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숨 막히는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성수아와 초서현, 그리고 나는 식판의 음식을 먹으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질식사 하더라도 아사는 하지 않겠다는 끈질긴 집념으로 나는 열심히 밥을 입속에 넣고 있었다.
결국 우리 셋은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은 상태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각자의 수업을 위해 헤어졌다.
나와 성수아가 마과로 향할 때, 초서현이 저 멀리에서 대낮에도 안광이 비칠 정도로 노려보고 있었다.
‘고양이야, 고양이….’
그래도 예전처럼 살쾡이 같은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초서현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식사 자리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오히려 제가 너무 조용히 있어서 자리가 더 불편해진 거 아닌가 싶어요.”
나는 초서현의 저런 행동은 적당히 웃으며 넘겨줄 수 있었다.
지금 문제는 성수아.
솔직히 게임 속이나 밀폐된 장소가 아니면 선뜻 속마음을 쉽게 내비치지 않았다.
그나마 어제 꿈에서 봤던 걸 토대로 생각하며 나에 대해서 괜찮은 감정이 있다는 게 느껴지긴 했다.
‘오늘도 졸린 척하는 건 좀 그런데….’
어제처럼 무릎베개의 맛을 보고 싶었지만, 이틀 연속으로 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무엇보다 그 행위는 무조건 성수아의 입에서 먼저 나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성수아가 나를 힐끗 보며 우물쭈물한 모습으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늘도… 잠시 눈 좀 붙이실래요?”
“….”
성수아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
..
나는 성수아의 의견에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하지만 나와 성수아는 공실에 단둘이 있었다.
분명 내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단둘이 있는 건 오히려 내가 다른 의견을 냈기 때문이었다.
어제 내가 누워있던 자리에 오늘은 성수아가 엎드려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옆에 앉아서 그녀를 안마해줬고….
“어떠세요?”
“하으…. 좋아요…. 어떻게 그렇게… 끄읏! 자, 잘하세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그냥 하는 거라….”
“끄으읏!”
나는 나긋하게 대답하며 성수아의 약점을 요리조리 공략했다.
솔직히 성수아가 이렇게 흔쾌히 오케이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난처럼 말한 것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처럼 자면 민폐 같네요. 차라리 제가 안마라도 해드릴게요.)
분명 장난처럼 이야기한 거였다.
지금 VR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성인 모습으로 안마를 해준다는 건 분명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수아는….
(…그럼 부탁드릴게요.)
웃으면서 내 안마를 받아들였다.
‘어제 침몽을 했던 게 나름 효과가 좋은 거 같지?’
[그런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침몽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수아는 애매해서….’
지금 안마를 하고 있지만, 평소에 낮잠도 잘 자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여자라 빈틈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VR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서 이 정도까지 올 수 있던 것이었다.
만약 VR이 없었다면 지금도 성수아와의 관계는 그냥 직장동료 수준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흐읏! 하읏! 성수호! 교관님! 끄으읍! 정말… 자, 잘하세요! 하읏!”
“…감사합니다.”
그렇게 막상 이렇게 안마를 해주다 보니 궁금해졌다.
손 안마 레벨 98…. 아르모니아는 주인공급 레벨이라고 했다.
‘손 안마 주인공이라니….’
뭐, 저런 부분은 제쳐두고서라도 정말 궁금했다.
나는 사실 성행위를 할 때, 손기술을 전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소냐에게 조언을 듣고 나서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손 안마도 그래야 하는가였다.
지금까지는 대충 조절하고 있었는데, 손기술을 조절하는 이유와 같았다.
‘와씨… 이렇게 직접 만지니까, 장난 아니네….’
확실히 VR과 현실은 엄청난 차이를 보여줬다.
일단 성수아의 상태를 확인해봤다.
“흐읏! 하응… 끄흣! 하큿!”
