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203화 (204/898)

 ***

 나는 초서현을 흔들어서 깨웠다.

 “초서현 교관님?”

 “하아…하아…하아…. 여긴?”

 초서현은 일어나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확인했다.

 이곳은 교무실이었고, 초서현은 사태를 파악하고 바로 티셔츠로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끄읍…. 잠깐….”

 “이거 쓰세요.”

 “끄읍… 고마워요….”

 나는 초서현에게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통신으로 말했다.

 ‘아르모니아, 홍미선에 대해서 얘기해줘.’

 그동안 계속 방해를 받아서 듣지 못했던 홍미선에 대해서 이제는 들어야 할 거 같았다.

 ..

 ..

 나는 VR 안에서 열심히 생도들에게 설명하는 초서현을 바라봤다.

 홍미선이 어떤 인간인지는 일단 대충 알았다.

 다만 도대체 왜 초서현에게 그런 식의 학대를 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홍미선의 행방을 찾은 것이었는데….

 ‘실종?’

 [네. 8년 전 실종되었고, 현재까지 어떠한 단서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평소에 재깍재깍 정보를 알려주던 아르모니아가 인제야 정보를 알려준 건 이유가 있었다.

 개인 기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딱히 중요하지도 않고, 실종된 지도 꽤 오래돼서 잊힌 사건이라 괴인 단체에서도 알고 있는 정보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조디악 측에 의하면 의아한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던전을 들어갔다가 실종된 것도 아니고, 괴인에게 납치를 당한 것도 아니다.

 세간에는 괴인에게 납치가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조디악에서는 납치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실종 당일, 영사관 복무를 막 마친 상태였다고 합니다.]

 ‘거참….’

 사실 홍미선에 대해서 조사를 부탁한 것도 그냥 궁금한 게 컸다.

 도대체 왜 초서현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뭐랄까 그걸 알면 초서현과의 관계에 도움이 될까 싶었다.

 초서현의 트라우마는 홍미선이다. 문제는 홍미선이 그냥 이유도 없이 초서현을 그런 식으로 학대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초서현은 이유를 알고 있으려나?’

 일단 홍미선에 대해서 알아내려면 초서현에게 침몽을 지속해서 걸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만약 초서현도 홍미선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모르면 꿈에서도 나오지 않겠지만, 최소한 힌트가 필요했다.

 ‘다음에는 침몽으로 들어가서 조작 좀 해봐야겠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침몽을 할 수 있는 상황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초서현의 침몽은 그녀가 교무실에서 잠시 자고 있을 때만 가능했다.

 성수아처럼 아예 침몽 타이밍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기숙사에 침입하는 미친 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것만큼은 현재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영사관은 은신 좀 쓸 줄 안다고 몰래 잠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걸리면 바로 각양각색의 무기와 마법들이 날아와서 내 몸을 원자 단위로 쪼개줄 것이다.

 목숨을 건져도 신문 1면에 실리면서 사회적 말살을 당할 것이다.

 <특종! 영사관 여자 기숙사에 침입한 보조 교관!>

 ‘시발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다….’

 [일단 초서현의 생활 방식을 좀 더 확실히 알아두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가령 주말의 패턴도…]

 그렇게 향후 방침에 대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초서현이 생도들을 향해서 외쳤다.

 “자! 휴식!”

 생도들은 저마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대화하기 시작했다.

 VR 속이라 그런지 다들 평소에 하던 훈련과 다르게 전혀 힘든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우연히 내 근처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생도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야, 초서현 교관님 계속 저 모습인 거야?”

 “그런가 봐. 그런데… 초서현 교관님 존나 예쁘지 않냐?”

 “예쁘긴 한데… 계속 동생한테 혼나는 기분이야….”

 그 말에 생도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초서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초서현은 아까 일 때문인지 멀리서 나를 계속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생도들은 초서현의 변화된 모습에 의아하면서도 다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초서현 교관님 생도복 진짜 잘 어울린다.”

 “난 솔직히 몸에 둘둘 두른 청바지랑 티셔츠보다 저게 훨씬 나아 보여.”

