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08화 (209/898)

 ***

 성수아는 수업을 시작하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에 집중해서 생도들을 가르쳤다.

 사실 초서현은 육체를 쓰는 경향이 많아서 몸을 움직이다 보면 대부분 정신이 수업에 쏠리기 마련이었다.

 그에 비해서 성수아는 설명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런 상황에서 성수아는 최선을 다해서 집중했다.

 열심히 수업을 진행한 성수아는 생도들의 인사를 받으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다들 고생했어. 내일 보자.”

 성수아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생도들을 기숙사로 귀가시켰다.

 그렇게 모두 귀가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크게 한숨을 쉬고 내게 말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죄송해요.”

 “응? 어떤 게 죄송하시다는 건지?”

 “제가 쉬게 해드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제가 방해를 해서….”

 성수아는 양손을 하복부에 모으고 나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성수아의 양손바닥이 교차하는 하복부에 내 안구가 집중되었다.

 ‘캬… 저기에 빨리 음문 박아야 하는데.’

 [….]

 잠시 성수아의 음문… 아니, 하복부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성수아의 사과는 계속 이어졌다.

 “오히려 제가 자버리기까지 하고….”

 나는 계속되는 성수아의 사과에 정신을 차린 뒤에 그녀를 말렸다.

 “성수아 교관님.”

 “…네?”

 “이렇게 계속 사과를 하시면 오히려 제가 민망해져요.”

 “그,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는 성수아에게 다가가서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절 배려하고 도와주셨는데, 계속 그렇게 사과하시면 앞으로 성수아 교관님을 볼 낯이 없어지죠.”

 “그, 그건….”

 “그리고….”

 “….?”

 나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깊게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성수아 교관님이랑 이런 식으로 거리감이 생기지 않았으면 해요.”

 “아….”

 성수아는 다행히 표정이 풀리고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 분가량 쳐다보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조용히 속닥거렸다.

 “정말 미안해요. 제가 괜히 부담만 드렸네요.”

 성수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평소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까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결국 제가 오늘 부담을 드린 건 사실이네요.”

 “아뇨. 그렇게까지는….”

 “혹시 금요일 저녁에 시간 비울 수 있나요?”

 “금요일 저녁이요?”

 성수아는 이번 주 토요일이 아닌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나서 바로 외출해서 동물의 마을 정품을 구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살짝 헛웃음이 나왔다.

 “그냥 한숨 자고 나서 토요일에 갔다가 오시면 되지 않을까요?”

 “안 돼요! 제가 그거 못해서 요새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사실 아까 실수로 잠든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성수아는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최근에 게임을 못 해서 피로한 탓에 아까 그렇게 잠든 것이라고 변명을 했다.

 수면은 내가 스킬을 사용한 것이지만, 마법진 덕분에 내 마법을 감지 못한 것 같았다.

 ‘성수아 수준으로 감지 못했을 정도면 이거 이쪽 세계에서는 사기겠는데?’

 [그래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아까 고작 10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넬로 마나 회복을 사용했습니다.]

 ‘알았어. 항마력만 좀 주의해야겠다.’

 아까 성수아가 깨자마자 당황해서 도망쳤을 때, 따라가지 못했던 이유가 마나 탈진 때문이었다.

 이게 꿈속에 있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다가 꿈에서 깨는 순간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왔다.

 ‘진짜 주의해야겠다. 성수아 같은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면 웬만해서 수면이나 침몽 둘 중 하나만 걸어야겠다.’

 그렇게 주의해야 할 부분을 숙지하고 있을 때, 성수아가 다시 재차 약속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되시나요?”

 나는 성수아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

 “…왜 안 와?”

 초서현은 바닥에 발바닥을 탁탁 치며 성수호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을 넘긴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나름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놈의 밥이 뭐라고 꼬박꼬박 먹어…. 설마 성수아 걔랑 같이 먹어서 늦는 거 아냐?”

 그 순간 미간이 좁혀지면서 눈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성수호와 성수아가 하하 호호 웃으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혼자서 성수호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두고 봐. 내일부터는 나도 저녁 먹는다.”

 그렇게 혼자 다짐을 하는 순간이었다.

