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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식당에 성수아가 없었다.
‘뭐지? 설마 나랑 초서현이랑 같이 있는 거 몰래 보고 다른 곳에 갔나?’
[딱히 그런 모습은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흥얼거리는 초서현의 뒤에서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배식받았다.
뭐랄까… 전에 식당 음식, 별로라고 말했던 것과 다르게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일단 일식 돈가스를 배식받을 때 기뻐하는 걸 보면 돈가스를 좋아하는 거 같았다.
‘흐음… 아무리 봐도 애인데….’
[돈가스는 성인들도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입니다.]
‘돈가스 좋아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은빛 유치원, 아르모니아 어린이… 돈가스 좋아함.
나는 싱글벙글하는 초서현의 정수리를 보면서 배식을 받고, 식탁에 앉아서 같이 식사했다.
확실히 식당은 점심때가 제일 어수선했다.
그리고 그 어수선한 장소에서 신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신나게 돈가스를 썰던 초서현은 정신 차리고, 갑자기 헛기침하며 내게 말했다.
“크흠… 빠, 빨리 먹어요. 식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초서현은 그렇게 말하고 입가를 씰룩이면서 돈가스를 썰기 시작했다.
‘…왠지 초서현이 남들이랑 밥을 안 먹으려는 이유를 알 거 같아.’
[어떤 이유입니까?]
‘좋아하는 음식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아.’
여자들은 맛있는 음식에 환장한다고 하지 않는가?
초서현도 그런 부류인 것 같았다.
돈가스를 저렇게 행복하게 먹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장에서 저런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아 할 거 같았다.
즉, 밥 먹을 때는 그냥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편하고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초서현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어린 시절 타인에 의해서 인생의 방향이 틀어졌고, 결국 혼자 바로잡지 못한 여자다.
아마 이런 행동도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르모니아, 아까 알려준다고 했던 홍미선에 관한 이야기 해줘.’
[알겠습니다. 홍미선은….]
아르모니아에게 홍미선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는 찰나였다.
“아! 쌤!”
“크읍….”
식판에 돈가스 세 덩이를 담은 송아라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초서현은 송아라를 보자마자 입 안에 있던 음식을 크게 삼키고, 입술을 닦은 뒤에 송아라에게 겸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밥 먹으러 왔니?”
“…네?”
아마 이 자리에 초서현을 처음 보는 사람도 초서현의 말투는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초서현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다시 말했다.
“아니… 밥 먹으러 왔냐?”
“네~”
송아라는 룰루랄라 하며 초서현의 옆에 앉았고, 그녀는 앉아 자자마자 식사를 하는 것보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아! 성수호 쌤!”
“응?”
“아까 성수아 쌤이 말 좀 전해달라고 했어요.”
“응? 무슨 말인데?”
“오늘 바쁜 일 있어서 같이 점심 못 먹어서 미안하대요.”
“아, 괜찮은데.”
나는 피식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초서현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니, 그런 이야기는 좀 직접 해야지….”
“바쁘시면 어쩔 수 없죠.”
나는 웃으면서 초서현의 말에 대답했고, 초서현은 콧방귀를 끼며 다시 돈가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용한 식사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송아라가 식판을 전부 비우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초서현 쌤! 스마트 워치 작동되면 외출할 수 있죠?”
“뭐… 그렇지? 뭐야? 너도 나가려고?”
“아… 아마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송아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개학 첫날 받았던 스마트 워치는 지금까지 사용 불가였다.
전산망의 문제였지만, 현재는 전산망 복구로 스마트 워치가 정상 작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스마트 워치는 생도들의 위치 파악용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외출이나 외박 시에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상시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다만 내가 이 물품을 사용하는 일은 아마 애들 관리 감독할 때 편하게 하자고 쓰는 게 전부일 것이다.
“그걸로 내부 훈련시설이나 이용할 줄 알았더니… 이제 같이 놀러 갈 친구라도 생겼냐?”
