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178화 (179/898)

 ***

 콰당!

 “끄아아앙!”

 한봄은 괴상한 목소리와 함께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이런 씨!”

 엉덩이를 너무 세게 찧은 탓인지 눈가에 눈물이 고이면서 엉덩이를 매만졌다.

 “하씨… 아파….”

 한봄은 엉덩이 아픔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바닥에 있어야 할 성수호를 찾았다.

 “어? 뭐야! 아저씨? 어, 어디… 뭐야… 여긴….”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한눈에 이 장소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프리뭄?”

 1층 가운데 마을, 프리뭄이었다.

 한봄은 새하얀 핫팬츠가 흙에 덕지덕지 묻어 있음에도 별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둘러봤다.

 갑자기 떠오른 태양, 사라진 성수호, 변화된 위치.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실해… 프리뭄 맞는데….”

 근 한 달 넘게 생활해왔던 마을이기에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장소를 알아챈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파악되는 건 아니었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마침 채널에서도 난리가 나고 있었다.

 └우리 봄이가 드디어 정신 나갔구나.

 └나 같아도 정신 나갈 듯 여관 하나 남은 거 조만간 뺏기게 생겼잖아.

 └봄아 그냥 유혹해서 패거리를 니껄로 만들어. 섹스 별거 없어 그냥 즐기면 돼

 └오… 살아생전에 섹스 좀 해봄?

 └아니, 나 동정인데? 다들 즐겁게 하길래

 └미친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채팅창에는 한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 채운 상태였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들의 주제가 죽어가는 성수호나 주위 시체가 아니라, 이미 해결한 지 한참이 지난 여관 사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보던 한봄은 뭔가 번뜩 떠오른 표정을 짓더니 벌떡 일어나서 어디론가 향했다.

 ‘설마… 설마!’

 한봄은 터질 듯한 폐를 부여잡고 있는 힘껏 달렸다.

 단 하나의 사실,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한 뜀박질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고 나서야 그녀의 귓속으로 사람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허억….”

 한봄은 마을 중앙에 도착하고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뚫어지게 봤다.

 그곳에는 발광하며 욕설을 내뱉고 있는 한여름과….

 “이 개새끼가 죽여버리겠어!”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

 한여름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웃고 있는 성수호가 있었다.

 ..

 ..

 한봄을 먼저 알아본 민하연 덕분에 두 사람의 싸움은 어찌어찌 중단시킬 수 있었다.

 한봄은 이 현상과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회귀? 그런 게 진짜 된다고?’

 그녀도 어릴 적부터 한여름과 지내다 보니 그가 즐기던 게임에 손을 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이렇게 잘 적응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것들을 잘 섭렵했던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회귀가 진짜 존재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한봄은 회귀 전과 비슷하게 민하연의 파티원을 자신이 지내는 여관으로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마다 뒤를 흘깃흘깃 보았다.

 민하연과 성수호는 다른 사람들과 살짝 떨어져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

 “한여름의 여동생이라고?”

 “응.”

 한봄은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들을 때마다 폐부에 바늘이 꽂히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다 까먹었구나.’

 민하연뿐만 아니라, 성수호도 모든 것이 초기화된 상태였다.

 비록 허탈한 마음이 둘러싸였지만, 그와 더불어서 벅차오르는 감동도 느껴졌다.

 ‘이번에는 살릴 수 있어…. 그리고 이번에는 꼭 친해져서….’

 한봄은 성수호를 지그시 바라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적의가 담겨있는 게슴츠레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을 바라보는 순간 아까 했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저는 처음에 한봄씨 싫어했어요.)

 (끄읍…내가 성격이 지랄 맞아서요?)

 (하하… 아뇨. 한여름 가족이라서요.)

 한봄은 한숨을 쉬면서 옆에 있는 한여름을 바라봤다.

 그런데 한봄은 그런 한여름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다르게 행동하는 거지?’

 성수호, 민하연, 여자 삼인방, 채널의 존재들….