 촤악.

 VR 훈련실의 문이 열리면서 성수호가 여유롭게 들어오고 있었다.

 “왔습니다. 들어가시죠.”

 “….”

 분명 그가 잘못한 것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오는 그가 야속하게 보였다.

 ‘누구는 혼자 쓸쓸히 기다리는데, 누구는 여자랑 밥을….’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캡슐을 조작하고 나서 뒤를 돌아서 성수호를 바라봤다.

 “자, 이제 들어가죠… 왜, 왜 그래요?”

 성수호는 고개를 돌려서 어딘가를 향해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었던 살기를 띤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록 초서현을 바라보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순간 경직되어서 팔뚝이 떨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초서현 앞에서 점잖게 굴던 성수호의 분위기가 돌변하자 그녀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초서현은 간신히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그… 미, 미안해요….”

 “응? 뭐가 미안하시다는 건가요?”

 성수호는 순간 평소에 짓던 밝은 표정으로 바꾸면서 초서현을 바라봤다.

 초서현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어제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고… 아까 인사 제대로 안 받아서 미안하고….”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지금… 표정 보니까, 딱 봐도 화난 거잖아요…. 미안해요….”

 “하하하!”

 “왜, 왜 웃어요!”

 성수호는 초서현의 당황하는 모습에 한동안 웃으며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

 ..

 한참을 웃던 성수호는 VR 캡슐에 들어와서야 해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명에 초서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투덜거렸다.

 “…아니, 파리 봤다고 그런 표정을 지어요?”

 “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싫어하거든요.”

 “하아… 왜 사람 오해하게 만들어요.”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성수호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왔다.

 초서현은 그 모습에 성수호의 반대편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나한테 화난 게 아니었네. 다행이야.’

 초서현은 성수호의 살기에 공포를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낀 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의미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 것이었다.

 괜히 툴툴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던 성수호가 기분 나빠한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었다.

 그가 혹시라도 자신에게 미운 감정이 들어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느껴진 것이었다.

 ‘…이제 툴툴거리는 버릇 좀 버려야지.’

 초서현은 자신의 옆에 차분히 걸어가는 성수호를 보면서 확신했다.

 그와 계속 옆에 있고 싶었다.

 초서현이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두 사람은 딱 사격장에 도착했다.

 생도 모습의 초서현. 교관 복장의 성수호.

 “그… 교관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가르쳐주마.”

 두 사람은 서로 보는 상태로 피식 웃으며 궁술 훈련을 시작했다.

 ..

 ..

 “후우….”

 초서현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여느 때처럼 침대 위에 다이빙했다.

 출렁이는 침대와 동시에 그녀의 입술도 흐트러졌다.

 “교관직…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네.”

 초서현은 꽤 오랜 시간 성수호에게 궁술 훈련을 받았다.

 그는 훈련 내내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초서현은 애초에 목적이 진짜 궁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흘려들었다.

 “흥…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바보같이….”

 하지만 궁술을 떠나서 그는 초서현에게 안정감을 심어줬다.

 어느 누구와 같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려서 나뭇가지로 상처를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성수호는 거대한 고목처럼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초서현의 기억 속에 뿌리 박힌 건 성수호와의 스킨쉽이었다.

 자칫 현실이었으면 불쾌했을지도 모르는 손길이었지만, 초서현은 절대 그 손길이 불쾌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길을 기대하는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초서현은 옆으로 누운 뒤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렸다.

 “나 진짜 그 사람을… 아냐….”

 초서현은 순간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단어를 삼키며 내보내지 않았다.

 분명 혼자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혹시라도 누가 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초서현은 결국 진심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아직 초서현도 자신의 감정이 아리송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입 밖으로 말을 내뱉어서 확정적인 감정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리송한 상태를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 쪽이면 어떻냐…. 어차피 그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는데….’

 초서현은 밝은 미소에서 씁쓸한 미소로 바뀌며 눈을 감았다.

 ***

 나는 VR에 들어가면서 통신으로 말했다.

 ‘아르모니아, 세인트블루 얼굴 찍어서 조디악에 신원 조회 같은 거 가능해?’

