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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과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초서현의 상태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응? 안 자고 있네?’
내가 교무실에서 지금까지 본 초서현은 10번 중에서 한번을 제외하면 언제나 자고 있었다.
그 한 번은 갑자기 변경해야 할 수업 때문에 깨어 있었던 것이었고….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책상에 앉아 있는 초서현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왔어요.”
초서현은 나는 흘깃 보더니, 인사 한번 건네고 침묵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여자였지만, 오늘은 유독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초서현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러고 보니까, 이번에 전산망 정상화됐대요.”
“네, 저도 아까 들었습니다. 다행이네요.”
“…?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성수아 교관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씁….”
“…?”
초서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혼자 구시렁구시렁하기 시작했다.
“관련도 없는 마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초서현은 까칠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툴툴거리며 입을 열었다.
“자, 교실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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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현은 기과 5반에 있는 생도들을 전부 VR 가상훈련 기계실에 모아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 수업은 가상훈련이다.”
오늘 하게 될 훈련은 VR 캡슐에 들어가서 직접 만나기 힘든 괴수들을 대면해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습하는 수업이었다.
대부분 생도는 들뜬 상태에서 캡슐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VR 헤드기어도 보기 힘든 생도들의 눈에 VR 캡슐은 외계인을 직접 대면한 인류의 눈빛이 담겨있었다.
초서현은 들뜬 생도들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경고를 했다.
“괜한 호기심에 이것저것 만지다가 망가지지 않게 주의하도록!”
“네!”
초서현은 오랜 시간 주의사항을 알려준 뒤에 생도들에게 지시했다.
“자, 각자 옆에 대기하고 있는 전문가분들의 지시를 듣고 들어가라.”
생도들은 옆에 대기하고 있던 기술자들의 지시를 들으며 캡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초서현은 한동안 캡슐로 들어가는 생도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고개를 돌려서 나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까, 괜찮겠어요? 그동안 로그인말고는 아무것도 안 됐다고 하던데….”
전산망이 회복되기 전에 이 캡슐들은 간단한 로그인만 가능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로그인 덕분에 성수아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상할 수 있었지만….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성수아의 몸매를 구석에 두고 초서현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기숙사에 VR 헤드기어가 있어서 몇 차례 접속해서 이용해봤습니다.”
“응? VR 헤드기어가 있다고요?”
초서현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VR 헤드기어는 일반인이 구입하기에는 굉장히 비싼 녀석이다.
그런 기기를 나 같은 보조 교관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대충 해명했다.
“직접 구입한 건 아니고, 선물 받았습니다.”
“…선물? 그걸?”
그런데 막상 말하고 보니까, 해명이 아니었다.
누가 미쳤다고 5억 원짜리를 선물하겠는가.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거 성수아가 줬다고 하면 상황이 더 꼬이는데….’
잠시 침묵하면서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 내 해명은 여기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생도들이 전부 캡슐에 들어갔고, 관리자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생도들 전부 들어갔습니다. 두 분 자리는 저쪽입니다.”
“…네.”
초서현은 나를 의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캡슐에 들어갔고, 나도 그 옆에 있는 캡슐에 조용히 들어가서 대기했다.
캡슐 안에 들어가니 밖에 있던 관리자가 열심히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팟!
시야가 암전되면서 VR 기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살며시 떴고, 내 눈에는 검은 공간 안에서 우왕좌왕하며 당황하는 생도들이 보였다.
어떤 생도는 싱글벙글, 어떤 생도는 혼자 근심 걱정, 어떤 생도는 친구들과 수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생도들 사이에 팔짱을 끼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었다.
“자! 다들 집중 하도록!”
“….”
생도들은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큰 소리를 친 여성… 아니, 여자 아이를 바라봤다.
다들 멍하니 바라보는 와중에 나는 여자 아이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어… 꿈 속에서 봤던 초서현인데?’
생도 시절의 초서현이었다.
“자! 다들 신체 점검하면서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도록!”
“….”
초서현의 말에 다들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초서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생도들을 빤히 보고 있을 때, 송아라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저… 쌤.”
“왜?”
“굉장히… 뭐랄까… 젊어 보이시네요.’
“…뭐!?”