“그… 하하… 그런 거죠…. 저는 먼저 일어날게요!”
“그래라.”
송아라는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허둥지둥하면서 식판을 들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런 송아라가 나가는 보고는 식탁을 정리하며 초서현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저희도 일어나죠.”
“…왼손 좀 내밀어봐요.”
“네?”
“빨리요.”
나는 얼떨결에 왼손을 내밀었다.
내 왼쪽 손목에는 영사관에서 받은 스마트 워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초서현은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조작하더니, 내 스마트 워치 옆에 가까이 댔다.
그 순간 내 스마트 워치에 어떤 메시지가 띄워져 있었다.
<3256. 영웅 사관 학교 정식교관 초서현 이용자께서 친구 추가를 요청했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나는 메시지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이게…?”
“빨리 받아요. 같이 일하는 사이면 연락 정도는 빠르게 돼야 하잖아요.”
“알겠습니다.”
<3256 이용자 초서현 님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초서현과 친구등록을 해버렸다.
‘이거 직장 상사랑 매일 연락하는 느낌 아냐? 불안한데….’
[그렇다고 해도 초서현과 자유롭게 연락이 되는 부분은 이점이 많습니다.]
‘뭐, 어차피 우리 하는 일이 업무량에 치이는 일은 아니니까….’
내가 통신으로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을 때, 내 표정을 보더니, 초서현이 한소리 했다.
“뭐예요? 나랑 연락하고 지내는 거 싫어요?”
“아, 아뇨…. 다만 제가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밖에 친구 없어요?”
“따로 연락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얼떨결에 우리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게 되었고, 점심시간이 마무리될 때쯤에 오후 수업을 위해 각자의 반으로 향했다.
..
..
나는 초서현과 헤어지고 마과 7반으로 향했다.
마과 7반에는 이미 누군가가 방문해서 혼자 창문 밖을 감상하고 있었다.
먼저 방문한 인물의 정체는 정식 교관보다 위에 있는 부잣집 따님 서지은이었다.
창문은 전부 닫아놓고 미세한 흔들림 없는 긴 머리카락으로 다소곳하게 서 있었다.
‘음… 어떡하지? 들어온 티를 낼까? 아니면 은신을 할까?’
[은신을 너무 남발하다가 걸리면 좋을 게 없습니다.]
‘에이 몰래 장난 좀 치고 싶었는데.’
[….]
나는 아르모니아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인기척을 내려고 서지은에게 다가갔다.
서지은은 내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창밖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만… 왜 나만 이래야 해…. 아빠….”
“….”
큰일이다.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렸다.
이대로 안녕! 하면 개 쓰레기 취급당할 게 뻔했다.
‘일단 몰래 나가….’
몰래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성수호 교관님.”
환하게 웃고 있는 성수아였다.
성수아의 말에 놀란 서지은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읏!”
“….”
그리고 그녀의 눈빛을 보고 나는 한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망했다~’
[….]
교관으로서의 내 이미지가 바닥을 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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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서지은은 성수아나 다른 생도에게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다른 생도들과 대화를 자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다 보니 나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지 않은 듯싶었다.
다만 나에 대한 이미지가 깎인 건 확실했다.
나를 보는 서지은의 눈빛은 냉기가 서리다 못해 내 심장도 얼릴 것 같았다.
‘뭐, 목표물도 아니고 사과를 해도 소용없어 보이고….’
[그래도 수호님의 평판에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걸 다행이라고 봐야 하는지….’
왠지 시한폭탄 하나 옆에 두는 느낌인데….
그래도 그 시한폭탄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과 수업이 끝나고 성수아와 저녁을 먹기 위해 같이 식당으로 향했다.
성수아는 아까 점심에 있었던 일을 사과했다.
“아까는 죄송해요. 저도 3학년생들을 처음 가르치는 거라 주의사항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괜찮아요.”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사과를 받아줬다.
사실 성수아가 사과할 일 따위는 아니었다.
