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분명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야 했다.
까앙!
“거기!”
“!”
미쳤다.
날아오는 화살을 보지 않고 소리와 감각으로 정확히 세로로 잘라서 반으로 갈라냈다.
‘이런 시발! 저게 인간이냐!’
[일단 위치를 발각당했습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일단 근접전을 허용하면 이 대련은 끝이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초서현이 가까이에 오는 것을 피해야 한다.
나는 견제용 화살을 두 발 날렸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초서현의 움직임이 둔해져서 화살을 막는 데 집중하느라 쉽사리 달려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큭!”
‘아무리 날고 기어도 발밑에 돌땡이 굴러다니는 것들을 전부 기억하진 못하겠지.’
그래 못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럼 그 정상을 넘어서는 행동이 나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파악!
“타앗!”
“!”
초서현은 하늘로 높이 뛰어올랐다.
장애물이 있다고? 그럼 장애물이 없는 공중으로 날아오면 되지.
‘이런 씨!’
하마터면 컨셉 버리고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점프로 날아오는 초서현에게 화살을 발사했다.
쏴아악! 타앙!
“큭!”
이번에는 그나마 유효했다.
내가 쏜 화살이 초서현의 검날을 제대로 맞고 튕겨 나갔다.
나는 그 즉시 다시 은신을 써서 주변의 지형지물들을 이용해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
“….”
초서현은 마음은 가라앉히고 모든 감각을 귀로 집중시켰다.
초서현은 적당히 봐주면서 대련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눈을 감았다고 해도 그동안 익혀왔던 감각이 있었다.
주변에 지형들이 통행에 방해하고 있지만, 그정도 핸티캡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좀 귀찮다면 성수호의 활 솜씨.
하지만 성수호의 활 솜씨를 믿고 있는 초서현도 그의 단점을 알고 있었다.
관통력과 파괴력이 약하다는 것.
그리고 화살을 쏘면 분명 날아오는 그 소리에 위치를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곡사를 쏘더라도 처음 활시위가 튕긴 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감각이 귀로 가는 중에도 다른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 하던 사람이야!’
분명 실력으로는 초서현이 한참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성수호는 교묘하게 기척을 숨기고 그녀의 빈틈을 시시때때로 노렸다.
초서현은 짜증이 일어나면서도 성수호에 대한 평가를 점점 더 높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조 교관으로만 있기는 아까워. 길드에 복귀하면 한번 제안이나 해보자.’
초서현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솨아아악!
챙!
“핫! 타앗!”
초서현은 단번에 도약해서 활시위가 튕겼던 장소로 점프했다.
그리고 점프 도중에는 몇 발의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챙! 챙! 챙!
“크읏!”
시야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건 초서현도 쉽지 않았다.
공중에서 마주친 화살로 인해서 그녀의 집중은 분산되었고, 착지했을 땐 이미 성수호가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씨….”
이번으로 6번째였다.
짜증이 나는 것과 별개로 분명 성수호의 행동은 좋은 평가를 내리기 충분했다.
대련은 실력의 우위를 정하는 것만 초점을 두는 게 아니었다.
서로의 약점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있었다.
‘이거 눈가리개… 핸디캡이 너무 쎄.’
초서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성수호에게 계속 끌려다니는 꼴밖에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절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일단… 한번은 잡아야겠어….’
초서현은 이를 아득 물면서 집중했다.
‘그래… 성급하게 할 필요 없어. 무작정 위치를 알았다고 가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잖아?’
그녀는 손바닥에 느껴지는 땀을 매만지며 알 수 있었다.
서서히 긴장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는 것을….
‘오래 끌면 끌수록 손해야.’
초서현은 안대가 있음에도 눈을 감고 다시 집중했다.
‘한번 공격한 걸 막고 바로 뛰쳐 나가면 안 돼. 무슨 행동을 하는지 계속 느끼는 거야.’
그렇게 집중하고 있을 때, 화살이 날아왔다.
쏴악!
챙!
초서현은 화살을 막고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귀에 느껴졌다. 성수호의 활시위가 머뭇거린다는 사실을….
‘젠장… 그런데 어떡하지? 지금까지 저 인간이 어떻게 움직였더라. 전에… 그리고 전에… 응?’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고는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여기… 아까 처음에 시작했던 장소 아닌가? 그리고 지금 화살이 날아왔던 장소는….’
성수호가 아무리 활을 쏘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두 사람의 대련 장소는 한정되어 있었다.
돌고 돌다 보니 두 사람은 처음 왔던 장소로 돌아온 것이었다.
초서현은 한 번만 점프하고 대부분 성수호를 놓쳐서 그 자리에서 다시 성수호의 공격을 계속 기다렸기에 원래 있었던 장소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초서현이 안대를 하기 전에 그녀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장소였다.
문제는 기억.
‘점프하지 않고, 뛰어가면 방어하면서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어. 하지만 장애물이….’
초서현이 기억에 대한 불신으로 걱정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중요한 건 손의 감각이야. 시야는 한번 본 것으로 족해.)
(니가 본 모든 것을 믿는 버릇을 들여.)