 모두가 회귀 전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유일하게 전혀 딴판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있었다.

 바로 한여름.

 “야, 한봄…. 절대 저 새끼 근처에 가지 마. 알았어?”

 “…왜?.”

 “하여튼 가지 말라고!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

 한봄은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을 최대한 끄집어내서 떠올렸다.

 ‘…이상한데? 이 새끼 분명 처음 마을 도착했을 때는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병신 꼬락서니였는데….’

 여기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회귀 전과 다른 점을 보이는 건 한여름뿐이었다.

 한봄의 기억에 있는 처음 마을에 도착했던 한여름은 초췌함…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죽어가는 눈, 새하얗게 질린 얼굴, 각질이 다 드러난 입술, 그리고 절망이 담긴 목소리….

 그리고 패배감에 쩔어서 약한 모습을 보여줬던 한여름.

 그 모든 게 달라진 상태였다.

 ‘설마…? 아냐…, 아니, 그래도 그거 말고는….’

 그녀는 최대한 회귀 전과의 차이점을 되짚으며 민하연의 파티원을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

 ..

 “그래서 지금 여관이 부족한 상태야….”

 한봄은 민하연의 파티원을 모아놓고 회귀 전에 했던 설명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저씨도… 언니도… 저 아줌마들도… 여기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저 새끼만 빼고….’

 분명 회귀 전에 한봄이 그들을 데리고 와서 설명할 때, 당시에는 한여름도 나름대로 경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딱 봐도 귀찮다는 티를 풀풀 풍겼고, 오로지 성수호가 한봄에게 다가오는 것을 경계할 뿐이었다.

 한봄의 설명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혹시 지금 이 회귀… 이 새끼 때문에 아냐?’

 그녀가 할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하지만 한봄은 그런 속마음을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나서 한봄은 전 회차에서 했던 것처럼 민하연에게 술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우연히 같이 자리하게 된 성수호.

 ‘…이렇게 보니까, 알겠다. 아저씨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딱 봐도 성수호는 한봄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호감도 비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일단 달려드세요. 한봄씨가 좋아하는데, 거절할 남자 따위는 없을 거예요.)

(한봄씨는 제가 인생 살면서 본 여자 중에 제일 예뻐요. 솔직히 하연이보다 더 예뻐요.)

 ‘으으…. 닭살…. 그런데 기분은 좋네. 흐흐….’

 한봄은 그렇게 헤실헤실 웃다가 성수호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무표정으로 바꿨다.

 ‘그래도 일단 오늘은 아니야. 내일부터 좀 다가갈 기회가 생기겠지….’

 회귀 전, 첫날에 한봄은 성수호와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않았었다.

 한봄은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민하연과 성수호를 놓고 한여름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을 보면 짜증이 일어나는 것을 넘어서 분노했고, 눈 안에는 진심으로 증오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일단 확인이 필요해.’

 한봄은 한여름의 옆구리를 툭툭 친 뒤에 그를 불러서 여관 뒤로 끌고 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언니가….”

 “야, 한봄! 네, 네가! 씨발! 도대체 왜!!!”

 한여름은 한봄과 단둘이 되자마자 발광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주위에서 사람들이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는 것도 무시하고 욕을 내뱉었다.

 회귀를 넘어서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봄은 한여름을 일단 진정시키고 그에게 말했다.

 “하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말 좀 해봐.”

 “하아…하아….”

 한여름은 간신히 진정하더니, 0층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본인이 설명하면서도 빡쳤는지 울분과 욕설을 계속 내뱉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믿어! 그 개새끼….”

 “언니가….”

 한봄은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야, 여기서 지내는 동안 내가 어떻게든 두 사람을 떼어내 볼 테니까, 너는 그사이에 하연이 언니한테….”

 한봄은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해내며 한여름에게 똑같이 말하는 순간이었다.

 “안돼! 한봄! 너 저 새끼 근처에도 얼씬 하지 마! 알았어!?”