 “그거 알아? 초서현 교관님… 여름에도 긴 티셔츠랑 긴 청바지 입는 이유?”

 갑자기 나도 솔깃한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초서현의 복장은 매일 바뀌긴 했지만, 언제나 온몸을 뒤덮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솔직히 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개인적인 취향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이모가 초서현 교관님이랑 영사관 동기였대, 그런데 예전에….”

 한창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서 상대를 확인했다.

 초서현이었다.

 “엇! 무, 무슨 일 있나요?”

 “…잠깐 할 말 있어요.”

 생도복을 입고 있는 초서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나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덕분에 나는 생도들의 이야기를 마저 듣지 못하고 그녀를 따라가야 했다.

 생도들과 꽤 떨어진 장소까지 데리고 온 초서현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흉한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요. 악몽을 꿔서….”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괜히 옆에 있어서 죄송하죠.”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초서현은 평소와 다르게 무거운 분위기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나를 앞에 두고 골똘히 고민하던 초서현은 나를 올려다보며 부탁했다.

 “혹시… 오늘 일과 끝나고 시간 괜찮아요?”

 ..

 ..

 초서현의 부탁은 간단했다.

 어제 VR 안에서 했던 활 연습을 VR 캡슐에 들어가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처음에 거절했다.

 “초서현 교관님. 저보다 훨씬 능숙한 사람이 많습니다. 차라리 그분들에게….”

 “저는 생도들과 달라요. 다른 교관분들에게 가르쳐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입장상… 좀 곤란해요.”

 이미 단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초서현이 궁술 교관에게 궁술을 부탁하는 것도 입장상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하고 있자 초서현이 긴 머리를 살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만약 부탁 들어주면 저도 부탁 하나 들어줄게요.”

 “아, 그렇다면 해드릴 수 있죠.”

 초서현은 내 모습에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속물처럼 바로 수락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 초서현 교관님의 부탁을 평생 어디서 걸어놓겠어요.”

 “증말이지….”

 초서현은 아까 보여줬던 음울한 기분을 떨쳐내면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긴 머리에 생도복.

 현재와 많은 괴리감을 주는 초서현. 일단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원래 목표는 성수아였지만, 어차피 한동안 그녀와 게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 주는 초서현한테 집중하자.’

 [옳은 판단이십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초서현의 부탁을 정식으로 수락했다.

 “그럼 이따가 일정 다 끝나고 VR 훈련실에서 뵙겠습니다.”

 초서현은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

 ..

 나는 일과를 마치고 식사를 한 뒤에 바로 약속대로 VR 훈련실로 왔다.

 거기에는 이미 초서현이 미리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제가 일단 다 세팅해놨어요. 캡슐 안으로 들어가세요.”

 “네.”

 나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바로 캡슐로 들어갔고, 초서현이 외부에서 이런저런 조작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VR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VR로 들어간 뒤에 바로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서 많이 본 장소였다.

 “…영사관?”

 그것도 지금 영사관이 아닌, 초서현이 생도일 당시의 영사관의 모습과 흡사했다.

 어느새 긴 머리의 초서현은 생도복을 입고 내 옆에 서 있었다.

 “예전 영사관 테마예요.”

 “아하….”

 분명 지금 영사관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정말 정교하게 영사관의 구조를 본떠 놓은 테마였다.

 사격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초서현은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영사관 테마가 왜 있는지 아세요?”

 “…글쎄요?”

 “혹시라도 괴인이 쳐들어왔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테마예요.”

 “아… 그거 진짜 좋은데요?”

 천의 요새라고 불리는 영사관도 간혹 괴인의 침입을 허용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이 영사관 테마는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만들어 놓은 테마라고 한다.

 그렇게 초서현의 설명이 이어지는 중에 사격장에 도착했다.

 초서현은 사격장에 도착하고 나서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고마워요. 귀찮을 텐데….”

 “설마요. 초서현 교관님이랑 같이 있어서 좋은데요.”

 “그, 그래요… 흐흫….”