(너 자신을 믿으라는 이야기야. 너의 시야를 밝혀주는 눈을 믿지 못하면 다른 기관도 결국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초서현은 그 대사들을 전부 떠올리며 결심했다.
‘…일단 해보자!’
그녀는 속으로 외치며 화살이 날아왔던 장소로 뛰었다.
점프가 아니었다. 성수호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달려갔다.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쏴악! 쏴아악!
챙! 챙!
초서현은 날아오는 화살을 가볍게 쳐내면서 성수호에게 달려갔다.
영웅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엄청난 속도였다.
분명 이대로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심지어 살짝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창피함으로 가득한 대련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믿었다.
기억을….
성수호의 말을….
초서현은 고작 3초 만에 성수호가 있던 장소에 도착했고, 그를 찾았다.
‘젠장! 설마 벌써 도망갔다고!?’
초서현은 마지막 탄알을 헛되게 발사한 사냥꾼처럼 절망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활을 잘 쏘지만 발은 느려! 아직 근처에….
초서현은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침착하게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했고….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숨어있는 기색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 어! 거기다!”
“크엇!”
와락!
초서현은 혹시라도 성수호가 도망갈까 싶어서 그를 향해서 온몸을 던져서 덮쳤다.
그렇게 성수호를 덮쳤고, 그의 신체가 손에 잡히는 게 느껴졌다.
초서현은 아직 안대를 하고 있는 상태라 자신이 잡고 있는 부위가 어딘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잡았다!”
“자, 잠깐! 크읏!”
성수호는 초서현의 외침에 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초서현은 기쁜 나머지 잡고 있는 신체 부위를 빙빙 돌리며 미소지으며 흥얼거렸다.
“어때요? 잡히니까? 아… 진짜 귀찮게….”
“자, 잠깐… 초, 초서현 교관님! 소, 손 좀!”
“응?”
초서현은 성수호의 신체를 잡고 있지 않은 왼손으로 안대를 벗었다.
“에이… 왜 그렇게 엄살을….”
초서현은 안대를 벗고 나서야 자신이 잡고 있는 성수호의 신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어… 그… 어….”
평생 남자라고는 모르는 초서현이 처음으로 잡아보는 남자의 성기였다.
“그… 어… 그….”
초서현은 내 기둥을 작은 손으로 움켜쥐고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쯤이면 당황해서 손을 뗄만했는데, 초서현은 30초가 넘게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 가랑이 사이에 지박령이 된 초서현을 보면서 진정시켰다.
“그… 초서현 교관님 일단 손을 떼시고….”
“어… 그게… 내… 어….”
“….”
안 된다.
초서현… 면역이 전혀 없는 여자였다.
아마 이것도 변수에 대한 대처 미흡에 포함되는 상황인 듯 싶었다.
만져주는 거야 내 입장에서 좋긴 한데….
“하… 으… 그….”
지금 초서현은 내 성기를 만진 상태로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거기다 미동만 안 하는 건 그나마 낫다. 성불 못 하는 지박령처럼 계속 내 가랑이 사이에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고 귀여웠지만, 지금은 초서현의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내 음경을 잡고 있는 초서현의 손을 잡고 살며시 떼어내 줬다.
“그… 어….”
“초서현 교관님.”
“어… 네?”
손을 떼고 나서야 정신이 든 초서현에게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네?”
초서현은 벙찐 얼굴로 나를 보면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
..
지금 내 앞에는 긴 머리에 단정한 생도복을 입고 있던 초서현이 사라지고, 청바지에 푸른 티셔츠를 입고 있는 초서현만이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초서현은 나를 보면서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또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 사과 좀 그만해요!”
초서현은 내 사과에 큰소리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까 나는 초서현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책임의 의미는 사퇴였다.
나는 초서현에게 불면목이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직접 사직서를 쓰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2시간.
초서현이 나를 붙잡고 그러지 말라고 말린 시간이다.
지금까지 초서현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오히려 나를 붙잡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오늘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VR 안에서 대련으로 신체 능력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만약 정식 수업 중에 저랬다면 진짜 곤란했을 것이다.
초서현은 책상 의자에 앉고 나서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러고 보니까. 성수호 교관님… 실력이 대단한데요?”
“감사합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초서현 교관님 상대라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응? 저라서 최선을 다했다고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나름 돌려서 칭찬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다른 분도 아니고 초서현 교관님인데, 대충하면 실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하하….”
“그래도 매번 저를 도와주시는데, 최선을 다해야죠.”’
“그, 그래요! 하하….”
초서현은 입가를 씰룩이며 눈썹을 들썩였다.
칭찬은 초서현의 입술과 눈썹을 춤추게 한다.
대충 오늘 있었던 일은 결국 우리 둘만의 비밀, 사실상 없었던 일로 하자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초서현이 아까 일을 기억에서 지울 수 있을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나는 초서현에게 인사를 하며 교무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어디 가요?”
“…? 이제 점심 먹으러 가려고 합니다.”
초서현은 벌떡 일어나더니, 저벅저벅 걸어서 나를 지나친 다음 교무실 문을 열고는 힐끔 보며 말했다.
“자, 빨리 가죠. 배고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