 [가능은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단 쉽지 않은 이유는 사진을 찍는 게 VR 내부라는 게 문제였다.

 외모가 100퍼센트 가깝게 동기화가 되어있다고 해도 일반인의 신상을 고작 얼굴로 알아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 세인트블루는 원래 해골 얼굴에 망토를 두르고 있는 사신 컨셉의 캐릭터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아무리 얼굴이 자세히 나와도 얼굴 외의 외형은 전혀 알 수 없으니 찾는 데에 굉장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냥 VR 서버 털면 되는 거 아냐?’

 [그건 조디악뿐만 아니라, 성전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두 주인공이 VR 시스템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두 주인공은 태생부터가 무력에 기반한 인물들입니다. 해킹과 관련된 스킬을 배울 수 있겠지만, 지금 와서 그쪽으로 레벨을 올리기에는 에넬이 아깝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에넬을 위해서 키우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거네.’

 초강현이나 괴인 수장이나 결국 신의 대리자들이 에넬을 벌 수 있게 만들어진 주인공에 불과했다.

 그야 그들로서는 한 세계의 최강자가 되었으니, 불만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고….

 [무엇보다 이 세계의 VR 시스템은 과거에 한 천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해킹을 성공한 사례가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고 합니다.]

 ‘오우….’

 나는 그렇게 VR 시스템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워치 오브 레전드에 접속했다.

 ‘그래도 당분간 워치 오브 레전드는 혼자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다행이다.’

 초서현의 궁술 훈련을 마치고 나서 그녀에게 게임을 하지 말 것을 권했다.

 (뭐 내가 그 게임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냥 같이하면 되지 않아요?)

 (궁술 훈련은 정신력 기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괜히 마음 흐트러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알았어요. 교.관.님 말씀에 따라야죠)

 (하하….)

 초서현은 아마 내 말을 잘 따를 테니, 그녀가 중간에 들어올 걱정은 없었다.

 만약 초서현이 몰래 들어오면 혹시 몰라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뻥 치면 그만이고….

 게임에 접속이 됐다는 표시가 나오자마자 오늘도 당연하다는 듯이 한 사람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오늘은 더 늦으셨는데요?”

 “안녕하세요.”

 밝게 웃는 세인트블루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통신했다.

 ‘일단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으니까. 알아나 봐달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나는 그 이후 세인트블루와 무패 행진의 게임을 진행했다.

 파직!

 노란색 스파크가 튀는 모습이 내 눈동자에 담기는 것과 동시에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

 위잉….

 파리는 잠시 공중에 뜨더니, 바로 캡슐 사이로 숨어 들어갔다.

 ‘이런 씨발!!!!’

 [….]

 세 번째다.

 어제 오전 수업, 오후 초서현과 대면, 그리고 오늘….

 이 VR 훈련실에서 저 벌레 새끼를 마주하고 마법을 사용한 횟수만 세 번째였다.

 분명 세 번 다 마법은 정확히 명중했다.

 설마하니 마법이 통하지 않는 파리 새끼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씨발!!’

 [어차피 벌레에 불과합니다. 마나 낭비를 자제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어차피 스파크 정도밖에 안되는구만…. 아오….’

 설마하니 저런 하찮은 미물에게 이런 식으로 농락당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후… 갔다 와서 꼭 찾아서 죽인다.’

 [….]

 나는 속으로 울분을 삼키며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VR 수업을 시작한 지 나흘이 된 오늘, 생도들의 첫 단체 훈련이 진행되었다.

 수업은 기과 5반 생도들 전원이 거대 괴수와 싸우면서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숙지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막상 아무것도 안 하니까 심심하네….’

 보조 교관 특성상 안전에 문제가 없는 수업에는 넋 놓고 바라보는 게 하는 일이었다.

 거기다 VR은 카메라가 꾸준히 돌아가서 채점도 즉각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디 앉아서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괜히 할 일이 없다고 나무 그루터기 같은 곳에 앉아서 쉬면 혼날 가능성이 컸다.

 ‘비정규직이 그렇지 뭐….’

 그렇게 수업 시간은 내 투덜거림으로 시작해서, 투덜거림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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