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198화 (199/898)

 그저 그런 상쾌함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맛보는 기상으로 몸이 행복을 발산한다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마사지는 VR 안에서 받는 것이었다.

 진짜 성수아의 몸을 만지며 마사지를 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최상의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몸이 풀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받으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내심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 즉시 바로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그건 성수호 교관님한테 실례지. 그런데… 혹시 성수호 교관님은 지금도 싫어하지 않을까?”

 성수아는 최근 불안감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성수호와 게임을 하면서 하면 안 되는 행위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어린 모습이라고 해도 본 모습은 성인이었다.

 그런 남자를 어린아이 취급하며 껴안고, 같이 자고, 마사지를 받고… 막상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상쾌하면서도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다음 날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아…, 그렇다고 직접 물어보는 것도 그렇고…. 일단 들어가자.”

 성수아는 자신의 내면에 촛불처럼 피어오른 불안감과 죄책감을 VR 헤드기어를 착용하면서 입술로 불면서 꺼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입술로 불어서 끈 촛불 너머에는 장작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동물의 마을 체험판을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에 플레이를 계속하고 싶으시다면 정식 버전을 구매해주세요!>

 “…어?”

 ***

 “아… 그럼 이번 주에는 플레이할 수 없으신 건가요?”

 (네….)

 통신 너머로 성수아의 기운 빠진 목소리가 절실하게 들려왔다.

 단 한 단어뿐이지만, 그녀의 기분이 내게 온전히 전해졌다.

 “제가 VR 기기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그런데,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게 불가능한가요?”

 내가 살던 세계에도 DL이라는 개념으로 CD나 물리적 패키지를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판으로 구매하는 게 꽤 흔한 편이었다.

 다만 나는 온리 패키지 매니아였기 때문에 언제나 실물을 구매했다.

 설마 성수아도 패키지파 인가?

 하지만 그녀의 설명을 듣고 왜 지금 당장 구매하는 게 불가능한 지 알 수 있었다.

 (VR의 경우에는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거기다 인터넷으로 소프트웨어를 팔면 VR 기기를 훔쳐 가려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구매는 무조건 업체에 가서 인증을 받고 사야 해요.)

 “…꽤 복잡하네요.”

 5억 원짜리 기계.

 당연한 이야기지만, 집 한 채 값의 기기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불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일단 훔치고 나서 소프트웨어만 산다?

 분명 타인의 VR 기기를 훔치려고 하는 인간들이 즐비할 것이다.

 일단 훔치면 집 한 채. 거기다 팔아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초기에 발매되었을 때는 그런 사건이 빈번했다고 해요. 지금 성수호 교관님의 경우에는 이미 내장되어 있어서 문제없을 거예요.)

 “나중에 구입할 때가 문제겠네요.”

 (그것도 괜찮아요. 제가 애초에 양도를 한 거라 나중에 구입하는 것도 문제가 안 될 거예요.)

 나 같은 경우에는 성수아에게 받았을 당시에 정품이 내장되어 있다고 했다.

 문제는 성수아의 경우에는 영사관에서 대여한 거라 당연히 모든 소프트웨어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줬다.

 (하아… 이 게임 사려면 무조건 밖에 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평일동안 나갈 상황이 안 되네요.)

 “그렇군요… 정말 아쉽네요. 어쩔 수 없네요. 다음 주로 기약해야겠네요.”

 (….)

 나는 침묵하고 있는 성수아를 향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루 마무리를 성수아 교관님이랑 해서 좋았는데, 아쉽네요.”

 (그… 그런가요.)

 “아… 그러고 보니 저 때문에 매번 같이해주신 건데, 괜히 저 때문에 게임을 살 필요는….”

 (에이! 괜찮아요…. 저도… 하루 마무리로 성수호 교관님이랑… 해서 좋아요.)

 내 본체가 좋은 건지 어린 내가 좋은 건지 헷갈리지만, 그래도 저런 반응이 나온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성수아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시무룩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럼… 내일 봬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성수아와의 통신이 종료되었다.

 나는 VR 기기를 벗지 않은 상태에서 구시렁거렸다.

 ‘망할… 나 혼자라도 게임에 들어가서 뭐라도 해야 하나?’

 [혼자 뭔가 즐기실 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솔직히 성수아 없으면 굳이 이 게임을 할 이유가 없지.’