 “….”

 한봄은 한여름의 말을 듣고 의문을 가졌다.

 ‘뭐, 뭐지? 만약 이 녀석이 회귀했다고 해도 나랑 아저씨랑 하려고 했던 거 봤나? 아닌데… 말도 안 되잖아 그건….’

 한봄이 성수호의 골반에서 자세를 잡을 때, 주위에는 자고 있는 시체(?)뿐이었다.

 그야 누군가가 몰래 엿봤을 가능성도 컸다.

 하지만 한여름이 그렇게 보고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니 있을 수 없었다. 이 참을성 없는 인간이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때 일을 떠올리는 순간 한봄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실명탄… 저주받은 단도… 이미 예상한 듯 나타난 레드 소환사… 내통자… 그리고… 갑자기 성수호를 공격한 한봄 

 ‘설마… 이 새끼 그때 나한테 준 물….’

 그녀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대뜸 물을 건네준 한여름이 떠올랐다.

 저 모든 상황이 한여름과 연결하면 딱 맞아떨어졌다.

 ‘아, 아냐… 그래도… 그럴 리가 없어.’

 한봄은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설마 아무리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가족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건 한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일단 들어가자. 언니 기다리겠다.”

 한봄은 정신 차리고 그를 진정시킨 다음 여관 안으로 데리고 갔다.

 ..

 ..

 “후우….”

 한봄은 여관 밖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벤치에 앉아 있었다.

 상황 정리는 끝났다.

 회귀한 건 자신뿐만 아니라, 한여름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그리고….

 ‘아저씨도 살아 있어.’

 한봄은 아까 성수호를 보자마자 나오려고 하는 눈물을 꾹 참았다.

 평생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찰나에 회귀했고,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다니는 성수호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온화한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뿐이었다.

 “후우… 일단 내일부터 몰래 다가가면… 아으… 잠깐… 이거 설마….”

 한봄은 가슴 쪽에 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을 받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바로 그 전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가슴에 모유가 차오르는 감각이었다.

 “마, 망했다… 어, 어떡해… 이대로면 이따 저녁에 좀 세게 올 거 같은데….”

 첫날 느꼈던 고통 덕분에 각인된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잠재워 줄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 한 사람밖에 없었다.

 민하연과 한여름에게 이런 사실을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미치겠네… 어떡하지….”

 한봄이 혼자 가슴을 몰래 주무르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두워지는 밤길을 누군가가 걸어가는 게 포착이 되었다.

 원래라면 누가 지나가던 말든 상관할 한봄이 아니었다.

 하지만 외형을 대충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누군지 확신할 수 있었다.

 ‘…아저씨? 혼자 어디 가지?’

 한봄은 성수호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그에게 다가가서 물어봤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아… 잠깐 마을 좀 돌아다녀 보려고요.”

 성수호는 마을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려고 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봄은 성수호를 보면서 내심 감탄했다.

 ‘나 처음에 왔을 때랑 정말 다르네. 대부분 사람은 첫날은 돌아다니기 무서워하던데.’

 한봄은 그런 성수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르니까, 제가 길 안내해드릴게요.”

 ..

 ..

 완전히 어둠이 감싼 마을에 성수호와 한봄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한봄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성심성의껏 안내해줬다.

 성수호는 한봄의 설명을 들으며 신기한 듯이 마을을 걸었다.

 “여기는 대부분 생필품만 팔고, 장비 같은 건 전혀 팔지 않나 봐요?”

 “네, 다른 마을에는 이런저런 물품을 팔고 있다고 하던데. 저도 가본 적이 없어서 몰라요.”

 한봄은 성수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봄은 평생 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렇게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한봄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건 성수호의 미소였다.

 그러나 그 즐거운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으….”

 “…? 어디 아프세요?”

 한봄은 가슴에 느껴지는 통증이 올라오자 참아내기 위해 팔짱을 끼고 상체를 숙였다.

 하지만 한번 올라온 모유는 도통 다시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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