대충 옆으로 흘깃 봐도 기분이 좋다는 게 느껴졌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
나는 서서히 손 안마의 레벨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천천히 올라감과 동시에 성수아의 목소리의 형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끄으읏! 하으응! 끄으읍!!”
아까까지 신음이었다면 지금은 비명에 가까웠다.
다행히 성수아의 입에서 신음 말고는 다른 제지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예의상 물어봐야지.
나는 안마를 잠시 멈추고 성수아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아프세요? 그만할까요?”
“하으… 괘, 괜찮아요… 제가… 이런 거 받아본 적이 없어서… 계속해주세요….”
“그럼 조금 살살 하겠습니다.”
“하아… 아, 아뇨… 조금 전 강도로….”
“알겠습니다.”
다행히 성수아가 비명을 지른 건 진짜 비명이 아니라, 신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끄흐읍!”
나는 다시 성수아의 등과 허리를 안마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셔츠로 느껴지는 맨살을 보면서 이성의 끈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제 꿈에서처럼 다음 진도로 나가고 싶은 욕구가 넘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추천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하긴… 하면 안 되겠지.’
슬며시 엉덩이라도 만져볼까 했지만, 지금 같은 관계에서 도박성 선택지를 골라서는 안 된다.
만약 그게 성수아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분기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안마를 해도 받아줄 정도면 사이가 많이 가까워진 거 같네.’
“끄으읍! 하으응! 하아앙!”
나는 성수아의 신음을 배경 음악 삼아서 열심히 안마를 해줬다.
..
..
마과 수업이 끝나고 식사를 한 뒤, 바로 VR 훈련소로 향했다.
그리고 초서현과 바로 캡슐로 들어가서 궁술 훈련을 한 뒤 캡슐에서 나왔다.
초서현과 나는 캡슐에서 나와서 인사를 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초서현은 조금 전까지 VR 내부에서 하하 호호 웃었지만, 나오자마자 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점잖은 표정으로 나를 대해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표정을 싹 바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서현의 점잖은 표정에는 분명 미소가 섞여 있었다.
초서현은 캡슐에서 완전히 나온 뒤에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내일은 좀 다르게 해보는 게 어때요?”
“네? 어떤 걸?”
초서현은 팔짱을 끼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실제 사격장에서 한번 보고 싶어요.”
초서현은 VR 내부에서 꽤 준수한 궁술 실력을 보여줬다.
자신감도 차오르겠다. 현실에서도 한번 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초서현은 내일 같이 궁술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내일의 계획을 혼자 즐겁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금요일이라 훈련장 같은 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하지만 내일은 약속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약속이 아닌 성수아와의 약속.
“그… 죄송합니다. 내일은 약속이 있어서….”
“야… 약속?”
“네, 선약이라….”
“그, 그래요…. 그, 그렇지… 금요일인데… 약속이 있어야지….”
혼자 싱글벙글하던 초서현은 당황해서는 눈동자 지진을 일으키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패턴을 보면 당연히 내가 승낙하리라 생각한 듯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닥치니 초서현은 아까와는 다르게 당황하기 시작하더니 울상을 지었다.
‘저 기질 고치려면 정말 오래 걸리겠다.’
[저 정도의 부정적인 기질이라면… 포기하는 쪽이 편할 수도 있습니다.]
-[변수 대처 미흡]-
이왕이면 초서현은 내 편으로 만들고 나서 저 기질도 고치고 싶다는 게 내 목표였다.
그런데 이렇게 상황이 꼬이는 걸로 저렇게 당황하다니….
[아마 이성과 관련되어서 더 크게 동요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동안 남자라고는 눈곱만치도 관심 없던 여자니까….
나는 다시 초서현을 진정시켰다.
“내일은 힘들지만… 토요일에 같이 밥 먹고 나서 돌아온 뒤에는 충분히 시간이 됩니다.”
“…다, 다행이네. 나, 나도 마침 그때 시간이 되니까! 그날 궁술 좀 봐줘요.”
“알겠습니다.”