 미리 뭔가 해놓으면 좋을 거 같지만, 게임 특성상 같이 마을을 꾸미는 게 훨씬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게임이다.

 내가 미리 뭔가 해놓으면 오히려 나중에 같이 할 수 있는 컨텐츠가 더 빨리 소모될 뿐이다.

 ‘오늘은 일찍 잘까? 응?’

 내가 그렇게 헤드기어를 벗으려는 순간, 눈앞에 친구창 쪽에서 웬 빨간색 불빛이 점등하고 있었다.

 아니… 아까부터 점등하고 있었나?

 뭐지 싶어서 친구창을 열어봤다.

 열린 친구창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친구 초대했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상대방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초서현?’

 ***

 초서현은 사방이 어두운 공간에서 발을 동동 굴리며 앞에 떠 있는 창에 집중했다.

 성수호에게 보낸 친구 초대.

 한참을 고민하던 초서현은 간신히 성수호에게 친구 초대를 걸 수 있었다.

 문제는 상대방의 수락.

 “하아… 지금 접속 안 한 건가? 이거 일단 친구 등록이 돼야지 접속했는지 확인이 되는데….”

 사실 초서현이 굳이 이렇게 어색한 방법으로 친구 초대를 할 필요가 없었다.

 스마트 워치로 직접 연락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이제 8시를 넘긴 상황.

 거기다 오늘 막 연락처를 공유한 사람에게 ‘지금 VR 기기 들어갔어요? 친구 초대받아요.’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차피 수락한다고 같이 게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나 혼자… 응? 어!?”

 한참을 바라보던 친구창에는 기다리던 성수호의 리스트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허공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혹시 초서현 교관님이신가요?)

 “마, 맞아요! 서, 설마 진짜 받을 줄은 몰랐네! 하하하….”

 초서현은 당황한 채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친구 등록이 해봤다, 사실 실수로 누른 거다… 등등….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 초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곤조곤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그… 심심하면… 같이 게임이나 할래요?”

 (….)

 성수호는 침묵했다.

 초서현은 그런 성수호의 모습에 자책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겠지… 애초에 나랑 뭘 같이 하고 싶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까 했던 말을 정정하기 위해서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미안해요. 괜히 귀찮게….”

 (다행이네요. 저도 마침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응? 괜찮아요?”

 (그럼요. 마다할 이유가 없죠.)

 초서현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싱글벙글하고 있는 초서현은 성수호에게 자신이 하려는 게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

 ..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나서 제일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샀어요?”

 (이 VR 기기를 받을 때 이미 설치되어 있어서 바로 할 수 있어요.)

 “….”

 초서현은 아까 성수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5억 원이나 되는 VR 기기를 선물로 받았다고….

 초서현은 누군지 정말 궁금했다.

 ‘아냐, 그런 걸 꼬치꼬치 캐물어봤자 좋은 거 없잖아. 괜히 훔친 사람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잖아.’

 초서현은 성수호에게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이라고 판단한 뒤, 괜한 의심을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거면 일단 간단한 튜토리얼부터 시작하죠.”

 (네.)

 “기다리세요. 제가 친구 연동으로 같이 접속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초서현은 성수호의 대답을 듣고 게임 접속을 시도했다.

 그 순간 눈앞에 푸른 빛이 퍼져 나왔고, 빛이 사라지자 주위는 숲으로 꾸며진 전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초서현은 바로 성수호를 찾았다.

 “들어왔어요?”

 “네, 들어왔습니다.”

 초서현의 뒤에서 대답한 성수호는 처음 지급되는 복장을 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

 초서현의 눈에는 성수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강탈자.

 “강탈자…닉네임 참 중2 스럽네요.”

 “초서현 교관님은 굉장히 멋진 닉네임을 가지고 계시네요.”

 “으윽! 자, 잠깐만!”

 초서현은 성수호에게 정신 팔린 나머지 자신의 닉네임에 관한 생각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초서현의 머리 위에는 네 글자가 떠다니고 있었다.

 초소협객.

 아무리 절친한 사람이 생겨도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닉네임이었다.

 초서현의 머리 위에는 분홍색으로 된 초소협객이라는 글자가 적나라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걸 성수호에게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굉장히… 멋있는… 닉네임….”

 “으으큭….”

 이미 봐버린 이상 뒤로 물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초서현은 창피함에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홱 돌았다.