챙겨야 할 수업 준비가 생각보다 많아서 점심을 못 먹는 상황이 생긴 것뿐이었다.
애초에 나랑 먹자고 약속을 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고맙게도 성수아는 나와 점심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식당으로 향하면서 성수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초서현 있는 거 아냐?’
[워낙 예측이 어려운 인물이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무슨 슈뢰딩거의 초서현이야?
식당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초서현.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은 성수호 교관님이 좋아하시는 한식이네요.”
“하하… 다행이네요.”
다행히 초서현은 없었다.
***
초서현은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불을 켜고 큰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녀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초서현은 오후 수업 내내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점심때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스마트 워치로 친구등록을 하고 나서 성수호가 친구가 없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안타까우면서도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실 초서현도 성수호와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친구는커녕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동질감보다 더 큰 감정이 점점 그녀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죄책감이었다.
“하아… 그냥 수업 중에 등록할걸….”
괜히 안 좋은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 것 같아서 죄책감이 사르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 일만 있었으면 적당히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초서현은 아까 성수호의 중요 부위를 만진 사건을 떠올렸다.
“미친! 아으!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남자의 성기를 만진 초서현은 혼이 나간다는 의미가 뭔지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나이 먹고 뭔 짓이야….”
초서현은 만지는 행위보다 그 후에 자신이 했던 행동이 더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남자 경험이 없는 찌찔한 여자처럼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하아… 짜증 나… 안 되겠어. 이대로는 그냥 못 자.”
초서현은 이 기분을 잠시나마 날릴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녀는 침대 옆 바닥에 버려진 것처럼 놓여있는 VR 헤드기어를 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다 놨다.
그렇게 올려져 있는 VR 헤드기어와 자신의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스마트 워치가 동시에 초서현의 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스마트 워치를 뚫어지게 쳐다본 뒤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이거 친구 추가 연동도 되지 않나?”
성수아는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허겁지겁 옷을 벗기 시작했다.
성수아의 피부를 단정하게 덮어주던 옷들은 여기저기 던져지면서 깨끗했던 바닥을 어지르기 시작했다.
귀가하면 언제나 조용히 식탁에 앉아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던 성수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빨리 VR 기기에 접속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할 뿐이었다.
샤워기에서 흩뿌려지는 물줄기가 성수아의 머릿결을 시작으로 등줄기를 타고 새하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갔다.
지금 그녀의 옆에 성수호가 있었다면 그녀와의 친분 같은 건 전혀 상관하지 않고 덮쳤을 것이다.
성수아의 샤워하는 모습은 남자의 욕망을 제어 불능으로 만들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몸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고 씻을 뿐이었다.
“후후~”
샤워를 마친 성수아는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욕실을 나왔다.
성수아는 방에 널브러진 자신의 옷과 속옷을 보면서 시선을 살며시 피했다.
“…이, 이따가 치우자.”
언제나 방 정리만큼은 최우선으로 하던 성수아는 최근 방 정리를 뒤로 미루기 시작했다.
방에 먼지 한 톨 돌아다니는 것도 참지 못했던 성수아는 최근 시야를 좁히며 먼지들을 못 본척하기 일쑤였다.
“…어차피 주말에 청소하면 그만이야. 옷도 여벌은 충분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모든 상황을 합리화하며 민트색 파자마를 입고 침대로 다이빙했다.
출렁!
세차게 흔들리는 가슴.
그리고 손에 잡히는 VR 헤드기어.
“후후~”
성수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VR 헤드기어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분명 성수아의 눈에는 VR 헤드기어가 비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다른 존재가 들어오고 있었다.
“성수호 교관님은 어린 시절에도 똑같았겠지? 나중에 사진 좀 보여달라고 할까?”
성수아는 성수호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하지만 궁금증과 더불어서 한가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신기하네. VR 안에서 받는 마사지가 이렇게 효과가 좋을 수 있나?”
성수아는 성수호의 안마를 받으면서 아침에 상쾌한 기상을 맛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