초서현의 고함에 송아라는 움찔하면서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하지만 초서현은 그런 송아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지금과 다른 찰랑거리는 긴 머리와 단정한 생도복.
누가 봐도 주위에 있는 생도들의 동급생이나 하급생처럼 보이는 외모였다.
초서현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발을 땅바닥에 쾅쾅 찍으며 용솟음 같은 분노를 내뱉기 시작했다.
“이런 씨! 다들 기다려!”
초서현은 로그 아웃을 하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초서현이 사라진 틈을 타서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초서현 교관님은 기기랑 잘 맞지 않나? 매번 저러는 거 같지?”
“그러게, 저번에 고쳤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생도들의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직접 다가가서 물어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기기랑 맞지 않는다니?”
“아… 2학년 맡으실 때도 비슷했거든요. 매번 예전 데이터가 로드된대요.”
초서현의 모습을 봐서 대충 짐작했지만, 저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랬다.
올해로 3년째 이 영사관에서 근무를 하는 초서현은 매번 오류로 생도 때의 데이터가 로드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계속 고쳐도 문제가 재발한다는 것.
‘이상하네…. 성수아도 그렇고, 초서현도 그렇고…. 이 캡슐이 문제가 많은 기기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생도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유독 초서현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생도들 대부분이 초서현에 관한 이야기만 오고 갔다.
“희한하네, 왜 초서현 교관님만 저러지?”
“그만큼 나이를 안 먹었다는 거 아닐까? 기기도 헷갈릴 정도로 신체 나이를 안 먹은 거지.”
“일리 있다…. 교관님 보면 솔직히 내 동생 같아.”
“…조심해. 그 말 교관님이 들으면 너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렇게 한동안 초서현 없이 생도들의 대화로 진행되던 수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얼마 후에 초서현이 다시 로그인했다. 생도 모습 그대로….
“하아… 오늘은 일단 이대로 진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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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VR 가상훈련이라고 해서 굉장히 기대했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만족시켜주는 게 바로 현실감이었다.
‘와… VR 헤드기어랑 레벨이 다른데?’
[하드웨어적인 부분과 더불어서 소프트웨어도 판이하게 다른 것 같습니다.]
성수아와 같이하던 동물의 마을과 지금 캡슐에 들어와서 경험하는 시뮬레이션의 수준을 설명하자면 2000년대와 2020년대의 게임 수준의 차이였다.
아무리 과거에 잘 만든 게임들도 시대가 변하면 비교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비교 대상의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그래픽이다.
직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고,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직접 보고 있는 VR 헤드기어와 캡슐의 비교도 마찬가지였다.
‘캬… 이건 진짜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아냐?’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어디 하나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현실보다 더 생생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다만 감탄사가 나오는 이런 장소에서 생도들이 해야하는 일은 탄성이 흘러나오는 지루한 일이었다.
“자! 오늘 훈련은 대련 훈련이다.”
“아….”
생도들은 한숨을 내쉬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왜 이런 곳에 와서 굳이 대련하는 거야?’
[그건 VR 기기의 특성상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접속하면 알아서 다 기록해주는 거 아냐?’
[이 VR 캡슐은 들어간 자가 활동하면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물의 데이터를 작성하는 형식입니다.]
캡슐 자체는 분명 엄청난 기술력이 들어간 물품이긴 했다.
하지만 고작 사람 신체를 스캔하고 그걸 토대로 완벽하게 그 사람의 체력이나 재능을 측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나마 추상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잘나갈지 정도는 추천하는 게 전부라고 한다.
[특히 방학 동안 쉬었던 학생들은 신체 데이터가 변동이 생겼을 것이고, 첫날은 아마 기록을 위해서 VR 안에서 대련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에이… 뭐,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잖아?’
VR에서 애들이 다치면 얼마나 다치겠는가?
초서현이나 성수아가 전에 얘기해준 게 있지만, 치명상을 입는 게 아닌 한 VR 내부에서 입은 피해는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정신과 연동되는 VR인 만큼 큰 트라우마를 안겨줄 피해는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설마 대련 중에 칼부림 나는 일은 없겠지.’
[수호님.]
‘왜?’