 초서현은 콧소리를 내며 사격장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초서현은 활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

 “지금 제가 배우는 처지잖아요. 그럼 그에 맞게… 저도… 태도를 바꿔야 할 거 같아요.”

 “…?”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초서현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빨개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 성수호 교관님… 궁술 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 성수호 교관님… 궁술 지도… 잘 부탁드립니다….”

 “….”

 “그, 그냥! 부, 분위기가 그렇잖아요! 그, 그래서….”

 초서현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당황하며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으로 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괜히 말했어…. 꿈에서 봤을 때처럼 교관이었으며 좋겠다는 생각에….’

 아까 꿨던 꿈에서 나온 성수호를 보고 나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라고 있었다.

 잠시라도 좋았다. 거짓이라도 좋았다. 그저 잠깐이라도 자신이 바라왔던 학창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은 심정에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성수호라면 왠지 그녀의 바람에 자연스럽게 응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수호는 멍한 표정으로 침묵한 채 초서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초서현은 그 모습에 어깨를 축 늘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내 나이가 몇인데.’

 초서현은 어리다는 표현을 굉장히 싫어했다.

 대부분 사람이 어리다는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초서현은 오히려 반대였다.

 그 표현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 1순위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사회적 위치에 걸맞게 봐주는 성수호가 오히려 야속할 뿐이었다.

 “그… 됐어요. 그냥 장난이에요.”

 초서현이 입술을 삐쭉 내밀고 상체를 돌려서 사격장을 나가려고 했다.

 지금 당장 이 장소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에서 바로 성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서현 생도?”

 “…네?”

 초서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지며 뒤를 돌아왔다.

 그곳에는 자신을 온화한 미소로 내려다보는 성수호가 있었다.

 “궁술 지도 부탁해놓고 이대로 가려고?”

 “그….”

 성수호는 초서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세 잡아라. 내 실력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가르쳐주마.” 

 “….”

 초서현의 표정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환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컨셉 플레이는 옳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무슨 생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럴 때는 내 생각 좀 대충 읽어줘.’

 [….]

 지금 침묵하고 있는 아르모니아의 생각을 왠지 읽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굉장히 짜증 내는 거 같다. 조심하자….

 나는 그렇게 짜증을 내는 것으로 추측되는 아르모니아를 잠시 두고 초서현에게 집중했다.

 초서현은 활을 들어 올린 상태로 집중해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사실상 자세 교정은 레나가 봐주고 있었고, 내가 하는 건 활을 사용할 때 느낀 점을 알려주는 게 전부였다.

 “시야를 너무 의식하지 마. 니가 본 것을 한 번에 믿어야지, 니가 들고 있는 활도 너를 믿게 되는 거야.”

 “네….”

 초서현은 평소에 보여줬던 당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상태였고, 교육을 받아들이는 생도의 자세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뭐랄까… 대충 느낌을 표현하자면… 소녀소녀 했다.

 ‘막상 이렇게 보니까, 초서현 머리 길렀으면 좋겠네.’

 분명 초서현은 단발이 굉장히 어울리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렇게 단발이 어울리는 여자는 긴 머리카락을 하면 더 아름다워지기 마련이다.

 어떤 여자도 긴 머리카락보다 단발이 예쁠 수는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스킨헤드를 해도 잘생긴 사람도 풍성한 머리카락이 있으면 훨씬 더 잘생겨지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아마 남자에 관한 관심이 없어서 그동안 머리 관리 자체가 귀찮다고 여겨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 아르모니아도 그래서 단발하는 거야?’

 아르모니아는 기본적으로 은색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솔직히 첫인상부터 단발이라 그런지 아르모니아의 장발은 머릿속에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르모니아가 알몸으로 있는 상상은 쉽게 되는데….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시는 거 같지만,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임무가 최우선이기에 관리를 최소화하고자 관리가 편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습니다.]

 ‘흐음….’

 나중에 명령으로 기르게 해야지. 아니다, 기르기 전에 한번 하고 나서 기르게 해야 하나?

 아직 머나먼 미래지만 아르모니아와 여러 가지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다시 임무에 집중했다.

 나는 임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생도복을 입고 있는 초서현을 보면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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