 세 길드의 단장과 탑의 대표… 그리고… 아직 안 오신 교단의 교주님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체는 알아냈습니까?”
“…전혀. 어디서 대충 봤을 법한 녀석이면 감이라도 잡겠는데. 나도 처음 보는 녀석들이었어.”
세 길드의 단장이라고 불린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했다.
“아까 잠깐 봤는데, 외피가 보통이 아니더군요.”
“약점이 있는 걸 보면 별거 없어 보이기도 하고….”
“문제는 외피에 마법이 안 통합니다.”
“맙소사… 저런 놈들 판치면 마과 생도들, 취업난 터지는 거 아닌지 몰라.”
분명 큰 사건임에도 방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는 동네에서 일어난 부부 싸움에 관한 대화 수준으로 가벼워 보였다.
그들은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영사관에 있었던 습격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에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탑의 대표라고 불렸던 여자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긴 머리카락, 아름다운 눈매, 그리고 단정한 복장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림잡아 봐도 대충 13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였다.
그런데도 교장은 그런 아이에게 존칭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네, 말씀해주시죠. 예리엘 님.”
마법 부문 최상급 마법사로 분류된 예리엘.
어느 순간 신체 성장이 멈춘 그녀는 외모는 초등학생 정도였지만, 모두에게 존대를 받아야 할 정도로 나이가 있었다.
예리엘은 교장을 향해 무표정으로 조곤조곤 물었다.
“목적은 알아냈습니까?”
“…캡슐입니다.”
“큰일이군요.”
예리엘은 그 말과 함께 다시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침묵과 함께 다시 세 길드의 단장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캡슐이면 보안이 평소에도 철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탈취당했어. 거기다 보안 책임자 녀석들을 찾고 있는데… 아직 찾았다는 소식이 없다는군.”
“이유는 두 가지….”
“한패이거나, 지금 어딘가에서 시신 수습을 바라고 있거나….”
여기 방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일을 벌일 정도면 지키고 있는 자들을 귀찮게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교장실로 들어왔다.
“이런, 이런~ 늦어서 죄송합니다.”
얼굴에 미소가 잔뜩 끼어 있는 남자가 천천히 들어왔다.
하얀색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는 키가 대략 170 중후반대였다.
대략 외형상 나이는 50대처럼 보이는 외모였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오더니, 예리엘의 건너편에 앉았다.
교장은 하얀 정장의 남자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다른 분도 아니고 교장님께서 직접 불러주셨는데, 제가 와야지요.”
하얀 정장의 남자는 양 손바닥을 위쪽으로 살며시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그의 정체는 교단의 교주, 신석권이었다.
그는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면서 모든 상황을 들었습니다. 교단에 돌아가는 즉시 저희 단원을 파견하죠.”
“감사합니다. 덕분에….”
“단!”
“…?”
신석권의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려서 그를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자신에게 모든 시선이 온 것을 확인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괴생명체의 시신은 저희가 모두 회수해 가겠습니다.”
“….”
교장뿐만 아니라, 세 길드 단장들도 침묵으로 그의 의사에 답변했다.
여기서 교단의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영사관은 국가 기관이지만,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영사관의 운영 자금의 70퍼센트는 교단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 30퍼센트를 탑과 나머지 세 대형 길드에서 기부하고 있었다.
영사관의 교장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길드의 단장들도 괜히 트집잡아서 귀찮아지는 걸 꺼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들 침묵하는 와중에 한 명이 손을 빳빳하게 들고는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그건 안 되겠네.”
“하하하…. 예리엘 님.”
신석권은 밝게 웃으며 그녀에게 화답했다.
“저는 동의를 구한 게 아닙니다만?”
“….”
“아니면… 예리엘 님은 오늘… 아니, 어제 있었던 영사관 사건을 조용히 묻으실 능력이 있으십니까?”
“….”
밝게 웃으며 바라보는 신석권, 무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는 예리엘.
세계 최고의 단체 교단과 그 뒤의 그늘에서 언제나 자리를 잡은 탑은 서로 앙숙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자본의 차이, 정재계를 휘두를 정도로 뿌리 내린 단체, 언론을 찍어누를 수 있는 강한 힘.
신이 1등과 2등의 넘을 수 없는 벽을 두 단체 사이에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학관계가 뚜렷했다.
그런 힘의 차이가 있음에도 예리엘은 물러설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다행히 이 곳에서 두 사람을 중재할 수 있는 자가 있었다. 교장이 입을 열었다.
“그… 예리엘 님. 이번에는 물러나셔야 할 거 같습니다.”
“…흥. 마음대로 해.”
그녀는 눈을 감고는 다시 침묵을 시작했다.
신석권은 작은 소리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럼 이의는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물론 외부 언론도 저희 쪽이 해결해드리죠.”
“….”
다들 표정에는 불만이 서려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교주, 탑, 세 길드의 대표들이 빠진 교장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젠장… 예리엘 님이랑 신석권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 있을 때마다 나이가 한 살씩 더 늘어나는 거 같네.”
“안타깝게도 한 살 더 늘어날 소식이 있습니다.”
“…에브리카에서 연락 왔어?”
“네. 사측에서 도난당한 캡슐만큼 더 대여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뭐?”
황당한 이야기였다.
에브리카 컴퍼니가 대여해준 물품을 도난당했는데, 되려 도난 당한 만큼 더 대여해준다는 것이었다.
“사측에서는 영사관 생도들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쪽이 더 중요하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교장직 몇 년은 더 해야겠네…. 그런데 그게 왜 나이가 늘어나는 소식이야?”
누가 봐도 좋은 소식이었다.
교단이 모든 부분을 수습해준다고 해도 캡슐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장비가 아니었다.
그 최고의 길드라고 칭송받는 교단도 캡슐은 갖추고 있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에브리카의 허락 없이는 캡슐의 이동도 엄격하게 제안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비서의 입에서 교장의 나이가 한 살 늘어날 소식이 전해졌다.
“대신 1년 안에 도난당한 캡슐의 반환을 요청해왔습니다.”
“…교장직 지금 당장 때려치우면 안 되나?”
“교장직으로 있는 상태로 책임을 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직으로 책임을 지면 그건 그거대로 괴로우실 겁니다.”
“젠장.”
교장은 외모와 맞지 않게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