[초서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초서현은 인상을 찌푸린 채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에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초서현과 비교하면 어색함이 배로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평소에도 어색한데….
하지만 그녀를 보고 있자면 전에 꿈에서 봤던 초서현이 딱 떠올렸다.
당당하게 걸어가며 허튼 곳을 보지 않는 집중력이 넘치는 눈빛.
정면만 바라보며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도.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게 하나 있었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까, 그때 왜 못 알아봤는지 알겠네. 표정이 완전 굳었어.’
활기차게 웃으며 당당하게 어깨를 펼치고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는 초서현이 아니었다.
상처 입고 세상을 향해서 날카롭게 가시를 드러내는 고양이 같은 느낌이었다.
전에 꿈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한가지가 떠올랐다.
‘아르모니아, 홍미선에 대해서 알아낸 거 있어?’
[들어온 정보가 있습니다만… 그건 수업이 끝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초서현에게 집중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내가 통신을 하는 사이에 초서현은 내 앞에 도착했다.
“여기에 접속한 건 처음이죠?”
“네.”
“그럼 데이터를 쌓아야 해요.”
초서현은 생도복을 입은 채 주절주절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아르모니아에게 들은 내용이었지만, 나는 처음 듣는 척하며 맞장구쳐줬다.
“알겠습니다. 일단 자주 사용하는 활을 혼자 훈련을….”
“아뇨.”
“네?”
초서현은 내 말을 끊고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저희도 한번 대련이나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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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사실이지만, 초서현이 아무런 핸디캡도 없이 나와 대련하면 1초 컷이다.
초서현의 단검 한방에 내 두개골이 이미 썰어놓은 수박처럼 깔끔하게 갈라질 것이다.
‘그렇게 머리 갈라지면 나 초서현 공략 못 할 거 같아….’
아무리 가상훈련이라고 해도 죽음의 문턱에 새끼발가락 찧는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초서현이 대련 중에 자신에게 핸디캡을 걸겠다고 설명했다.
(일단 눈을 가릴게요. 그리고 왼쪽 보조 단검만 가지고 싸울게요. 참고로 왼손 무기는 방어용이에요.)
즉, 눈을 가리고 방어에 치중하겠다는 의미였다.
유일한 공격은 오른손.
(살살할게요. 너무 긴장하지 마요.)
(…네.)
새끼 발가락… 새끼 발가락….
저 멀리 생도들이 열심히 대련하고 있을 때, 나와 초서현은 생도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준비 운동을 했다.
살랑거리는 머리카락, 생도복을 입고 있는 초서현.
막상 이렇게 생도 시절의 초서현을 앞에 두고 있으니, 덤비기 참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뭐랄까… 애랑 싸우는 기분인데?’
[그 말을 초서현에게 직접 하시면 그런 생각이 바로 사라지실 겁니다.
‘…내 존재도 사라지겠지.’
초서현에게 저 말을 하면 그 즉시 가상 현실 안에 있는 내 정신은 증발하고, 육체는 정신을 잃은 채 포도당만 쪽쪽 빠는 식물인간이 될 것이다.
초서현은 깔끔한 안대를 꺼내서 자신의 눈을 감쌌다.
“자, 선공은 양보할게요. 일단 실력을 좀 확인하고 나서 핸디캡을 늘리든 줄어든 하죠.”
“네.”
일단 나는 활을 들어 올려서 조용히 생각했다.
‘수면 불가…. 여기 안에서는 마나를 쓰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지?’
[은신도… 조심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수호님의 은신 레벨과 초서현의 은신 감지 레벨이 같습니다.]
내 은신 레벨은 10, 초서현의 은신 감지 레벨도 10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야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은신 상태로 조용히 바위 뒤에 숨었다.
“…?”
보인다…. 초서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보인다.
갑자기 기척이 사라지니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한 방 쏴보자.’
이 대련은 내가 숨어서 숨바꼭질하는 놀이가 아니다. 일단 한 발 쏴서 신호를 줘야 한다.
나는 은신 상태로 초서현에게 화살을 한 방 날렸다.
쏴아악!
분명 화살은 초서현을 향해서 잘 날아갔다.
그리고 그 화살은 교묘하게 초서현의 허리 옆을 스쳐 갈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