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199화 (200/898)

 그렇게 웃어대던 초서현은 정답을 알려줬다.

 “대부분 영웅이에요.”

 “아….”

 “화살 연사는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한도 내에서만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이동 속도도 캐릭터마다 정해져 있어서 제한이 있고요.”

 캐릭터마다 정해져 있는 능력 안에서만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 고른 캐릭터… 분명 좋은 캐릭터예요. 원거리, 근거리, 초장거리 스킬. 모두 갖추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활용하기가 너무 까다로워요.”

 거기다 오히려 활을 이용하는 영웅들이 더 사용하기 힘든 캐릭터라고 한다.

 “특히 주무기 활인 영웅들은 지금까지 배워온 능력 때문에 욕만 바가지로 먹는 게 그 캐릭터예요.”

 지금까지 익혀왔던 활 실력은 이미 몸에 밴 습관 같은 것이었다.

 이것저것 제약이 걸리니 오히려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고 한다.

 “활을 쓰는 사람이 그 캐릭터를 잡으면 하루 만에 화병으로 병원에 실려 간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을 정도고요.”

 “아하….”

 평생 활을 쓰던 영웅들 처지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쏘지도 못하고, 제대로 날아가지는 않는 화살로 인해서 평소에 침착했던 인내심이 하루 만에 폭발할 정도라고 한다.

 초서현이 나를 말린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했다.

 “그래도 이왕 같이 게임하는 건데, 기분 상하는 마음으로 플레이하면 좀 그렇잖아요.”

 “흠… 그럼 일단 정식으로 한판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꿀게요.”

 “아이고… 고집은….”

 초서현은 결국 내 말에 두손 두발 다 들고 포기했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일단… 튜토리얼부터 완료하죠.”

 튜토리얼은 별거 없었다.

 싸우는 방법이 아닌 이기는 원리와 기본적인 시스템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상대의 진영의 쫄을 잡아서 강해지고, 상대편 유저와 싸우면서 적의 진영을 파괴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일인칭이다 보니 FPS 느낌이 나는 게임이었다.

 …진짜 내가 아는 게임을 섞어 놓은 느낌이었다.

 ‘뭐, 세상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문제는 튜토리얼이 아니었다.

 ‘와… 이거 활 잠깐 써봤는데, 짜증이 슬슬 오르는데?’

 [특히 연사를 못 하시는 부분에서 답답하시다는 기분이 저에게도 느껴졌습니다.]

 조준력이 있어서 맞추는 건 백발백중으로 잘 맞췄다.

 한번 화살을 쏴보니 캐릭터에 대한 조준력이 알아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정해진 공격 속도와 스킬.

 내가 아무리 화살을 더 쏘고 싶어도 정해진 공격 속도를 넘겨서 화살을 쏘는 게 불가능했다.

 그리고 캐릭터에게 있는 스킬은 게임상의 마나와 쿨타임이 존재해서 조건에 맞춰서 잘 활용해야 했다.

 내가 가진 능력인데도 불구하고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게 되니 답답함이 느껴졌다.

 초서현은 나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거봐요. 이게 생각보다 그렇다니까, 그냥 마우스 깔짝이는 게임이랑 다르게 내가 직접 움직이니까, 마음대로 안 되면 더 답답하게 느껴져요.”

 그냥 모니터만 바라보는 게임이 아닌 직접 체험하는 가상현실이기에 겪는 답답함이었다.

 “궁사들이 왜 화병이 난다는 지 알 것 같네요.”

 나는 쓰게 웃으며 활을 들어 올렸다.

 “그럼 튜토리얼 끝났으면 정식으로 해보는 건가요?”

 “아뇨, 처음이잖아요. 일단 AI전 해보죠.”

 “저….”

 “…?”

 나는 갸우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초서현에게 말했다.

 “바로 유저랑 대전해보면 안 될까요?”

 ***

 초서현은 성수호와 대기하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그냥 좀 재미없으면 괜찮은데, 괜히 쓴소리 들을까 봐 걱정인데….’

 초서현은 성수호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딱히 어리석거나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마음에 더 들기 시작했다.

 초서현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적당히 타협하는 인간보다 성수호처럼 자기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사람을 좋아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간들의 입이 굉장히 험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게임을 하다 보면 영웅이라는 작자들의 마음속에 괴인보다 더한 진짜 악마가 살아 숨 쉬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일단 노멀전이면 대부분 험한 소리는 안 나오니까 괜찮겠지….’