 “일단 튜토리얼부터!”

 “네.”

 초서현은 성수호를 등지고 서서 홀로그램을 후다닥 조작했다.

 모든 조작이 완료되자 주위에는 이런저런 오브젝트들이 생성되었고, 그 옆에는 설명들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었다.

 초서현은 오브젝트들을 보면서 성수호에게 물었다.

 “일단 포지션은 뭘 하고 싶어요?”

 “포지션이요?”

 “딜러, 탱커, 힐러… 등등 있는데…. 일단 원하는 캐릭터를 고르는 게 낫겠네. 캐릭터 창 열어서 원하는 거 골라보세요.”

 “아….”

 성수호는 초서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홀로그램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 일단 여기는 커맨드 배우는 용도니까. 나중에 바꾸면 그만이고….’

 초보자인 입장이라 어떤 캐릭터를 고르더라도 나중에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성수호는 한참을 보더니,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그렇게 터치한 그는….

 날렵한 복장으로 변하더니, 왼손에 커다란 활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궁수의 모습이었다.

 성수호는 마음에 드는 표정으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떤가요?”

 “….”

 그리고 초서현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하필 골라도 걔를….”

 “하필 골라도 걔를….”

 “별로인가요?”

 “그게… 일단 캐릭터 자체는 진짜 좋아요.”

 “그럼 뭐가 문제인가요?”

 “….”

 초서현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한숨을 크게 쉬면서 실없이 웃었다.

 “분명 좋긴 좋은데… 하는 사람도 많은데…. 잘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

 초서현의 말을 듣고 내가 고른 캐릭터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충이 존나 많은 캐릭터라는 거군.’

 […?]

 ‘컨트롤 난도는 높고 하는 녀석들도 많은데, 잘하는 녀석은 없는 캐릭터라는 거지.’

 내 게임 인생에 온라인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워낙 유명한 게임에 관한 이야기는 모르고 싶어도 어디선가 듣게 된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서는 그런 충 캐릭터 한두 개는 유명세를 떨친다.

 초서현은 허탈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웬만하면 연습할 겸 원하는 걸 하는 게 좋지만, 그건 한번 잡으면 괜히 손맛 좋다고 계속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하….”

 초서현의 말을 듣고 나니, 더더욱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고른 캐릭터의 길… 그것을 따르는 게 숙명.

 ‘이게 바로… 충의의 길인가….’

 [‘충의’입니다. ‘의’가 하나 더 들어갔습니다.]

 ‘시끄르의….’

 뭐랄까… 왠지 이 캐릭터… 놓고 싶지 않아졌다.

 “일단 좀 해봐도 될까요?”

 “아이고… 그래요.”

 초서현은 피식 웃으면서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녀의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을 보니 바로 알 것 같았다.

 (너도 결국 허세가 가득한 남자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녀의 표정으로 내 의욕이 휴대용 가스버너의 불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그 불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초서현에게 잘 보이려면 무난한 캐릭터가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도 맞긴 하는데… 사실 하고 싶다는 건 다른 의미도 있어.’

 […?]

 ‘이쪽 세계에서 개발된 VR 기술은 신체의 능력 수치를 정확히 들여오지 못한다고 했잖아.’

 [그렇습니다. 그리고 캡슐과 다르게 헤드기어는 아예 그런 기능이 없을 겁니다.]

 캡슐은 애초에 용도가 평범한 유희용이 아니었다.

 영웅들의 훈련용이고, 그걸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런 물건조차 정확한 신체 능력을 완벽하게 측정하지는 못했다.

 거기다 이런 헤드기어에 그런 기능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런 VR 세계도 통용되는 게 하나 있다.

 손기술….

 분명 성수아에게 마사지할 때, 손기술이 통한 것을 보면 손기술이 마냥 신체랑만 관련된 건 아닌 듯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걸 시험해보고 싶었고….

 초서현은 나를 보면서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경고했다.

 “활 솜씨 좋은 건 인정하는데. 여기서도 활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네? 그냥 활 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역시나….”

 초서현은 피식 웃으며 설명해줬다.

 “생각해봐요. 이 VR 기기의 주 사용자가 누구라고 생각해요?”

 “…부자?”

 “으하하! 맞긴 하지. 부자… 푸하하!”

 초서현은 비웃는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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