내가 웃으며 승낙하자 초서현은 아까 보여줬던 우울함을 떨치고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자, 그럼 기숙사로….”
나는 초서현의 말을 끊고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먼저 가시겠어요?”
“응? 무슨 일 있어요?”
“잠시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요.”
“그… 그래요. 어차피 나오면 훈련실이 잠기는 구조니까, 조심히… 들어가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초서현은 내 인사를 듣고 의문을 가진 채 VR 훈련실을 나갔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심호흡했다.
분명 내 시야에는 안 보인다.
하지만 분명 있다.
확실하다.
있다!
나는 아무도 없는 VR 훈련실에서 살기를 담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죽어어어엇!!!!”
파직!
VR 훈련실 구석에 자그마한 노란 빛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흡사 해리포터가 최종 보스와 싸우는 장면처럼 그곳을 향해서 팔을 뻗고 있었다.
‘….’
[….]
긴장감이 감도는 통신.
나는 천천히 팔을 내리고 제사 향에서 나올 법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그 향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잡았다!!!!!!!!!!”
[….]
온몸이 번개 맞은 콩처럼 타오르고 있는 파리가 있었다.
***
“끄아아아악!”
한 남자가 어두운 공간에서 나뒹굴며 쓰러졌다.
엄청난 몸부림을 치던 남자는 급기야 입을 벌리고 속에 있는 음식물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으에에엑!”
더는 나올 게 없을 때쯤이 되어서야 간신히 구토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 된 그는 북극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도,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서, 설마… 나, 나를 아, 알아본 건….”
그는 덜덜 떨리는 입술 때문에 도저히 대사를 제대로 내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가 몸을 쭈그리고 덜덜 떨고 있을 때, 어두운 방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오빠, 일 끝났어? 무, 무슨 일이야!?”
방에 들어온 여자가 놀란 얼굴로 남자에게 뛰어가서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바로 자신의 옷으로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들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어, 어떤 개새끼가… 나를… 알아보고 죽였어….”
“말도 안 돼! 오빠 능력이 누구한테 들킬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잖아!”
여자는 고개를 흔들더니 재차 강조했다.
“파리를 조종하는 능력을 누가 알겠어….”
남자가 가진 능력은 -[승령(蠅靈) 빙의]-라는 마법으로 파리를 대상으로 영혼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 황당한 능력은 그가 세계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교단에 입단하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된 스킬이었다.
원거리에서 원하는 사람을 몰래 관찰해서 정보를 빼내는 그의 능력은 교단에서도 굉장히 높게 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들킨 적이 없었다.
남자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야 긴장을 풀면서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면 그 녀석 파리가 싫다는 소리로 중얼거렸던 거 같아.”
“거봐… 재수가 없어서 그런 사람이 걸린 걸 거야.”
“그 새끼… 내가 얼굴 똑똑히 기억하겠어.”
“후우… 그래도 다행이야. 큰일 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크으읏… 1초만 늦었으면 진짜 죽었을 거야….”
성수호가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남자는 스킬을 해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찰나 잠시 마법에 영향을 받았고, 뇌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몸으로 느끼며 원래 육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오빠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잖아. 밥 차려 놨어. 늦었지만, 그거라도 먹자.”
“젠장… 이 상태로는 임무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된 정보를 못 알아낼 거 같아.”
“건강이 우선이잖아. 충신 오빠… 일단 밥 먹고 생각하자.”
“고마워… 지아야.”
윤지아는 고충신을 부축하면서 어두컴컴한 방을 빠져나왔다.
“…늦네.”
저번에 초서현에 이어서 이번에는 세인트블루에게 바람을 맞는 건가?
나는 대기실에 혼자 주위 풍경을 보면서 통신했다.
‘그러고 보니까, 세인트블루는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친구 추가를 요청한 걸까?’
[제 생각으로는 두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내 실력을 보고 놀라서….
지금까지 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랭크를 올리고 싶어서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바로 기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