 초서현은 아까 그저 같이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성수호를 친구 초대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오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괜히 불러서 기분 상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에 홀로그램 창이 뜨면서 대전이 잡혔다는 알람이 왔다.

 ‘일단…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커버 해줘야 해.’

 초서현도 실력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노멀전에는 자신이 있었다.

 “자, 들어가죠.”

 “욕먹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성수호는 느긋하게 웃으며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초서현은 성수호가 웃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저렇게 안 웃던데… 이제 수업 시간에도 이야기 좀 많이 나누고 해야겠다.’

 초서현은 쓰게 웃으며 대전을 수락했다.

 두 사람은 갑자기 주변 환경이 그래픽이 엉키며 변하더니, 유적이 같은 모양의 장소로 변화되어 있었다.

 초서현은 성수호에게 설명했다.

 “대전 장소는 랜덤이에요.”

 “하아… 그런데 희한하네요.”

 “어떤 거요?”

 “초서현 교관님은 현실에서 보던 교관님 얼굴인데, 다른 사람들은 아까 캐릭터들 그대로네요?”

 성수호의 말대로였다.

 초서현과 성수호의 외형은 현실의 그대로 따온 뒤 복장만 바뀐 상태였다.

 그에 비해서 다른 이용자들은 진짜 AI들처럼 캐릭터의 얼굴과 외형을 하고 있었다.

 초서현은 팔짱을 끼고 웃으며 설명해줬다.

 “보안 때문이에요.”

 “보안이요?”

 이 VR 시스템은 원거리에서도 직접 대면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문제는 이 게임의 대부분 이용자는 상류층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냥 얼굴을 내밀고 있으면 이 좁은 바닥에서 누군지 다 알 수도 있잖아요.”

 “아하…. 그럼 저랑 초서현 교관님은 왜 얼굴이 표현되는 거죠?”

 보안이라고 한 것 치고는 초서현과 성수호는 서로의 얼굴과 체형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친구 추가되어 있고, 허가해놓으면 이렇게 표현돼요. 뭐… 싫으면 나중에 설정 변경해요.”

 “음… 이쪽이 좋아 보이네요.”

 초서현은 성수호의 실없는 웃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캐릭터를 고르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어떤 라인에 서야 하는지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줬다.

 혹시라도 성수호가 책잡혀서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픽 설명부터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한창 캐릭터 픽 중에 누군가가 성수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캐릭 바꿔요.”

 “…네?”

 이미 캐릭터를 고른 같은 편 유저가 성수호에게 면박을 주기 시작했다.

 “바꾸라고요. 그놈의 활쟁이 좀 안 봤으면 좋겠네.”

 딱 봐도 예의를 밥 말아 먹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날카로운 말투였다.

 하지만 저 말도 나름 순화한 것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시작부터 욕설이 오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정작 저 말에 정작 화가 난 건 성수호가 아닌 초서현이었다.

 “아니, 랭크전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 좀 하는 게 어떻다고!”

 “하아… 그래, 그래. 해라. 충새끼들은 조언을 해줘도 못 알아먹네.”

 “이런 씨….”

 초서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욕설을 내뱉으려는 순간이었다.

 성수호가 초서현을 제지하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괜히 제가 초서현 교관님 말 듣지 않아서 안 좋은 소리를 듣게 했네요.”

 “아니!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해요.”

 초서현은 성수호의 행동에 순간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없으면서 사과를 하는 모습이 학창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비록 상황은 많이 달랐지만….

 “이번에 해보고 문제가 많으면 바로 교체할게요.”

 “….”

 초서현은 차마 성수호의 말에 무시하고 계속하고 싶은 거 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성수호의 캐릭터는 잘하기는 힘든데, 괜히 골라서 트롤링이라도 하면 게임 의욕이 꺾이기 충분했다.

 ‘그래… 괜히 저런 말 들으면서 게임을 할 필요는 없지.’

 초서현은 걱정이 들면서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그래도 집중력 쪽은 좋아 보이던데, 잘할지 또 알아?’

 이 VR 게임들은 고유의 특징이 있다.

 일단 진짜 체력이 소진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줄 뿐 진짜 힘들게 뛰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체력을 프로그램이 각종 방법으로 제어를 하게 된다.

 가령 일정 시간 뛰면 강제로 둔화시킨다든지, 강제로 멈추게 만든다든지….

 즉, 현실에서의 피지컬이 전혀 쓸모가 없는 곳이었다.

 하물며 컴퓨터 게임조차도 손의 정교한 움직임과 반사신경이 필요하다.

 그런 요소들이 VR 안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정신적인 부분은 오히려 온전히 가지고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집중력, 판단력, 절제력….

 초서현이 이 게임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바로 정신력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이 게임한 지 꽤 됐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거 보면 그냥 포기해야 하나….’

 그녀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지속해서 튀어나오는 불안감과 당혹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몇 년째 플레이하고 있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에 울분만 쌓이고 있었다.

 게임을 시작하면 초반에는 그녀의 아군들이 그녀를 칭찬하기 바빴다.

 문제는 게임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한 타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초서현이 하는 캐릭터는 암살.

 대부분 혼자 다니며 상대 팀을 교란하는 역할을 맡은 캐릭터였다.

 초반부 그녀의 활약으로 코앞까지 다가간 승리를 중반부에 가면서 연달아 벌여 놓은 실수로 인해서 패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어차피 노멀전이고…. 금방 끝나겠지.’

 성수호가 아직 전적이 없던 터라 매치가 된 아군과 적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상대편과 아군의 캐릭터가 모두 골라졌고, 눈앞에 크게 홀로그램의 숫자가 표시되었다.

 10… 9….

 숫자는 점차 1씩 줄어들며 시작 시각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초서현은 그 와중에도 계속 성수호에게 차분히 설명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전체 대화나 전체 아군 대화는 하지 마세요. 그런 대화는 일단 익숙해지면 하고, 지금은 저랑 귓속말만 해요. 아니면 옆에 있는 파트너랑만 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게임할 때, 너무 딱딱하게 하지 마요. 지금 수업 중도 아니고….”

 “하하… 알겠습니다.”

 성수호의 표정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었지만, 좀 나아졌다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에 숫자는 0을 가리켰다.

 나는 본진에서 기본 아이템을 구입한 뒤 바로 초서현이 말해준 라인으로 향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하단.

 대게 나 같은 원딜은 하단 쪽으로 향하는 게 정석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하단은 나 혼자 가는 게 아니었다.

 내 옆에 웬 거대한 사이드 형태의 무기를 들고 있는 사신처럼 생긴 캐릭터가 서 있었다.

 그리고 하단 지역에 도착하고 나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안녕하세요.”

 일단 인사는 받긴 했는데….

 ‘미치도록 친해지고 싶지 않아….’

 [그래도 현재 수호님의 파트너입니다. 나쁜 인상을 심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얼굴이 해골이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

 이 게임을 처음 시작해서 그런가 저렇게 적나라하게 외형이 표현되니 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 해골 얼굴을 하고 있는 사신 캐릭터는 친절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아마 미니언들 나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거예요.”

 “미니언이요?”

 “그거 먹으면 골드 들어와요.”

 “아….”

 쫄을 말하는 것 같았다. 튜토리얼에서 듣긴 했는데, 벌써 다 까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느낌이 왔다.

 ‘…촉이 왔어.’

 [어떤 촉 말씀이십니까?]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해골에게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오늘 처음이라 실수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하! 괜찮아요. 사실 저도 오늘 처음이에요.”

 해골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흔들어줬다.

 뼈만 존재하는 손가락으로 말이지….

 그리고 손을 흔들면서 갑자기 사과하기 시작했다.

 “아까 죄송했어요.”

 “네? 어떤 걸…?”

 내 의문에 해골은 비록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난처한 기색을 풍기며 말했다.

 “아까 오빠가 뭐라고 한 거 미안해요.”

 “아….”

 역시 내 촉은 확실해!

 ‘여자다!’

 […어차피 여자라고 해도 지금 외모는 해골입니다만?]

 ‘남자 새끼보다는 낫지….’

 뭐 여자니까 호감을 느낀다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여자면 좀 더 낫겠다 싶은 것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격이 좋아 보였다. 귀찮게 잔소리하지 않을 것 같은 성격 같았다.

 내가 주위를 둘러볼 때, 해골이 난처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야기를 계속 진행했다.

 “오빠가 저랑 계속 같이하고 있었는데, 활 쓰는 캐릭터 하시는 분들이랑 계속 문제가 있었거든요.”

 “아… 친오빠세요?”

 “푸후! 아뇨. 사귀는 사이에요.”

 “아하~”

 계속 오빠라고 하길래 친오빠인 줄….

 ‘그런 싹퉁바가지 없는 녀석한테 여친이 있다니….’

 여자친구랑 게임을 한다고 일부러 노멀전을 하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 편 미니언이 뒤에서 유령처럼 흐물흐물 오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 쪽에서도 미니언과 함께 상대편 캐릭터 두 명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친절한 해골을 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럼…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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